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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GT] 한국구애전 장편 <나의 정원>
NeMaf 조회수:2666 추천수:6
2019-08-20 12:43:10

8월 19일 저녁 7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서는 한국구애전 장편 <나의 정원> 상영이 있었다. 이후 GT에는 원태웅 감독이 참석하여 임종우 모더레이터의 진행 하에 <나의 정원>의 제작과정과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이날 GT에는 영화에 출연한 이재헌 작가도 참석하여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임종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타인의 일상을 보고 싶었고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일과를 보내는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생각했었고요. 그 반복되는 일과를 모아놓고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게 첫 번째 동기 부여가 됐었고. 두 번째 계기는 저도 창작자다 보니, 사실 이런 창작 일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든단 말이죠. 하고 싶지 않은 때가 너무 많고. 여전하거든요(웃음) 연배가 있으신 예술가 분을 만나도 똑같은 얘기를 하시고. 그러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지’라는 궁금함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재헌 작가님을 섭외하게 됐고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습니다.

 

임종우: 사실 영화라고 하면 대상과의 거리가 명확하게 세워져 있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저는 한편으로는 그러한 거리 두기와 제작 방식이 오히려 대상으로서의 작가님과 긴밀한 신뢰관계형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이재헌 작가님을 어떻게 섭외하게 되셨는지, 그 인연이 궁금합니다

 

원태웅: 제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쯤에 이재헌 작가님 전시를 우연히 봤어요. 지하철 타고 가다가 작가님의 첫 전시를 봤는데 그림도 잘 봤지만 인상에 남았던 것은 전시장 1층 쇼윈도 갤러리에서 작가님이 전시 오프닝 퍼포먼스 하는 영상이 계속 틀어져있었는데 그걸 인상 깊게 봤어요. 어떤 한 남성이 미술계에, 혹은 세계 어딘가에 선언 같은 제의적인 행위를 했어요. 그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부질없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보겠다, 약간 순수해보이는 것이 있었어요. 제가 그 전까지 미술을 하면서 느꼈던 바로는 창작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순수함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좀 더 영리한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보였던 거 같거든요. 순수한 마음으로 다짐하는 것을 낡게 보거나 하는 경향도 있는데 이분은 그러지 않고 소신을 지켜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 기억 속에 잠깐 잊혀져있다가 예술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구상하다가 작가님 생각이 났고 이메일을 보내서 연락하게 됐어요. 몇 번 작가님 만난 다음에 작가님께 요청을 하고 촬영을 하게 됐습니다.

 

임종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 영화는 작가 혹은 직업인으로서 예술가의 일상을 담는 영화다 보니 작가님 주변인으로 가족구성원도 영화에 자연스럽게 출연하잖아요. 작가님뿐만 아니라 가족 분들을 섭외하고 출연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어려움은 없었고요. 작가님을 두세 번 만나고 촬영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 흔쾌히 허락하시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사람 간에 벽을 두기 마련인데 작가님은 있는 그대로 사람을 대하시는 것 같았어요. 흑심이 강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작가님께서 저에게 거리를 두지 않으셔서 섭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임종우: 전체적인 프로덕션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는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제가 작가님께 ‘작가님을 촬영해도 되냐’라고 얘기를 했던 게 2015년 2월이에요. 그 때부터 총 제작기간이 25개월 걸렸고. 촬영기간이 그 정도고. 촬영을 하기 전에 3개월 정도는 작가님과 별의별 얘기를 다 하면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어요. 영화에서는 작가님이 말하는 장면이 거의 안 나오는데, 실제로는 말을 안 하지는 않으시거든요(웃음). 그렇게 얘기하고 친해지는 시간을 3-4개월은 가지고 그 다음 바로 촬영을 20개월 하고 1년 넘게 잠시 다른 일을 하느라 편집을 못하다가 일을 줄이고 6개월 간 편집해서 총 합치면 4년 정도 걸렸습니다.

 

임종우: 지금까지 기본적인 영화 제작과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질문 이어가겠습니다. 제가 거리 두기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기본적인 촬영의 원칙을 나름대로 세우셨을 것 같아요. 작가님과의 합의였을 수도 있고 감독님이 스스로 세운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보니 어떤 순간을 마주했을 때 이것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촬영해야 하나, 혹은 극도로 제한되어있지만 어떻게 내가 현장에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셨을 거 같아요.

 

원태웅: 우선은 인터뷰 촬영은 안 하려고 했고요. 작가님이 루틴이 있잖아요. 하루가 돌아가는 루틴이 있는데 그걸 일종의 CCTV처럼 주변을 돌면서 찍는다는 계획은 있었어요. 최대한 카메라워크를 정제해서 찍겠다는 것도 있었고요. 그리고 유심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재헌 작가님이 옷을 항상 비슷하게 입고 다니시고 생활의 패턴이 비슷할 뿐이지만 계절이 섞여 있거든요. 뒤죽박죽. 동선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저도 처음에 찍을 때는 많이 서투른 게 있었어요. 작가님의 동선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삼각대로 고정을 시켜서 찍다 보니 작가님이 걸어가실 때 이분이 이쯤 왔다가 저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라는 걸 제가 인지하기까지가 한두 달이 걸린단 말이에요. 초반에는 밖에서 찍다 보면 카메라도 떨리고 저도 숨이 차고. 익숙해지면 동선을 아니까 괜찮은데. 그래도 작가님께 어떻게 해달라는 얘기는 안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차에서 나가서 작업실 가는 장면을 찍는데 차에서 찍다가 저 혼자 빠른 걸음으로 가서 미리 자리를 잡고 찍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죠. 남들이 봤으면 우스꽝스러웠을 수도 있어요.

 

임종우: 프로덕션 기간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긴 시간에 비해 영상의 스타일이 굉장히 일관적이기도 하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작가님의 스타일이 일관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제 계절이 바뀌어있었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요. 엄청 긴 시간이 걸려 제작된 영화들은 화면의 질, 비율이 바뀌는 경우도 있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일관된 스타일과 방법론을 가지고 뚝심 있게 밀어 간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편집에 대한 부분들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일상을 굉장히 오랜 시간 촬영했으면 푸티지의 양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수많은 방대한 푸티지 중에 영화의 타임라인으로 올라오는 클립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원태웅: 전체 촬영분이 4TB 정도 됐어요. 저희 집에 가면 화이트보드 칠판이 있거든요. 거기에 처음에 얼개를 짜놓은 것들이 씬 별로 빼곡하게 써져 있어요. 어떤 장면이 필요하고 어떤 장면이 필요하고 거기에 맞는 적합한 거를 찍을 때마다 폴더 정리를 다 해놓거든요. 몇 년도 어느 시기에 찍은 게 폴더 별로 정리가 다 되어있어서, 예를 들어 작가님이 아침에 집에서 나와서 작업실에 가는 장면이 있으면 엇비슷한 것들이 쌓여있어요. 그런 거들 위주로 본 다음에 거기서 마음에 드는 걸 추려서 첫 번째 씬에 집어넣고 하는 식으로 채워나갔습니다.

 

임종우: 방법론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어요. 스태프 스크롤을 보면 촬영을 혼자 진행하신 걸로 보이는데 초반부 장면을 보면 자동차 뒷좌석에서 작가님을 촬영하는 장면이 있다가 갑자기 바깥으로 나가서 굉장히 먼 거리에서 자동차에서 내리는 작가님의 장면이 나오는 거에요. 이거는 만약 감독님 혼자서 촬영하셨으면 작가님께 잠깐 차에 계시라고 하고 카메라 설치를 하고 나중에 “이제 나오시면 돼요”라고 말해야 성립 가능한 장면이잖아요. 이렇게 연출을 하신 건지 아니면 축적된 일상에 대한 기록들이 있으니 다른 날짜에 찍은 장면을 흐름에 맞춰서 삽입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제 기억에 그건 특별히 작가님께 말해서 연출한 장면일 거예요. 그건 꼭 찍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작가님께 그건 찍겠다고 얘기 했었어요. 그 푸티지 말고도 꿈꾸는 듯한 장면이나 인서트처럼 들어간 장면 등은 작가님과 얘기해서 청풍호가서 같이 찍은 장면입니다.

 

임종우: 그 장면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작업실에서 잠드신 모습이 나오고 그 뒤로 한국이 아닌 것 같은 푸티지도 나오고 저희가 관성적으로 꿈의 재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련의 시퀀스가 만들어지는데요. 그 클립들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 꼭 그것이 꿈이냐 아니냐 라기보다는 그 장면을 만드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태웅: 우선은 작가님이 나오는 거지 제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 만약에 제가 나오는 거면 제 마음대로 막 했을 것 같거든요.(웃음) 작가님이다보니 이미지적으로 어떤 것을 해보려는 거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하다 보니 그런 시퀀스를 두어 개만 집어넣었던 거 같아요. 그게 꿈인지 뭔지를 떠나서, 그냥 저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의 그림을 보면서 일 년 넘게 같이 제가 주기적으로 이분과 만나면서 느꼈던 거를 이미지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 시퀀스가 나온 것 같아요. 아까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는 푸티지들은 작가님 촬영 다 끝나고 겨울에 잠깐 아내랑 외국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기록했던 걸 썼습니다.

 

임종우: 작가님의 푸티지가 아니라 감독님의 푸티지들이 결합되면서 감독님의 마음도 들어가게 되고 작가와 또 다른 작가와의 커넥션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매력적인 장면이 있어요. 어두운 작업실 위로 불꽃놀이 장면이 포개어지는 시퀀스가 있었는데요. 저는 그것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결정적이기도 하고 혹은 굉장히 전략적일 수도 생각이 들면서도 또 되게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 장면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원태웅: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가님을 처음 부분에 가족하고 있고 끝 부분에 가족하고 있다가 끝나는 영화인데 그 안에는 작가님만 있거든요. 내용상 작가님을 가둬놓은 거죠. 중간 부분에 가둬놓고 앞과 끝에만 사람을 집어넣은 거다 보니 그 안에 잠깐 가족하고 있는 어떤 것들을 넣고 싶었는데 어디다 끼워넣을 지 고심했었어요. 그 즈음에 잠깐 나와도 좋을 것 같은데 그냥 넣기에는 쌩뚱맞기도 하고 방법을 생각하다가 그 장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깜짝깜짝 놀라게 갑자기 뜬금없는 장면들을 말씀하셨는데 제 이전 작업들에도 그런 것들을 넣었어요. 제 작업 자체가 조용하게 평범하게 가는 게 주가 되다 보니까 사람이 놀라는 것들을 중간중간 넣었어요. 소리 같은 경우도 중간중간에 크게 나오는 소리가 두어 번 있는데 믹싱 기사님에게도 우퍼를 터지지 않을 정도로 키워달라고 말씀 드렸어요. 혹시라도 졸면 깨라고(웃음). 그런 식으로 하는, 제 나름대로의 놀이가 있습니다.

 

임종우: 이 장면에 유일하게 직접 삽입한 음악이 있어서 그런 점들도 특이하게 다가왔었고 관객인 저로서도 매력적인 놀라움이 들었습니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영화에서 보면 이재헌 작가님이 정원 시리즈를 하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요. 저는 영화들을 많이 보면서 제목에 ‘나’라는 단어가 들어간 작품을 봤을 때 ‘나’가 누군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나의 정원>에서 ‘나’는 영화 안에 있는 이재헌 작가님이기도 하고 또 그 제목을 읽는 순간에는 관객들에게 돌아가는 ‘나’인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독님으로서의 ‘나’이기도 한 거잖아요. <나의 정원>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원태웅: <나의 정원>에서는 이재헌 작가님이 ‘나’입니다. 작가님이 가족과 지낼 때에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지만 작업실에 가면 또 창작자의 모습이 있잖아요. 작업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재헌 작가님만의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초를 가꾸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정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는 <탑과 섬>이라는 제목이었다가 영화를 만들면서 이 제목이 안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화가>라고 하자니 프로듀서님이 너무 유치하다고 하고. 정 생각 안 나면 그냥 <아티스트>로 해야지 하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나의 정원>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이 났어요. 사실 ‘정원’이라는 이름이 프로듀서가 아는 사람 이름이기도 해서 안 하면 안 되냐고 프로듀서 님이 말했는데 제가 우겨서 <나의 정원>이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웃음)

 

임종우: 제목을 짓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개봉할 때 제목을 바꾸는 영화들도 굉장히 많고 네이버에 검색해봤다가 기존 영화가 있어서 못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는데요. <나의 정원>의 제목 창작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이제 관객 분들의 질문 들어보겠습니다

 

관객1: 원태웅 감독님 영화를 항상 좋아했는데요. <나의 정원> 역시 잔잔한데도 일들이 많아서 계속 보게 되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화가 이재헌 님의 행동이나 움직이시는 모습, 생활하는 모습, 작업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서 좋았고요. 감독님께서 질문드리고 싶은 거는, <나의 정원>에서 차 안에서 찍은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카메라를 어떻게 설치를 하고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나의 정원>은 핸드헬드로 찍다가, 조그마한 삼각대도 쓰기도 했습니다. 차 안이 삼각대를 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에요. 그래서 펴지는 않고 지탱하는 기능으로만 썼습니다. 핸드헬드로 찍을 때에도 카메라 자체에 손떨림 방지 기능이 있어서 괜찮게 나오더라고요. 또 찍다 보니 제 몸이 스태빌라이저가 돼서 흔들려도 이상하지 않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찍을 때는 핸드헬드로 했다가 삼각대로 자리 나는 데에 대충 지탱해서 찍는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야외 촬영의 경우 주로 삼각대를 이용하기는 했어요.

 

관객2: 중간에 작업하실 때 완전히 까맣게 칠한 그림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결정하기 전까지 작가님이 고민하시는 부분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는데 찍으실 때는 어떤 분위기였는지도 궁금하고, 후반부에 까만색 배경의 그림을 그리는데 그 두 가지가 겹으로 연결되는 그림인지 궁금합니다.

 

원태웅: 네, 두 개가 연결되는 그림이고요.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그림이고, 중간에 전시하는 게 작가님과 촬영 마치고 1년 후에 작가님 개인전에서 찍은 게 그 안에 비집고 들어간 거에요. 제가 그렇게 배치한 이유는 보통 사람들은 영화가 됐던, 미술이 됐던 작품의 결과를 중시하고 보잖아요. 제가 미술작업을 재미있어했던 건 과정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작업이 꽤 많이 있거든요. 그런 걸 보는 걸 저는 재미있어해요. 사실 결과물보다 제가 더 재미있어하는 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렸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저는 더 재미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작가님의 전시가 메인일 수 있지만. 저는 전시가 수많은 과정 중에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전시 끝나면 그림 그리겠지, 뭐하겠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배치했습니다.

 

임종우: 영화 속 시간의 순서가 반드시 실제 시간의 순서는 아니군요. 감독님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네요.

 

원태웅: 네, 그래서 영화의 배치를 수미상관 식으로 한 것도 이거를 거꾸로 돌려도 다를 바 없는 일상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가족과 작가님은 계속해서 텃밭을 가꾸고 전시하고 작업하는 과정이 서클처럼 돌아가는 거니까요. 그 과정 속에서 유의미한 것들이 나와서 전시도 하고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임종우: 지금 나온 얘기를 좀 더 연장해볼게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나의 정원>은 풀 뜯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풀을 다시 뜯는 장면으로 종료되는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안에서도 조금씩 사이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시 촬영과 제작으로 돌아가서 <나의 정원>의 주제가 계속 이어지는 일상이잖아요. 반복되는 일상으로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할 때 ‘언제 영화를 끝내야 하지? 촬영을 마무리해야 하지?’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원태웅: 딱 2년 찍으려고 했어요. 제가 어림짐작할 수 있는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통제가 있었어요. 작가님에게 찍으려고 하는 게 저는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고 그게 쌓이기를 생각했고 그리고 한편으로 기간을 길게 잡았던 건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걸 해야 되면 그만큼 에너지가 든단 말이죠. 이 작업으로 길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 작업을 제가 1년을 계획하고 찍었으면 1년 안에 했을 테고 저는 편집을 오래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후반 작업까지 5개월하다보니 어떤 서클이 저에게 있는데 그걸 길게 하고 싶었어요. 현실적으로 제가 결혼도 하고 했는데 이 작업을 생활에 꾸겨 집어넣어서 하다 보니 1년 할 수 있는 거를 2-3년 늘려서 했고요. 평소에 다른 사람이랑 말할 때도 사실 2년 안에 끝낼 수 있어도 말로는 ‘한 5년 쯤에나 끝나지 않을까’ 얘기합니다

 

임종우: 예전에 다른 작가님께서 GV 자리에서 ‘나는 경작하듯이 영화를 만든다, 씨를 심고 경작하고 수확하고 그런 식으로 매년 작업을 한다’라고 말씀하신 게 문득 생각이 나네요. 다른 질문 드리겠습니다. 출연하신 분들도 그 전에 영화를 보셨나요?

 

원태웅: 아뇨. 일단 작가님께서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보겠다고 해서 (웃음) 제 기억으로는 작가님이 자기가 나중에 파일로 달라고 해도 절대 주지 말라고 자기는 큰 화면으로 보겠다고 말하셨어요. 무주산골영화제 때는 못 보시고 오늘 여기 와서 처음 보셨어요.

 

임종우: 작가님, 충분히 큰 화면이었나요? (웃음) 오늘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재헌: 저는 화면으로 보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일반인이니까 영화에 대해서는 제가 몇 번 더 봐야 감독님과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제 기억에는 감독님께서 와서 정말 얘기만 많이 했거든요. 도대체 뭘 나누고 싶은 건가 할 정도로. (웃음) 촬영 시작할 때 그 즈음에서부터 제가 약간 슬럼프였어요. 제 기억으로 감독님도 많이 지쳐있었던 거 같고요. 이게 작품으로 나왔지만 생각해보면, 아시겠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작업실 셔터가 내려져 있었거든요. 자연광이 안 들어오고 어둡게 작업했었는데, 저도 촬영 도중에 감독님께도 얘기했지만 어느 순간 셔터가 올라가 있더라고요. 자연의 햇빛이 들어오게 됐는데 그게 사실 놀라웠어요. 감독님과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도 하고 작품 이전에 인간적인 관계로서 결혼식에도 제가 참석하고. 살면서 친구를 얻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임종우: 저는 영화를 보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감독님께서 지금은 또 어떤 것을 준비하고 상상하시는지? 아주 가깝게는 <나의 정원>의 상영, 전시, 배급을 상상하고 계실 것 같거든요

 

원태웅: 그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 (웃음) 일단 개봉해도 적자라는 걸 알기 때문에 배급사에 민폐다 보니 제 스스로도 ‘꼭 이렇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사실 합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죽겠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럴 여유가 없어요. 숨 좀 돌리고 생각하고 싶고. 다음 작품도 뭘 하려고 생각을 하는 게 있어서 기획안도 조금씩 쓰고는 있는데 그것도 숨 좀 돌리고 할 생각입니다. 내년쯤 되면 조금씩 또 뭔가 하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종우: 원태웅 감독님과 영화 <나의 정원> 계속 기억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고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도 24일까지 열리니까 다른 스크리닝에도 많이 참여해주시기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GT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 김민주 루키

 
사진 │ 최예준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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