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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CRITCISM - 해파리와 함께하는 비평 웹진

[2021] 왜냐고 묻지 마세요 (양근영) – 정원 관객위원
nemafb 조회수:2083 추천수:2 222.110.254.205
2021-09-01 12:34:19

한국 사회 노동자의 삶을 담은 `한국신작전 1`의 마지막을 장식한 <왜냐고 묻지 마세요>는 직전에 상영된 <재춘언니>와 유사하게도 가로 폭이 좁은 화면비를 가지고 있었다. `비좁음`. 그것은 이 영화의 일부를 담아낼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처럼 느껴진다.


비좁음은 인물의 공간, 상황, 그리고 인식을 형용한다. 영화의 시작은 택배회사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도의 순서대로 보여준다 : 굉음을 울리며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그 트랙 위 수없이 많은 택배 상자들, 상자를 재빠르게 낚아채는 인간의 손, 그리고 풀숏으로 보이는 수많은 노동자. 지나가는 택배 상자와 비슷한 비율을 가진 화면비 속 주인공 기주(정하담 분)가 보이고, 그의 클로즈업 뒤에는 어둠을 머금은 정사각형 모양의 입구를 가진 트럭이 서 있다. 기주가 좁은 상자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상자를 옮기며 생계를 유지함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몽타주다.

어느 날 기주의 좁고 느린 시점 속에서 벌레들이 출몰한다. 눈에 이상이 생긴 노동자는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푸른 옷을 입은 남성에게 욕설을 듣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비명 소리가 들리고 욕을 하던 남성의 신체가 컨베이어 벨트를 멈춘다. 최대 생산성을 지속하기 위한 위계는 그 남성의 위에도 존재하는 것이어서 이 시퀀스는 그 남자의 상사의 욕설로 끝이 난다.

욕설, 거절, 모멸함으로써 기주와 직접적으로 갈등을 빚는 인물들이 모두 소득하위계층이거나 기주와 동일한 색의 옷을 입은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영화는 기주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알바생의 무시로 인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바코드로 머리를 치는 생소하고도 쇼킹한 행위는 단순한 분노의 개념보다 복합적으로 보인다. 기주의 폭력은 자신의 시선 속 벌레를 잡기 위함이며, 이는 퇴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퇴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벌레라는 상징 그리고 동일한 계층 간의 싸움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결말부에서 축적된 감정의 폭발로 인해 범죄를 행한 후 비가시화되는 결말 또한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기주의 이동 장면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도 도망자의 신속하고 서투른 도주가 아닌 무심히 떠나가는 이의 빠르기로. 그러나 그의 이동은 앞과 뒤로 제한된다. 기주의 움직임에는 -<기생충>의 인물들과 달리- 상승과 하강이 없고 앞과 뒤만이, 2차원의 움직임만이 존재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 상자의 궤적이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것 또한 선택지가 없다는 듯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강물이 보이기도 한다. 기주는 결국 카메라를 따돌리고 네모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영화를 본 후 상영관을 나왔을 때 느꼈던 건 피로의 감각이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한병철 철학가의 `피로사회`를 다시 읽다가 책에서 인용된 한트케의 [피로에 대한 시론]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벌써 끝없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각자 자기에게 가장 고유한 피로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우리의 피로가 아니었고, 이쪽에는 나의 피로가, 저쪽에는 나의 피로가 있는 꼴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너한테 지쳤어`라고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냥 `지쳤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심한 피로 때문에 우리에게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영혼이 다 타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런 종류의 피로는, 본래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무 말없이, 필연적으로 폭력을 낳았다. 아마도 이러한 폭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직 타자를 일그러뜨리는 시선 속에서뿐이었을 것이다."

끝없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는데 비좁다는 감각. 오직 자신의 자리가 없는 광활한 공간에서만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편의점 장면과 도시에서 배회하는 기주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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