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Inter-view
홈 > 대안영상예술 웹진 >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 [2023] [얽힌 스크리닝 Entangled Screening] 양지윤 기획자 인터뷰
    해파리+박동수 조회수:351 추천수:1
    2023-08-15

    에디터 : 인터뷰 읽어주실 분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양지윤 : 저는 홍대에 있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디렉터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운드 아트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사운드 아트 코리아라는 회사의 디렉터로 활동을 하면서 사운드 이펙트 서울이라는 축제도 만들고 있는 양지윤입니다. 현대미술 전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에디터 : [얽힌 스크리닝 Entangled Screening]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이번 네마프의 슬로건과도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는데요. 어떻게 출발하게 된 기획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양지윤 : “얽힌”이라는 게 영어로는 “Entangled”인데요. 어떤 정체성 같은 게 하나의 캐릭터로는 정의되기 어려운, 그야말로 다양한 것들이 섞여 있는 얽힌 상태가 오히려 개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제가 이제 초대한 작가들은 그 정체성의 출발을 본인 자신의 신체로 삼고, 3D 스캔이나 모션 캡처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얽힌 상태를 활용해 놀이하는 작가들이에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제일 흥미로운 점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내가 가지는 외모라든지 그런 피지컬 한 요소들을 가지고 스스로 놀이하는 것이었어요. 지적인 유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술가가 자신이 자신을 가지고 놀이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네마프 2023의 주제가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 했을 때, 내가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놀이하는 상황도 예술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FF 외전: 흑사병> 스틸컷

     

    에디터 : 기획자님이 쓰신 기획글을 보면 "IT 기업의 상품화 논리 밖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FF 외전: 흑사병>은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게임 <GTA V>를 활용한 머시니마 작품이고,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과 <소프트 플레이>는 3D 모델링을 통해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고, 일종의 “메타버스”라 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 작품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 움직이면서도 현실의 맥락(인종주의, 우경화, 젠더, 폭력과 테러 등)을 끌어오는데요. 이러한 얽힘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알고리즘과 AI, 온갖 빅테크 기업과 같은, 그야말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자꾸 우리의 일상을 필터 안에 가두고 현실을 뭔지 질문조차 안 하게 유도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글로벌 자본주의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테크놀로지를 예술가들이 그 상품 논리 밖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 같은 것들에 주목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통한 자본주의의 세계가 지금은 자연환경 같은 게 되었는데, 그런 현실에 대해서 예술가들이 “이렇게 살 수도 있잖아”, “이렇게 놀이할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걸 계속 문제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필터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AI나 모션 캡처와 같은 것들이 꼭 상업 영화라든지 상업 게임뿐 아니라 대안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관객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상영작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에디터 : 미술과 영상에 게임과 온라인 공간의 경험을 활용한 작업들이 점차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획자님이 말씀주신 것처럼 이번 기획전의 상영작들은 가상과 현실의 '얽힘'을 대안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긍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소프트 플레이>에서 재현된 총기난사라던가, <FF 외전>의 황량한 풍경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면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요. 기획자님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모순적인 상황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아바타'가 확보해주는 '안전한 신체'와 그럼에도 폭력적인 '가상 세계'의 간극 같은 것에 관해서요.

    양지윤 : 예술 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술가라면 이렇게 불편한 진실 같은 것들을 쳐내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을 노출해서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요. <소프트플레이>도 그렇고, 루양 작가의 <도쿠_이분법적 환상을 뒤엎는 충돌>을 보면 섹스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노출하여 관객과 공유함으로써 어떤 모순이나 충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 관객의 다른 어떤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크리닝이나 전시라는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이라고 늘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저는 오히려 가상현실 현 구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그야말로 얽혀 있는 상황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스시우먼의 노래> 스틸컷

     

    에디터 : 앞선 질문들에서 언급하지 않은 세 작품, <The 1975의 생일파티>,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 <스시우먼의 노래>는 대중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각각 영국 록밴드, 케이팝, 노래방 기계의 이미지 등 대상을 끌어오는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가요를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갖게 되는데요. 이러한 작업들이 대중문화를 전유하고 전복시키며, 심지어 가능한 저항의 수단으로 변용하는 순간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대중문화를 자체를 일종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로 뒤집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작품들을 어떻게 선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제가 사운드 아트라는 특정한 장르에 늘 관심을 가지고 굉장히 오래 기획을 해왔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기획사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청각 문화의 99.9%를 차지하죠. 이렇게까지 (획일화된 청각 문화가) 장악하는 공간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늘 했었고요. 때문에 청각 문화에 대해서 코멘트하는 작가들, 상품으로서의 대중음악이나 문화 상품으로서의 장르를 가지고 놀이하는 작가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꼭 상업과 비상업의 구분에 관한 것은 아니고, 이것 또한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것들이 상품이 된 상황에서의 그런 상품과 상품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죠. 한편으로 대중음악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데는 특정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그것들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개별 예술가라면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 자신의 예술 안에서 조금은 다른 것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번 장르전의 작가들을 초대를 하게 되었어요.
     

     

    에디터 : 대중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장르전의 작품들은 동시에 서브컬처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The 1975의 생일파티>에는 밈 문화가,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는 드랙을, <FF 외전>의 게임과 <도쿠> 속 일본 서브컬처 등 다양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서브컬처는 그 자체로 대중문화와 동떨어진 특성과 정체성을 지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것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지점이 장르전의 제목이 가리키는 '얽힘'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기획자님께서는 그러한 얽힘이 지닌 가치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서브컬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이 향유하던 것들이었잖아요. 이제 글로벌 자본주의와 함께 서브컬처가 개별 상품으로서 소비되고, 소셜미디어와 힙스터 문화 등을 통해서 개성 있는 취향이 담긴 상품이 되어 버린 지금 상황에서 “서브컬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늘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노스탤지어는 아니고요. 개별적인 서브컬처에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개성 넘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러한 개성과 미감을 재밌게 보여주고 선별해내는 작가들을 초대했어요. 왜냐하면 [얽힌 스크리닝]은 70분짜리의 스크리닝 프로그램이고, 극장에 앉아서 70분을 보는 관객에게도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관점에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작업을 일부러 모았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고민을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얽힌 스크리닝]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놀이하는 작업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 스틸컷

     

    에디터 : 3D 모델링이나 애니메이션, 게임엔진 등으로 신체를 재현하는 작품들과 다르게, 듀 킴 작가의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는 실제 작가가 등장하여 춤과 노래를 선보입니다. 얼핏 다른 작품들과 다른 결을 지닌듯한 이 작품을 장르전에 포함시킨 이유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양지윤 : 저는 듀 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아바타라고 생각해요. 이름을 만들고, 자신의 의상, 헤어스타일, 엑세서리도 본인이 만들고요. 작가가 그렇게 놀이하는 게 늘 흥미로웠어요. 듀 킴 작가가 유학에서 돌아오셨을 때 우연히 만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계속 변화시키는 모습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듀 킴 작가는 듀 킴이라는 캐릭터를 계속 구축해 나가고, 동시에 그것을 감추고 이름도 계속 바꾸시거든요. 따로 아바타와 같은 가상의 분신을 만들 필요 없이, 이미 작품 안에서 자신의 분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듀 킴이라는 이름도 본명이 아니고요. 그리고 그것들이 변화하는 본인의 사적인 관계 속에서, 듀 킴이라는 캐릭터도 바뀌어 가는 상황들이 늘 흥미로웠어요.

     

    에디터 : 실제 사람이 등장하는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를 제외한 다섯 작품이 제공하는 신체 이미지는 실제 신체의 리얼한 재현과 언캐니한 재현을 오갑니다. <스시우먼의 노래>가 그것을 극단적인 패러디로 밀어 붙인다면, <소프트 플레이>나 <The 1975의 생일파티>는 아바타와 실제 인물 사이의 동일시를 도구로 삼는데요.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대주제와 연결하여, 장르전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신체의 확장'이 어떤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저는 소셜미디어 문화 이야기할 때 나르시시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필터를 사용하고, 자신을 가공해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잖아요. 또 한 가지는 TT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가 있는데, 소비자를 젖먹이로 바꾼다는 개념이에요. 소위 “글로벌 리더”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이 단어를 새로운 어젠다로 이야기를 했었고, 거기서 모두를 젖먹이 수준의 멘탈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제가 나르시시즘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발표를 하더라고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뇌를 자꾸 마비시키고요. 그런데 작가들은 나르시시즘이라는 주제를 또 한 번 뒤틀거든요. <스시우먼의 노래>의 이영주 작가 같은 경우는 자신의 신체가 대부분의 작업에서 주제가 되는데요. 동양 여성에 대한 서유럽 남성의 판타지 같은 것들을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뒤틀어버리는 작업을 보여주죠. 저는 이런 작업들이 역설적으로 지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시스템 자체, 혹은 그런 시선 자체를 가지고 놀이할 수 있다는 태도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늘 피해자이고 상처를 말하는 여성의 모습보다는, “너희가 그걸 원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보여주겠어!”라는 태도가 오히려 굉장히 진취적이고, 용감하고, 없었던 동양 여성 캐릭터를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자본이 했던 기획은 나르시시즘을 이용해 뇌를 마비시키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그 상황을 뒤집어 유희할 수 있다는 것들이야말로 확장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지만, 그렇게 놀이할 수 있다는 태도가 이번 장르전에 초대한 작가들에게는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 [얽힌 스크리닝] 장르전의 다양한 상영작들과 함께, 네마프 2023의 다른 상영작들을 살펴보면 유사한 주제의식 혹은 형식을 지닌 작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혹시 장르전에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실현되지 않은 작품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상영작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기후위기에 관한 고민이나 생태와 관련된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번 장르전에 특정한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을 초대했지만, 체제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관해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작업들을 생각하긴 했습니다. 장르전 상영 후 GT에 김규향 선생님을 대담자로 초대를 드렸는데, 그러한 부분을 대담으로 좀 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에디터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네마프 2023을 찾을 관객분들이 [얽힌 스크리닝]을 어떻게 보셨으면 좋을 것 같나요?

    양지윤 : 저는 그야말로 즐겁게 봤으면 좋겠고, 웃겼으면 좋겠어요. 웃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여기저기서 세계가 멸망하고 있다는데, 예술가나 저나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 중 하나가 마지막까지 유희하는 태도라 생각해요. 이 상황에서 문제들을 즐겁게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춤출 수 없다면, 당신의 혁명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말이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도 생각합니다.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 [2023]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 정세라 기획자 인터뷰
    해파리+박동수 조회수:389 추천수:1
    2023-08-15

    에디터 : 인터뷰 읽어주실 분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세라 : 안녕하세요. 저는 주로 현대미술에서 시각 예술 기획과 비평을 하는 큐레이터이자 연구자입니다. 한국 비디오아트 아카이브 ‘더 스트림 THE STREAM'을 설립하여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디렉터이고요, 동명의 영상예술 비평지를 출판하고 있습니다. 주로 예술과 기술에 관련한 미디어 매체 예술 관련 연구를 하면서 글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 올해 네마프는 기존의 영화제와는 다른 움직임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품의 대안적 가능성을 넘어, 기획과 큐레이팅에 관해서도 새로운 탐색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특히 정세라 디렉터님께서 참여하신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처럼 각 기획자가 하나의 주제를 맡아 작품의 섹션을 구성하는 것이 그러한 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 네마프에서도 ‘작가전'은 꾸준히 있었지만, 이번 작가전에서는 동시대 작가인 이은희 작가를 포커싱했습니다. 기획 큐레이터로 참여를 제안받으셨을 때 어떠한 생각이 드셨는지, 그리고 이번 네마프에서 이은희 작가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이유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세라 : 네마프에서는 여러 번 다른 기획프로그램에서 전문 패널로 참여한 적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본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습니다. 올해 23주년을 맞아 네마프가 새로운 기획의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초청해 주신 것을 잘 알기에 그 의도에 부합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해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이 게스트로 초대되었다는 점에서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교차해서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영화제에서도 소개되기도 하지만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관객층에 차이가 있을 테니깐요. 제가 작가전에서 소개한 이은희 작가 역시 영화제보다는 미술계에서 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인데, 전시에서의 설치나 환경에서 벗어나 오롯이 영화관이라는 몰입의 환경에서 같은 작품이 다르게 보여질 수 있겠다는 점에서 기대하면서 기획했습니다. 기존 네마프의 작가전의 회고전처럼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면, 이번 작가전에서는 기획 이슈를 중심으로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고, 구성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전은 네마프의 주제 “안전한 신체의 확장"과 무관하게 기획해도 상관없었지만, 저는 네마프의 주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결을 맞추어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이은희 작가는 그런 측면에서 포커싱을 할 수 있는 좋은 예술가였습니다.

     

    에디터 : 기획을 아우르는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이라는 제목의 의미 역시 궁금합니다. ‘몸’과 ‘기술’ 사이에 위치한 것이 ‘이미지’이고, ‘플레이'는 영상과 같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재생할 때의 Play 버튼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놀이적인 의미도, 무언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수행적 의미로도 생각이 됩니다. 기획자님께서는 어떠한 의미로 이 제목을 구상하셨는지요? 

    정세라 : 저는 물리적, 인식적 기준들을 따라 감각되는 신체와 스크린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현실의 신체가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어 이미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체의 즉각적 접근에서 차단되고 스크린에서의 신체만을 지각하게 되면서 시각적 편향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시각 의존적 신체를 포함한 현실이 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그 스크린 이면에 잠재된 기술 메커니즘을 이은희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신체-이미지-기술의 강도를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결국에는 무빙 이미지라고 아울러 말할 수 있는 작품들이 상연의 형태로 스크린을 통해 재생(플레이)되니까요. 몸은 하나의 매체이고, 몸이 수행하는 역할은 기술-과학의 근본적 관심이기도 합니다. 스크린 역시 하나의 물리적인 매체이고 인간의 몸과 유사하게 유한한 시간적 연쇄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몸과는 다르게 자기 몸(스크린)이 소멸하여도 다시 자리를 옮겨, 절대 죽지 않는 몸을 갖고 우리 앞에 현전하기도 하죠. 작품들은 스크린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 같잖아요. 그렇다면 스크린은 언제나 죽지 않는 몸이 되어주죠. :) 

     

    에디터 : 이은희 작가님의 작업 중 중 네 작품 -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 <블러드 캔 비 베리 배드>, <컨트라스트 오브 유>, <핫/스턱/데드> - 이 이번 네마프의 큰 주제인 “안전한 신체의 확장"과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정세라 : 저는 여전히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 무엇인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안전한 신체의 확장"과 직접적인 관련성보다는 ‘신체와 기술’을 중심에 놓고 주제로 잡은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을 생각했고 그 이슈에 가장 적절한 작품을 리서치하고 선정했습니다. 이은희의 작업은 주로 몸과 기계, 기술이 촉발하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연결 짓고, 실제 작가 주변 일상 경험에 기반하여 접근하면서 신체 이미지를 매체의 문제와 연결하여 제시하기 때문이죠. 

     

    에디터 : 이은희 작가의 작업은 보편 세계에서 적합하다고 인식되는 기준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큰 흐름 안에서 “안전한 신체"에 대한 물음은 즉각적으로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과 <블러드 캔 비 베리 배드>와 비교적 순탄하게 연결됩니다. 그러나 앞선 두 작품과 조금 다른 축으로 <컨트라스트 오브 유>와 <핫/스턱/데드>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앞선 작품이 장애를 가진 몸, 신체적으로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몸, 신체상에 대한 불일치에 대한 이미지를 탐색한다고 하면, 다른 두 작품은 디지털 세계와 물질을 탐색함으로써 이 기준을 물질적 수준으로까지 확장시킵니다. 사실 제목만 보고 생각한 것은 ‘보철로서의 몸'에 대한 작업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두 축을 연결하신 디렉터님의 생각은 어떠신지가 궁금합니다. 

    정세라 : <컨트라스트 오브 유>는 디지털 기술이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혹은 잘못 인식하는 신체(얼굴) 이미지에 대한 문제를 여러 실제 사례를 통해 폭로하면서 디지털 기술의 비정상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컨트라스트 오브 유>에서 드러난 기술적 오류는 인간의 얼굴이나 신체라는 실재와의 인과적이거나 지표적 연관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죠. 이미지는 언제나 우리의 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지만, 디지털화된 이미지는 우리가 항상 그곳에 있다고 인식하는 지각적 인지 세계의 또 다른 층위를 노출하고 있고요. 바로  이러한 순환 과정에서 우리의 몸과 물리적 스크린의 몸을 연결 짓는 시도로 볼 수 있고, 이것은 <핫/스턱/데드>로 이어집니다. 이 작품은 스크린이라는 신체(몸)를 구성하는 세포를 들여다보듯 픽셀과 기술 입자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죠. 참고로 네마프 도록에 실린 저의 글을 읽어보시면 기획의 내용과 작품들의 구성 이유를 더 자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컨트라스트 오브 유> 스틸컷 

    <핫/스턱/데드> 스틸컷

     

    에디터 :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의 상영 순서는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로부터 시작해 <블러드 캔 비 베리 배드>, <컨트라스트 오브 유>, <핫/스턱/데드>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배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어떤 것이었을지가 궁금합니다.

    정세라 : 네 작품이 하나의 기획 이슈 안에서 시간적 연쇄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하나의 작품이 특별하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저는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는데요, 전시가 공간까지 포함해 어떤 환경을 전시하는 예술적 실천이라면 이번 영화제처럼 상영 기반 프로그램은 작품과 작품을 병렬적으로 이어서 보여주는 방법에서 과연 관객의 지각을 어떻게 연쇄시킬 것인가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에디터 : 이은희 작가님의 작업이 미술을 베이스로 주로 전시 공간에서 소개되었는데, 이번 네마프 2023에서 영화관의 큰 스크린에서 단채널 영상으로 상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은 대부분 영화와는 다른 화면비, 그리고 전시에서의 2채널과 같은 작업으로 진행되어서 이번 작업을 위해서 단채널로 재작업 되었는지,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고 하셨을 때 걱정되시는 부분이나 기대되는 부분은 어떠한 것들이 있으셨을지가 궁금합니다. 

    정세라 : 저는 ‘더 스트림’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www.thestream.kr)을 운영하는 동시에 전시 기획, 연구, 출판과 함께 정기적인 아티스트 스크리닝/토크 프로그램을 2015년부터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스크리닝의 방식으로 보여주었기에 이번 네마프에서도 특별하게 우려가 되는 부분은 경험상 없었습니다. 반대로 기대했던 부분은 채널이 다양하고 작품에 따라 화면비가 달라지는 것을 흥미롭게 봐주셨으면 하는 것이었죠.

    현대미술에서의 무빙 이미지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쇼잉 되고 있습니다. 싱글채널 외에도 2채널 이상의 다채널 작품들이 있구요. 확장 영화나 실험 영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물리적 환경을 따라 지각을 파편화하는 전략을 쓰면서 실험적 탐구를 하는 것처럼요. 저는 영화제에서도 새로운 지각의 방법을 큐레이팅을 통해 소개하면 흥미로울 거라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물론 아무리 실험적인 방법을 쓰려고 해도 스크린이라는 프레임이 매우 제약적인 것은 사실이지만요. 이번에는 2채널 작품들과 세로 화면비의 작품이 있었는데요. 영화제의 특성상 이은희 작가가 싱글채널 작품으로 수정을 한 것이고요. 전체 네 작품의 사운드 밸런스를 최적의 상태로 조정하기 위해서 다시 하나의 싱글채널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 스틸컷

     

    에디터 : 네마프 2023을 찾을 관객분들이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이은희 작가전]을 어떻게 보셨으면 좋을 것 같나요?

    정세라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획 이슈를 따라서 작품들 사이의 연쇄를 잘 살펴주셨음 합니다. 무엇보다 이은희 작가의 작품들을 흥미롭게 봐주셨으면 하구요. 너무 어려운 작품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 마지막으로 현재 정세라 디렉터님의 관심 주제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정세라 : 저는 현대미술 이론과 매체 미학을 공부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기술과 예술의 범위 안에서 기획하고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더 스트림을 설립하면서 한국의 비디오아트/무빙이미지에 대한 아카이브 리서치 연구와 기획, 비평을 통해 한국 영상예술의 지형도 그리기를 목표로 삼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요. 더 스트림을 구상했던 계기도 한국의 비디오아티스트와 작품들을 국내외 큐레이터나 전문가 연구를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허브 역할을 더 스트림이 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뉴욕 모마의 큐레이터였던 바바라 런던(Babara London)이 더 스트림 아카이브에서 작품을 보고 연락을 주기도 하였고, 2022년 더 스트림의 기획 프로그램에서는 해외 유관 기관인 영국 럭스(LUX)가 협력 기획으로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온라인 아트 아카이브 플랫폼의 최대 장점은  네트워크 기반의 특성상 빠르고 넓은 확산(배포)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국내 현대미술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한국의 영상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을 두고 있습니다. 더 스트림이 비영리예술 연구단체이자 큐레토리얼 팀이기 때문에 가장 충실해야 할 아카이브 연구부터 그로 촉발되는 다양한 예술 실천으로 확장하고자 여러 가지 모델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하면서 저의 박사 논문이 자꾸 미뤄지고 있어서 연구를 하는 데 조금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블러드 캔 비 베리 베드> 스틸컷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 [2023]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 김신재 기획자 인터뷰
    해파리+박동수 조회수:565 추천수:1
    2023-08-15

    에디터 : 안녕하세요, 김신재 큐레이터님.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신재 : 안녕하세요, 저는 시간 기반 미디어와 리서치 기반 실천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기획을 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동행하는 김신재입니다. 미술관, 비엔날레, 페스티벌 등을 오가며 일했고, ‘사이’에서 발생하거나 횡단의 모험을 자처하는 상호학제적 작업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에디터 : 김신재 큐레이터님이 기획하신 주제전의 제목은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입니다. 제목만 놓고 생각해 보면, 주체 혹은 비체가 장소를 감각하는 방식과 물질의 어떤 그물치기가 얽혀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이런 뜻 풀이가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주제전의 제목을 이렇게 지으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김신재 : 너무나 훌륭하게 풀이해주신 것 같아요! 작품을 먼저 골랐기 때문에 주제전 상영작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확정하게 된 제목이에요. 원래는 다른 가제가 있었는데, 제목을 바꾸면서 방사능 같은 보이지 않는 물질과 장소의 관계, 인간과 인간 너머 존재들이 이루는 상호작용의 매트릭스를 다루는 여러 작업을 아우를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외에도 단어들이 어떤 지도를 펼친다고 생각했고, 서로 이루고 충돌하는 감각과 작용을 고려했던 것 같아요. 

     

    에디터 : 큐레이터님이 쓰신 주제전 기획글을 읽어보면, 참사와 더불어 느린 재난이 인간과 자연, 기술이 맺는 관계를 재설정하기를 요청한다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더불어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소개된, 재난 상황에서 미술관의 대안적 전시 방식을 모색하는 위성프로젝트 <반향하는 동사들> 같은 큐레이터님의 기획을 살펴보면 재난과 관계 재설정에 관한 고민을 코로나 19 이후부터 계속해 오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 주제전이라는 기획이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신재 : 국립현대미술관 이수연 학예연구사님의 제안을 받아 <반향하는 동사들>을 기획할 때는 사실 팬데믹이 드러내는 취약함의 여러 측면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스티븐 J. 잭슨(Steven J. Jackson)의 「Thinking Repair」라는 에세이를 추천해주셨는데,  ‘손상’과 ‘회복’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론적·인식론적 위기를 마주했다고 생각하던 중이라 부지불식간에 기획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재난’은 저에게 지나치게 거대한 개념이자 압도적 현실이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접근의 입구를 찾은 건 의외로 제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무렵에 썼던 단편 소설을 작년에 다시 읽으면서였어요. 그때만 해도 ‘재난’을 일종의 은유나 알레고리로 그렸다면, 지금은 훨씬 구체적이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으로 다루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작년 10월과 올해 4월, 스발바르와 후쿠시마에 뚜렷한 목적 없는 답사를 다녀온 이후, 느슨하게나마 계속 이런저런 점들을 찍고 이어보는 과정에서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에디터 : 큐레이터님이 기획한 주제전의 작품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경로들은 Nemaf 2023의 주제인 “신체의 안전한 확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는다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작품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신재 :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침↑폼이 시작하고, 쿠보타 겐지, 에바/프랑코 마테스, 제이슨 웨이트가 함께 기획한 '돈 팔로우 더 윈드(Don't Follow the Wind)' 프로젝트와 동명으로 출간된 책을 보면,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대피 당시 바람에 실려 퍼져나간 먼지처럼 사람들 역시 소문을 따라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공교롭게 저도 이러한 작품들을 여행과 대화 과정에서 동료들을 통해 굉장히 사적인 경로로 만나게 되었어요. 저는 ‘재난 이후’, 혹은 ‘느린 재난’의 다양한 양상 중에서도 방사능 오염과 원자력 발전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과 같은 기반시설에 대한 리서치를 먼저 시작했어요. 하지만 너무 거대한 문제여서 제 스스로 너무 추상적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나 싶던 차에 <선별과 해석과 소란의 공생>은 후쿠시마 여행 때 현우민 작가가 소개해줬고, <체르노빌 22>은 저와 관심이 비슷해서 만나자마자 한참 수다를 나눴던 펠리시아 혼카살로(Felicia Honkasalo) 작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어요. <야생 친척들>은 제가 작년에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있을 때 노르웨이에서 PRISM을 운영하는 마이크 스펄린거(Mike Sperlinger)라는 동료가 추천해준 작품이고요.  

     

    <선별과 해석과 소란의 공생>

     

    <체르노빌22> 스틸컷

     

    에디터 : Nemaf 2023의 주제인 신체의 안전한 확장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신체의 확장의 안전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19세기에 이르러 여성, 자연, 그리고 기계가 남성의 지배와 권위를 위협하는 공포를 야기하는 ‘타자성’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논의 지점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 기술 발전의 시대인 오늘날 다양한 타자들과 안전하게 이야기 나누는 방식에 관해 고심하는 작품에 관해서 Nemaf 2023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신재 큐레이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신재 : 솔직하게 말하면, “안전한 신체의 확장(Expansion of Entangled Bodies)”이라는 제목에서 ‘안전’과 ‘확장’이라는 단어에 여전히 물음표를 갖고 있고, 제 스스로 아직은 명확하게 해소하지 못한 상태예요. 그래서 영문 제목의 “entangled”라는 단어가 국문 제목과 다소 어긋나는 듯 하지만 오히려 약간의 보완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사건사고들처럼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다양한 존재들을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과 생태적 위협을 복합적이고 중첩된 위기로 보고 ‘안전’과 ‘돌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많은 진단들에 동의하고, 그런 차원에서 ‘신체’를 비-인간 존재나 기술과 얽힌 관계로 확장해서 해석해보려 했어요. 말씀하신 것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 큐레이터님이 선정하신 작품은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활용하여 이미지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요즘 게임 엔진이나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이 많이 선보여지고 Nemaf 2023에도 그러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요. 주제전에서 소개하진 않았지만 큐레이터님이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셨거나 관심 있는 Nemaf 2023의 작품이 있을까요? 

    김신재 : 요즘 많은 상업 영화의 VFX에서는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이 볼류메트릭 캡처나 모션 캡처와 결합되고 있고, 실사 영화조차 게임 엔진이나 3D 모델링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종종 음악방송 같은 데서 배경이 되는 LED 미디어월에 물결 무늬 무아레(moiré) 현상이 나타나는 걸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버추얼 프로덕션에서는 이 무아레를 지우는 게 중요한 과제인데, 저는 기술을 활용하는 동시에 매체의 조건을 드러내는 작업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고 또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의 이은희 작가 작업이 보여주는 기술과 신체에 관한 물질적 조건과 토대에 대한 탐구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에요.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의 다른 기획인 양지윤 기획자님의 [얽힌]에서 말씀하신 기술을 활용해 탈신체화, 또는 재신체화를 다룬 작업들이 소개된 것으로 아는데, 행사를 준비하느라 놓치게 되어 아쉬워요. 

     

    에디터 :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공통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해 온 기술과 자연, 인간, 비-인간 종의 얽힘을 살펴봅니다. 주제전에 소개된 작품 외에도 이러한 얽힘을 살펴보는 작품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주제전에서 소개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 작품이 있을까요?

    김신재 : 꼭 상영했으면 했던 작품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그니에슈카 폴스카(Agnieszka polska)의 ‹꽃의 서(The Book of Flowers)›라는 작품이에요. AI 이미지 생성 모델 Stable Diffusion과 16mm 필름 포스트프로덕션을 결합한 단편영화인데요. 수천 년 동안 꽃과 인간이 밀접한 공생 관계를 유지해 온 식물 생태계에 대한 또 다른 역사를 제시하는 SF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이라 꼭 틀고 싶었는데, 이제 막 유럽 외에서 프리미어를 하는 중이라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외에도 리아 리잘디, 아나 바즈, 우르술라 비에만, 엘리 허경란 작가 등의 작업을 고려했는데, 이번에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고 진행 중인 작품들도 있거든요.(웃음) 이번에 기획한 프로그램이 단발적인 기획보다는 장기적인 리서치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유기적으로 생성되고 이어지기를 바라요.

     

    에디터 : 관객들이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 주제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으신가요? 

    김신재 :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비롯해 재난이 일상화된 지금, 기존 지식에 의지해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저는 한동안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 중심적 픽션을 프로그램화하는 것은 아닌지, 세계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줄 수 있을지에 대한 뭉툭하고 답도 없는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주제전을 기획하면서는 어떻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것보다는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고요. 적어도 다른 장소와 연결되고 감각을 열어둘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랐어요. 

     

    에디터 : 마지막으로 현재 김신재 큐레이터님의 관심 주제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신재 : 최근에는 감각과 기술, 인프라에 대한 질문을 듣는 일과 엮는 데 관심이 있어요. 여전히 리서치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어서 말하기가 다소 조심스럽지만, ‘재난 이후’, 혹은 ‘느린 재난’을 방사능 반감기(half-life) 같은 인간의 인식을 초과하는 시간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한편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들 역시 조금씩 따라가고 있어요. 감당 불가능한 주제가 아닌지 망설이기도 하고 약간의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핵 문화에 대한 연구나 프로젝트를 살펴보기도 하고, 동료들을 따라 캐런 버라드의 페미니스트 유물론 관련 스터디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야생 친척들> 스틸컷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 [2023] [인터뷰] <나는 말이다> 임채린 작가
    해파리+박동수 조회수:311 추천수:1
    2023-08-13

    에디터 :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임채린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이랑 외국을 오가며 실험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임채린입니다.

     

    에디터 : 앞선 작품들에서 꾸준히 섹스와 젠더,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탐구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선 작품들이 다소 추상적인 표현들이었다면, <나는 말이다>는 태몽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욱 특정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내러티브가 이번 영화에서는 미약하게나마 발견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말이다>는 어떻게 출발하게 된 작품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채린 : 실험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느꼈던 게, 말씀하신 것처럼 제 전 작품들이 추상적었어요. 예를 들어 성기와 꽃의 비슷한 상징성과 같은 것을 이야기했었고, 다른 실험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도 추상적인 이야기,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리고 제 전 작품도 거기에 부합되는 작품이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틀을 깨고 싶기도 했고, 작업하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논-내러티브이자 내러티브이기도 한 이 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작 <아이즈 앤 혼즈>(2021)에서는 피카소를 통해 파괴적인, 유해한 남성성에 관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한국인인데 백인 남성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게, 한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서양 미술사 위주로 하게 되잖아요. 제가 작업할 때나 출품했던 영화제도 대부분 외국이었고.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이중섭의 작품을 떠올렸어요. 제가 이중섭의 작품을 관객으로서는 좋아하지만, 같은 미술을 하는 작가로서 좋아할 수는 없었어요. 이중섭 작가가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나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잖아요. 고향에 관한 향수를 이야기하고. 그런데 가족은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만을 그리고, 물론 이중섭에게 딸이 없긴 했지만 남자아이들만 그림에 등장하고, 여성은 엄마의 모습으로만 등장했고요. 근데 저는 딸이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에디터 : <나는 말이다>가 논-내러티브 작업이라고 소개되었지만, 극장에서 본 영화는 내러티브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채린 : 저는 분명히 이야기를 넣은 것 같거든요. 컨셉 할 때 이야기 구조를 만들잖아요. 그런 구조도 이야기인데, 실험 애니메이션 쪽 분들이나 실험영화 하는 분들에게 작품 보여드리면 다들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하세요. 작품에서 시퀀스마다 표현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것을 이야기가 나오듯이 진행하는 거예요. 처음에 나온 하얀 종이로 만든 장면들은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장면 중에 갑자기 남자 성기가 발기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은 “여기가 분기점이다”라는 느낌으로 넣었어요. 여자들끼리 있으면 성에 관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할 때가 있잖아요.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남자가 죽었는지 아닌지 알려면 성기를 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성기는 계속 움직이니까요. 거기서부터 여자가 춤 추는 장면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염두에 두며 만들었는데, 어떤 분들은 알아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가부장제에서 뛰쳐나오려는 여성이 등장하고, 다음에 이중섭의 작품 속 소년들과 황소가 소개되는데, 황소에 탄 사람이 소년이 아니라 소녀에요. 그리고 반인반마 여자가 등장하고요. 그렇게 구조를 만들긴 했어요. 사실 지원사업에 지원할 때도 느껴지는 게 있어요. 스토리보드나 대본을 요구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다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국적인 주제이고 이중섭을 인용하는 것이 있잖아요. 이 작품이 저에게 왜 중요하냐 하면 가족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고요. 실험 애니메이션에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정당성이 있어야 했어요.


    에디터 : 조금 원색적인 질문인데, 젖을 빠는 장면도 두 번 정도 반복되는데요. 저는 그 장면이 여성들 사이의 쟁투 과정 중에 하나로서 받아들였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그 장면을 구상하셨나요?

    임채린 : 마지막에 여자 잡아먹는 거인이 나오고, 거대한 여성 반인반마를 끌고 가는 남자들도 나오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 속 여성이 가두어진 동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양분을 빨아 먹는다는 생각을 했고요. 프란체스코 클레멘트라는 현대미술 작가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The Black Book>(1989)인데, 남자가 이득을 취하는 그런 장면이에요. 남자가 여자의 젖을 빨고 동시에 다른 여자가 남자의 성기를 빨아주는 장면인데요. 이 남자는 여자한테 모든 걸 다 취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여성으로는 “뭐지?” 싶은 기분인데, 그것을 축복이라고 하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너한테나 축복이지 나한테는 재앙인데” 이런 생각도 들고. 남자들이 원색적으로 여자를 지배한다는 식의 생각이 담긴 행위더라고요. 그런 많은 게 응축되어 있다고 할까요.
     

    에디터 : <나는 말이다>는 감독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꾸셨다는, 각각 호랑이와 야생마가 등장하는 태몽을 자막으로 소개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중섭의 황소와 소년 그림들을 등장시키는데요. 이중섭이 태몽에 관련된 작품을 남기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태몽과 이중섭 사이의 연계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임채린 : 아이디어는 이중섭의 작품에서 출발했어요. 이중섭 작품에 여자아이가 없다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닌 거예요. 여성으로서 모두가 느끼는 이야기지만 보편적인 이야기이잖아요. 저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힘든 일 있을 때마다 “너는 말 태몽이니까 괜찮아. 어떻게 잘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꾼 야생마 태몽이나 외할머니가 꾸셨던 호랑이 태몽도 사실 딸에게 주어진 태몽은 아니라, 아들에게 주어지는 태몽이거든요. 이게 이중섭의 작품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태몽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이중섭 작품과 연결시켜준 것 같아요.


    에디터 : 작품에서 꾸준히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전작 <아이즈 앤 혼즈>에서는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 연작을, 이번 <나는 말이다>에서는 이중섭의 작품들을 직접 인용합니다. <플로라>(2018) 같은 경우에는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들을 연상시키는데요. 꾸준히 미술가들의 작업을 인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채린 : <플로라>같은 경우는 3D로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지아 오키프 작업이랑 연관되게 만들어졌어요. 제가 지식을 외우는 것을 좋아해요. 한국사를 보면 시대를 나눈 연표가 나오잖아요. 미술사에서도 현대미술을 인상주의부터 시대별로 구분하고요. 그런데 미술관에서 자연스럽게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내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은 엄청 적잖아요. 이제야 발굴되는 분들도 계시고. 여기에서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나랑 비슷한 사람은 왜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아이즈 앤 혼즈>에서 인용한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 연작을 보면 수많은 여자는 모델에 국한되어 있고, 남자는 피카소 혼자서만 나와서 난교를 하는 장면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런 작품들도 현대 미술로 인정받으며 본받을만한 작품이라고 전시되지만, 여성으로서 저에게는 포르노그래피로만 느껴졌어요. 남성이니까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공부하는 과정에서 항상 없었던 여성의 자리를 생각하게 되고.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를 다닐 때도 남자 교수 밖에 없었거든요. 이렇게 쭉 연관되어서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에디터 : 감독님의 홈페이지에서 이번 영화의 제작과정 사진을 보았습니다. 쿠킹호일을 활용해 판화를 제작하는 키친 석판화(kitchen lithography) 기법을 사용하셨는데요. 그 때문인지 독특한 질감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 같습니다. 제작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채린 : 사실 이중섭의 은지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중섭 작품 중에서도 은지화를 가장 좋아하기도 했고요. 은지화의 느낌을 구사하면서도 동양화 느낌의 붓터치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적합한 키친 석판화 등의 작업방식을 찾아보았고요. 그렇게 찍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판화를 스캔하거나 위에서 촬영하는 과정이 있는데, 전작 <메이트>(2019)에서 조명을 달리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동판을 다뤘던 것처럼 재미있는 질감들이 나오더라고요. <나는 말이다>를 보면 중간부터 배경이 등장하는데 전부 호일이에요. 그런데 호일이 스캔하는 스캐너 종류에 따라 질감이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레지던시에 있는 성능 좋은 스캐너와 제가 몇십 만원에 싸게 산 스캐너랑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응용했습니다. 애니메이팅 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찾으려고 해요. 나중에 편집할 때 쓸 수 있도록요.

     

    에디터 : 3D 모델링을 사용하신 적도 있지만, <메이트>, <아이즈 앤 혼즈>부터 이번 작품까지 판화 기법을 활용하고 계십니다. 애니메이션을 판화로 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는데요. 애니메이션의 기술 대신 미술의 기술인 판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채린 : 작업 하다가 손목 인대가 파열돼서 수술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동판 재질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좋은 이유가 찍혀서 나온 그림보다는 반짝반짝 빛나는 판이 빛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촬영해서 작품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더불어, 아까 말한 것처럼 변수를 많이 찾으려고 해요. 이것저것 시도해보는데, 논-내러티브 애니메이션이다보니 비주얼이 달라야 작품의 구조가 만들어지거든요. 재료의 질감을 최대한 많이 구현해내는 데 사실 판화만큼 재밌는 게 없었어요. <메이트> 같은 경우에도 잉크를 칠하기 전에 스캔한 것과,잉크 칠하고 찍은 후에 스캔한 것이 다 다르게 나와요. 그렇게 질감을 채집하는 느낌을 가지고 점점 더 다른 걸 시도하게 된 것 같아요. 2D 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보면 색칠하고 명암을 입히는 작업이 이어지잖아요. 포토샵을 통해서 하나씩 다 색칠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반복되는 작업을 못 견디겠는 거예요. 그런데 판화 같은 경우에는 변수를 만들 때 의도가 있어도 어떻게 나올지는 알기 어렵잖아요. 예상하지 못해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에디터 : 감독님의 다음 작품도 궁금해집니다. 준비중이신 작업이 있으시다면 짧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채린 : <아이즈 앤 혼즈>는 독일인 프로듀서와 작업을 했어요. 사실 프로듀서와 감독 사이의 관계가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많이 힘들어요. 신진 감독은 많은데, 유럽 같은 경우엔 프로듀서가 없으면 지원금 신청을 아예 못해요. 그러니까 프로듀서한테 권력이 있는 거예요. 저는 해외 영화제에 도전해보려고 독일인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불합리합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그쪽은 이게 관행이더라고요. 아무것도 증명한 게 없는 신진 감독이니 이 정도의 불합리는 감당하라는 것 같았어요. 감독 출신인 교수님들도 제가 참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아이즈 앤 혼즈> 작업은 잘 버텨서 끝냈는데, 그 후에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저는 제가 만만해서 저에게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프로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관을 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소녀 귀신이 되어서 쫓아다니고 놀래키고, 죽을 때까지 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음 작품이 여기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다음 작품은 원혼 이야기인데, 원혼의 입장을 담아낼 것 같아요. 한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기도 하고요. 좀 잔인한 이미지가 담길 것 같지만, 인간적인 귀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통 좀비 같은 것은 징그럽게 묘사되잖아요. 저는 그런 것 말고 인간적인 귀신, 소녀 귀신이 주제일 것 같습니다.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 [2023] [인터뷰] <인덱스, 성좌> 이다은 작가
    해파리+박동수 조회수:359 추천수:1
    2023-08-13

    에디터 :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다은 :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 예술가이고, 영상, 사진, 드로잉, 텍스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필드워크를 기반으로 한 아카이빙 자료를 매체의 형식과 문법을 통해 미학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연구를 계속하는 중입니다.

     

    에디터 :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다은 작가님은 영상, 설치, 설치,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네마프 2023’에서 [한국부문2: 움직임]에서 상영되는 <인덱스, 성좌>도 2021년 전시에서 퍼포먼스와 지금 저희가 보는 영상이 결합한 형태로 상연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퍼포먼스와 이번 단채널 상영에 대한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다은 : <인덱스, 성좌>를 처음 선보인 건 공연이었는데, 공연 1부에서는 영상 전체 스크리닝을 진행했습니다. 인터미션 후 공연 2부에서는 라이다(Lidar) 센서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마치 별자리 성좌처럼 보이는 검정색 포인트 클라우드 화면을 띄우고 거기에 피에조 센서를 사용한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센서를 통해 퍼포머가 낭독하는 소리를 컴퓨터로 변환시켜, 그 값이 포인트 클라우드 화면에 실시간으로 반응하여 나타나게 되는 사운드 퍼포먼스입니다.  라이다 기술과 피에조 센서 장치를 활용한 방식은 장소와의 거리, 그리고 실재 목소리와의 거리를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이 공연은 제가 대표로도 있는 ‘콜렉티브 핑(Collective Ping)’이라는 단체에서 기획을 했는데, 느슨한 콜렉티브 형태의 단체입니다. 전체 공연 기획은 ‘콜렉티브 핑’이, 사운드 퍼포먼스는 장한길이 담당했고, 저는 필드워크 아카이빙 자료 기록과 영상을 맡았습니다. 저는 원래 이전부터 영상으로 작업을 해왔던 지라, 처음부터 스크리닝이 가능한, 완성된 영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협업을 하다 보면, 단순히 매체와 매체 간의 결합과 같은 형식적 결합으로 끝이 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계에 부딪혀,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일단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부분에 대해서 저는 끝까지 영상 작업을 담당하고, 퍼포먼스 공연의 형식을 한길씨가 맡으면서 그 고민을 풀어나갔습니다. 

     

    에디터 : 앞선 질문의 연장선에서, <인덱스, 성좌>에는 아무래도 전시에서 선보이셨던 2021년 화성난민보호소에서 새우꺾기 자세로 고문을 당했던 M의 독백 퍼포먼스가 사라지게 되면서일까요? 현재적 이미지로, 아마 열화된 이미지로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 있는데, 베트남난민보호소의 터가 비교적 이해 가능하게 다가온다면, 화성외국인보호소의 지표성은 영화에서 더욱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부산이라는 지역성이 화성에서는 덜 두드러지기 때문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것을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을 중첩시키기 위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지, 이러한 지표적 부분에 대한 차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이다은 : 기본적으로 이미지 연구를 하면서, 과거 베트남난민 이미지와 과거 화성외국인보호소 사이에 공통되는 이미지,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상 이미지 자체가 열화된 이미지이고, 화성외국인보호소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다 보니 직접 접촉할 수 없거나 레이어를 거쳐서만 도달이 가능하게 되는 불완전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마주친 적이 없었고, 항상 편지나 이러한 무언가를 통해서, 물리적인 벽이 있는 공간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했을 때 열화된 이미지를 통해서 그 불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에디터 : <인덱스, 성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화성난민보호소의 거울에 비친 작가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거울은 상을 비치게 한다는 점에서 대상의 위치 역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요. 앞선 장면에서는 거울에 비치는 것은 사실 실재적 공간을 열어젖히는 문처럼 보였습니다. 작가님께서 그 거울에 있을 때는 라이더 기술이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는데요. 그래서인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고, 작가님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의 결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촬영하게 되셨고, 이러한 장면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이다은 : 초창기 작업에서는 저의 이야기를 하고, 스스로를 피사체로 쓰는 것이 비교적 익숙했습니다. 그러다 몇몇 작업을 거치게 되면서 이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사라졌어요. <인덱스, 성좌>처럼 매체와 매체를 넘나드는 변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드러낸 것도 불완전하게 스캐닝 되는 현장에 제가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저의 이야기나 내러티브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에디터 : 비교적 과거에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와 같은 다양한 주제의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최근 2022년 제작된 <은유의 변주들>까지 꾸준히 난민에 대한 작업을 이어오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주제적 변화에 대해서는 동시대의 난민 정책이나 어떠한 사유의 전환이 있으셨던 건지가 궁금하고, <인덱스, 성좌>의 출발점은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합니다.

    이다은 : <이미지 헌팅> 이후에 교차성 페미니즘을 공부했습니다. <이미지 헌팅(2018)>에서도 한계를 느끼면서 작업을 했었고, 위치성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교차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서 그것이 지닌 복잡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성이라는 것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주변에 있는 이주 노동자, 퀴어, 난민 등으로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렉처 퍼포먼스 <환영 받지 못하는 자 Persona Non Grata(2018)>도 그중 하나였고. 그렇게 난민 활동가들과 난민 친구들도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제주도의 예멘 난민 입도와 같은 사태도 겹쳐졌고, 베를린에서 필드워크 작업을 할 때는 그곳이 유럽의 난민 문제의 최전선으로서 갈등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 이었는데, 이를 목격하면서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절망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난민을 대상으로 다룰 수 없고, 결론이나 해결책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이 세계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으로, 세계에 일말의 남아 있는 애정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에디터 : 라이더 기술과 거울의 사용은 어떻게 출발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라이더 기술이 전쟁, 항해, 오염, 식별 불가능한 것을 탐사하고 측정하고,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러한 본래의 목적을 전용하여 사용하신 것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이다은 : 라이다 기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만들면서, 그 과정에서 수집한 가상의 데이터를 다시 시각화하는 변환 과정을 거칩니다. 이것이 아카이브의 성질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것인데, 재현 불가능한 것들을 다루고, 사후적입니다. 이러한 라이다의 기술적 특성이 난민의 아카이브를 다루는 형식으로서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울 같은 경우에는 자기 반영적인 성질도 있지만, 영상에서 선보인 라이다 기법은 아이패드로 촬영된 것입니다. 아이패드에 탑재된 라이다 기술은 사진 이미지를 라이다처럼 사용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실제 라이다를 이용하여 얻은 촬영 장면과 데이터값은 퍼포먼스 공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실제 라이다 기술은 레이저 포인트를 사용해 거리를 통해서 물체의 지형을 파악하는데, 아이패드로 촬영된 라이다의 기술은 찍힌 사진 이미지를 반영해서 나오는 수치입니다. 그 때문에 실제 라이다는 거울과 물리적으로 부딪히는데, 제가 사용한 라이다 기술은 거울을 실제 공간으로 인식해서 거울 안에 공간이 있는 것처럼 데이터가 시각 이미지로 변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없는 공간’이지만, 데이터나 시각 이미지로 변환됐을 때 다시 존재하는 공간이 됩니다. 이러한 장치가 많은 것을 감각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고, 난민의 문제와 이미지의 재현에 관해서 잘 드러내는 장치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에디터 : 준비하고 계신 다음 작업이나, 작업하고 계신 작업에 대해서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다은 : 아직 비밀입니다. (웃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있는데, 아이디어 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소수자를 다루는 동시대의 방법들은 주로 소수자의 말을 대신하거나, 그들의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이미지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민의 이미지가 여러 매체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어쨌든 간에 매체의 형식과 이미지의 인식 과정, 그 안에서의 미학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시각 예술가라는 정체성 안에서 난민을 다룰 때도 매체의 형식 연구와 결부시켜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말은 아직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음 작업도 아마 계속 연구하고 있는 주체와 매체 형식에 대한 만남이 될 것입니다. 말(horse)과 관련된 개인적인 스토리가 있긴 한데,  말의 위치성, 말이 도구화되는 측면을 난민과 연결시켜보고 싶습니다. 머이브릿지(Edward J. Muybridge)가 말의 달리는 모습을 찍은 게 영화의 시초라고도 하는데, 영상 매체의 형식과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최초의 영화에서도 말이 도구로 사용되었으니까요. 아카이브 리서치는 꽤 오래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촬영을 아직 못하고 있어요.

     

    에디터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관객분들이 <인덱스, 성좌>를 어떻게 보셨으면 좋겠는지 또는 못다 한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다은 : 음.. 저는 계속 한계를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방식의 운동을 했을 때도, 더 이상 제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그 때문에 예술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감각적인 것들의 변화나 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까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사건을 직접 드러내기 보다,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 혹은 그 거리감의 측정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 속에서  가공된 이미지를 다루는 도구이자 환경, 그 자체로서 인지해온 영상 매체의 형식에 대한 재탐구를 지속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미지 연구를 하게 된 것이고, 관객분들도 이미지에 대해 재사유 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웃음)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