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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GT] 한국 단편 6: 젠더와 네러티브
    NeMAF 조회수:3492 추천수:13
    2018-08-20

    8월 20일 오후 7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국 단편6: 젠더와 내러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꽃과 거짓말>, <관찰과 기억>,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 <통금> 이 상영 되었다. 이어진 GT 시간에는 네 작품의 감독이 모두 참석하여 관객과 함께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다.

     

     

     

    설경숙 : 네 작품 모두 다른 형식으로 된 작품들이지만 전부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사회적 미명 하에 여성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기제들을 말씀하고자 하는 작품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먼저 감독님들께 한 질문씩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꽃과 거짓말> 감독님께, 영화 속에서 성관계에 대해서 흔히 나를 속이고 있는 말이라는 걸 자주 듣게 되는데. 성관계에 있어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계속 꽃을 보여주셨는데요. 꽃과 나비, 수동적으로 수정하는 꽃의 입장을 보여주시면서 상투적인 성관계 속의 젠더 역할을 뒤집고 그 안의 거짓말을 보여주셨어요. 꽃을 여성이라고 표현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심혜정 : 꽃이 성기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도 있었구요. 공동작업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꽃의 생존 방식은 성기를 드러내는 방식인데 수동적이라고 보이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거죠. 우리도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거짓말이지 않을까, 거짓말이 어떻게 왔다갔다 하는걸까 하는 말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설경숙 : <관찰과 기억> 은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작품이신가요? 작품의 동기가 궁금합니다.

    이솜이 : 네. 실제 기반이구요. 다큐멘터리임과 동시에 실험을 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 시나리오화 되었을 때 캐릭터화 되고, 터트려야 하는 서사적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겪은 것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파편적인 것 같아요. 기억하고 잊는 것을 계속 반복하게 되니까요. 한 공간 안에서 다른 것들이 혼재되고 있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서 만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설경숙 :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는 어머니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는데.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대물림을 이해하고자 한 시도라고 보여지기도 해요. 작품 이후에 변화된 것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한나 : 서로 거리를 이해하는 것들이 저는 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서로에 대해서 모르고, 이해를 못했다면 지금은 나쁜 말이지만 알고 하는 말이잖아요. 다만 전 화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전에 있던 좋은 상태로 돌아가는 게 화해인데, 일단 이전에 좋은 상태가 없었고, 돌아가려고 해도 이전의 상처가 있으니까요.

     

     

     

    설경숙 : <통금> 작품은 많이들 웃으셨던 작품인데요. 친구끼리 대화를 하면서 통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심헤정 작가님과의 작품과도 분위기는 다르지만 상통하는 게 있었어요. 사회적인 거짓말들, 보호라는 이름의 억압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인상적이었죠. 대화 장면에서 무언가 먹으면서 진행하신 면이 식욕을 표현한 부분인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소람 : 사실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같이 인터뷰를 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서, 뭐 좀 먹으면서 하자라고 했던 건데 정희진 작가님의 문구와 맞으면서 그렇게 이해되었던 거 같아요.

     

     

     

    관객1 : 저는 영화 동시녹음 일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남들에 비해서 체격이 큰 편이라 저 스스로는 밤거리가 무섭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보다 키가 작은 남자인 친구들은 밤거리를 오히려 무서워하고는 해요. 그래서 저는 느끼지 못하지만 많은 여성 분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보통의 남성분들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제 친구가 느끼는 두려움이 완전 다른 성질의 것인가, 저는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소람 :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지만 성폭력의 1차 피해자는 여성인데요. 여성이 성폭력에 가장 먼저 피해자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밤거리를 무서워하는 공포는 모두 공유하겠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밤거리에 대한 무서움에 더하여 내가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나타나지 않나, 여성들의 공포란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어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2 : <꽃과 거짓말>에서 꽃 장면들이 계속 나오는데요. 중간에 꽃 이외의 물결도 보이고, 엔딩장면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장면을 선택하셨어요. 저는 소극적이던 욕망이 분출되고 터져나오는 것으로 느꼈거든요. 작품대로 표현하자면 저도 터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구요. 어떤 생각으로 연출하셨나요?

    심혜정 : 다른 작품에선 하나하나 공들여서 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흐름 위주로 구성했어요. 말이랑 어긋나거나 유사하거나 하는 것들을 이미지와 섞으려고 노력했었어요. 마지막에는 젖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누군가에게 무언가 제공하기도 하지만 자기 몸에서 스스로 차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성적 욕망과도 같다고 의미하고 싶었구요. 엔딩에서는 스스로의 쾌락 뿐만 아니라 세상이 모두 촉촉하게 젖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넣었던 것이었습니다.

     

     

     

    관객3 : <관찰과 기억>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봤을 때 한번에 파악되지 않는 편집 방식인 것 같아요. 그래서 두 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분열적인 편집 방식이라고 느끼기도 했구요. 마지막에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에서 어떠한 분위기나 느낌으로만 남아있다는 그 구절에 맞게 정말 감각에 맡겨서 편집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 구성과 기획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솜이 : 편집이라는 건 어떻게 직감적으로 느끼신 것 일수도 있는데, 저도 찍는 내내 ‘이게 나왔으면 좋겠다’ 가 확실하진 않았어요. 낚시하는 것처럼 제가 일했던 학교에 가게 됐고, 거기서 동네 아이들이 카니발 페스티벌을 구경하는 장면을 우연히 마주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장면 하나하나는 제가 한 공간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닮아있을 때 제가 푸티지로 채집한 것이구요. 맨 처음 가족끼리 소풍간 그곳이 정말 즐거워서일 수도 있고 정말 우울해서일 수도 있다는 거죠.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계급적인 감정들이 느껴진다는 게 편집과정에서 많이 드러난 거 같아요.

    김애란 작가님의 텍스트를 말하셨는데, 증거는 없지만 표정이나 양식으로 남아 있다는 거죠. 그 사람의 표현, 분위기와 양식이 가지고 있다는 걸 함의하고 있고요. 김애란 작가의 텍스트 자체가 젠더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텍스트가 아니고 권력적, 위계적인 질서 안에서 교통 사고가 난 상황에서 정교수가 임시 교수에게 ‘너가 했다고 하면 안되냐’ 라고 말해서 덮어쓰고 밀려나는 이야기거든요. 그런 권력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싶었고,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서 언제, 어떻게, 왜가 아니라 펑퍼짐하게 펼쳐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경숙 : 남성 관객분이 질문해주셔서 감사하네요. 남성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는가도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관객4 : <관찰과 기억>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지금 진행중인 많은 사건이 그러하듯이, 실제 원인이 되었던 문제들도 해결이 안된 채로 자신의 희미해지는 기억만으로 해결 해야 한다는 것을 영화적으로 복기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중간에 현실인지 기억인지를 섞어둔 장면들이 있고, 직접적인 묘사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크린만을 보고도 느껴졌는데요. 영화 자체가 기억과 함께 존재하는 데에서 심리적인 영향을 어떻게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이솜이 : 복기하기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죠. 제가 스무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알바를 했던 때였어요. 거의 9년 넘는 시간이 흘렀구요.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제도화된 것이나 어떤 운동 조차도 없었습니다. 이게 내가 정말 예민한 것인가하는 자기반성적인 복기와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것들이 진짜라고 이야기하고 성추행이라는 완전한 단어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구요.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다시 보면서 뭐가 빠졌을까를 생각했어요. 이게 무엇이다, 라는 말이 없더라구요. 그때 저 혼자서 인터뷰 장면을 진행해서 오프닝장면으로 집어넣었고, 2018년도 작업이 끝난 것이죠.

     

     

    관객5 : <관찰과 기억>에서 남자 아이들이 놀면서 쿠폰이 있어야만 놀 수 있다면서 전개가 되는데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넣으신 거 같은데 장면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지, 다른 무언가에 연계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솜이 : 둘 다 맞구요. 그때 아이들과의 서사적인 사건들이 있었는데 뺐어요. 그 학교 학생이 아니면 잔디깔린 운동장에서 놀지 못하는 그런 학교에서, 제가 학교 직원이기도 했지만 관찰과 제지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거든요.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계급화되어 있는 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지를 고민한 장면입니다.

     

     

     

    관객6 : 조한나 감독님 작품을 보면서 쭈삣쭈삣 서는 경험을 했는데요. 애니매이션 연출하면서 어떤 연출 방향이 있었다거나 에피소드,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는지요?

    조한나 : 저는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거나 누군가에게 배운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애니매이션으로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그 과정이 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임마다 1/3씩 그려가는 게 저에게 고통을 주었는데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던 거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기도 했구요. 번역 말고는 혼자 그린다는 것, 그냥 이게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설경숙 : 어떤 상처나 기억을 말이 아닌 방법으로 혼자 풀어오셨고. 어머니와 말로 대화하는 방법을 병행하셨는데, 영화에 나오는 상형문자들이 실제로 만드신 글자 같거든요. 말이 아닌 방식으로 대화 했던 것과 내면에서 어머니께 많이 표현했던 것. 그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떻게 느끼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한나 : 저는 인터뷰를 처음 시작하면서 느꼈던 게, 어머니 앞에서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는 거였어요. 용기있게 한마디도 못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상형문자도 그 문자를 만들어서 일기를 썼고, 그 안에는 욕도 많이 담겨 있었어요. 사실 인터뷰하는 과정 내내 이걸 말로 인터뷰로 풀어내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엄마가 인터뷰로 들려준 말에 대한 대답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거 같아요.

     

     

    관객7 : 조한나 감독님 영화 보면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일단 저는 어머니와 말을 많이 하려고 하고, 옛날의 힘들었던 일을 풀어내려고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렇지만 아직도 힘들어요. 어머니도 모성애를 강요 받아 살아 오셨다 보니 힘든 방향으로 진행한 거 아닌가, 저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요. 그래서 도망쳐 나오고 거리를 두려고 계속 반복합니다. 대화를 하려고 할 때마다 ‘아 잘못된 선택이었구나, 계속 거리를 둬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사회적으로 정해준 모성애를 받았듯이 저도 첫째 딸로써의 역할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거든요. 거리를 두고 싶고 독립하고 싶지만 딸로서의 역할도 느끼면서 어머니에게 다가가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한나 : 제가 느끼기에 딸로서의 역할은 가족에게 딸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모성애, 여성성를 대물림받는 가장 큰 존재로서의 역할인 것 같아요. 미래의 엄마가 될 사람이 바로 저인 거에요. 여성성이 나약한 느낌이 아니라 더 강하고, 아픈 것이 아니라 나약한 거라는 그런 바라봄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좀 두려운 거 같아요. 대물림 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 속 느낌처럼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항상 다짐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 수 없는 운명을 강요받는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설경숙 : 작품들을 보면서 제 안의 거짓말을 대면하게 되고, 내면의 관념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이솜이 : 좋은 질문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준비중인 작업은 큰 단어로 이야기하면 ‘군대’, ‘트라우마’ 이구요.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젠더적 이분법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권력적 매커니즘 안에서 풀어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요.

    조한나 : 저는 뭘 할지 잘 모르곘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처음이어서 많이 떨렸는데요. 감사합니다.

    심혜정 : 함께 상영한 다른 작품들이 다 좋아서 재밌게 봤어요. 저는 <욕창>이라는 장편작품을 하나 편집 중이구요. 많이 기대해주시고, 네마프도 응원하겠습니다.

    김소람 : 저는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통금> 막 끝냈을 때는 워킹맘, 모성애, 경력단절 여성 같은 ‘어머니’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인터뷰 섭외가 어려웠어요. 요새는 피해자다움과 정조에 대해서, 화나게 하는 그런 단어들을 찢어버리고 싶어서 시도 중입니다.

     

     

    기록│ 이혜은, 전동현 루키

    촬영 │ 지서영 루키

  • [2018] [GT] 뉴미디어대안영화 장편 <기억의 소리>
    NeMAF 조회수:2749 추천수:9
    2018-08-20

    8월 19일 오후 7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된 [뉴미디어대안영화 장편] <기억의 소리>가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임창재 감독 진행 아래 이어진 GT시간에는 이공희 감독이 참석하여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독님은 70년대부터 활동을 하셨습니다. 꾸준히 작업을 하며 관객들과의 만남도 가지고 있으신데요.

    이공희: 대학생 때부터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 당시에는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과 학생이 없었어요. 저는 문학을 했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제 작품 스타일은 1920년대 유럽의 전위예술가,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영상시, 시네포엠 형식의 영화들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계속 영화와 영상을 만들어 내고 탐구하시는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기억의 소리> 기획의도와 배경 궁금합니다.

    2010년에 오프앤프리국제영화제에서 기획공연으로 미디어퍼포밍아트를 공연하면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기억의 소리’라는 제목과 도마질 소리가 떠올랐고, 떠오른 것을 바탕으로 무의식을 따라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며 느껴지는 것은 스토리텔링보다는 무의식의 혼재가 관객들을 어지럽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생이라는 주제도 다루었는데 극영화 <신과 함께> 등이 유행하는 시대이다 보니 좀 더 이해가 수월할 것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어린시절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제가 만든 단편 실험영화 <거울>, <착시렌즈> 영상을 부분적으로 삽입하여 소재와 이미지를 확장시켰습니다. 사람의 무의식 속 원죄를 논하고 싶었고, 인간 속에 있는 트라우마가 단순히 어린 시절에서 온 것도 있지만, 영화 속 동굴이라는 코드처럼 전생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넣게 되었어요. 과거의 생은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고 상업적인 코드는 전혀 넣지 않았어요.

     

     

     

    관객1: 요즘 디지털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는데, 화면이 독특하고 편안하고 질감이 깊었습니다. 디지털 영화 하고 다른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35mm 필름 영화예요. 저는 필름세대이며, 필름이 인간적이고 아날로그 적이라고 생각해서 필름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질감 차이로 보았을 때 디지털은 너무 가볍고 스마트한데 필름은 확실히 질감이 깊어요.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산지 일대에서 촬영을 하였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인물의 심리와 어울려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여건이 너무 안좋았어요. 시간과 예산이 충분했더라면 자연과 풍광을 많이 담았을 텐데 그런 점에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객2: 주인공을 외로움 속에 가둬놓고 빛을 못 찾게 하는 것이 관객으로서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주인공인 감독이 비극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끔찍하다고 느껴졌는데요. 상업영화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빛이 있었으면 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둠이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속편을 제작하게 된다면 빛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관객3: 영화 속 ‘감독’ 역할이 스토리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점성술사’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을 보면서 감독을 초월하는 존재 같다고 느꼈습니다. 점성술사는 감독을 초월하는 존재인지 아니면 단순히 맥거핀인건지 궁금합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감독의 맥거핀으로도 볼 수 있고, 또는 점성 술사를 통해 윤주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감독이 할 수 없는, 인간적으로 보듬는 캐릭터로도 볼 수 있어요. 윤주의 불안과 카르마를 끄집어내기위해 자연스럽게 점성술사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관객4: 아역으로 나온 배우들은 추가된 장면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역배우들에게 메소드의 연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어색해서 아역들이 나올 때마다 몰입도가 깨졌습니다. 아역에 대한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의 주제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워서 장면에 대한 기초내용만 알려주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텔링화를 위해 추가된 부분이었고, 관객의 이해를 위해 넣었는데,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웠고 좋았다는 평들이 많았습니다.

     

     

     

    관객5: 카르마라는 요소가 나오는데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답을 주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았는데 카르마와 윤회, 전생이 작품 속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둘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생과 윤회에 대해 믿고 있고,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습니다. 깊이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관객6: 동양적인 운명에 대한 메시지와 음악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반 대중화된 영화보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불교와 샤면틱한 색채를 더욱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관심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샤머니즘에 매료되었고 작품의 배경인 청송과 어울리기에 이러한 방향을 택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밝은 작품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관객7: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엔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모범 답안이겠지만 하나의 주제를 관철하다 보니 어두운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주제를 탐구하는 것을 앞으로의 과제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8: 눈이 머는 자매를 보며 ‘오이디푸스 왕’이 떠올랐습니다.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는 것 같은데요.

    고려한 부분은 아니구요. 본래는 40분짜리 중편으로 생각해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시각에 대한 것만 고려하고 기획했는데 장편으로 변경되면서 내용이 확장되어 추가된 설정입니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점점 달라지는 부분이 생겼어요. 눈의 상처는 심리적인 상처로 기억과 환청과 연결되는 매개체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자본만 있다면 제가 가진 능력에서 마음껏 펼치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영화와 문학을 접목시키는 ‘시네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글을 쓰고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데, 시네포엠, 시네 에세이 장르로 뉴미디어 대안 영화의 제작에도 또다른 접근을 하고 싶네요. 또한  영화 <기억의 소리>를  연극, 춤, 영상과 함께 융복합 공연으로 무대에  새롭게 올리고 싶습니다. 영화에서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주제와 표현을 보다 감성적으로 형상화시켜서 관객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런 방식들이 훨씬 폭넓은 대중성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 이혜진, 홍수진 루키

    촬영 │ 전해라, 지서영 루키

  • [2018] [INTERVIEW] 오재형 감독, 이선태 배우
    NeMAF 조회수:3479 추천수:13
    2018-08-20

     

     2018년 8월 19일 오전 11시 인디스페이스 라운지에서 21일 상영과 GT를앞두고 있는 <봄날>의 오재형 감독, 이선태 배우를 만나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영화 <봄날>의 기획 의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5.18 기념재단에서 해마다 기념 음반 제작을 하는데 올해는 특별하게 영상이랑 같이 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뢰를 받았어요. 마음대로 만들어도 된다는 조건이어서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그렇게 되었지만 저도 고향이 광주이고 부모님도 5.18과 연관이 있으셔서 언젠가 한 번 다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음악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음악을 만드신 분은 류형선 음악 감독님이시고요. 그분이 음악을 맡고 제가 뮤직비디오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댄스 필름 형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같이 만들어갔어요. 음악을 조금 보내주시고 저도 해당 부분을 구상을 하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본인이 늘 하고 싶으셨던 실험적인 음악과 국악 베이스로 연결을 하셔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 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5.18에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이 문제에 관련해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인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어요. 형식은 댄스필름에 대해 관심이 있어 늘 염두해두고 있었구요. 소설 속 여러 군상을 끄집어와서 하나의 무형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용가 섭외와 안무는 도움주신 분이 따로 계셨을까요?

     

    캐스팅은 제가 하고 디렉팅은 무용수분들께 맡겼습니다. 음악만 던져주었기 때문에 그분들은 안무가이자 무용가로 참여를 하게 된 거에요. 무용가 섭외의 경우, 이선태 배우는 작년 이맘 때 쯤에 인디포럼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출연하셨던 작품을 보고선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하이경, 천현아 무용수는 선태 씨가 소개해준 무용가였고 김수진 무용가는 제가 원래 알고 지냈던 무용수여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왜 수어라는 매체를 이용하였나요?

     

    장진석 선배님은 여러 독립영화제 개막식이나 폐막식 때 나와 수어 통역을 많이 하시는 분이에요. 여러 영화제를 통해서 자주 봤었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그분의 손짓이나 표정을 엄청 집중해서 보고 있더라구요. 작품을 구상하면서 생각이 나서 섭외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어 통역사라기 보다는 한 명의 퍼포머로 섭외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수어의 내용은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으로 아들을 회상하면서 독백을 하는 부분인데 감정이 가장 격한 부분이에요. 제가 낭독을 하고 그분이 수어 통역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선배님이 쌍둥이를 출산하셨을 때라 감정적인 연기를 하는 게 힘드셨다고 하더라구요.

     

     

     

    늘 국가 폭력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배경,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하면, 저는 원래 미대를 나와서 자연을 그리고 있었는데 2012년에 제주도 강정마을을 알게 되었어요. 거기 내려가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구나, 이게 국가폭력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세월호가 터지고, 사회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용산 참사 등 국가 폭력에 대해 유심히 지켜보면서, 나가서 활동가로서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작가로서, 작품으로서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학도인데 어떻게 춤과 몸짓에 대한 영상을 다루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댄스필름’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국내에서도 생소한 장르였구요. 그러던 중 무용가이시기도 한 김수진 씨가 네마프에서 연출자로 상영한 댄스필름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 많은 감명을 받아서 5.18 작품에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저만의 해석을 더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장르가 있나요?

     

    애착이 가는 장르는 당연히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예요. <보이지 않는 도시들> 같은 경우가 제 정체성과 가장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연주도 하고 영화도 찍는다고 해주셨는데 독립적으로 보면 굉장히 아마추어예요. 영상도 전공한 게 아니구요. 이걸 다 합쳐 놓으면 제가 된 것 같아요. 대학교 때부터 영상도 관심 있었고,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작가들처럼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고려했던 것이 있나요?

     

    영화에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후반부의 투사씬입니다. 새벽 3~4시쯤 휴대용 발전기를 이용해 빔프로젝터와 카메라를 동시에 들고 찍었었어요. 그게 아무도 없는 광주에서 영상을 투사했는데 마치 제가 광주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어요. 도시를 위한 씻김굿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주제나 작업 계획이 있나요?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 작품들을 모아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합니다. 또 제가 만들었던 영화를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로 옮겨볼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아예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인데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을 기반으로 도시 하나하나를 만들고 있고, 한 달에 한편씩 유튜브로 올리고 있습니다.

     

     

     

     

    이선태 배우님께 여쭤봅니다. <봄날>을 촬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선태: 인디포럼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용계에서는 댄스필름을 찍어줄 분이 없어서 참여할 기회가 없었는데 운 좋게 기회가 되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놉시스를 받기도 했나요?

     

    이선태: 시놉시스보다는 <소년이 온다> 책을 받았었습니다. 정독을 하지는 못했지만 캐릭터 잡는 등 연구하는 데는 충분한 정보를 주었습니다.

     

     

     

    어떤 캐릭터를 맡으셨나요?

     

    감독님: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20-30대 정도의 남성에 투영해서 역할을 디렉팅 했습니다. 구체적인 인물을 지시하지는 않았어요.

     

    이선태: 연기가 아니니까 디테일한 캐릭터 분석은 하지 않았어요. 감정 상태에서 나오는 움직임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을 했고, 과거에 있던 트라우마에 의해서 사소한 소리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기를 했습니다. 과거의 아픈 시간 속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땠을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상처 속에 들어와 계속 괴로운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 집중을 하고 공간과 관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안무도 전적으로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선태: 제작한 음악을 보내주시고 저는 안무를 한다는 개념이었어요. 정확히 안무를 사전에 짜서 한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음악 속 파트를 구분 짓고 움직임의 원리나 방법을 바꾸어서 진행했던 것 같아요. 공간이 주는 힘이 강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바꾼 것들도 많았습니다.

     

     

     

    연기, 댄스필름,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선태 : 무용계에서는 작년에 댄스필름이 처음 시작되었어요. 제가 댄스필름의 씬에 있다고는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말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 기존 춤추던 것과 많이 다를 건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죠. 관객의 시선을 바꿀 수 있고 연출을 다양하게 할 수 있거든요. 현대무용은 한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댄스필름을 할 때는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너무 재미있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느낌입니다. 무대에서는 한순간을 위해서 해야 하는데 댄스필름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얻은 결과물들을 오래도록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단발성으로 끝나는 무대가 많이 아쉬웠었거든요. 요즘은 춤을 출 때 저 자신을 무언가에 맡기거든요. 한 번은 눈을 가리고 월광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제 몸에 집중하는 이 순간이 좋은데 이 즉흥을 했을 때 몰입되던 순간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이 소중한 순간이 사라지는 점이 아쉬웠는데 필름으로 담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공연과 댄스필름은 항상 공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봄날>, 완성작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이선태: 일단은 제가 너무 잘 나와서 감사드리죠. 사실은 제가 조금 더 많이 나올 줄 알았어요. 춤을 리플레이해서 보면 댄서들은 자기만 봐요. 심리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 보니 저는 저 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웃음) 제가 상대적으로 너무 연기를 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오재형: 한마디 보태자면. 선태 씨는 무엇이로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기들이었고, 세 파트 모두 달랐어요. 그래서 저는 그 점이 오히려 더 좋았어요. 김수진 씨 같은 경우에는 한가지 혼에 빙의 되어서 따라가는 느낌이었는데 배우 분들마다 스타일이 다 달라서 저는 좋았습니다. 연출 의도 자체가 각각의 다른 트라우마들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선태: 처음에 얘기해주셨던 의도와 일관적으로 잘 나온 것 같습니다. 다만제 생각과 달랐던 부분은 많이들 ‘더 아트적이다, 대중적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봄날>은 조금 더 대중 쪽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고 대중들이 봤을 때 혐오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대중적이더라구요.

     

    오재형: 만약에 제가 댄스필름을 다시 한다면 더 과감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태: 이제 조금씩 사람들이 아트를 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모든 부분에 있어 오픈 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오재형: 잘 모르다보니…(웃음)

     

    이선태: 항상 도전적이잖아요. 항상 도전적인 게 너무 좋았어요. 오재형 감독님 같은 분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재형: 댄서는 본인 나름대로 의도를 가지고 춤을 추잖아요. 그런데 편집을 하면 컷이 되잖아요. 안무가로서 컷이 된 것들을 보면 아쉽나요?

     

    이선태: 컷이 많이 된 것은 부족한 부분을 가리려고 하는 거에요. 컷이 많아지게 된다면 저희가 실력을 늘릴 필요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 억울하잖아요.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움직임의 흐름까지도 생각해서 만드는 건데 컷이 되면 그것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아쉬운 마음이 생기죠. 그래서 소통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댄서와 배우로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선태: 사실 둘의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환경이 다르다는 것 이있는 것 같아요. 지금 드라마를 하나 찍고 있는데, 바스트컷을 찍는 부분에서 제가 자연스럽게 몸 전체를 큰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다거나 이런 부분들이 조금 부딪혔던 것 같아요. 저는 연기를 배울 때 라이브가 연기라고 배웠어서 모든 걸 라이브로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고요. 그런 지점들 말고는 같은 것 같아요.

    연기를 배우면서 무용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개념이 달라졌어요. 몸을 움직이는데 이유가 생긴 거에요. 또 무용도 요즘 말을 많이 해요. 십 분 동안 계속 말을 한 적도 있어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했던 공연 중에 말을 하고 춤을 추는 공연이 있었는데, 최근 무용계에서 이런 형식이 많이 보편화되었어요. 무용계에서 연극을 하고 연극계에서 무용을 하기 시작했구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이선태 : 채널A에서 6년 만에 12부작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안무감독으로 참여를 하다가 연기도 하게 되었는데 12부작이 3막으로 나뉘고 2막에서 제가 좋은 기회로 배역도 맡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그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고, 무용협동조합에서 신작도 하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핸드폰이나 다른 기기를 이용한 영상도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일 큰 근황은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작년에 인문학에 빠져 철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우주까지 갔다가 현실과 타협했습니다. 지금도 우주과학에 관심이 많아요. 시간에 대한 관심도 많다 보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어요.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착각하는 것. 깨닫고 인정하게 되니까 내가 착각하게 되는 것들, 잘못 보는 것들, 선동하는 당하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구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어요. 공익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에 대해 힘을 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끝으로 <봄날>을 보러 온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재형: 봄날을 기획을 하면서 느꼈던 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이에요. 국가 폭력,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어떤 상처를 입으면 “나 이런 상처를 입었어” 하고 언어적으로 표현을 못 하잖아요. 트라우마는 기분이나 느낌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는 어떤 종류의 것인데 대사로,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표정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화를 보고 어렵고 난해하다고 말하기도 해요. 진짜 5.18을 겪으신 어르신들께서는 되게 어려워하시더라구요. 저는 애초에 겪으신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 소통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제 또래와 제 아래에 있는 세대에 맞춰 제작을 했고 그분들에게 5.18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5.18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선태: 아트적인 장르의 장점이 어떤 생각의 길을 제시하지 않아요. 작품을보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의 길을 만들 수 있는 게 아트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5.18도 그렇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예술작품이 나왔을 때 의도를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 본질부터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록│ 이혜진, 홍수진 루키

    촬영 │ 전해라 루키

  • [2018] [LECTURE] 이토 타카시 감독 강연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
    NeMAF 조회수:2784 추천수:5
    2018-08-19

    8월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일본 독립영화의 거장 이토 타카시 감독이 <실험영화가 내 인생을 미치게 하다>라는 제목으로 본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을 가졌다. 임창재 감독의 진행하에 강연이 마친 후에는 관객들과 짧은 질의응답을 가지기도 했다.

     

     

    <SPACY>와 <아트만>

    <SPACY>는 이토 타카시 감독의 처녀작으로 감독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든 작품이다. <SPACY>는 사진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10여 장 정도의 사진을 사용해, 사진과 배치에 관해 연구한 작품이다. 감독은 마음속에 있는 어떤 인물을 상정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생활 모습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순수하게 고민하고 이 일상적인 공간을 세밀하게 분해해서 재구성한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아트만>에서 얻었다. 1976년 제작된 이 영화 역시 <SPACY>처럼 단순한 움직임이 12분 정도 지속된다. 감독은 20살 무렵 우연히 이 <아트만>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대학 시절 접하고 해당 작품을 극장에 가서 본 뒤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아이디어와 상상력, 기술만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게 되고 본인도 실험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실험 영화를 시작했다. <아트만>은 상상 선과 48 등분 한 공간을 좌표를 향해 분해하고 재구성하고 영상의 시각적인 움직임은 새로운 곳을 봤다는 느낌을 준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SPACY> 를 만들 때 이러한 감정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제작 방법을 차용했다.

    1976년 만든 이토 타카시 감독의 작품 <노>는 이 <아트만>을 카피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만든 작품이다. 아트만은 반야의 가면을 했지만, 이토 타카시 감독은 마스크를 활용했다. 무표정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인간을 통해 희로애락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것이 또 다른 작품 <최후의 천사>에도 연결되어 있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대학 4년 동안 <아트만>을 답습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영화를 만든 지 4년째 되는 해에 제작한 <MOVEMENT-3>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진 속에 있는 사진에 들어가려고 하는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 작품을 1년 후 발전시켜 만든 작품이 <SPACY>다.

    이토 타카시 감독은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작품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본 60년대 영화 붐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토 타카시 감독에게 영향을 준 일본 실험영화들]

    아이하라 노부리로 감독의 <STONE>

    일본 독립영화 제1세대인 아이하라 노부히로 감독의 <STONE>에서 감독은 강한 자극과 충격을 받는다. 애니메이션 내에 지속적으로 보이는 데칼코마니, 프레이밍 외부의 외관까지 작품의 일부로 삼는 비상식적 연출, 애니메이션과 바깥의 움직임을 동시에 잡아내는 등의 시도에서 감독은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야마자키 히로시 감독의 <HELIOGRAPHY>

    야마자키 히로시 감독의 <HELIOGRAPHY>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천체 관측, 별의 움직임 묘사를 카메라를 통해 이뤄낸 작품이다. 현실에는 일어나지 않는, 영상으로 밖에 체험할 수 없는 영상적 체험을 통해 우주의 거대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시도다.

     

    오쿠야마 준이치 감독의 <LE CINEMA>

    일본 실험영화를 대표하는 오쿠야마 준이치 감독의 <LE CINEMA>도 언급했다. 이 작품은 1초에 24장의 그림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영화의 구성요소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다. 여자가 머리를 넘기는 1초의 장면을 24개의 프레임으로 나누고 이 1번부터 24번까지의 장면들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SPACY>의 구성에 큰 참고가 되었던 작품이다.

     

    서 슌조 감독의 <FILM DISPLAY>

    제1부는 사람이 걸어가는 것, 제2부는 개가 달려가는 것이고, 제 3부는 ‘트릭’ 이라는 기법이 사용된 영상이다. 제1부와 2부는 운동하는 피사체가 세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여주고 제3부의 필름은 횡으로 움직인다. 실제 영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상에선 가능한 측면이다.

     

    코타 이사오 감독의 <네덜란드의 사진>

    해변을 걸어가고 있는 장면을 한 장씩 찍고 이런 사진을 연속적으로 복사하는 과정을 통해 ‘공간’이 생겨난다. <SPACY>를 제작할 때 기술적인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다.

     

    [이토 타카시 감독의 현 작품 세계]

    2000년의 촬영한 <메트로놈>은 댄서와 댄서의 영상을 겹쳐 제작한 작품이다. 실제적인 육체와 영상 간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만든 영화로 무대의 실제 공연과 퍼포먼스의 합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연다. 실제적인 육체가 존재하는 동시에 영상이라는 복제는 유령처럼 보이게 된다. 실제와 유령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2016년 촬영한 <세 명의 여자>는 세 개의 스크린과 이를 관람하는 관객 그리고 이를 영사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스크린 안의 스크린에서는 자살한 두 사람의 유령과 살아있는 한 여인의 관계가 나타난다. 살아있는 실재 여인은 스크린 너머로 나타나 영사기를 틀고 끈다. 무대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하나의 새로운 표현이 시작된다.

    감독은 실험영화는 상업영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인의 기발한 상상력, 창작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여러 작품에 관한 언급이 있었지만, 실험영화 감독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역시 시도한 마츠코토 토시오 감독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가장 많이 표했다. 고전적인 드라마를 부정하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장르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신념을 따르며 이토 타카시 감독 역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경계선을 확실히 구별 짓지 않고 느슨하게끔 만드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질문]

    관객 1: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이 주로 영상의 촬영기법이나 화면에 대한 실험에 대한 내용을 강조하셨는데요. 저는 그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운드에 대한 제작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이토 타카시: 사운드는 여러 사람과 공동 작업했는데요. <세 명의 여인>을 제작했을 때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연출할 때 카메라 근처에서 녹음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저는 녹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음향을 전부 제작했었습니다. 16채널 작품인데, 12개의 스피커를 배치해서 제작했습니다. 음향 작가와 함께 여러 개의 스피커를 배치해서 소리밖에 듣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누가 말을 했는지를 나중에 확인해서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음향적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제작했습니다. 요네마루라는 분의 작품인데, 4면의 공간을 음향으로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를 굉장히 연구해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SPACY>라는 작품은, 음향을 담당하는 분과 의논해서 같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음향을 제작하신 분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일부러 제작의 요구사항이나 부탁을 하지 않았구요. 그분이 만든 음향과 저의 영상은 서로 다른 세계가 되었고, 그분이 표현한 음향을 보고 저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만든 영상이지만 그분이 만든 음향을 함께 합칠 때 새로운 느낌이 만들어져 놀라기도 했구요. 작가에 따라서는 음향을 맡은 분에게 음향적 이미지에 대한 주문을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그러한 주문을 하지 않고 음향감독이 만들어낸 새로운 음향 세계가 열리고 거기서 오는 스릴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게 앞서 말했던 ‘콜라보레이션’의 정신이겠죠.

     

     

     

    관객 2: 이토 타카시 감독님의 작품을 볼 때 대부분 사실적인 조명만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조명에 대한 실험 등은 보이지 않아 궁금합니다.

    이토 타카시: 빛이 있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빛에 대한 흥미는 없는 편입니다. 빛이 있는 장소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과학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TV의 인공적인 빛도 너무 밝아요. 자연광이 좋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 안에 리얼리티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조명은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저는 구름의 그림자 같은 것을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합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빛이 있으니까요. 조명에 힘을 쓰기보다는 빛이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래서 촬영하기가 힘들죠. 비가 온다거나, 구름이 많이 꼈다거나 한 날씨는 정말 곤욕이죠.

     

     

     

    관객 3: <세 명의 여인> 안의 전시 컨텍스트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사운드 작가와 협업하셨다고 하셨는데, 관객들도 사진 안에서 보였잖아요? 관객들도 왔다 갔다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관객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디까지 움직일지를 생각하고 만드신 작품인가요?

    이토 타카시: 보통은 여기처럼 앞에 관객이 있고, 반대인 뒤편에 화면이 있죠. 이런 것이 일상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성이죠. 저는 이런 안정감을 파괴하고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관객이 화면 맞은편에 있었지만, 작품은 위와 밑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균형을 파괴하는, 이것이 이 작품의 컨셉이자 개념입니다. 영사되는 화면 안은 세 여인의 불안정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불안정한고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제작한 것입니다.

     

     

     

    관객 4: 이전의 작품들은 네러티브보다는 이미지에 집중했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이미지보다는 네러티브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님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이토 타카시: 저는 마츠모토 토시오의 <장미의 행렬>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초기 작품, 예를 들면 <SPACY>와 같은 영화들도 기술만을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속의 이상하고 괴이한 움직임, 저는 그런 괴이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걸 네러티브 쪽으로 옮기는 순간 괴이함이 좀 더 복잡하게 표현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괴이함은 영상 내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표현되는, 상당히 영적인 무언가입니다. 영적인 무언가가 영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죠. 제 영화가 이미지에서 네러티브로 움직인 것은 동기부여로 인한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변화해 나간 것입니다.

     

     

     

    관객 5: 이토 타카시 감독님은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님의 제자로서 설치와 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을 해오셨는데요. 7~80년대 일본에서 예술 공학 전공이 생겨나면서 그런 시도가 이루어진 것일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처음 그런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미술 베이스, 영화 베이스라는 구분이 영화계 내에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구요. 이토 타카시 감독님은 일본의 예술 공학 베이스로 분류되는 1세대 감독이신데요. 이 정체성 속에서 감독님은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어 나가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이토 타카시: 저는 예술 공학이라는 개념이 있는 규슈예술대학에 재학했습니다. 예술과 공학이라는 두 개의 다른 분야가 합쳐졌을 때의 영향과 시너지를, 그러한 것들을 모색하는 대학이었습니다. 공학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동시에 하면서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구요. 이런 과정에서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이 새롭게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당시 제가 재학하던 규슈예술대학이 새로운 융합의 장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토시오 감독도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었기에 교수로 부임해 오셨던 것이구요. 토시오 감독 역시 예술과 공학을 넘나드는 작품들이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실험영화에 대한 많은 커리큘럼들이 생겨난 것도 이때구요. 그러면서 많은 학생들이 실험영화에 참여하게 되었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자연적으로 커다란 움직임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일본 전역에서 규슈예술대학의 실험영화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장르를 넘어가고 극복하는 분위기 안에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런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6: 일본 실험영화의 감독들이 미국 언더그라운드시네마나 유럽의 아방가르드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생각하실 때, 일본 실험영화의 복잡성을 정의한다면 이와 같은 영화들에 영향을 받았던 요소 외에 어떤 요소들이 있을까요?

    이토 타카시: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에 답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젊은 감독들도 있죠.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여러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독자성’을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인터넷 안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고, 누구나 영상을 만드는 시대에 세계적인 영향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을 만드는 젊은이들이 셀 수 없이 많지요.

     

     

     

    관객 7: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의 <아트만>을 마약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하셨고, 많은 카피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궁금한 것이,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영화와 상충되는 ‘카피의 욕구’ 가 생겨나는 작품일 정도로 어떤 원형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요.

    이토 타카시: 일본 아방가르드 영화 역시 일본 독자적인 영화가 아니라 미국에서 왔다거나,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제 나름대로 재밌게 생각했던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독일의 표현주의라거나, 1920년대의 시대적 사고방식에 심취했었지만, 근본적으로 저 자신의 생각에 집중했습니다. 프로토 타입이라는, 원형이 확실히 있는 것일지는 저 또한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록 | 전동현, 홍수진 루키

    사진 | 지서영 루키

  • [2018] [LECTURE] 마스터클래스: 통제되는 신체 (출라얀논 시리폴)
    NeMAF 조회수:2902 추천수:11
    2018-08-19

     

    《제 18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의 개막작인 <블라인딩 Blinding> 의 감독, 출라얀논 시리폴이 18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가졌다. 시리폴 감독은 태국 방콕 출신으로, <근대성의 신화>(2014) 와 같이 정치·사회·종교를 아우르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다. 시리폴 감독은 <마스터클래스: 대항기억과 시네마, 통제되는 신체> 라는 제목으로 관객들에게 태국의 정치 상황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일부 소개했다.

     

     

    출라얀논 시리폴:  오늘 제가 작업했던 몇 편의 영상들과 함께 태국 정치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세션의 제목은 ‘대항기억과 시네마, 그리고 통제되는 신체(Body under cotrol)’ 입니다.

     

    저는 방콕에서 태어나 방콕에서 자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시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방콕은 모든 것이 중심화 된 곳입니다. 방콕에서 쭉 경험해 왔던 태국의 미디어와 교육은 정부의 규제 하에서 운영되어 왔습니다. 태국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국가주의의 3요소가 있습니다. 국가, 종교 그리고 군주제입니다. 이러한 3요소는 태국 국기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도 이 3요소가 존재합니다.

     

    학교에서 항상 배우는 것은 태국 국경을 수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태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조례시간에 매일 국가를 부릅니다. 공공장소에서도 국가가 들릴 시에는 모든 이들이 멈추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태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불교신자가 대다수입니다. 학교에서 국가를 제창한 후에는 불교에 관련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군주제 역시 강력합니다. 태국 국민들은 왕을 사랑합니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는 늘 국왕의 사진과 함께 국왕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찬양가가 나오는 내내 부동자세로 기립해 있어야 합니다.

     

    이 세 요소는 교실에도 늘 전시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태국인이란 무엇인지, 태국인을 구성하는 요소란 무엇인지를 항상 배웁니다. 이것은 단순히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길거리 곳곳에도 국왕의 사진이 있죠. 심지어 개인의 집이나 달력에도 국왕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미디어에 군주제가 투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태국은 평화롭고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최근 태국에서는 2005년에서 2018년 현재까지, 13년간 정치적으로 큰 대립이 존재했습니다.

     

    2005년 “노란 셔츠” 를 입은 사람들(PAD)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입니다. 노란 셔츠(PAD)는 탁신 전 총리가 굉장히 부패한 사람이며 부당한 정치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탁신 전 총리가 군주제에 반대하며, 태국을 일반 국가와 비슷하게 뒤바꾸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란 셔츠는 부패 정치인에 반대한다며 군부와 군주제를 지지했습니다.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우겠다, 우리는 국왕을 사랑한다고 외치며 거리로 나왔죠. 이들은 국왕에 대한 사랑을 표하는 문구가 새겨진 팔찌를 차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창동의 <버닝>을 보면 이 팔찌를 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탁신 정부와 노란 셔츠 사이에는 갈등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장기 분쟁에 반대하여 2006년에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군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에 찬사를 보내며 군인들에게 장미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 쿠데타 직후 TV에서는 군부세력을 대표하는 장군이 연설을 합니다. 그 뒤에는 국왕 내외의 사진이 있고요.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국왕 일가, 군부세력, 그리고 노란 셔츠는 모두 같은 정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한 부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들과 생각을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2007년에는 반독재민주전선(UDD)이라는, 탁신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결집합니다. 이들은 빨간 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섰으며,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에 반대하고 선거를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태국 북동부 층의 빈민층들로, 탁신을 지지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반면 노란 셔츠는 방콕과 같은 태국의 중심 쪽 사람들이었고요. 이 분쟁은 그저 군주제와 군부에 대한 지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계층간의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2009년, 탁신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수장이 선거 없이 총리가 되었습니다. 2010년 붉은 셔츠(UDD)는 이 사태에 불복하여 방콕 중심가에서 여러 시위를 벌였고, 이들 중 일부가 사망하거나 잡혀가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사진에서도 드러나듯이, 군부와 민주당은 함께 붉은 셔츠를 억압했습니다. 붉은 셔츠는 대부분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이었지만, 군부 세력은 이들을 국가의 적이라고 여기도록 만들었고 부패의 상징인 탁신 전 총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저는 과연 정부가 국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악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붉은 셔츠 소속의 사람들을 죽이거나 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2년에 <시체놀이 Planking>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시체놀이’ 는 바닥에 엎드려 죽어있는 척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앞서 말했듯 태국에서는 국가가 흘러나올 때 정자세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그 시간에 엎드려 있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2012년 인터넷상에서 어린 친구들이 시체놀이를 하며 그 사진을 SNS에 올리던 유행에서 착안했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이와 엎드려 누워있는 이의 대조를 나타낼 수 있었죠.

     

    <시체놀이> 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가 엎드려 있던 축구장은 1976년 10.6 사건과 결부됩니다. 1976년 10월 6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냉전에 맞물려 일어난 공산주의 운동 이후에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타마싯 대학 재학생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때마침 우익들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태국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0.6 사태를 일으켰던 것이죠. 그림을 보시면, 이때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숙청해야 한다는 문구를 새기거나 미국 측과 친해져서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을 홍보하는 등 여러 프로파간다들이 뿌려지기도 했습니다. 군주제와 국가,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여러 요소들 또한 프로파간다 안에 내재해 있었습니다. 이런 프로파간다들은 태국인들을 겁에 질리게 했고, 타마싯 대학의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우익단체들은 국가주의라는 이름 하에 학생들을 사살했습니다. 저는 이 역사와 저의 예술을 연결시키고 싶었습니다.

     

    2011년,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붉은 셔츠(UDD)의 힘으로 총리로 선출됩니다. 이때 당시 탁신 전 총리는 중국, 홍콩 등에서 망명중이었습니다. 태국에 귀국하는 즉시 체포되는 상황이었죠. 2013년 잉락 총리 정부는 사면법을 입법합니다. 노란 셔츠는 이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부패정치인들이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명분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란 셔츠(PAD) 는 이름을 PDRC로 바꾼 뒤 거리로 쏟아져나와 태국 국기를 펄럭이며 시위를 했습니다. 저는 이 당시 ‘과연 사람들에게 정치사상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14년 <근대성의 신화 Myth of Modernity> 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저는 영화 속에 불교, 우주학, 건축 그리고 국가주의를 아우르는 주제의식을 담고 싶었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천국, 인간세계 그리고 지옥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불교의 ‘삼각형’ 개념은 태국 사원의 아이덴티티이자 건축양식으로 기능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와 태국 현대 건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외교부 청사, 태국문화센터와 같은 태국의 현대 건축물에는 삼각형을 차용한 요소가 다수 사용되고 있지요. 이 삼각형을 노란 셔츠들이 가지는 사상과 결부시켜, 이들이 우선시하는 태국의 전통문화·사상과 삼각형을 연결시키게 된 것입니다.

     

    2014년 5월 22일 쿠데타가 다시 일어납니다. 노란 셔츠는 군부에게 꽃을 전하며 쿠데타 지지 의견을 전달했고,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쁘라윳 짠오차 차노차 장군이 총리가 됩니다. 이런 독재주의에 반대하는 붉은 셔츠는 다시 시위를 시작합니다. 젊은이들은 빈 종이를 들고 ‘우리는 언론의 자유도 없고, 말하고 싶은 바를 말할 수 없다' 는 비유적 표현을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군부는 미디어를 통제했습니다. 모든 텔레비전에서 같은 화면을 내보냈고, 세븐일레븐과 같은 24시간 편의점도 쿠데타 이후에는 밤에 영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22시부터 05시까지는 통행금지가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다루기 위해 저는 2014년 <Blinding>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저는 통행금지 시간에 공공장소에 나가서 빈 종이를 들고 서 있습니다. 촬영 당시 경찰관 몇몇이 찾아와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영화를 찍고 있는지' 를 묻기도 했지만 촬영감독이 러브 스토리 영화를 찍는 중이라며 둘러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웃음) 이 영화를 통해서 저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마법의 공간과 시간을 그려냈습니다.

     

    2015년 저는 <그림 뒤에서 Behind the Painting> 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동명의 유명 소설을 응용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태국 공주와 사랑에 바진 태국 학생의 이야기로, 계층간의 문제로 이어질 수 없는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림 뒤에서>는 그저 비극적인 로맨스 영화일 수도 있지만 사실 태국의 정치적 역사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은 1932년 태국이 완전한 입헌군주제로 전환된 뒤 5년 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1932년 이전의 태국은 라마 7세가 통치하는 절대 왕정 국가였지만, 1932년 무혈혁명 직후 입헌 군주제 국가로 바뀌었습니다. 국민당은 절대 왕정에 반대하여 군부와 함께 시암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죠. 이 시암 혁명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도 있습니다. 이 기념비 근처에는 1932년 쿠데타 기념 조각도 있습니다. 마침내 헌법이 도입됨을 기리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이죠. 하지만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2017년 4월 14일, 이 조각은 사라집니다. 그들은 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지우려고 했던 것이지요. 이때 민주주의자와 극우주의자들의 분쟁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사와 기억에 대한 논란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왕정의 역사와 기억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그림 뒤에서>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학생 노폰과 키라티 공주가 주된 주인공입니다. 키라티 공주는 제가 직접 분해 연기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키라티 공주를 주제로 저는 <키라티 박물관> 이라는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시를 통해 일반적인 하얀색 외벽의 박물관을 키라티 박물관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었습니다. 한 관에서는 <그림 뒤에서>를 상영하며 영화를 어떤 식으로 촬영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다른 관에서는 여러 가지 그림들을 전시했고, 그 중에서는 영구 버전으로 움직이는 사진들을 형상화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진들(Motion Picture)은 1927년 태국의 지식계층 여성들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진을 움직이는 포스터로 보여주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들 속의 여인들은 묶이고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최대한 오래,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모든 것들을 합쳐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90분 분량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932년 이후 86년간 태국에서는 수많은 정치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일종의 대화를 통해 태국의 극우주의자들, 군부세력들, 또는 국가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능은 무엇인지, 국가주의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제까지도 태국은 군부 정권하에 있습니다. 선거를 언제 치르게 될지도 잘 모르겠어요.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일들이 통제되고 있는 것이죠.

     

     

    관객 1: 2014년 쿠데타 이후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태국을 떠나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국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검열이나 제재는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A Breif History of Memory> 는 군부에 대한 직접적 비판으로 여겨지지 않았나요? 태국에서 상영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출라얀논 시리폴: 쿠데타 이후 영화 감독들이나 예술가들은 실제로 자유를 많이 잃었습니다. 군부가 저희들을 주시하고 검열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상영금지 등의 처분도 내리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하에서는 이러한 정치문제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A Breif History of Memory> 는 제가 2010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아들을 잃게 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군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기보다는 노스텔지어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져 상영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관객 2: <키라티 박물관> 같은 경우는 태국 왕가를 재현하려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태국에는 형법 112조와 같이 군주제 비판 금지 조항이 있다고 들었는데, 상영시 아무 문제가 없었나요? 그리고 <그림 뒤에서> 의 책 표지에 있는 남자 사진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가요?

    출라얀논 시리폴: 표지의 남자 사진은 시우라파라는 작가입니다. 그는 기자이자 활동가였습니다. 그의 소설은 아름답고 로맨틱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주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숨겨둔 소설이기도 합니다. 형법 112조에 관해 말해 주셨는데요. 공공장소나 SNS에서 왕족이나 군주제에 대한 비판을 할 경우 체포될 수 있다는 조항이죠. 저는 실제로 키라티 공주를 통해 왕정의 기억을 투영하려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작품을 상영하기 전에 국왕이 서거하기도 했었구요. 따라서 저도 형법 112조에 관한 여러 걱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존 인물이 아닌, 그저 유명한 작품 속의 인물들을 논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왕정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면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죠. (웃음) 이런 방식이 우회적으로 군주제에 관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3(나윈 노파쿤 감독): 같은 태국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일련의 작품이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최근의 작품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놀라웠구요. 태국 정부에서는 많은 것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과 정권 사이에서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 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태국의 예술가들이 처해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작품을 꾸려나가야 할까요?

    출라얀논 시리폴: 태국 현대 예술은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다른 것도 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1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또 태국의 정치 상황은 국제적인 이슈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이런 토픽을 다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10년 뒤, 지금 이 상황을 돌이켜 본다면 분명 의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3(나윈 노파쿤 감독): 마지막 질문은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태국인으로서 질문드립니다. 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출라얀논 시리폴: 이 문제는 모든 태국 국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도 중요합니다. 이 이슈들은 제가 영화로 답변드렸었죠. <태국의 10년> 이라는, 단편 4개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태국의 10년 뒤 미래를 담은 작픔입니다. 현재도 군부가 미디어를 통제하고 있듯 미래에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기존의 정책들도 이어지고 있지 않을까요.

     

     

     

    관객 4: 태국은 최초로 제 3의 성을 인정한 국가입니다. 군부 정권 하에서도 이를 인정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성적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합치되지 않는 점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출라얀논 시리폴: 젠더의 측면에서, 태국은 LGBT에 관해 상당히 열려 있습니다. 실제로 주위에서도 쉽게 LGBT를 찾아볼 수 있고, 일상적인 주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은 아직도 통제, 억압되고 있고, 이는 여전한 문제입니다. 한국과는 약간 반대되는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기록 | 전동현, 홍수진 루키

    사진 | 김진우 루키, 임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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