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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TALK] 경계에 선 네덜란드 여성감독과 한국 여성감독의 경향
    NeMAF 조회수:2672 추천수:11
    2019-08-18

    817일 오후 320분경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마를린 호리스 회고전의 <안토니아스 라인> 상영 이후 <경계에 선 네덜란드 여성감독과 한국 여성감독의 경향>을 주제로 한 대담이 진행되었다. 김장연호 NeMaf 집행위원장의 진행 아래 패트리샤 피스터스 암스테르담대 교수와 심혜정 영화감독 그리고 정민아 성결대 연극영화학과 교수가 각국의 여성감독의 경향과 현주소 및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 행사는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중앙대와 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에 의해 공동주최 되었으며 설경숙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통역을 맡았다.

     

    김장연호: 오늘 이 대담을 통해 네덜란드와 한국 여성감독의 경향을 알아볼 텐데요, 우선 여성감독과 영화정책에 관심을 두고 현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패트리샤 피스터스 교수님으로부터 네덜란드 여성감독의 경향과 영화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패트리샤 피스터스: 네덜란드에서는 1977년이 되어서야 첫 번째 여성감독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요, 그는 바로 누츠카 반 브라켈(Nouchka van Brakel)이라는 감독이었습니다. 그의 작업을 통해 이전에는 없었던 주제가 영화에서 다뤄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1970년대 여성 해방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던 당시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텐데요. 엄마와 딸의 관계를 탐구하거나 여성이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해 가정을 잃게 되는 등의 새로운 주제들이 등장했습니다.

     

    90년대까지는 누츠카 반 브라켈과 마를린 호리스를 비롯해 5~6명 정도의 여성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이후에는 많은 여성이 영화학교에 들어가거나 제작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1980년대부터 네덜란드 필름 펀드(Dutch Film Fund)라는 제작 지원제도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감독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편집 등으로도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대에 영화를 만든 여성 작가들은 특별히 젠더에 관한 이슈를 내세우진 않았지만, 대신 어린이 영화 등 다른 주제를 다룬 양질의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여성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은 많았지만 성에 관한 이슈는 비교적 인정받지 못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매우 많은 여성 인력이 영화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영화학교뿐만 아니라 예술학교나 디자인아카데미와 같은 교육기관을 통해서 많은 여성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데요. 그 이후에는 1970년대에 비해 아주 다양한 주제가 다루어지면서 특히 이민자와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라 마이케 더 용(Mijke de Jong)이라는 감독은 로테르담에 사는 무슬림 소녀가 한 소년과 사랑에 빠져 시리아로 떠나는 내용의 <라일라 M.(Layla M.)>이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젠더 문제가 다시 등장했지만,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보다 유희적이고 가벼운 방식으로 문제가 다뤄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수치적인 정보를 드리자면, 네덜란드의 총인구는 1,700만 명이며 1년 동안 만들어지는 평균 50편의 영화 중 40% 정도가 여성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때 여성이란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를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최소한 20%의 영화는 공식적으로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여성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1년에 1억 4천만 달러 정도가 장편 영화, TV에서 만들어진 영화, 다큐멘터리를 모두 포함한 분야의 예산으로 책정되고, 그중에서 4천만 달러는 TV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나머지인 1억 달러는 영화 쪽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할리우드에 비하면 아주 적은 예산이지만 나름대로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의 공동제작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여성감독 중에서는 굉장히 성공적이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감독들이 많이 있는데요. 한 예로 샤샤 폴락(Sacha Polak)의 경우 네덜란드의 여성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선댄스 영화제에 영화가 상영된 바 있습니다. 이런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문화의 주변부에서는 많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김장연호: 네덜란드의 여성감독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2007년도에 패트리샤 교수님의 <시각문화의 매트릭스>라는 책이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요, 그 책의 역자가 바로 정민아 교수님이세요. 함께 자리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리며 정민아 교수님께 한국의 여성감독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민아: 우리나라의 인구는 네덜란드의 세 배 정도인 5,800만이며 매년 300편가량의 작품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숫자는 주류 영화뿐만 아니라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모두 합한 것인데요.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등으로 분야를 한정하면 여성감독과 남성감독의 비율은 50대50이지만, 주류 영화에서는 여성감독의 비율이 10%대로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전체적으로는 20~30%의 여성감독들이 활약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감독은 1955년에 <미망인>을 만들었던 박남옥 감독인데요, 1953년에 한국전쟁이 끝났다는 점을 고려할 때 1955년에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경이로운 일입니다. 1954년과 1956년에 각각 <춘향전>과 <자유부인>이 나오면서 한국 영화가 폐허에서 다시 일어설 무렵 박남옥 감독이 제작 현장에서 아이를 업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60년대에는 그 뒤를 이어 최은희 감독과 홍은원 감독이 등장했고, 70년대에는 이화여대 카이두 클럽이라는 실험영화 제작 집단을 필두로 여성영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80년대에는 한국 영화가 침체기를 겪어 이미래 감독 같은 분이 홍일점으로 활동하셨는데요, 여기까지가 우리나라 여성감독 1세대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사의 중요기점은 제도적인 민주화가 성취된 1987년이고, 그 이후인 90년대부터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문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여성운동의 경우 이미 70년대부터 공장 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페미니즘의 명칭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87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특히 1995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었던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는 90년대의 열린 광장에서 얻은 큰 성과물이었으며, 이 당시 등장한 여성감독으로는 홍형숙 감독과 이정향 감독, 정재은 감독 등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보자면, 1920년대 서구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1차(first-wave feminism), 68혁명 시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구호를 들고 등장한 것이 2차(second-wave feminism)에 해당하며, 이후 80년대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항하며 나온 것이 3차 페미니즘 물결(third-wave feminism)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백인 여성이 아닌 다양한 민족과 인종, 하위주체가 중심이 되는 교차성 페미니즘 이론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 사이인 70년대에 영화학은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요,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Laura Mulvey)는 과학적인 논증을 통해 주류 영화에서 남성 위주의 볼거리를 구성하고 시각적 쾌락을 전시하는 할리우드의 관례를 비판했습니다. 한국 역시 90년대 문화운동을 경유하면서 영화를 중요한 사회변혁의 도구로 받아들이게 되고 씨네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상륙하게 됩니다. 서울여성영화제가 시작되고, 영페미니즘 운동이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하면서 여성 관객들이 관객운동을 통해 씨네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실천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2000년대에 한국 영화계는 90년대 후반 IMF의 영향으로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진영을 중심으로 많은 여성감독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한편 2000년대 이후에는 기존에 멜로영화 중심이었던 한국 영화 산업이 재편되면서 스릴러나 액션이 유행해 남성 주도성이 훨씬 더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80년대 서구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이 나타났듯이 한국에서도 90년대 이후에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이 페미니즘이 재장전 되는 시기였다면, 이후 이경미 감독이나 노덕 감독처럼 본격적으로 장르 영화나 주류영화로 승부를 거는 여성감독들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윤가은 감독과 김보라 감독의 영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렇듯 여성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의 흥망성쇠와 길항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존에 여성끼리의 좁은 영역이 아닌 보다 넓은 주류 상업영화계에서도 폭발력을 자랑하는 감독들이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장연호: 마침 제가 2002년도에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을 설립하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학자가 앞서 언급해주신 로라 멀비였습니다. 그 분의 글에 대안 영화(alternative cinema)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만든 새로운 대안적 서사가 담긴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단 마음이 이번 기획전을 마련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한편 올해 네마프에서는 심혜정 특별전을 마련해 작가님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현재 <욕창>이라는 첫 장편의 개봉을 앞두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작과정에서의 에피소드나 영화 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심혜정: 저는 학부 때는 문학을, 대학원에서는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극영화와 실험영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형식을 자유롭게 결정해서 작업하고 있는데요. 2010년도에 단편 <김치>를 만들면서 극영화 작업을 시작했고 올해는 장편 <욕창>을 만들어서 내년에 개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업영화 종사자분들이나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여성 영화인들이 상당히 많아요. 학교에서는 과반수가 여성인 현장도 있고, 미대의 경우 남자가 별로 없어서 어떤 곳은 일괄적으로 성비를 맞추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업영화 현장에 가보면 상황이 전혀 다른데, 그 이유를 고민해보니 여성감독의 영화나 여성적 서사는 흥행이 잘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여성감독이 없다는 거고, ‘여성적 서사’는 항상 사소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측면을 늘 스스로 고려하고 검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반면 편집이나 음악 같은 기술적인 분야에서는 많은 여성분들이 성공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신데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여성감독의 흥행 성적을 비교하기엔 만들어내는 작품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감독들이 3천편을 만들면 그중에 한두 개가 성공하고 나머지 숫자는 흥행에 실패한 수치일 텐데, 그에 반해 여성감독은 아주 작은 숫자인 100편밖에 만들지 않고 그 가운데서 평가를 하고 있는 거죠. 또한 저의 경우 영화학교에 다시 가려고 하니 여성이기도 하지만 나이든 여자라고 하는 핸디캡(handicap)이 따라오는 걸 느꼈어요. 심지어 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동료는 대학원 면접에 가서 남성 면접관으로부터 할머니가 왔다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굳이 왜 여자를, 또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가 있으면 굳이 왜 늙은 여자를 뽑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분위기가 현장 안에 있는 거죠. 그래서 양적으로 성비를 맞추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성이나 소수자의 이야기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1: 네덜란드 TV 산업의 분위기를 알고 싶은데요, 방송계에서 젠더 이슈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와 관련 문화와 토론회가 보편화되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패트리샤 피스터스: 네덜란드에는 많은 토크쇼가 있지만, 오직 하나의 프로그램만 여성이 사회자를 맡고 있으며 대부분의 게스트가 남성이어서 계속해서 비판이 있어왔습니다. 여성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 비율도 20대80으로 터무니없이 적은 편입니다. 한편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많은 여성이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특별히 젠더 이슈를 다루고 있진 않지만 여성 제작자가 만들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TV 프로그램의 예로 <Hollands Hoop>이 있습니다. TV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은 높지만 그런 여성에 대한 재현이 너무 적다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입니다. 또한 네덜란드인 여성 영화인이나 제작자들은 여성으로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경향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분위기나 태도 때문에 특정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2: 심혜정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영화를 만드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저의 경우 시나리오를 제가 쓰고 같이 만드는 팀 안에서 모니터링을 하는데요, 캐릭터나 주요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봤을 때 불편하지 않은지 혹은 균형이 잘 맞는지 계속 검열하게 됩니다. 거꾸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할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불편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면이 적은 편이지만, 상업영화의 경우 젠더 이슈가 예민한 사안이라서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을 피하려고 한다고 들었어요. 상업영화는 관객 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훨씬 더 예민하게 그런 점을 점검하는 거겠죠. 하지만 제가 영화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또 여성이기 때문에 저의 시선으로 본 주변의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객 3: 영화에서 남성적인 응시의 문제가 있다면 서사와 대사, 청각적인 부분 등 다른 영역에서도 한쪽 젠더에 편향된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그것을 전복하거나 해결할 대안이 있는지, 이러한 현상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민아: 서구에서는 7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90년대부터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실험이 있었습니다. 기존 영화의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조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하나의 성감대를 갖고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남성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여성의 경우 성감대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기승전결 구조의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대신 파편적으로 분산된 에피소드들로 둥근 원을 그리는 구조를 취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는 로라 멀비가 비판했던 주류영화에 대한 카운터 시네마(counter cinema)의 방식이자 실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소수의 지적인 관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주류영화계 안에서 대중적인 관심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논점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남성적인 서사나 장르 체계에 대안적인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폭넓은 호소력을 이끌어내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캡틴 마블>이나 <말모이>, 그리고 박누리 감독 등을 언급할 수 있겠죠. 이렇듯 여성감독의 실천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관객 4: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영화제를 개최하거나 해시태그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등 페미니즘과 관련된 흐름이 있어왔는데요, 네덜란드 영화계의 여성주의 관련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패트리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네덜란드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상태이지만, 70년대의 여성해방운동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를린 호리스가 가부장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재는 여성 안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목소리들을 인정하는, 더욱 모호하고 복잡한 방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아(If Mama Ain't Happy, Nobody's Happy)>라는 젊은 감독의 작품을 보았는데요, 이 작품은 4세대에 걸친 가족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네덜란드에서 이제 더 바뀌어야 할 것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자립과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사실 네덜란드에서 현재 페미니즘보다 더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입니다. 이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데요, 미투 운동에 대한 인식 역시 강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더욱 시급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관객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과 관련된 마무리 발언을 부탁 드립니다.

    심혜정: 이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고,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면서 작품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관객 분들께서 영화를 많이 봐주셔야 그만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정민아: 심혜정 작가님의 <욕창>이 개봉되면 다 함께 날개를 달아줬으면 좋겠고, 오늘 참석해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패트리샤 피스터스: 저 역시도 이 자리에 초대되어 기쁘고 좋은 질문들을 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이런 양국 간의 교류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 이예진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 [2019] [GT] 한국구애전 단편 : 뉴-장르 II
    NeMAF 조회수:2138 추천수:4
    2019-08-18

     

    8월 16일 오후 4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한국구애전 단편 : 뉴-장르 II] 섹션의 <다리의 감정>, <프놈펜에서 온 편지>, <버섯의 건축>, <하모니 디렉토리>, <경계없는 벽>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프놈펜에서 온 편지>의 서원태 감독과 이혜원 PD, <버섯의 건축>의 박선민 감독이 참석해 작품 소개와 함께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날 진행은 고동연 모더레이터가 맡았다.

     

    전반적으로 이번 섹션의 단편들을 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흥미로운 지점은 격언과 농사짓는 법 등의 ‘정보’가 많았습니다. <프놈펜에서 온 편지>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이 과연 어떤 곳이고 그 곳에 어떻게 방문하게 되셔서 제작하게 되셨는지?

    서원태 : 원래는 이혜원 PD께서 쓰신 장편 시나리오였는데, 이것을 영화화 해보자고 저에게 제안하셨어요. 하지만 이것을 극영화로 제작하기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 이 PD께서 캄보디아행을 제안하셔서 따라갔습니다. 이 PD께는 아티스틱 리서치 같은 느낌의 여행이었고 제게는 영화 만들기 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왜 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을 하셨는지요?

    이혜원 : 제가 지난 몇 년간 환경에 관련된 전시를 기획했었는데, 전시를 설치하고 부수는 그런 과정들이 환경운동과는 반대되는, 다시 말해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제가 관심 있는 주제와 굉장히 상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물질적인 피해를 남기지 않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표현하던 주제를 영상으로써 담아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지라 서원태 감독에게 제안하게 되었다.

     

    <버섯의 건축>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와 제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박선민 : 버섯을 먼저 생각했고, 건축이라는 요소는 뒤에 덧붙였습니다. 이전에 근시 정글이라는 영상 작업에서, 연출된 인공의 밀림을 마치 실제처럼 찍기 위해 근시적인 초점거리를 이용한 작업이 있었습니다. 2015년 작품인데, 그 이후 들은 질문이 결국 서울에서 태어나 살며 보게 된 자연은 연출된 것들이고, 결국 진짜 자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본연의 원시림에 대한 호기심에 일단 숲으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숲을 돌아다니며 균류 식물(버섯)들의 클립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버섯의 영상들이 쌓이고 나니, 이것들을 어떤 테마로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때, 숲에서 버섯 클립을 채집하며 즐겨 듣던 유튜브 건축 인터뷰 스크랩이 떠올랐고, 버섯이 상징하는 ‘자연’과 건축이 상징하는 ‘문명적인 것’이 대비되지만, 사실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제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기 좋은 구조라는 생각이 들어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해 보았습니다.

     

    왜 내레이션이 불어였는지, 화자가 계속 언급하는 ‘아빠’는 누구인지?

    서원태 : 저는 이혜원 PD가 예전에 기획했던 전시의 참여작가였어요. 저는 항상 건축으로 비유하자면, 벽돌공(기술자) 같은 느낌으로 항상 이 PD가 기획한 전시에 참여를 해요. 이번 작업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 PD와 저의 관심사의 결이 조금은 다른데, 비유하자면 버스킹같다는 생각입니다.

    이혜원 : 원래 제가 쓴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데요. 서원태 감독이 제가 쓴 스토리 라인을 보고 편지 문체로 바꾸었어요. 엄밀히 따지자면 제가 쓴 것은 아니긴 한데. 기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생각하면서 먹이사슬, 식물에 관련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쌀, 밀, 콩, 사과 등 네개의 에피소드를 가진 스토리를 막연히 생각했는데 서원태 감독이 그의 어법으로 편지를 쓴 거예요. 불어가 낯설수도 있을텐데, 캄보디아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환경 문제가 서구 식민주의의 영향이 컸잖아요. 또한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유럽 식민지 문화와 기독교적 사고 체계가 동식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을 미신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에 대한 고발의 형식으로써 주기도문의 형식을 빌려온 것입니다.

    서원태 : 맞아요. 주기도문 형태를 썻고요. 식민 지배에 대한 비판으로써 딸이 경험이 많은 아버지에게 농사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로 컨버팅 되었습니다.

     

    <버섯의 건축>에서는 건축가들의 인터뷰가 흥미로웠습니다. 이 목소리들은 어떻게 선택된건지?

    박선민 : 얼핏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버섯을 탐험하는 여정과, 불멸과 건축에 대한 것들의 연관성을 탐구해 보았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각각의 서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처럼 이어지도록 스크랩했습니다. 그들의 인터뷰에서 저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 섹션은 뉴-장르 II인데, 이번 작업의 장르를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서원태 : 저는 극영화같았는데 보는 사람들은 다큐라 인식하는 것 같아요. 내레이션은 모두 허구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에 근거해 만들어졌지만 구성에 있어선 허구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박선민 : 저는 장르를 잘 모르겠어요. 단순한 영상 작업이었지, 스스로도 장르에 대한 구분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 영화를 제 3자가 볼 때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하네요.

     

    관객 1 : 촬영 하시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서원태 : 이혜원 PD가 열대 과일을 썰어 주시길래 받아 먹었는데 배탈이 나서 3일간 설사를 하며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박선민 : 저는 혼자 숲에 들어가다보니 재미보다는 무서웠던 기억이 있네요. 인적 드문 시간에 촬영을 해 보고 싶어 동 튼 직후에 혼자 숲에 들어가려 했다가 너무 무서워서 숲을 들락날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라니와 맞닥뜨린 기억도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관객 2 : 이미지와 텍스트를 매치시킬때 어느 기준을 두고 작업하셨는지?

    서원태 : 텍스트 자체는 별 의미 없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불어를 선택한 이유는 컨텍스트의 레이어를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캄보디아의 역사와 식민 지배 등의…. 한 가지 재미있던 점은 내레이션을 해 주신 분이 프랑스로 입양 간 분이어서, 친아버지를 모르세요. 이 분이 내레이션상에서 아버지를 호명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도대체 누구를 떠올릴까 하는. 그리고 보낼때 배리에이션이 있어도 좋다는 얘기도 덧붙였어요. 그 덕에 본인도 흥미롭게 작업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원래는 국문 버전이었어요. 그 버전은 좀 울컥한 느낌이 있어요. 이건 좀 건조한데.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불어를 선택한 이유는, 인식이 안되는 언어가 이 영화에서 기능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박선민 : 확실히 이미지와 서사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버섯의 이미지와 인터뷰의 서사가 점점 가까워지는 순간들이 와요. 퍼즐처럼 의미가 만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연관성이 없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선호하지만 작업 도중 이가 맞는 퍼즐을 발견해 낼 때 외려 더 큰 집중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의 단어들이 개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정보도 있었고, 도덕 메시지, 시각 재미 등을 모두 주는 흥미로운 세션이었습니다. 네마프에 앞으로도 계속 스크리닝 되고 있으니 많은 것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 안진영 루키

     
    사진 │ 김하영 루키

  • [2019] [TALK] 젠더(X=접경)국가
    NeMAF 조회수:2127 추천수:9
    2019-08-18

    8 17일 오후 8,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젠더(X=접경)국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반기현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의 진행 하에 정찬철 한국외대 교양대학 교수, 정희원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전우형 중앙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 교수가 함께 했다. 개막작인 모나 하툼 감독의 <거리측정>과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캘린더>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회(반기현) : 안녕하세요, 젠더(X=접경)국가 사회를 맡은 반기현입니다. 여기서 접경은 공간뿐 아니라 시대와 시대 간의 접경,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접경, 한 인간 사이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체성 사이의 접경 또한 포함됩니다. 오늘 저희가 다룰 것은 개막작인 모나 하툼의 <거리측정>과 아톰 에고이안의 <캘린더>입니다. 정희원 선생님부터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희원 : 저는 개막작인 <거리측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영상이나 이미지 전공이 아닌 영문학 전공자다 보니 제가 보면서 느낀 개인적인 소감 위주로 말씀드릴 테니까 관객분들도 감상하시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식으로 느껴졌는지 비교하는 식으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작가 소개를 드리자면, 모나 하툼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레바논 시민권이 나오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영국 대사관에 근무했기 때문에 영국 여권을 발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영국 여행을 가게 되는데 마침 레바논에 전쟁이 일어나 공항이 폐쇄되어 레바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국에 살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 바로 <거리측정>입니다. 작품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거리측정>은 초반에 화면 가득 아랍어 글씨가 등장하죠. 바로 하툼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인데, 어머니가 하툼에게 보낸 편지를 영어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샹탈 애커만 의 <News from Home>이 생각이 났어요. 이 영화를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애커만 자체도 부모님은 유대인인데 벨기에에서 살다가 뉴욕에 와서 이방인으로서 굉장히 힘들게 살면서 뉴욕을 찍은 것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그리고 애커만이 어머니의 프랑스어 편지를 뉴욕을 배경으로 읽어요. 그래서 편지를 매개로 한 어머니와 딸의 관계, 그런데 딸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고국을 떠나 망명자 같은 삶을 살면서 어머니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거리측정>과의 공통점이 생깁니다. 이제는 두 영화 사이의 차이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두 영화는 다르죠. 애커만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News from Home>에서는 지하철 창문이나 유리창 같은 표면을 찍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특히 상점을 찍을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이 안에서 보지 않고 밖에서 들여다보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이 컷 같은 경우도 보시면 유리를 통해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또 자기가 보고 있는데 이런 식의 여러 겹의 화면 구성이 특징이에요. 이처럼 여러 층들이 겹쳐있다, 이런 자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나 하툼의 영화 역시도 여러 가지 층들을 겹쳐 놓는 측면이 있어서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와의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과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 않나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하툼 영화를 보면 아랍어 글씨가 마치 베일처럼 깔려 있는데 아랍어를 모르다 보니 되게 조형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렇다면 글씨가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사실 고다르의 영화도 그렇고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이렇게 고국에서 살지 않는 작가들이 글씨들을 가져왔을 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아 술레이만의 <Homage by Assassination>을 보면 주인공은 이란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주인공은 이라크 전쟁 당시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이동성을 박탈당한 채 계속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데 화면에다 자기 모국어, 그러니까 아랍어로 글씨를 쓰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글씨가 자기 손에도, 얼굴에도 비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이 의식적으로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동성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모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기 몸에 수동적으로 기입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실천이고 수행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하툼과 애커만의 작품을 보면서 대번에 시린 네샤트이라는 이란의 유명 미술가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거리측정>의 스틸컷이 사실 어머니의 누드 사진이거든요? 우리가 아랍 여성의 누드를 본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경험인데, 어떻게 보면 마치 베일을 씌운 것처럼 그 위에 아랍어 글씨를 입힘으로써 우리가 그 내밀한 순간을 같이 들어가 볼 수 있어요. 베일이라는 이미지를 사실 여성 작가들이 대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네샤트같은 경우, 이란 작가이기 때문에 페르시아어를 베일을 쓴 여성 위에 써놓는데, 이를테면 얼굴이나 손, 발 같은 곳에 써놓는 작업을 했어요. 이 부분들은 중동 여성들에게 허락된 노출 부위라고 해요. 이것은 관습적으로 중동 여성하면 생각나는 수동적이고, 서구인의 관점에서 성적인 부분만 강조되는 그런 식의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도전적이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범주에 갇히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모국어의 글씨를 신체에 쓰는 방식으로 재현됩니다. 그리고 글씨를 생각하다 보니, 90년대 중반의 피터 그린어웨이의 <Pillow Book>도 떠오르더라고요. 그린어웨이도 사실 글씨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있지만 사실 이건 되게 다르죠. 어떻게 보면 사드처럼 몸에 쾌락을 새긴다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의 전통에 맞닿아 있고, 하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일 방향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요. 또 여자 주인공이 일본 사람인데 중국어도 하면서 홍콩에 사는, 마치 서구인들이 오리엔트라고 생각하는 것을 두루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점에서 앞선 영화의 주체들이 가지는 임파워링(empowering)과 다른 차이를 지니죠. 

     

    전우형 : 젠더(X=접경)국가 주제전에 초청된 작품들을 보면 언어, 시선, 언어의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 재현에 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여러 언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그 언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까요. 일단 <캘린더>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아주 건조한 장치가 반복해서 등장해요. 달력이 있고, 정수기통이 있고, 그 위에 전화기가 있는데 이 전화기가 계속 울려요.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아 자동 응답기가 돌아가고, 주인공의 부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기 심정을 토로하고, 너는 도대체 뭐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너 거기 있어(Are You There?)’라고 묻는 장면이 영화의 끝까지 계속 나와요. 그러니까 왜 계속 자동 응답기만 돌아가느냐, 너 거기 있니라는 건데 저는 이것이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저는 Are You There에 Still을 집어넣어 ‘아직도 거기 있니(Are You, Still, There?)’라는 것으로 바꾸어 봤어요. 너 거기 있니라고 순수하게 궁금해한다기보다는 너 아직도 거기에 있니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외로움, 고독에 관한 영화 같아요. 하지만 원래 인간은 외로워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특수한 환경 때문에 외롭고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캘린더>는 고독의 증상으로서의 불안을 전면에 내세워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외롭고 불안한 사람이에요. 어쨌든 불안이 내면화되면서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거죠. 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거나 적대적이거나 이러한 상상이나 장난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고독이나 외로움, 불안, 그리고 긴 시간 불안이 내면화되면서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불온한 상상이나 시선은 감독인 에고이안 그 자신의 것이기도 합니다. 에고이안은 아르메니안 혈통으로 이집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영화 활동을 한 감독이에요. 즉 디아스포라라는 거예요. 디아스포라는 정체성이라는 이야기가 없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외롭겠지만 디아스포라만의 외로움이 있고, 디아스포라가 갖는 불안이 있어요. 그리고 디아스포라는 그 지역에 원래 살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 아니면 다르게 보려는 시선들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지 않기 위해 순치가 되는 거죠. 마치 여기 원래 있던 사람들처럼. 그리고 이렇게 살다 보니 무의식의 찌꺼기가 남아 역으로, 적대적으로, 불온하게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부인이 자꾸 말을 거는데 프레임을 옮기는 연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영화 속에서 사진작가로 분한 아톰 에고이안 감독은 부인과 함께 달력에 사용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아르메니아에 있는 교회를 갑니다. 그곳에서 택시 운전사는 그들을 안내하며 아르메니아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아르메니아계인 아내는 이를 통역합니다. 에고이안은 부인과 운전사 사이의 긴밀한 유대감에 질투를 느끼는데 반감을 표현하기 위해 바로 프레임을 옮기는 연출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에고이안은 자신의 것이었던 디아스포라를 부인에게 넘겨 디아스포라가 가지는 불안, 외로움, 불온 위에 젠더를 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주인공 근처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다국적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카메라 뒤에 위치하면서 디아스포라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시선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제인 젠더X국가의 X는 국가와 젠더 사이의 트러블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좌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젠더나 디아스포라가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위치를 발명하는 좌표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보는 접경연구단의 어젠다이자, 갈등과 간극을 넘어선 상상력들의 집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반기현) : 그럼 이제 정찬철 교수님이 <거리측정>과 <캘린더>를 종합적으로 말씀해 주실까요?

     

    정찬철 : <캘린더>에는 사진기 뷰파인더, 비디오 이미지, 음성녹음기 등 다양한 통신기록매체가 등장합니다. 왜 이민자의 삶을 이러한 다각적인 매체를 통해 기록했을까요? 영화 속에서 남편은 아르메니아에 사실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게 프레임 밖으로 나가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떠나온 모국의 역사는 대상화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치를 지닙니다. 여기서 에고이안의 사진기는 단지 모국을 대상화 시키고 거리를 두는 장치일 뿐이죠. 한편 아내는 모국의 언어와 소통하는 이산자입니다. 그녀는 번역자의 역할을 하고, 모국의 언어와 역사를 알아가고자 하며 모국의 뿌리를 두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산자의 정체성은 뭘까요? 떠나온 모국을 기억하는 것이 이산자의 정체성일까요, 아니면 잊어버리는 것이 정체성일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미디어를 사용해 에고이안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캘린더>에는 아랍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마케도니아인, 이란인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여성들이 나옵니다. 왜 모국을 떠나온 이산자들이 등장할까요? 그리고 왜 이들은 모두 에고이안의 전화기를 빌려 모국으로 전화를 하는 걸까요? 사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은 모두 다 아르메니아 학살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들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접경지대로 이동했고, 그렇게 이산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은 떠나온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이 맞을까?를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캘린더>와 <거리측정> 사이의 매체적인 유사성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유사성이 말하고자 하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공통점이라면 사실 이 두 영화는 닮아있죠. 우선 영상 이미지와 문자 이미지를 주로 사용합니다. 목소리와 비디오 이미지 그리고 문자, 동일한 미디어를 가지고 이산이라는 주제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성만은 정반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톰 에고이안이 이산자에 대해 뿌리를 버려야 한다에 힘을 더 실은 반면, 모나 하툼은 그 뿌리를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에 잊었다면 복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언어를 영어로 해석해서 전달하는 장면은 마치 에고이안의 영화 속 아내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에고이안에게 있어 미디어는 고국을 떠나기 위한 도구이고 하툼에게 있어서는 고국과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크 녹음 파일이 손상 되어, 토크의 일부분은 누락되었습니다.  

    취재 │ 정현경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 [2019] [마스터클래스] 마를린 호리스의 작품 세계와 네덜란드 시네마
    NeMAF 조회수:2622 추천수:6
    2019-08-17

    8월 17일 늦은 8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스터 클래스 <마를린 호리스의 작품세계와 네덜란드 시네마>가 열렸다. 패트리샤 피스터스의 초청 강연 및 토크가 약 2시간 정도 진행되었으며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마를린 호리스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이번 마스터 클래스 현장을 더욱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네덜란드의 유명한 감독인 마를린 호리스 감독에 대해 강연하게 된 페트리샤 피스터스입니다. 1970년대, 1980년대는 여성해방이 막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때 마를린 호리스가 어떤 배경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당시의 다른 유럽 여성감독들은 누가 있는지, 어떤 배경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합니다. 또한, 그 시절의 여성감독들과 요즘 시대의 여성감독들을 비교해보는 좋은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이전의 여성감독들이 아주 극소수가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잘 다루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로 1970년대로 들어가겠습니다. 네덜란드의 첫 여성감독은 누츠카 반 브라켈입니다. 이 감독의 첫 작품은 1977년작 <데뷔>입니다.

     

    영화 <데뷔>를 보면 새로운 주제가 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의 누드가 나오긴 하지만, 엄마와 딸이 욕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등장하고, 굉장히 자연스럽고 에로틱하지 않는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논란이 될 수 있는 토픽을 다루기도 했는데요. 영화에서 중년의 남성과 소녀가 관계를 맺고 있는 그런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의 키워드는 ‘자유’ 였기 때문에 그때 상황을 반영했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츠카 반 브라켈 감독이 만든 또 다른 영화 두 편을 또 언급하고 싶은데요. 첫번째로는 <이브 같은 여자>입니다. 이 영화는 결혼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게 되고, 이 사실이 발각되자 양육권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9세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죽음의 호수> 또한 결혼한 여성이 애인과 관계를 이어나가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정신이상자가 되는 내용입니다.

     

    1970년대는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여성 해방이 떠오르던 시기입니다. 가족 계획, 낙태의 자유,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권리 등에 대해서 여성들이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 여성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러가지 페스티벌이 등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명분이나 동력이 생기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입니다.

    1970년대, 1980년대 여러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독 중 한 명이 아녜스 바르다 프랑스 영화 감독입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도 누츠카 반 브라켈 감독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감독의 작품으로는 1958년작 <오페라 무페 거리>가 있는데요. 감독 자신이 실제로 임신했던 기간 동안 만들어진 단편영화입니다. 그 당시 굉장히 실험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바르다 감독의 작품으로, 네마프에서도 상영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바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 부류의 여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둘 다 자유로운 해방을 보여주지만, 하나는 꽃이나 평화, 사랑을 다룬다면 다른 부류에선 시위를 한다거나 활동적인 여성들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첫 여성감독은 샐리 포터로 1993년작 <올라도>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울리크 오팅거라는 여성 감독이 있습니다. 이 감독은 새로운 물결 (New Wave) 에 힘 입어 여러가지 시도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결혼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한국식 결혼>도 만들었습니다.

    1970년대에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여성 감독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샹탈 에커만 감독입니다. 1975년작 <잔느 딜망>은 3시간이 넘는 긴 영화입니다. 3일 동안의 여성의 행동을 담았습니다.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하고, 식사를 차리고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보통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데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인물이 어떤 소소한 행동을 하는지 보는 것에 있습니다. 세번째 날에 인물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게 됩니다. 원래 인물에겐 시간에 따른 일련의 행동 패턴이 존재하는데,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기상하게 되자 인물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자를 태우거나 갑자기 머리 정돈이 흐트러지는 등 작은 것들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에커만 감독은 극중 이런 작은, 소소한 것들로 큰 감정이나 사건을 묘사했는데요. 이 영화가 마를린 호리스 감독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를린 호리스가 첫 영화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샹탈 에커만 감독의 <잔느 딜망>을 보고 <침묵에 대한 의문>을 집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를린 호리스 감독은 정식적인 영화 제작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쓴 <침묵에 대한 의문> 대본을 들고 아크만 감독에게 문장마다 설명을 하며 자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크만 감독에게서 혼자 영화를 만들어 한다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제가 호리스 감독 인터뷰를 했을 때 실제로 어떤 것을 쓰고 싶었고, 만들고 싶었는지 질문을 하니 마를린 호리스 감독은 4개의 영화를 말했습니다. 그중 <안토니아스 라인>이 가장 유명한데, 이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첫번째로 여성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영화였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여성 감독들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다시 <침묵에 대한 의문>으로 돌아와서, <침묵에 대한 의문>은 여성의 지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입니다.한편으로는 굉장히 사실적이지만, 또 상징적인 기법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극중에서 콕스 허베머는 상위층을 대표하는 심리학자이고, 헨리에트 톨은 중위층의 비서이고, 에다 배런즈는 하위층의 전업주부, 넬리 프리다는 근로 계층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각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살인 장면은 좀 더 상징적인데, 단순히 가게 주인을 살인하는 것을 넘어서서 조용히 침묵하는 것으로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침묵하고 있는 증인들 또한 다양한 인종, 계층, 연령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극의 사실주의와 여러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들이 오늘날에도 이 영화의 힘을 크게 실어줍니다.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에도 중요합니다. 이 법정 장면에서 심리학자인 콕스 허베머는 세 여성이 정신 이상자라는 진술을 하란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 압박을 받았지만, 콕스 허베머는 세 여성은 모두 정상이다는 진술을 내리고 법정에서 좀 더 실제적인 문제들, 즉 사회적 / 정치적 / 젠더 이슈를 마주하게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주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경향은 꾸준히 존재했는데요. 1920년대 미국에서는 심지어 여성들에 해당되는 질병 코드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 질병 코드를 따로 매기고, 그들을 침묵하게 만든 후,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영화 말미에 전략적으로 여성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 장면을 통해 소위 사회상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 아닌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다루기 힘든 여성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리학자인 콕스 허베머가 남편에게로되돌아가지 않고 여성들에게 가는 마지막 장면 또한 그런 점을 잘 나타냅니다.

    다음 영화는 <부서진 거울>입니다. 암스테르담의 사창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 영화는 굉장히 극단적인 편인데요. 마를린 호리스 감독 본인 또한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들어야만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서진 거울>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다른 사건들이 연결되는 구조의 영화인데요. 두 가지 스토리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데, 두 스토리 모두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이 부각되어집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관객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여성들이 4대에 걸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물 안토니아가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로 돌아가게 되는데, 마법 같은 페미니즘의 서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동화적이고 조금 더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물론 종종 어려운 난제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잘 해결하며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또한 극중에서 사실주의나 폭력적인 장면이 있긴 하지만, 반면에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동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천사 동상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선생님이 비너스화된 장면도 있습니다.

    남성을 거부하기보다는 프로워먼 (Pro Woman) 의 측면으로 나아가는 영화이고요. 대가족이 밖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장면들도 등장합니다. 또한, 조연들의 연기도 두드러지는 영화입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의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호리스 감독의 작품 선택 폭이 넒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를린 호리스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 소설이 원작인 <델러웨이 부인>입니다.

    클래식한 작품이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중년의 델러웨이 부인을, 나타샤 맥켈혼이 젊은 델러웨이 부인을 연기합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에서도 그랬지만, 플래시백 기법을 주요적으로 사용하며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댈러웨이 부인>에 또 다른 주요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굉장히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된 군인이 나옵니다. 소설과 영화 둘 다 델러웨이 부인과 군인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데요. 그런 연결고리를 영화에서는 델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위해 꽃집에 들러 꽃을 사고 있는 장면에서 군인을 보게 되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또한,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연결고리를 보여주는데요. 군인이 전쟁 트라우마로 귓가에 전쟁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델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 갔을 때 장면과 연결하면서 그 둘의 연결고리를 조금 더 부각하게 됩니다. 이런 평행적인 구조로 가다가 마지막에 창문이라는 미장센이 나오는데요. 군인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기를 결심하지만, 델러웨이 부인은 살기로 결정을 합니다.

    호리스의 마지막 영화는 <소용돌이 속에서>인데요. 예브게니아라는 인물의 실화로 만든 영화입니다. 예브게니아는 러시아문학 교수로, 당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녀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게 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 감옥에서 만난 의사가 자신의 문학적인 면모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미장센과 이미지가 정말 강하며 연기도 훌륭합니다. 배급이 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는데, 네마프에서 상영을 한다는 점이 정말 감사합니다.

    예브게니아가 감옥에서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시와 문학이었는데,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Osip Mandelstam의 숨결이라는 시가 등장합니다. 사실 이 시는 마를린 호리스 감독이 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는 여자들을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힘을 돋구고, 여성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그런 시라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쓰여진 시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네덜란드 여성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6명 정도의 여성 감독이 있었는데, 영화 자금 지원을 받는 수치로 본다면 요즘에는 반 정도가 여성들이 제작한 영화입니다. 2018년에 46 퍼센트 정도였는데요. 그 감독들 중에서는 젠더에 관련된 영화들을 만들지 않는 감독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들이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여성 해방이나 젠더 이슈에 대한 영화를 만들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젠더이슈나 페미니즘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감독들이 있는데요. 써니 베그만 감독은 뷰티 산업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플레이보이에 나오기 위해 여성은 어떤 강요를 받는지 지적하는 영상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가정 폭력을 다루는 감독도 있습니다. 에스더 랏츠 감독은 2018년작 <해고>를 통해서 가정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명확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1970년대 마를린 호리스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유쾌한 방법으로 여성에 대해 접근하는 감독도 있습니다. 바로 엠마 웨스턴버그인데요. 쟈넬 모네의 PYNK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좀 더 유쾌하고 가볍게 여성 이슈에 대해 다룰 수도 있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기존 세대들이 여성에 관련한 많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움직임은 있을 수 없었겠죠.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까지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약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억압하려는 세력도 여전히 존재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관객 1: <침묵에 대한 의문> 마지막 법정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정신병을 사유로 형을 감하고자 하는데, 극에서는 반대로 진행되어 흥미로웠습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정신병이라고 하면 감형이 되는데도 정상이라고 진술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화적 장치로 쓰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말씀하신 부분이 바로 영화의 포인트인데요. 네덜란드에서도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은 형이 감해집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본인들이 종신형을 받을지라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만약 본인들이 정신 이상자라고 했다면 그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혀지고, 문제 또한 덮혀질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전개된 것입니다. 영화 속 남자도 ‘차라리 정신병동에 가자’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목소리가 묻히고 문제가 덮혀지느니 차라리 수감되겠다는 뜻을 밝히며 상징적인 가치를 보여줍니다.

     

    관객 2: <침묵에 대한 의문> 중 안드레아가 정신심리학자의 몸을 쓸어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합니다. 또, 심리학자가 초반에 그 세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왜 등장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영화 속에서 명시되어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레즈비언을 표현한 장면이라고 느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실제로 마를린 호리스 감독님도 레즈비언이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장면 같은 경우, 심리학자를 도발하기 위한 시니컬한 장면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것이냐, 하고 도발하는 장면인데요. 세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심리학자를 도발합니다. 한 명은 조소를 날리고, 한 명은 또 시니컬하게 말을 하고, 또 말을 하지 않는 크리스틴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립니다. 바로 아이, 남성, 여성이 한 집에 감금되어 있는 그림인데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말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린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관객 3: <침묵에 대한 의문>을 굉장히 흥미롭게, 의문을 가지고 봤습니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감독이나 여성 영화 감독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 가장 느끼는 어려운 점으로 제작 지원 미비를 꼽았는데요. 마를린 호리스 감독님과 더불어 네덜란드 여성감독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는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궁금합니다.

     

    페트리샤 피스터스: 영화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에서 만들어진 영화니까요. 영화의 영어 제목은 <침묵에 대한 의문>이지만, 네덜란드어로는 <크리스틴 M을 둘러싼 침묵>으로 상영되었는데요. 네덜란드어 영화 제목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데 크리스틴이죠. 아무도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고, 남편도 크리스틴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커튼도 항상 닫혀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범죄자가 신문에 실릴 때 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 뒤에 온점을 찍고 성의 첫번째 알파벳만 신문에 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대해선, 우선 <침묵에 대한 의문>을 유명 프로듀서가 펀딩을 해주었는데요. 이 프로듀서와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영화 제목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프로듀서가 포스터에 네덜란드어 제목인 <크리스틴 M을 둘러싼 침묵>에서 크리스틴 뒤에 붙는 온점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호리스 감독이 이 문제에선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온점 하나가 사라진, 아주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 제목 <크리스틴 M을 둘러싼 침묵>으로 포스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두번째 문제는 프로듀서가 포스터에 감독인 마를린 호리스의 이름을 적어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행히 마를린 호리스가 이겨 포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 외에 네덜란드가 영화 자금력이 좋은 국가는 아니지만, 마를린 호리스는 운 좋게 모든 영화에서 예산을 확보해 본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관객 4: 한국에 젠더 이슈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십여년 정도 되었는데요. 젠더 이슈가 GDP 수준과 연계되어있다고 보시나요?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요?

     

    페트리샤 피스터스: 소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여성 인권은 매우 낮은 편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오히려 대중문화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사람들의 인식을 깨울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같은 경우 모두가 바로 쉽게 대중문화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물론 점차적으로 법이나 관습도 변화하겠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소프트 파워 (soft power)이고, 문화입니다. 이런 소프트 파워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굉장히 그런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인 것 같습니다. 젠더성의 흐름이 활발하기도 하고요. 또 국경을 초월한 콘텐츠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이런 이슈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복합적인 해결법이 있는 것 같고요. 대중문화와 소프트 파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취재 │ 김하영 루키

     
    사진 │ 안진영 루키

  • [2019] [GT] 한국구애전 장편 <야광>
    NeMAF 조회수:1890 추천수:11
    2019-08-17

    8월 16일 오후 4시 홍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는 한국구애전 장편 부문의 <야광>이 상영되었다. 상영 이후 GT에서는 임철민 감독이 참석해 관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은 이양원 모더레이터가 맡았다.

     

    <야광>을 만들게 된 계기와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야광>은 먼저 2017년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동일한 제목의 공연 버전으로 초연을 올렸고, 영화의 경우 작년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습니다. 애초에 영화로 출발했지만, 작업하는 과정에서 공간이나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영화와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두 가지 형태가 짝을 이루는 방식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서울의 유명 극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이 주제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남성 성소수자들이 서울의 몇몇 극장들을 주된 만남의 장소로 점유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크루징 스팟(cruising spot)이라고 불리는 그 공간들을 찾아가면서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영화에는 바다극장이나 파고다극장 같은 오래된 극장들이 나오는데요, 특히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는 극장의 단편적인 모습을 담은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간을 촬영할 때 어떤 기준이나 방식을 채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해당 극장들을 체험해보지 않은 세대로서 이를 다루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들의 목록을 만들어 무작정 찾아가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찾아가 보니 제대로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더라고요. 극장 터나 건물 자체가 사라지고 물류창고나 고시원, 유흥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바다극장의 경우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크루징 스팟이었던 극장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광>을 상영하게 되었단 소식을 전하러 촬영 이후에 찾아갔을 때는 바다극장 역시도 모 상업 영화의 오픈세트장으로 활용되어서 일제강점기 극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 공간들인데, 재밌는 건 많은 극장의 기본적인 구조나 형태는 계속 유지되고 남아있었다는 점입니다. 거기서 얻은 감흥들로 영화로써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느낀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극장성의 사유와 정체성에의 물음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어둠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과 꿈에 대한 대화, 극장과 관객 등의 요소들은 극장과 관련된 매체적인 조건을 암시한다고 느꼈습니다. 그에 반해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굉장히 많이 고민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공간들이 성소수자들이 공공연하게 드나들었던 곳이 아니라, 굉장히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그들끼리 공유되는 어떤 정보들만으로 점유되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속성들을 이 영화에도 반영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이야기나 저희가 자료조사 과정에서 한 인터뷰의 내용을 많이 걷어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의 상당수가 성소수자 당사자분들이셨고,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셨기 때문에 내러티브가 들어가도록 영화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와 스텝 모두가 그 극장을 체험해보지 않은 세대였기 때문에 멜랑꼴리(melancholy)하거나 노스텔지어(nostelgia)한 방향으로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명의 퍼포머(performer)들이 등장해 특정한 스코어 혹은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관련 지시를 직접 내리신 건지, 퍼포머들과 협의를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처음 영화의 컨셉 촬영을 할 때는 남성으로 패싱(passing)되는 인물들이 나와서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영화와 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는 계속해서 틈을 만들어내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시나리오의 경우 형식이 닫혀있는 측면이 있어서 이를 방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스코어로 전환하자는 아이디어에 따라 아주 간단한 텍스트와 몇몇 이미지들로 스코어를 구성해서 스텝들과 퍼포머분들과 함께 8회차 정도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스코어의 전반적인 내용은 공간을 몸을 통해서 다시 투영(projection)하는 것이었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을 다시 촬영했습니다.

     

    해당 작품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되어 큰 상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이 작품을 장르적으로 다큐멘터리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전 영화들에서도 그랬지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할 기회를 가지면서 실험 영화,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으로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처음 영화 작업을 했을 때는 제가 그런 구분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약간의 저항심이 있어서 체킹 박스(checking box)에 모든 항목을 다 선택해 제출하기도 하고, <프리즈마>의 경우 각각 픽션과 다큐 양쪽 모두로 상영하는 과정을 거치며 답답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낯설고 어려운 것을 너무 손쉽게 실험 영화로 규정하는 것이 불편했거든요. 근데 <야광>에서 조금 달랐던 점은 기록되어야 하는 공간이 있었고, 그 지점에서 출발한 영화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 1: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눈을 감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앞부분의 꿈에 대한 대화가 연상되기도 했고 현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 대한 묘사를 시도하신 것 같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어떤 연출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말씀해주신 측면도 있고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개인적인 계기 중에 어느 기간 동안 극장에 가면 계속 잠이 드는 증상과 현상들을 겪어서 병원에 가기도 하고 특정한 병명을 부여받기도 하는 경험이 있었어요. 그 장면의 경우 처음부터 기획된 것은 아니었고 작업 과정에서 삽입된 스코어였는데, 한 퍼포머 분께서 극장 자체가 나온 영상과 조응하면서 만들어낸 장면에 속했습니다. 처음에 이 영화는 어떤 공간을 다루는 과정과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으로만 시작했었는데 영화를 진행하다 보니 상영의 기제까지 포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마련하고, 뒤이어 빛의 삼원색이 나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빛이 작용할 수 있게끔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2: 후반부에서 삼원색을 사용해 입체적이고 이질적인 효과를 주신 장면의 연출 의도가 궁금합니다.

    영화를 시작할 무렵 가상의 낙원을 3D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이때 낙원은 지금의 남성 성소수자들의 주된 공간인 종로의 낙원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 세력이 꾸준히 주장하는 논리가 성경에서 오는 것이 많은데, 성경에서 말하는 낙원과도 닿아있습니다. 영화에 사용된 푸티지(footage)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구현하는 과정 자체를 잘라서 넣은 것이었어요. 렌더링 과정에서 여러 가지 폴리곤(polygon)이나 매핑 버전이 순차적으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노말맵(normal map)이라는 게 눈에 띄었어요. 노말맵은 삼원색을 각각 밝은 톤, 중간 톤, 어두운 톤으로 인식하게끔 해서 2D 이미지로 미세한 질감이나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과정인데요, 영화에서 보셨던 형광의 화려한 이미지가 노말맵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또 3D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나온 공간들도 실사 이미지 자체를 노말맵화해서 두 가지 이미지를 병치 시켜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향후 계획 혹은 다음 작업으로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관심이 있는 것들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서 구체화되면 그때 작업을 완성해서 여러분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렌더링(rendering): 수치와 방정식으로 서술된 2차원 혹은 3차원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

    * 폴리곤(polygon): 3차원 컴퓨터그래픽에서 입체형상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다각형

     

    취재 │ 이예진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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