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오후 12시 20분 홍대입구 롯데시네마 1관에서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 상영이 진행되었다. <학자의 산>, <MOL>, <내 방에 온 걸 환영해>, <바깥은 존재한다>, <아이 엠 걸>까지 총 5편의 비디오아트가 상영되었다. 이후에는 넷필름메이커스에서 활동 중인 덴마크 독립 큐레이터 루이스 스타이베르가 자리를 함께해 덴마크 비디오아트의 역사와 함께 비디오아트 감독들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을 맡아주었다. 특히 이번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 같은 경우, 한국과 수교 60주년을 맞이하는 덴마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비디오아트를 소개하게 되는 자리였기에 더욱 특별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은 안예지 시네-미디어 큐레이터께서 맡았다.
루이스 스타이베르: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에 와주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온라인 플랫폼 넷필름메이커스에서 활동 중인 덴마크 독립 큐레이터 루이스 스타이베르입니다. 우선, 보신 작품들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드리고, 오늘 자리하지 못한 감독들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짧게 덴마크의 영화사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1920년도에 처음으로 영화과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세계적으로 이런 비디오아트와 미디어 교육이 실시된 것은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지만, 덴마크에도 이런 교육들이 실시되기 전부터 비디오아트를 작업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오늘도 공적인 교육이 등장하기 전부터 활동을 했던 감독의 작품을 보셨는데요. 바로 <아이 엠 걸>입니다. 조금 전 마지막으로 상영된 수녀들이 나왔던 비디오였구요. 이 비디오의 감독인 뷘케 마이뵐은 젊은 시절 뉴욕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뉴욕에서 공부를 하던 시기에 급진적 성향을 지닌 퀴어 커뮤니티와 미팅을 진행하게 됩니다. 마이뵐 감독이 뉴욕에서 공부를 끝마치고 다시 덴마크로 돌아올 때, 뉴욕에서 접하게 되었던 비디오 테이프들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 당시 1980년 말은 펑크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인데요. 마이뵐 감독은 이와 관련된 비디오 테이프를 상영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런 실험적인 비디오 상영은 곧 많은 감독들이 비디오아트에 관심을 가지고 영감을 받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이번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에도 그 기회를 통해 영감을 받았던 두 감독의 작품이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바로 한느 닐슨과 브리짓 욘센의 <바깥은 존재한다> 인데요. <바깥은 존재한다>는 1990년대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소리가 거의 없는 상태로 보여주는 비디오입니다. 이 비디오의 감독, 한느 닐슨은 코펜하겐에서 정식으로 비디오아트와 미디어 교육을 받은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미디어에 관련해서 실험적인 요소를 넣어보는 것이 당시 1990년대의 주류 경향이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때 주류를 이뤘던 대부분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여성이었습니다.
1980년대, 90년대 덴마크의 예술 경향은 큰 규모의 여러 그림을 많이 그렸던 작가들이 이뤄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뉴미디어나 비디오아트 감독들은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려 했습니다. 기존의 예술 경향도 받아들여 큰 액팅을 비디오 안에 넣기도 했지만, 반대로 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거나 인간과 친밀한 주제를 가져와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주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이런 작품들을 선정하게 된 이유는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슬로건과 관련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품들을 선정해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젠더를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다루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젠더에 대해 다루게 되면 대부분 페미니즘, 생물학적 성을 주제로 삼는데, 젠더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리 신체, 우리의 몸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좀 더 중점을 둬 우리 몸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는지, 어떻게 우주 밖의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영상물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작품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바깥은 존재한다>에서 보여주려 했던 것은 전형적인 덴마크의 풍경입니다. 소설 돈키호테의 컨셉을 차용해 비디오 속에서 싸우는듯한 이미지들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과 다르게 조용하고 정적인 장면들로 전개되는데, 돈키호테의 캐릭터를 여성으로 전환하는 데에서 나온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비롯해서 젊은 세대들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젠더나 여성을 표현하는 많은 방식 중에서 물론 좀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죠. 이런 직관적으로 묘사된 작품이 바로 마지막으로 보셨던 <노 오존>이라는 비디오입니다. 사막에서 등장하는 <노 오존>의 주인공이 작가와 매우 닮은 것으로 보아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화해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디오 속에서 주인공은 방울뱀에게 물려서 어떤 저주를 받게 되고, 센세이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소설 어린 왕자와도 연결될 수 있다 보는데요. 소설 속에서도 어린 왕자가 뱀에게 물리는 장면이 있죠. 하지만 이 비디오를 통해 만약 그 뱀이 어린왕자를 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만약 죽지 않고 성인이 된다면 어린왕자는 어떻게 될지. 다양하게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 오존>의 감독은 코펜하겐 대학교 영화과에서 이제 막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한, <노 오존> 이전에도 <All>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어떤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내용인 1시간 반 정도 길이의 작품입니다. 실제로 이 감독의 아버지가 감독이 9살 때 살인을 당하기도 했고, 이 사건과 가족 안에서의 비극이나 폭력들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감독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 중 하나는 영상물에서 젠더 이슈를 다룰 때, 여성이나 퀴어가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남성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도 가정사가 불우한 사람들 중 젊은 세대는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병자리 시대의 <학자의 산>은 십대 소년이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떠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십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비디오는 소년이 끼고 있는 헤드폰에서 나오는 음악의 리듬과 속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비디오 속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여행 속에서 건축학적으로 지질학적으로 심리학적 장소들을 둘러보게 되는데, 디지털화 된 우주를 관객들이 접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소년의 관점에서 여러 이미지나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교육을 통한 학습방식을 제외하고, 여러 사고방식들이 어떤 식으로 구축되는가를 알 수 있는 비디오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아이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아이의 가치관, 성 정체성 구축에 영향을 주는지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영화는 <MOL> 인데요. 헬렌 니만 감독이 덴마크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중에 만든 영화입니다. 이 비디오는 우리의 기억과 몸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기억에 대한 테크닉을 다루고 있는데요. 우리가 기억을 시작해서 어떤 방향으로 기억을 뻗어가는지, 다른 영역에 있는 기억들로는 어떻게 향하는지등을 다루는 기억을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기억을 하려 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가 공간을 나누고 그 공간에 하나씩의 기억을 두고 나오는 방법인데요. 이걸 집이라는 공간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마리아 메인이르드의 <내 방에 온 걸 환영해>입니다. 보셨다시피 인형 조종사들의 워크샵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 워크샵에서 인형 조종사들은 어떻게 인형을 움직일 것인지, 어떻게 하면 인간처럼 보일 것인지 배우는 게 되는데요. 인간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인간과 기계, 인간과 사이보그 간의 인터페이스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사전에 워크샵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점이 젠더와도 관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객 1: 온라인 플랫폼 넷필름메이커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루이스 스타이베르: 저랑 다른 동료 하나가 이 플랫폼을 구성했는데요. 1980년 말부터 운영 중입니다. 소셜 미디어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시절에, 작가들은 작품을 내보이고 싶으면 상영 프로그램을 따로 찾거나 본인이 상영하는 기술에 전문가여야지만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큐레이터들이 아티스트를 섭외해서 선보이는 방식이었지만, 요즘은 상영을 위한 자리 마련보다는 아카이빙에 조금 더 힘을 써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객 2: 독립 큐레이터의 운영 방식과 코펜하겐 작가들의 제작비 지원을 받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또한, 작품을 설명하실 때 비디오라는 단어를 많이 쓰셨는데, 필름(영화)가 아니고 비디오라는 단어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루이스 스타이베르: 현재 넷필름메이커스는 비영리 단체로 연간 10회 이상의 상영을 하고 있고요. 재정 충당은 어려운 실정입니다. 스타트업 같은 경우, 2년 동안 지원을 받을 수 있고요. 그 이후에는 사기업이나 개인적으로 재정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덴마크에서는 비디오 아트와 필름(영화)는 구별되어서 다루어집니다. 비디오아트 경우 조금 더 현대의 (contemporary) 영상을 다루고, 필름은 좀 더 시네마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디오아트를 큐레이팅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준의 비디오아트 작품들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디오아트 제작비 지원은 퍼블릭 펀딩을 통해 이뤄집니다. 덴마크는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는 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기업을 찾거나 특정 전시에서 상영이 된다면 그 참여비를 받아 작품 제작비를 충당하기도 합니다.
관객 1: 온라인 플랫폼에 관한 질문인데요. 큐레이터들이 컬렉션을 구성하는 건지, 아니면 작가들을 컨택해서 작품을 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루이스 스타이베르: 현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 중입니다. 1980년대에 비디오를 수집하려는 차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정형화된 방식이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 오늘날은 여러가지 형태의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들마다 전체적인 상영을 할지, 트레일러만 상영을 하고 다른 플랫폼을 통해 전체 작품을 상영할지 각기 다르게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 │ 김하영 루키
사진 │ 안진영 루키
8월 18일 오후 2시 40분 한국구애전 단편 포스트-내러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디어 엘리펀트>, <낮과 밤>, <On the Boundary>, <유언>, <아남네시스>까지 총 5편이 상영되었다. 그중 <디어 엘리펀트>의 이창민 감독, <낮과 밤>의 김무영 감독, <유언>의 김성은 감독, <아남네시스>의 이민하 감독이 참석해 관객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 진행은 임창재 모더레이터님이 맡았다.
간단한 자기 소개와 작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창민: 안녕하세요. <디어 엘리펀트>를 연출한 이창민이고요. <디어 엘리펀트>는 한국 최초의 태국 이주자이자 잊혀진 영화감독인 이경손 영화감독의 흔적을 찾아가는 영화입니다.
김무영: 저는 <낮과 밤> 찍은 김무영이라고 하고요. 영화는 풍경에 관한 것입니다.
김성은: 안녕하세요. 저는 <유언> 감독한 김성은이고요. 영화에 촛불 시위 당시에 제가 느꼈던 감정을 기록했습니다.
이민아: 안녕하세요. 마지막에 <아남네시스> 연출한 이민아라고 하고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 여성들과 함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포스트 내러티브. 그러니까 이야기 이후를 다루는 것이겠죠. 우선, 고전적인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와 다르게 익숙하지 않은 구조의 내러티브이기 때문에 낯설 수 있을 거 같단 생각도 드는데 이번 상영 영화 장르가 다양한 거 같아요. 작가들의 주관적인, 내면의 생각이나 일기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알고 있던 영화의 틀을 벗어난 거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영화라는 영역을 확장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관객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합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1: 이민아 작가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아남네시스>에서 여성 분들이 스크립트를 쓰는 동안 나레이션이 나오잖아요. 그 나레이션에서는 길게 이야기를 하는데, 자막으로 번역된 부분은 적었던 거 같았는데, 그 부분이 작가님의 의도였는지 궁금합니다.
이민아: 영상 작업은 손에 인두를 들고, 태워서 문신을 새기는듯한 과정을 담았는데, 상처를 정리하는 과정에 오브제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영상이랑 설치 작업이 함께 이루어졌던 작품입니다. 영상에선 긴 이야기들을 다 자막으로 처리하지 않았던 이유가 제가 약자들의 이야기를 평소 많이 다뤘는데, 자막으로 모든 말에 입히다 보면 어느 순간 영상이 피로해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오히려 자세하게 하나하나 자막으로 적어놓으면 그거에 대해 오히려 몰입을 더 안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상에서는 의도적으로 자막을 다 적지 않았어요. 설치 작업을 보시면 거기에는 전문을 다 표기해두었습니다. 영상에는 제가 중요하다고, 임팩트 있다고 생각한 부분을 뽑아서 자막 처리를 했습니다.
누워 계셨던 분은 한국 분인가요? 그리고 감독님과 이주 여성분들의 관계도 궁금하고, 작업을 할 때 그게 전부 그 분들의 이야기였는지, 감독님의 개입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이민아: 누워 있는 사람은 저였고요, 스토리는 그 분들이 직접 다 쓰신 거예요. 제가 직접 다 알았던 분들은 아니고, 제가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다문화 센터 같은 곳들을 방문하면서 이런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을 모집했어요. 그리고 사실 처음에 이 분들이 써주신 이야기는 사실 위주의 신문 기사나 고소장 같았어요. 시어머니가, 남편이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이야기와 신상 정보가 노출될만한 부분들이 많아서…. 제가 두세 번 정도 만나 뵈면서 이런 사실 진술보다는 차별을 받았을 때 자신에게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 그때의 느낌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외부 세계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이끌어나갔습니다.
관객 2: <디어 엘리펀트> 이창민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이경손 감독님의 가족들을 만나셨잖아요. 분명 인터뷰도 하셨을 텐데, 이 부분이 의도적으로 많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그게 의도하신 거라면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창민: 오늘 이 자리에도 영화에 등장하셨던 이려 님과 가족분들이 참석하셨는데요. 영화를 기획하기 전에는 저는 이경손 감독님에 대해 몰랐습니다. 지난 해가 한국와 태국 수교 60주년이라서 제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태국 학교와 교류하는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 행사를 진행하며 단편 영화를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게 되었는데, 정작 저는 태국에 대해 잘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국으로 처음 이주한 한국인이 누구일까를 조사하던 찰나에 이경손 감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는 가족 분들을 만나게 될 거라 상상도 못했지만, 이 영화는 그 이후에 가족 분들을 만나 뵙게 된 후의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면서 이려 님과 19통 정도의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 편지들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들도 편지 나레이션에 함께 넣어 재구성하게 되었고요.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순서 배치 상에서 가족 분들과 함께 인터뷰한 장면들을 많이 생략하게 된 것입니다.
<낮과 밤>의 김무영 감독님은 필름으로 작업하셨는데, 요즘 시대에 필름으로 작업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무영: 개인적으로 필름이 만들어내는 질감을 좋아합니다. 현상을 하면서, 촬영을 하면서 나오는 우연적인 것들을 좋아해서 필름으로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필름은 미국에 있을 때 구매했고, 현상이랑 프린트도 제가 직접 작업했습니다.
<유언>의 김성은 감독님, 아마도 가장 복잡했던 영화 같은데요. 유언이라는 제목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 거 같은데, 그 죽음의 대상과 관련된 유언인 것인지 궁금해요.
김성은: 이 작업은 레퍼런스가 굉장히 많은 작업인데요. <도쿄전쟁전후비사> 라는 영화의 푸티지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 영화의 영어 제목이 <필름의 유언을 남긴 남자>이기도 했습니다. 김형수 시인의 유언이라는 시도 참고자료였고. 이런 참고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제목을 달았습니다. 또, 영어로 유언이 will인데, will 이라는 단어가 의지라는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촛불시위 때 그 의지를 표현할 수도 있을 거 같아 유언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관객 3: <디어 엘리펀트> 감독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존 포드 감독의 <말 없는 사나이> 푸티지를 사용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이창민: 원래는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첫번째 날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만든 영화인 <말 없는 사나이>의 주인공이 돌아오는 장면을 찍어두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이려 님이 보내주시는 메일 중 집에 대한 추억과 잘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아 사용하게 되었고요. 그 영화 속에 한글 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이려 님의 편지 나레이션으로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영문 버전에는 <말 없는 사나이>의 영어 자막이 나오고, 이려 님의 목소리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아남네시스>의 이민아 감독님, 아남네시스라는 단어가 작품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민아: 아남네시스는 그리스어로 기억을 환기시키다의 환기를 뜻하구요.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에 재현시킨다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취재 │ 김하영 루키
사진 │ 안진영 루키
8월 18일 오후 2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심혜정 특별전 단편 <아라비아인과 낙타>, <동백꽃이 피면>, <꽃과 거짓말>, 그리고 <카니발>의 네 작품이 상영되었다. 상영 이후에는 심혜정 감독이 참석해 제작 과정과 연출 의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진행은 김장연호 NeMaf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김장연호: 2010년도부터 인연이 닿아 작가님의 작업을 봐왔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원래 미술 쪽에서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선보이시다가 그 이후에 극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는 미술에서 영상 작업 위주로 작업을 하다가 퍼포먼스도 하고 퍼포먼스 영상도 필름으로 만들어서 작업했었어요.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 생겨나서 거기에 맞게 형식을 찾다보니 어떤 것은 다큐멘터리, 또 어떤 것은 극영화 형식이 되더라고요. 극영화를 시작할 때쯤은 배우분들과 친해지면서 미술감독으로 영화 일을 도와드렸어요. 그때 인연으로 다음 영화를 찍으면 도와주시겠다고 해서 극영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재미를 많이 느껴서 매년 극영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장연호: 개인적으로 작가님 작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아라비아인과 낙타>에요. 극영화이면서 개인의 사적인 공간과 부모님, 정씨 아줌마 등의 실제 인물들을 배우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혹은 네오리얼리즘의 양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제작 과정에서 부모님과 정씨 아줌마를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어머니는 의사 표현을 잘 못 하시고, 이제까지 이런저런 작업을 많이 해 와서 가족이나 친구들은 제가 무엇을 하는 것에 있어서 별 얘기를 안 했어요. 정씨 아줌마의 경우 마침 환갑을 맞으셔서 회갑연을 여셨는데, 제가 환갑잔치를 촬영해서 작품으로 만들어도 되냐고 여쭤보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마 회갑연 비디오를 찍는 줄 알고 그러신 것 같아요.(웃음) 막상 촬영을 시작해서는 화면에 나와서 본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너무 적극적이셔서 나중에는 하모니카 엔딩 장면의 촬영 아이디어까지 주셨습니다.
김장연호: <아라비아의 낙타>의 경우 이솝우화에 나온 이야기를 차용해 우리나라의 재중동포 입주 여성 노동자라는 주제를 다루셨는데요. 이 우화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해드리면, 어느 추운 날 아라비아인이 있는 천막에 낙타가 와서 발 하나씩 들여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얘기하다가 결국 낙타가 천막을 차지하고 아라비아인은 쫓겨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작가님은 아라비아인, 정씨 아줌마는 낙타로 각각 비유되고 있는데요, 영화 속에서도 낙타가 들어오는 것을 불안해하는 아라비아인의 심리가 거울이나 곰팡이, 화초 등의 메타포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체와 타자의 문제, 특히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심혜정: 일단 저희 부모님과 정씨 아줌마와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소재 특성상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고 제작비도 많이 없어서 길게 작업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부모님과 이주노동자분께서 등장하는 만큼 윤리적인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고민되기도 했고, 사전에 연습 삼아 몇 개의 영상을 찍어보았을 때, 가족들과 영상을 찍는 게 생각보다 힘들단 것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극영화를 찍듯이 5회 차로 구성해서 밥 먹는 장면, 옷 갈아입는 장면 등을 나눠서 찍었어요. 이 방법을 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워낙 오랜 세월을 알고 지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령 아줌마를 도발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에(웃음)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집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김장연호: 끝부분에 정씨 아줌마께서 키우시는 파라든가 고추, 방울토마토 등의 식물을 치우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아줌마께 말씀드리고 촬영하신 건지 궁금했고, 작품이 다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화초는 전부터 치우고 싶었어요. 영화를 찍고 치워야겠다고 결심했죠(웃음). 사전에 그건 말씀 안 드리고 청소하는 장면을 찍는다고만 말씀드렸는데, 아주머니의 반응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인물에 초점을 맞춘 화면을 더 넣었을 텐데 풀 쇼트(full shot)만 썼어요. 화분을 치운다니까 ‘에이, 다 버려버려!’ 그러신 거였는데, 영화를 다 찍고 걱정은 되었죠. 아무래도 편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아라비아인과 낙타의 권력 관계, 자리싸움, 자잘한 신경전이 담겨있는데 일반인 분들은 자신이 화면에 아름답게 잡히길 원할 수 있으니까요. 아줌마께 영화를 보여드렸는데 처음에는 별말씀이 없다가 ‘나는 내 비디오 찍어주는 줄 알았더니 이주노동자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하고 정확하게 아시더라고요. 그렇게 금방 이해하시고 흔쾌히 상영을 허락해 주셔서 영화제에도 출품하게 되었습니다.
김장연호: 향후 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지금은 <담배, 뱀, 설탕>(가제)이라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가부장 안에서 남자 세 명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막내 여동생인 제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인데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재연 형식을 섞어 만든 실험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서 출발한 작업인데요, 어렸을 때 성격이 완전히 다른 세 명의 오빠들이 사고도 치고 어려움을 겪던 것을 지켜본 것이 파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젠더 규범에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억압적인 기제가 있는데 오빠들도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에 대해 고민했던 것들을 새로운 작업에서 해보고 싶습니다.
취재 │ 이예진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8월 18일 오후 4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뉴미디어대안영화 단편 프로그램을 통해 임정수 감독의 <낮게 빠르게>, 무진형제 감독의 <궤적 - 목하, 세계진문>, 조승호 감독의 <잠재적 응시 5>, 프셰메크 벵크즌 감독의 <멸종>, 세미컨덕터 감독의 <입장이 없는 관점>, 레슬리 앤 카오 감독의 <쉽게 쓰인 자막 혹은 사랑 시>가 상영되었다. 이어진 GT에는 설경숙 모더레이터의 진행 하에 임정수 감독이 참석하여 <낮게 빠르게>에 대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었다.
뉴미디어대안영화 단편에는 굉장히 일상적인 풍경이나 사물들을 조형적이거나 언어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처음에 보셨던 작품, <낮게 빠르게>의 임정수 작가님을 모시고 대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사실 두 명의 퍼포머가 등장해 행하는 퍼포먼스나 오브제 설치 작품 같은 것들은 많이 있지만, 이러한 종류의 영상 작품은 흔히 보실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독특한 작업을 계속 해오시고 있는데 2017년 NeMaf에서 작가님의 이전 작품인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라는 작품도 상영한 적이 있었죠. 그 작품도 이번 작품과 같이 퍼포먼스가 등장하지만, 전작은 옥상과 건물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영상이었다면 <낮게 빠르게>는 영상으로 기획된 작업으로 보입니다. 전작에서 이번 작품으로 오기까지 둘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 주시겠어요?
임정수 : 먼저 질문 주신 것을 포함해서 작업 전반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낮게 빠르게>같은 경우, 두 명의 사람이 자신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계속 빗나감으로써 시간이 진전되고, 빗나가게 되면서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영상이에요. 이때 텍스트나 사운드, 화면분할을 이용한 방식으로 그 내용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과정상에서 저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상에 나오는 오브제로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있어야만 착용 가능한 조각인데 그것은 흔적들이라는 시리즈로 만들어 두었던 조각이었어요. 그 조각은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두 명의 피부가 맞닿는 아주 조그마한 부분들을 본떠서 만든 것인데 그 형태 안에 이미 두 사람의 신체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형태를 위해서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없어요. 그 오브제를 들고 있을 때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없고 그 오브제를 들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거죠.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오브제를 어떻게 시험하는지를 보여주면서 본인들이 속해 있는 무대, 즉 장면들을 본인 스스로 바꾸어 가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아까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2017년에는 또 다른 퍼포먼스 영상으로 상영을 했었는데요, 그때는 퍼포먼스를 하던 장면을 기록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퍼포먼스 또한 신체가 어떻게 사물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런 영상들을 계속 제작하다 보니 조금 극단적이고 비약적인 질문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신체가 사물이라면 관객이 없이 사물만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들 또한 퍼포먼스라고 지칭할 수 있지 않을까? 퍼포먼스라는 것은 관객을 꼭 전제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왔어요. 그래서 이번 영상은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어떤 안무 행위가 있었지만 제가 초대한 실제적인 외부 관객은 없어요. 관객이라고 한다면 저와 조명 감독님, 퍼포머 본인들만이 관객이자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개 작품의 차이라고 한다면 화면을 어떻게 다루는지, 조각을 스크린으로 다루는 것이 이번 작업의 제일 중요한 저의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각을 화면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전반적으로 지난번의 작품도 그렇고 소통을 탐구하시는 작품이잖아요. 거기에서 소통을 물질적인 질감으로 나타내기도 하셨고 실제로 언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전 작품의 경우에는 지시문을 활용해서 이 지시하는 대상과 맞지 않는 지점, 엇나가는 지점을 탐구하셨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언어를 사용하셨더라고요. 이것이 전작에서 사용된 언어와 관계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전작은 지시를 받는 대상과 지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반면에 여기서는 오브제와 관계가 없게 들리는 동떨어진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내용을 굳이 듣자면, 업무에 관한 지시를 받는 듯한 파편적인 대화처럼 들리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 말씀해주신 사물로서의 퍼포머, 오브제들과 언어적 소통은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임정수 : 사운드를 말씀드릴 때 제목을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 2017년에 한 작업과 연관을 짓자면 그때는 제가 도시에서 발견된 인공 식물들의 상태를 명령어로 표현해서 그것을 퍼포먼스의 지령으로 사용했어요. 사실 이번에 들어갔던 사운드 또한 관찰에서부터 시작한 텍스트인데요, 제가 직접 썼다기보다는 도시에 살면서 카페나 지하철 등 모두가 가는 곳에서 들은 말들을 모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말들인데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전후 맥락을 모르고 누가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쓰는 말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그게 그랬대, 그게 아니라니까 이러한 말들은 사실 모두가 쓰는데 주체는 없고 누구의 것도 아닐 수가 있는 거죠. 모두가 공유하기 때문에. 그런데 소통을 할 때는 그러한 익명의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저의 귀에 들어오는 주인이 없는 말들을 모았고, 그것들을 텍스트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목과 관련이 있다고 한 것은 제목을 설명하는 것부터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낮게 빠르게>는 낮고 빠르게 움직이는 공의 모양에서 따온 제목이에요. 사람이 사람하고 공을 주고받는 행위를 할 때 낮고 빠르게 공을 날리면 상대방이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것도 어쨌든 공을 준 거긴 준 거잖아요. 뭔가를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받으라고 주는 느낌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관계가 순환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낮고 빠르게 밖에 공을 줄 수 없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구체적인 주체나 목적이 없는 상황과 제가 들었던 말들에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번 작업의 사운드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공이 굴러가고 떨어지는 사운드가 계속 삽입이 되었습니다. 작가님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소리와 우리가 흔히 하는, 대명사로 이루어진 소통의 속성이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사용하신 오브제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계속해서 텍스타일의 질감을 확대한 이미지가 계속 나오고, 아까 말씀하신 몸의 한 부분을 떠서 만들었다는 조각은 우리가 옷과 같이 익숙한 것에서 접하는 질감에 비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되게 불편해 보여서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오브제로 그것을 사용하셨어요. 그렇다면 작품에 나오는 오브제를 어떻게 선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정수 : 네, 질문 주신 부분은 저의 표면에 대한 관심과 이번 작품에 사용된 조각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드리겠습니다. 표면에 대한 관심은 사실 이번 작업뿐 아니라 설치나 영상 퍼포먼스를 할 때에도 꾸준히 이어져 왔던 관심이에요. 표면이라는 것이 어떤 재료의 제1 질감이자 촉감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대할 때 표면적으로 제일 먼저 나타나는 상황으로서 그 안에 있는 속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저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들은 그 재료의 질감이나 패턴이나 표면이 조금 불필요하게 과장되어 있어서 사물이라고 하기에는 주체성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재미있는 것들입니다. 패턴이나 질감이 그 사물의 속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라 특히 천 같은 경우는 실제 구조는 없지만 겉모양에 따라 내용이 바뀌기 때문에 작업에 자주 사용하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만든 오브제 조각은 조각이지만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순간에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설치로 구분이 되지만 신체와 함께 했을 때는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계속 자신의 매체를 유동적으로 왔다 갔다할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조금 독립적인 조각으로서의 오브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신체가 함께 있어야만 하는 조각은 두 명의 신체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그 두 명을 어떻게든 함께 있게 해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관계라는 것은 이상적인 말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불필요한 오브제를 착용하기 위해서 같이 있는 관계도 포함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렇게 의무적으로 같이 있게끔 하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오브제는 두 명을 이어주지만, 딱 맞게 연결되지 못하게끔 하는 매개체로 등장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자르고 맞추려는 노력이 나오는 것도 낮고 빠르게 던져지는 공에서 말씀하신 엇나가는 소통으로 이해를 하면 될까요?
임정수 : 네, 그런데 결국 엇나가는 방식으로 그 관계가 계속 지속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작업을 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 : 영화 잘 보았습니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설명을 해주시니 이해가 가기도 하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안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주제가 소통 혹은 관계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오브제나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를 가지고 영화가 구성된 것은 이해가 되는데 계속 튕기는 탁구공 소리 등은 주제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임정수 : 말씀 주신 부분은 스크린 분할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화면이 분할되는 과정이 계속 나오는데 이를 과정상 방식으로 설명드리자면, 조금 전에 있었던 사건이나 조금 후에 있을 사건이 반복돼요. 그때 이미지적으로 그 장면이 누가 누구고 누가 먼저였고 누가 A이고 B인지의 경계를 흐리기 위한 방식으로 화면 분할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순서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에 나왔던 장면과 같이 나오거나 조금 있다 나와야 하는 것이 먼저 나오는 식으로 순서가 교차되면서 선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시간을 지그재그로 꼬아낼 수 있는 장치로서 사운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운드를 사용한 방식과 화면 분할을 통해 주체가 무엇인지 흐리고, 주체가 배경이 되는 것을 보여주려고 활용한 방식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퍼포먼스나 설치를 계속 하시다가 영상이라는 또 다른 매체가 덧대어 졌잖아요, 이러한 과정들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었나요?
임정수 : 제 영상 작업을 설명드리자면 조각과 설치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아까 표면에 대해 말했듯이 설치와 조각을 할 때에는 어떻게 표면만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진행한 편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사물의 표면을 더 얇게 남기기 위한 도구로서 영상을 가져오게 되었고 사실 저한테는 영상이라는 단어보다는 스크린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스크린으로 어떻게 표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게 스크린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조각을 장면적으로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설치와 퍼포먼스의 경우 그 현장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속성이 있는데 사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기록이나 기억을 통해 계속 생산되고 이어진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다면 사라지는 퍼포먼스와 설치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가 사실은 실제의 시간보다는 어떻게 간직할지를 더 고민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어떤 식으로 영상화할 것인가가 저에게 문제로 남더라고요. 때문에 저에게 있어 설치는 확장되는 것이기도 하고 공간이 어떻게 평면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서 영상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느낌이 줄어들고 굉장히 표면적인, 이전 영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물의 확대된 표면 이미지 등이 삽입되어 표면에 대한 느낌을 덧대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전 작품에는 지시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포함되었다면 이번 작품에는 사람들을 사물로서 쓰셨다고 하셨는데, 이들을 연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떤 과정을 정해두고 지시에 따라 즉흥적인 반응을 하는 것보다는 정적이고 사물로서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떤 것을 주문하셨고, 그 사람들을 사물과 함께 배치할 때 어떤 것을 원하셨나요?
임정수 : 17년도에 했던 작업은 말씀해주신 것처럼 텍스트 자체가 굉장히 구체적인 지령문이었어요. 그래서 이 지령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식의 행동과 텍스트가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편이었고 안무를 준비할 때도 그 문장을 몸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반면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조각이나 형태, 아니면 설치 자체가 신체보다 더 앞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 신체가 하는 일은 조각을 잇거나 조각의 위치를 바꾸거나 설치의 모양을 바꾸거나 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오브제들을 대리 수행해주는 역할로써 사용했어요. 때문에 처음에는 팔찌같이 생긴 오브제들을 어떻게 신체가 수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부터 꽃은 아니지만 꽃 같이 보이는 조각들을 착용하고, 그리고 이때의 꽃을 착용함으로써 조각이 먼저인지 신체가 먼저인지 그 경계를 흐리는 것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퍼포머들이 꽃을 계속 갈아입고 어떤 색깔 옷을 언제 어떻게 입고 어떤 조각과 관계할지를 장면별로 나누어 생각하고 이번에는 퍼포머들과 텍스트를 해석하기 보다 그 물질이나 표면을 어떤 식으로 대리해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하면서 안무를 준비했습니다.
언어로 이야기되는 텍스트의 의미가 전작에 비해 조금 줄고 동떨어진 사운드로서 사용이 된 것 같습니다. 혹시 안 보신 분들이 있을까 봐 전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는 식물이 할 수 있는 행위들, 예를 들어 늘어져 있자, 또 무엇이 있었죠?
임정수 : 자기들끼리 붙어 있자, 큰 것과 작은 것이 같이 있자 등인데 사실 식물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지 않다면 사람의 행위처럼 느껴지는 말들이고 식물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제가 사람의 동사로 바꾸어 말했던 문장들이었어요.
그것을 건물과 옥상이 있는 계단에서 퍼포머들이 지시문을 받고 동작을 취하는 그러한 퍼포먼스, 그리고 거기서도 종이와 여러 가지 사물들을 자르고 이런 것들이 움직이는 것을 기록한 작품이었고, 미술관에서도 지시문이 읽어지면서 퍼포머들이 그 지시문에 따라 행위를 하는 작품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퍼포먼스와 조각과 같은 과정, 그리고 그것을 영상으로 담아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을 해체하면서 연결점을 찾는 작업을 해오셨어요. 그러면 형식적으로 계속 변화를 보여주고 계신데 향후 계획을 질문해도 될까요?
임정수 : 지금 하고 있는 전시가 있는데 그 전시에는 제 몸에서 파생되는 조각을 가지고 제가 스스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관심사가 서로 다른 두 명 사이의 관계였다면 지금 관심이 있는 부분은 나와 나의 이야기를 통해 외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A와 B가 만나는 게 아니라 A가 A와 만나도 B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화면이 분할되는 방식을 통해 시간의 앞뒤를 교차하거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의 순서를 바꾸는 식으로 화면을 어떻게 분할할지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취재 │ 정현경 루키
사진 │ 나재훈 루키
8월 16일 오후 2시,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한국구애전 장편 <아파트 : 도시의 욕망 삶>이 상영되었다. 재건축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라지는 도시 속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삶의 의미에 관하여 고찰하는 작품, <아파트 : 도시의 욕망 삶>의 상영이 끝난 뒤에는 김시연 감독, 박서은 감독이 참석해 작품 소개와 함께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날 진행은 고동연 모더레이터가 맡았다.
각자 어떤 부분에서 서로 협업을 하셨는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서은 : 굳이 분야를 나누기 애매하다고 할 만큼 철저한 협업이었습니다. 처음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빈 공간을 보았을 때, ‘우리는 저 기록을 남겨야 돼’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글을 진행하며 쏟아진 에피소드들, 구룡마을 파트는 김시연 감독의 기억들이 작용을 했고, 그 뒤에 나온 아파트에 대한 사념은 저의 기억들이 작용을 해서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더해진 기록들입니다. 영상은 철저히 김시연 감독의 시선이 담기면서 공간을 담아내는 그 장소에서 저희가 함께 바라본 시선을 담아낸 내용입니다. 이름이 나란히 들어가는 작업에 가장 맞게 작업한 결과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출발하셨는지?
김시연 : 저는 어릴 때부터 쭉 아파트에서 살았는데요.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구룡마을에 살던 제 초등학교 짝꿍인 봉근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때문에 구룡마을을 처음으로 가 봤고, 그 당시, 특히 비닐하우스 촌에 산다는 것은 그렇게 풍족한 생활을 한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이 영화를 지배했던 것 같아요. 한참 뒤에 다시 가 봤을 때, 구룡마을은 여전했어요. 반면 그 길 건너편은 굉장히 발전했어요. 예전의 아파트라는 공간과 지금의 아파트라는 공간의 의미는 굉장히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접근과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섞어서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시 현재로 와서, 우리 모두는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다 그렇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박서은 :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느 날 도로를 가다 하늘을 가린 아파트를 발견했어요. 2년 사이 갑자기 들어선 아파트 때문에 시내로 가는 제 눈 앞에 아파트 세 채가 존재하는 것을 보고 ‘아, 내가 기억하는 시간이 저 공간에 의해 가로막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돌아봤더니 우리 집 앞에 있던 동네가 사라지고 깨끗하게 밀린 채로 있는 거예요. 그게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 즈음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공간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을 느끼면서 ‘아, 이 기록이 10년 뒤에는 또 다른 공간의 기록으로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에서 표현한 데이터라는 워딩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하필 데이터라는 단어를 쓰셨는지?
박서은 : 저희가 작년부터 했던 작품 중에 시티 리빙이란 작품이 있었어요. 그게 도시인들의 움직임, 이동량에 대한 데이터 작업이었고, 그 작업을 하며 느낀 사실이 도시는 모든 기록들을 다 품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동량, 건물, 건축 방식, 전력 사용량, 통신량 등 모든 것들이 데이터고, 그렇다면 도시는 데이터로 끊임없이 기록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따지고 보면, 건축이 가진 재료들도 데이터로 기억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시절에 남는 것이 단순히 수치화 될 수 있는 것들만이 아니라 기억, 장소, 시간이 가진 재료들, 이것들이 데이터이고 도시는 데이터를 품고 기억하고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이 작품의 전체적 맥락의 테마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와 대화를 하는 듯 한 내레이션이 인상 깊었는데 그런 개인적인 대사를 넣게 된 이유와, 엄마에게 어떤 질문을 했을 때 질문하는 내레이션은 삽입되었지만, 답변하는 엄마의 내레이션은 없는 독특한 내레이션 형식을 구성하게 된 목적이 무엇인지?
김시연 : 사실 이 작품이 부모님에게 하고싶은 이야기이기도 해요. 실제로 어느 날 부모님 집을 갔을 때 아빠가 집 이곳저곳을 닦고 계시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아파트값 상승이 원인이었어요.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서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갔다는 상실감이 우리 가족을 줄곧 지배했었거든요. 지금은 분가해 살고 있는데, 제가 작업할 때는 집에서 잘 안나와서 대인관계가 단절돼요. 그 무렵에 엄마가 전화가 와서 그랬어요. 누가 가뒀냐고. 이런 부모님과의 대화들을 공감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아파트란 공간이 누군가에겐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 자신이 부모님과 아파트에 관해 나눴던 이야기를 인용하였습니다.
박서은 : 일단 대화의 방식 자체가 일상적으로 표현됐잖아요. 굳이 답을 요구하지 않는 공간 안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묻고, 은근히 예상되는 답들을 그냥 그대로 품고 아, 하고 넘어가는 시간들. 그게 부모님과의 대화에선 일상적이잖아요. 김시연 감독과 아버지와의 대화는 어른들의 정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대목이 아닌가 싶었어요. 어른들 뿐만이 아니라 저도, 욕망이 발현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구요. 그 표현을 하기 제일 좋은 방법이 일상적인 대사일거라 생각했고, 제일 와닿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재건축 담론을 다루는 서사에서, 어떠한 흔적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클리셰처럼 반복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가 변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그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음’에 관한 의견은 무엇인지? 관객들이 그것에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하면 좋을지?
박서은 : 우선, 저희는 ‘사라지다’라는 말의 의미를 ‘쌓인다’로 해석하였습니다. ‘공간은 사라지지만 우리가 품고있는 기억은 그대로 쌓이기 때문에 새롭게 생성되는 도시가 좀 더 많은 고민을 거치고 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게 우리의 제일 큰 생각이었어요. 인간이 도시 발달이나 진화에서 무책임해지지 않고 내가 살 도시의 생성을 고민해나가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김시연 : 사실은 파트8에서 갑자기 존재의 이야기를 한 것이, 우리가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했을 때 눈에 보여지는 것만 존재로 여길 수 있잖아요. 근데, 마지막에 둔촌동의 풍경들을 생각해 보니까 멜랑꼴리해지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2015년 응암동에 이사를 왔을 때, 겨울이었고 재개발이 한창이었는데, 웬 떠돌이 요크셔테리어가 길을 잃고 역주행으로 차도를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본 장면이 뇌리에 깊게 남아 있거든요. 다시 둔촌동의 현수막을 떠올려 보면 재개발이 될 때 반려동물을 대하는 스탠스가 지역마다 다른 것이 자본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합니다.
음악이 강렬했고 감정적인 동요을 불러 일으키는 느낌을 받았다. 음악은 어떻게 선정하셨는지?
김시연 : 갑자기 생각난 것인데, 화면의 프레임레이트가 안맞아서 버드아이뷰 숏에서 블랙화면이 끼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음악의 경우에는 불완전한 음악을 주로 만드는 정재연 작곡가라는 분이 있어요. 그 분과 작업하였고, 음악 소리를 키운 이유는 불편함을 유도하고 싶었던 것이 맞습니다. 정확히 보셨네요. 그 곡은 ‘한숨’이라는 곡이고 2대의 피아노로 연주되었어요. 중간중간 사운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음악을 통해 감정선이 말보다 더욱 잘 표현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존재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음악도 사용했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도시의 유목민이 되는 것에 대한 긍정으로 결론이 난 것인가요?
김시연 :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슬픔도 기쁨도 아니고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서은 : 질문 받기에 앞서 들려 드리고 싶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집주인과 세입자가 등장하는 씬이 있는데요. 집을 자신의 형제들이 여러 채 사서 재건축되며 수억의 차액을 얻게 된 집주인 분이 부끄러움에 인터뷰를 꺼려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어요. 또 제가 다니면서 느낀 것들, 오늘도 그렇고. 사는(Living) 집과 사는(Buying) 집에 대한 시선이 모두 다르고, 살았던 사람들은 아쉬움이 있는 반면에 파는 사람들은 속시원하고 후련한 감정이 교차를 하는 거예요. 응암동에서도 보상을 잘 받고 떠난 동네는 대기의 기운이 어딘가 풍족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떠난 곳이 후련해 보이는 곳이 있는 반면에, 용산처럼 살던 사람들이 치열하게 다투다가 떠난 곳들은 방문해 보면 안타깝고…. 그 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어도 공간이 품은 기운이 얘기를 다 전해 주는 듯 하더라는 그런 얘기를 해 드리고 싶었어요.
관객 1 : 영화 속에 인용된 화학전에 대한 구절의 출처가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박서은 : 한 도시학자가 쓴 책에서 인용한 구절인데 정확한 저자의 이름은 제가 검색해본 뒤 알려드릴게요. 화학전에 관련된 문장임에도 제가 그 부분을 인용한 이유는 그 때는 공기 자체가 살인 무기로 작용한 것이어서 대기 자체가 공포를 불러 일으켰지만, 지금은 인간이 만들어낸 정서적 공기나 물리적 공기 그 모든 게 공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도로 인용한 문구였습니다.
관객 2 : 공중샷에서 화면이 뚝뚝 끊기는 현상이 보였습니다. 의도하신 것인지?
김시연 : 출력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체크 후 상영하겠습니다. 원래는 유려한 무빙의 영상입니다.
박서은 : 관객이 의도적인 연출로 해석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김시연 : 작품을 만드는 것은 저지만 공개 이후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촬영에 드론을 많이 사용한 이유는, 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호흡하는 자연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폐허나 방치해 둔 내추럴한 공간이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없었던 뷰에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관객 3 : 장기간 작업하셨다고 하셨는데, 처음 기획부터 결말을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작업 도중에 결론이 달라진 건지가 궁금합니다.
박서은 : 결론을 짓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건축으로 시작했다가 사람과 도시의 데이터로 서사가 옮겨가면서, 시간과 공간의 몫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또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사라진 공간들이 존재로 내 옆에 잇는 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X의 대사가 등장하는 거에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얘기하는 그 수많은 시간과, 개체와, 개인과, 그들의 기억들이 다 쌓이고 난 다음에도 우리가 이동하는 곳은 결국 집이라는 것이 긴 촬영 동안 얻어낸 결론이었습니다. 긴 작업이었지만 일종의 답을 찾아가는 여행 기록 같은 영상이었습니다.
김시연 : 저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는데 프랑스는 건물을 함부로 철거하지 않더라구요. 한국에 돌아와 보니, 건물을 부수는 광경을 많이 보았는데 그게 고통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많은데 왜 내가 발 뻗고 잘 공간은 없지 하는 의문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답변 감사하고, 모두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재 │ 안진영 루키
사진 │ 김하영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