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Inter-view
홈 > 대안영상예술 웹진 >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 [4호] [네마프토크]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역사와 현재
    NeMAF 조회수:3292 추천수:12
    2016-08-07

     

    8월 6일 오후 6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핀란드 미디어아트 역사와 현재>라는 제목으로 ‘AV-아르키’ 연구원 티티 란타넨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티티 란타넨은 핀란드 미디어아트를 발굴하고 배급하는 민간 기관 ‘핀란드 미디어아트 배급센터 AV-아르키’의 연구원이자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하는 강연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Pre-history" of the Finnish media art

     

     우선 역사적인 배경을 말씀 드리면, 비디오아트는 많은 부분이 실험적인 영화 덕분입니다. 비디오아트는 핀란드에 매우 서서히 들어오게 됐는데요, 이 이야기에 앞서 많은 아방가르드 영화제작자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매우 밀접한 제작자들이었고, 이들이 부르주아를 자극하길 원했던 거죠. 많은 다른 서양 국가들이 큰 위기를 겪는 시기였듯이, 핀란드에서는 1960년대의 영화산업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형 스튜디오와 박스 오피스의 시대는 1950년대로 끝이 납니다. 시네마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예술의 형태로 인정받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동시에 신세대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고 자신만의 시네마틱 언어를 현대화시킨, 더 새롭고 자유로운 방식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합니다. 특히 60년대에 핀란드 아방가르드와 언더그라운드는 젊은 세대의 영화 제작자들, 연주자들, 작곡가들 등을 서로 연결시킨 분야였습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서로 모두 알고 지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그런 공동체적인 협력은 없지만 서로 다른 예술 형태 간의 국경은 여전히 매우 유연합니다. 우리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창작품을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나갑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핀란드 건축가인 Alvar Aalto가 그의 시네 클럽 프로젝티오에서 아방가르드 영화를 수입했던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었던 거죠.

     


    1950: venus of modernism and critique des auteurs

     

     1950년대 이후 실험이 시작되었고, 프랑스 예술가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여기에 포함되는 마누 쿠르크바라(maunu kurkvaara), 리스토 자르바(risto jarva), 존 도너(jorn donner) 등의 감독들은 움직이는 영상을 쇼 비즈니스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지한 아트의 형태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에이노 르차를로(Eino ruutsalo)는 핀란드에서 첫 추상영화 제작자로 여겨집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파일럿으로 일했고, 영화에서 이런 무모함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뉴욕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의 영화는 그림과 시네마의 조합을 보여줍니다.

     


    Erkki kurenniemi(1941-)

     

     우리는 에르키 쿠렌니에미(Erkki kurenniemi) 영화를 이미 봐서 여기서 보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말씀을 드리면, 에이노 르차를로의 실험 영화는 시각 예술에 기원한다면 쿠렌니에미는 뉴미디어 핀란드 개척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쿠렌니에미는 헬싱키 대학의 핵 물리학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그는 음악학부에서 어시스턴트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거기서 음향기술과 전자음악 실험실을 시작했고 자신만의 전자음악 기기인 DIMI A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2006년까지 다이어리 영상을 제작했고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쿠렌니에미 단편영화의 3가지 주요 주제는 자연(동물과 식물),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에로티시즘입니다. 포르노그래피와 누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에 관련해서 그의 단편영화를 보면 에로티시즘을 전인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체들 간의 무한한 접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개체들은 서로 폐쇄된 것이 아니라 통합 또는 동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아이디어는 그의 영화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쿠렌니에미의 단편영화는 시각적인 조작으로 가득 차있지만, 에이노 르차를로와는 달리 그는 영화재료를 그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16mm Pathe cine camera를 사용해서 영화를 되감기 한다든지 이전의 작업물에 새로운 레이어를 기계적으로 추가합니다. 후에 쿠렌니에미는 디멘시오라고 불리는 그룹에 컴퓨터와 아트를 접목시켜 나갑니다.

     


    Pasi "sleeping" Myllymaki

     

     핀란드의 이런 지식 계급의 정치적 환경이 1960년대에 유쾌한 언더그라운드에서 좀 더 진지한 톤으로 변하게 됩니다. 실험보다는 사실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1970년 후반과 1980년 초반까지 이 분야를 좀 더 얼어붙게 만들었는데요, 이 때 파시 슬리핑 밀리아키(Pasi "sleeping" Myllymaki)는 이런 영화계에 펑크록 반항자가 되었습니다. 밀리마키와 그의 친구 리스토 라쿠넨은 8mm 영화를 찍었습니다. 밀리마키의 철학이라고 하면 ‘거대한 걸작보다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화가 더 낫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핀란드 실험영화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New media in finland:slow biginnings

     

     1980년 이전에 핀란드의 새로운 미디어아트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핀란드 미디어아트 역사의 특별한 부분이 있다면 천천히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백남준 씨가 미국에서 시작을 했고, 1960년대는 미국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미디어아트가 이루어진 때입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불행하게도 그런 활발한 활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핀란드 문화에서 은둔과 소외의 시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사회에서 바라본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에서는 비디오아트에 대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멀티아티스트인 말란다(J.O.Mallander)의 경우, 백남준 씨와 우호적인 관계가 있었습니다. 또 그를 플락스 운동에 소개하는 계기가 됩니다. 말란다 씨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아트 형식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했지만 핀란드의 아티스트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비디오를 제작하도록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intermedia라고 하는 아트 행사에서 1971년에 백남준 씨의 일부 작품이 소개 되었고 매우 초기에 있었던 핀란드 비디오 설치물도 상영되었습니다. 에르키 쿠렌니에미의 퍼포먼스도 있었고 DIMI O가 하는 즉흥적인 연주도 있었습니다. 즉, 미디어 기술과 퍼포먼스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의 동시대 예술인들의 경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디오아트라는 것이 미국의 반체제 문화와 운동의 핵심 부분이었다는 것을 놓친 것이죠. 핀란드의 영화학자인 하노 에리카닌 같은 경우 “핀란드에서 시장과 환경이라는 것은 시네마의 사실주의와 TV와 사진의 정보성, 기능성 그리고 다큐멘터리 등이 굉장히 지배적”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 비디오 같은 경우에는 자체적인 아트 형식으로 간주되지 못했고 TV 세트의 일부분이라고 간주되거나 홈 비디오의 일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까지는 핀란드에서는 비디오가 아트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비디오아트는 정보를 주는 대안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international pioneer:mervi kytosalmi (later: deylitz-kytosalmi; kytosalmi-buehi)

     

     이러한 1970년대의 미디어아트에 대한 저항 속에서 예외적인 상황이 있었는데요, 메르비 키토샬미(mervi kytosalmi)는 비디오아트의 경력을 가진 첫 핀란드 여성입니다. 아트를 공부하기 위해 독일 cologne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키토샬미는 비디오라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표현하는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페르투 라스따는 키토샬미가 기술에 대해 포커스를 둔 것이 너무 독일적인 접근이라며 비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80s: the birth of the finnish video art

     

     1980년대는 서로 다른 예술 간의 엄격한 경계로부터 출발의 기록을 보여주는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예술 심포지엄을 통해서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탄생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임이 입증됩니다. 그리고 turppi 그룹은 사이키 정신 혹은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이 심포지엄에 많은 기여를 합니다. 비디오는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굉장히 훌륭한 매체이면서 그 자체적으로도 훌륭한 미디어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청각 형태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예술 과정을 접목시키는 데에 완벽한 역할을 하고 있죠.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경우, 비디오는 이러한 프로세스 과정이나 공간, 아트의 실험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국제적인 비디오 아트 같은 경우에 핀란드에서 1980년 초기에 도입이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여행에서 가져온 테이프, 카세트를 들여옵니다. 특별히 독일의 비디오아트 경우, 영감을 주는 소스로 여겨집니다.

     


    late 1980s and early 1990s: the field gets organized

     

     핀란드 환경에 맞춰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미디어아트라는 단어를 쓸 때, 아티스트의 무빙 이미지라고 해서 아티스트의 움직이는 동영상이라는 영국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핀란드 미디어아티스트이자 학자인 카리 아날레의 경우 일반 대중의 프로덕션을 이야기할 때 ‘산업이후의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페르투 라스따스는 독립영화와 비디오를 다큐멘터리와 추상적인 미디어아트로 분리를 해서 얘기합니다. 이 두 분리법은 이미 80년대에 적용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아르키의 작품을 배급하는 방식을 보시면 또 다른 단편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프로덕션의 구조 같은 경우에는 다르지만요. 

     


    video workshops /  Sami van Ingen founede Helsinki Film Workshop

     

      핀란드 미디어아트가 처음에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었다면 비디오 워크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에서는 영국에서 사용하는 협동조합과 같은 모델이 없습니다. 비디오라는 것이 개인적인 미디어 매체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비디오 워크샵 같은 경우에는 공공 교육 형태로 조직됩니다. 그래서 1980년 초기의 아트 교육으로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티스트의 경우, 새로운 미디어 매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워야 했습니다. 1990년 이후가 되어서야 학교에서 뉴미디어 커리큘럼이 소개됩니다. 핀란드 미디어 아티스트인 사미 반 인겐(Sami van Ingen)은 영국에서 공부한 후 핀란드로 돌아왔을 때 비디오 워크샵을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헬싱키 필름 워크샵은 실험 영화 제작과 비디오 아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허브가 되었습니다.

     뉴미디어는 1988년 까지는 정치적, 문화적인 색채를 대표하진 못했습니다. 그 때는 아티스트 조직인 MUU 라는 것이 설립되었을 때인데요, 그 이후 1989년에 페르투 라스따스가 ‘AV-아르키’를 설립합니다. 그 이후부터 핀란드 비디오아트의 문화적 수출을 AV-아르키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핀란드 아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대부분 공동 투자 기금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국가 보조금이 있고 민간 기관이 아티스트나 학자를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핀란드는 작은 나라이고 부유한 갤러리들은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하는 강연 같은 특별한 문화적 홍보의 경우엔 국가적 재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 간의 작업이 중요합니다. AV-아르키가 설립된 직후에 활발한 배급이 이루어져서 핀란드 미디어아트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Characteristics of the Finnish Media Art

     

     핀란드 미디어아트의 특징은 비평을 통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이상적으로 꼽고 있는 자연, 평등, 교육과 같은 이상성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가치들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객: 핀란드 미디어아트를 국내외에 보급하는 AV-아르키 같은 민간 단체가 여러 곳이 있는지, AV-아르키가 유일한 기관인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예산이 굉장히 적어서요, AV-아르키 배급사와 아티스트들이 자체적으로 예산을 들여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아티스트인 리카 타넨틸라 같은 아티스트들은 자체적으로 배급을 하고 저희와 콜라보를 하는 형식입니다. 주류 영화산업 같은 경우에는 많은 배급사들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시각예술 같은 경우엔 아트 에이전시가 핀란드에 하나 혹은 두 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미디어아트 분야에선 AV-아르키가 주로 하고 있습니다.

     


    관객: 핀란드 미디어 아트를 접하고 강연 중에 흥미로운 작가 분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핀란드 미디어아트를 많이 접하기 어려웠는데 AV-아르키에 인터넷으로 작품을 볼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핀란드어와 영어로 지원되는 웹사이트에 아티스트와 작품들의 정보가 올라와 있습니다. 또는 저에게 연락을 해 주시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2016.08.06

     


    강연 | 티티 란타넨 연구원 
    기록 | 정솔지 루키

  • [4호] <글로컬 구애전 단편3> GT 현장
    NeMAF 조회수:3732 추천수:9
    2016-08-07

     

     8월 6일 저녁 7시 인디스페이스에서 경쟁작 [글로컬 구애전] 부문 단편 <글로컬 구애전 단편3>이 상영되었다. 이날 GT는 상영이 끝난 9시 30분부터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자리해주었다. 이번 GT의 모더레이터로는 임창재 감독이 참여해주었고 <해리의 집>을 연출한 이보영 감독님을 비롯해 <바람이 분다>의 홍유정 감독, <발자욱>의 김아름 감독, <공원 생활>의 문소현 감독, <Speech in the Void>의 채윤진 감독, 그리고 <그 자리>의 이창엽 배우까지 총 일곱 명이 참석했다. 이하는 이날 GT에 대한 기록이다.

     

       
    관객들에게 간단한 인사와 작품 소개바랍니다.

     

     이보영: 안녕하세요. 저는 <해리의 집>을 연출한 이보영입니다. <해리의 집>은 정신분석 용어를 활용해 작업 했습니다. 우선은 두 개인데 하나같은 집을 발견하고 그 이후에 용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실험하고자 시작한 영상입니다. 작품을 통해서는 인물들이 분열되고 모이는 모습들로 사람들이 느끼는 낯설고 불안함 감정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홍유정: <바람이 분다>를 연출한 홍유정입니다. 반갑습니다. <바람이 분다>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었습니다. 이후에 어떤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까 고민하다가 제가 학교라는 공간을 좋아하고 교직생활도 경험도 있고 해서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비슷한 여자 주인공을 설정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김아름: 안녕하세요. 저는 <발자욱>을 연출한 김아름입니다. 저는 제가 사는 곳곳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과 그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하고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부산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극단의 공연을 통해 보충했습니다. 

     

     문소현: 안녕하세요. 저는 <공원 생활>을 제작한 문소현입니다. 저는 항상 ‘도시 안에서 어떻게 자연환경 동물 그리고 인간이 관계를 맺고 있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런 관계가 집약되어 있는 공간이 공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년간 공원을 다니면서 이해 할 수 없는 풍경들을 수집했다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보았습니다.

     

     채윤진: 안녕하세요. 저는 <Speech in the Void>를 연출한 채윤진입니다. 작품은 예대를 갓 졸업한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 주인공의 연설문을 바탕으로 하는 영상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영상은 주인공의 핸드폰에 담긴 클립영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창엽: 안녕하세요 저는 <그 자리>의 배우 이창엽입니다. 감독님께서 사정이 있어 제가 대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소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감독님은 ‘이야기의 흐름이 아닌 공간의 이동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되고 주인공이 변화하는 이야기를 만들려했다’라고 전하셨습니다.

     

     

    관객: <그 자리> 이창엽 배우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작품에서 비눗방울을 가진 남자아이가 등장하는데 남자는 아이의 가방을 고쳐주고 나중에 아이가 남자에게 비눗방울을 주는데 그것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창엽 배우: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순서가 아니었는데, 시나리오와 달라진 것은 저도 편집이 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를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 장면이 없었나요? 

     

    이창엽: 아뇨, 원래는 장면이 더 있었는데 감독님이 편집하면서 대부분 덜어내신 것 같습니다.

     

     

    관객 : 저는 <발자욱>의 김아름 감독님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작품을 보니 실제 장소를 가본 영상이나 경험자의 증언 그리고 사진들을 통한 재구성으로 역사를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 그것들의 구성이나 배치에 방법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아름 : 저는 시간의 흐름에 포인트를 해서 배치했습니다. 지난 이야기들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위해 최대한 시간 순으로 작업했습니다.

     

     

    이보영 작가님에게 질문해보고 싶은데요. 작품명 <해리의 집>에서 ‘해리’가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나와서 작가 노트를 보고 ‘마음속 의식의 분열’을 의미한다고 알게됬다. 어떻게 보면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건데 의도하신건지 묻고 싶고 또  등장인물로 외국 남자 2명이 나오는데 특별한 캐스팅 이유가 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이보영: 작품을 만들기 전부터 ‘해리성 장애 dissociation’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산지역에서 레지던시를 할 때, 그 지역에 맞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있어서 지역조사를 하는데 특이한 집 들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해리의 집을 찾았고 해리 현상을 조사하면서 이번 기회에 해보자해서 제작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변 드리면, 당시 부산에서 제가 있던 곳이 꽃마을이라는 산골마을입니다. 그때 그 지역으로 해외 봉사자들이 와서 작가들의 작품을 도와주고 싶다 했어요. 그 전부터 국내에서 여러 봉사지원이 있었는데 작업을 계획하면서 다른 생각과 환경을 가진 그들이 주인공 해리와 함께하면 시너지를 일으킬 것 같아 같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여자도 같은 해외자원 봉사자입니다,

     


    관객 : <바람이 분다> 홍유정 감독님에게 질문 드립니다. 엔딩 장면에서 주인공이 창문에 기댄채 바람이 불면서 끝나는데 그 장면을 통해 트라우마의 치유를 의미하신 건지 아님 계속 상처가 지속됨을 의미하는지 감독님의 생각을 묻고 싶습니다. 

     영화 제목은 프랑스 시 <해변의 묘지> ‘바람이 분다, 사랑했다.’ 라는 문구에 영감 받아 지었습니다. 저는 작품을 통해 단순히 트라우마에 대해서보다는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시점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장면들도 보여준 것이고... 잘 살거라 생각합니다. 

     


    관객: 저는 공통질문으로 모든 감독님들에게 간단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등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있었는데요. 감독님들은 어떤 의도로 이번 뉴미디어페스티벌을 찾으셨는지 지원동기가 궁금합니다.

     

    홍유정: 저부터 답변 드리면, 독립영화 배급사중에 ‘인디스토리’라는 배급사가 있습니다. 그곳에 일괄적으로 배급을 맡겼는데 이번 페스티벌에 지원했고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의에 의한 출품은 아니었습니다. 그치만 당선되었단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이보영: 저는 작업을 하는데, 아까 채윤진 감독님이 말씀하셨지만 작업하는 작가들은 항상 공모기회가 생기면 도전합니다. 그래서 크게 의미를 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영상작업을 만들었고 ‘이 작품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김아름: 저는 작품이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연극도 삽입되고 복합적 요소가 많은 실험적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에 이번 페스티벌에 지원했습니다. 

     

    문소현: 저도 이보영 감독님처럼 작업이 완성되면 공모신청을 하기위해 기회를 찾는 습관도 있구요.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는 제 작품이 보통의 애니메이션 형식도 아니고 정확한 서사도 없는 영상이에요. 그래서 이번 페스티벌이 제 작품에 맞는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채윤진: 최초 작품 기획은 미술관에서 선보일 것으로 제작했는데 영상이다 보니 영화제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는 느낌이 궁금해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품도 장르 구분이 스스로도 잘 안되었었는데 네마프가 대안영화제이다 보니 지원하게 됐습니다. 

     

    이창엽: 저는 작품 미팅 때 감독님께서 ‘대사가 하나도 없어 영화다’라는 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베리어프리 barrier-free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이 있으셔서 다양성에 대한 의미에 치중하시고 이번 페스티벌에 지원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객: 저는 채윤진 감독님께 추가 질문 드립니다. 작은 미술관에서 전시하기위해 기획한 영상이라 하셨는데 그 곳에서 영상말고 다른 작품들도 있었는지 그리고 주제가 뭐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또 작품속 연설문이 감독님의 주관이신지 묻고 싶습니다.

     

     당시 전시의 큰 주제는 이상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작품 속 연설문은 사실 졸업 직후 퍼포먼스를 기회하면서 적었던 텍스트였어요. 그치만 퍼포먼스에는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 때에도 ‘예술가가 무엇인지’ 그런 생각들은 많이 했었습니다. 생각은 그때부터 가지고 작업으로는 안하고 있다가 몇 년 뒤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아 학교에서 전시를 하는 만큼 영상으로 만들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이라 에세이처럼 들립니다. 물로 작품이 작가의 주관에서 시작하지만 텍스트를 포함해서 최대한 픽션처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공원 생활>의 문소현 감독님에게 질문하고 싶은데요. 작품은 배경을 공원으로 한정하지만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파편적으로 연출 됐습니다. 물론 공원에서 다양한 일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중심이 되는 주제의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음으로는 테크닉에 대한 질문입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들고 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문소현: 첫 번째 질문부터 답변 드리면, 제가 작품을 만들면서 서사적인 이야기 구조를 짜놓은 것이 아니라 공원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들을 모으고 모으다 보니 작은 주제들끼리 뭉쳐지는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리드미컬한 편집이 될 수 있을지 시도했습니다. 최초에는 전시를 위한 작품이고 풍경에 대한 것이 여서 고민하다 연극에 ‘풍경극’이라는 개념을 빌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작품을 ‘풍경극’처럼 해제해보자 라는 생각에 12채널로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버전은 그것들을 싱글채널로 모은 것 입니다. 주제의식은 ‘우리가 도시에서 무엇을 통해 위로 받는가’였습니다. 다양한 행동들이 있죠. 공원에 강아지들과 산책을 다니고 캠핑도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들이 스스로를 옥죄는 행동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촬영 편집 소품제작 모두 혼자 작업을 했습니다. 

     


    추가 질문으로 고기가 구워지는 장면은 컬러인데 이유가 있습니까?

    문소현: 보통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 혹은 행동이 고기 구워먹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웃음) 우리가 힘들게 일하고 살면서 스스로 하는 위로라는 것이 고기 먹는다는 기쁨? 개그 콘서트에서 옛날에 유행한 ‘~하면 뭐해 고기 구워먹겠지’라는 말처럼 말이죠. 그런 현상들을 꼬집어보고 싶어서 컬러로 편집했습니다. 

     


    관객: <Speech in the Void>의 채윤진 감독님 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영상 중간에 산이 보이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부분에서 색감의 변화가 있는데 그때의 변화가 예술가적 의도의 실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채윤진: 그 영상들이 다 몇 년간 축적된 저의 휴대폰 속 영상들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그 부분이 예술가에 대해 잭슨 폴록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인데, 그 장면을 다른 장면보다도 색감의 외곡도 주었고 케이블카에서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을 원래는 편집에서 덜어냈다가 다시 넣었는데요. 그런 장면들의 연출 의도는 사람들이 예술가에 대해 예술에 대해 기대하는 나쁜 습관? 예를 들면 조형성, 극적 긴장감, 색, 이런 것들에 비판하고 싶어서 그렇게 연출 했습니다. 

     


    추가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작품 제목의 ‘보이드 Void'라는 단어의 의미가 ’공허하다‘입니다. 번역하면 ’공허한 연설‘인데 작품의 제목을 통해 의도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채윤진: 텍스트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필드에서 보이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적은 것입니다. 진지하게 보이기도하고 굉장히 회의적인 시각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끝으로 갈수록 극단적이기도 합니다. 텍스트를 통해 가장 주된 생각과 고민은 ‘예술가의 생각은 진하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무기력한가’라는 모순된 상황에 대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제목으로 완성된 것 같습니다. 

     


    관객: <발자욱> 김아름 감독님께 질문은 아니고 제가 중,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제 집이 영화 속 배경들과 가까워 재밌게 보았습니다. 작품 속 인터뷰도 있고 하지만 작품의 담지 못한 무거운 부분이나 인터뷰 때의 재밌는 애피소드가 있다면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김아름: 작품은 1~2달 반을 작업했습니다. 출생은 울산이지만 학업을 위해 부산에 왔습니다. 영화 속 장소들은 작품을 하면서 처음 방문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인터뷰 속 한 할머니가 일제감정기 때 군수공장에 총알을 만드시던 분이었고 그분의 사연을 들다보니 무서움 그리고 그런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제가 있다는 고마움이 교차했습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됐고 부산에 대해 좀 더 관심이 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람이 분다>에서 흑백 톤으로 주된 연출을 했는데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홍유정: 촬영하기 전 고민 한 부분이 과거와 현제 톤의 차이었습니다. 편집하면서 처음 생각한 연출로 과거는 좀 어두운 다크 초콜릿 톤으로 하고 현재는 희망적인 의미에서 연두색 톤으로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톤이 부족하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주인공 덕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무엇일지 생각하다 ‘흑백’이라 생각해서 흑백으로 연출했습니다. 

     

     

     

    2016.08.06

     

    진행 | 임창재 감독
    기록 | 최상규 루키
     사진 | 강보람 루키

  • [4호] <글로컬 파노라마1> GT 현장
    NeMAF 조회수:2627 추천수:11
    2016-08-07

     

     8월 6일 오후 3시 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글로컬 파노라마1>이 상영되었다. 올해 <글로컬 파노라마1>에서는 이정우 감독의 <화분에 심어진 여자>, 김소성 감독의 <찬물샤워>, 안드레아 지아코미니의 <말 이상의 것>, 전유진 감독의 <최소의 노력>, 클로에 얍 문 이 감독의 <H10001_XTOUCH.MOV>, 지에션 감독의 <원숭이>, 권수진 감독의 <다이코터미>가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 설경숙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김소성 감독과 권수진 감독이 참여하여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소성 감독님과 권수진 감독님 두 분에게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작업하시게 된 계기를 묻고 싶습니다.

     

     김소성 감독(이하 김) : 안녕하세요. 저는 <찬물샤워>를 만든 김소성이라고 합니다. 먼저 이 작품의 시작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부터예요. 뱃시 클럽이라고 친구들과 모여서 하는 활동이 있는데 그 활동 중에 2014년 여름, 일민미술관에서 촬영했던 장면이에요. 그 날은 일민 미술관에서 개별적으로 각자 행동을 해보자고 한 날이었어요. 저는 파킹찬스 1층의 무대 뒤에서 상영을 개인적으로 하기로 하고 그걸 기록한 영상이죠. 그 영상 앞에 어떤 내용을 붙여서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와 행동을 한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보여주는 내용을 붙였죠.

     

     권수진 감독(이하 권) : 안녕하세요. <다이코터미>를 작업한 권수진입니다. 저는 주로 실험영화 작업을 하고 비디오 아트나 매체학을 연구하고 있어요. 이번에 <다이코터미>는 16mm 작업으로, 볼랙스로 촬영한 뒤 손으로 수제 현상을 하고 디지털로 변환해서 효과를 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전 주로 건축물, 공간, 시간성 등에 많은 관심이 있어요. 주로 유기적인 것들을 비유기성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요. 같이 상영된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저는 스토리의 전개라든가 서사에 집중하지 않고 순수하게 실험적 매체 또는 시간성에 대한 공간을 실험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주로 사운드 작업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김소성 감독님한테 질문을 하겠습니다. 미술관에서의 퍼포먼스를 설명하기 위해 붙이신 그 앞부분이 주부로서 육아를 하고 있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고, 남편 분은 주로 주무시고 계시는 못브이 많이 나옵니다. 가정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이 작품이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드신 작업이라고 들었어요. 이 3가지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 거창한 건 아닌데 앞서 말했던 뱃시 클럽이 세월호 사건 이후 한 달 즈음에 어떤 움직임을 위한 일시적인 모임이었어요. 하는 행위들도 기존의 체제에 약간 반한다고 할 수 있는 행위들을 했었죠. 또 제 개인적인 사건으로는 그 때 애기가 돌 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출산과 양육을 겪으면서 외부활동을 못하고 거의 집에서만 생활하는 시기였어요. 정말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면 배 안의 학생들이 저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너무 답답함을 느꼈고 그 답답함이 뱃시 클럽 활동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작업입니다.

     


    이번엔 권수진 작가님에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권수진 작가님의 전 작품도 그렇고 계속 공간을 초현실화 시키는, 유기성을 비유기성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계신데 대상을 건물이나 공간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권: 순수하게 개인적인 흥미인 것 같아요.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건축물과 철근들, 굉장히 잘지어진 뉴욕의 건물들이 있는 공간에 가면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질 때도 있고, 역사가 보이면 친근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초현실적인 공간에 있는 것 같기도 하죠. 그래서 그 공간을 걷다보면 ‘내가 진짜 여기 와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런 공간을 만약 카메라로 담아서 내 나름의 추상적인 해석을 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할 때 볼랙스 16mm 매체를 접하게 됐고 손으로 수제 작업을 하면서 효과를 주고.. 그런 과정에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건물들을 내가 해체시킨다는 개인적 쾌감이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시간성이나 공간성 이런 것을 가지고 실험을 할 예정인데, 그런 작품을 할 때 개인적인 무언가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요.

     


    <다이코터미>에서 사용하신 사운드나 분할화면에서 쓰신 영화 장면들은 어떤 소스이며 어떤 의도로 사용하셨나요?

     

     권: 영화의 전체적인 사운드는 필름 노이즈를 상요했어요. 필름 노이즈란 필름을 영사기로 돌릴 때 사운드 표면에서 나오는 스크러치같은, 필름 자체가 묻으면서 들리는 사운드예요. 그리고 앞뒤로 테일에 나오는 화면들은 파운드푸티지를 활용했어요. 헐리웃 느낌이어서 이것 또한 제가 해체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푸티지작업을 하게 됐죠. 영화 장면 속 사운드들도 복합적으로 사용을 해서 영상과 사운드 사이에 이질감이 느껴지도록 해서 은연중에 듣게 되고, 보게 되는 효과를 내도록 했습니다. 이분법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는데 사실 이분법적이라기보다는 계속 반복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화면을 보다보니 양쪽으로 보이진 않고 가운데 까만 라인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게 사운드의 효과로 묶이게 되는 효과를 내도록 했습니다.

     


    두 분 다 서로 다른 매체나 사용하시는 매체의 특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을 하고 계세요. 김소성 감독님은 영사라는 행위, 영상 작업이 가지는 영사와 전시라는 행위를 드러내면서 활용하셨고, 권수진 감독님은 필름이 갖고 있는 물질적 특성을 활용한 작업을 계속 해오고 계신데, 각자가 사용하시는 매체의 특성이 자신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왜 그것을 쓰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 사실 이 작업에서 보여 지는 전시, 상영들은 제가 평소에 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원래 단편 영화형식으로 작업을 제일 많이 했고,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그 때 시기적으로 특별한 경우여서 원래와는 다른 작업을 했던 거죠.

     

     권: 저는 상업 영화를 하다가 비디오 매체로 넘어가는 과도기 있죠? 파나소닉 카메라 24P라는 HD카메라 처음 나왔을 때. 그 때 그 카메라보고 많이들 디지털미디어로 옮겨가실 때였는데 전 워낙 35mm 필름 시대이고 그 때가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를 할 때여서 매체에 대한 향수가 짙은 것 같아요. 손으로 만지고 로딩하고 필름 냄새, 약품 냄새 이런 것이 많이 남아있어서 버릴 수 없는..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매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작품 활동하기에 굉장히 유용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섞어서 하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험 영화나 미디어 같은 매체를 활용해서 꾸준히 작업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관객: 김소성 감독님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마지막에 미술관에서 게릴라성 퍼포먼스를 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가 아닌 다른 퍼포먼스도 하시는지 궁금하고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김: 우선 퍼포먼스 계획은 없어요. 저도 영화 전공을 한 다음에 계속 단편 영화를 찍어 왔는데 지금도 계속 시나리오 쓰면서 고민하는 과정이어서 앞으로도 영화 작업 중심으로 할 것 같습니다. 작품 속 퍼포먼스를 했던 때는 개인적인 상황도 그렇고 사회적인 상황도 그렇고 너무 답답해서 퍼포먼스를 한 것 같아요. 

     


    저 작품도 일종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퍼포먼스를 여러 미술관 돌면서 하셨다고 했는데 일민 미술관의 토탈리콜 전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1층에서 한 파킹찬스의 영화가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일민 미술관에서의 제 행위는 사회 체제에 반대하고 이런 것보다 그냥 그 작품이 너무 좋았고 그 뒷 쪽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저기서 찍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관객: 권 감독님 작품은 되게 신선하면서도 영상 편집이나 사운드 모두 파격적이었는데 무엇을 제가 느꼈어야 했는지 막연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권: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컨셉은 굉장히 눌려있는 것을 의도했어요. 그래서 시간성, 공간성을 다 삭제하고 회화적 표현에 집중 했습니다. 움직이는 그림에서 나오는 소리를 구현한다면, 필름에서 묻어나오는 텍스쳐 같은 것들을 소리로 들을 수 있다면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걸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필름 매체라는 걸 큰 화면에서 영사한다는 게  16mm로 보는 것보다 플랫해 보이는 효과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 혹은 공간에 대한 인지를 의도적으로 없애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공부 또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욕의 건축물들, 헐리웃의 전형적인 테일의 모습들과 사운드들을 해체하고자 했다고 하셨는데 일종의 작업의 즐거움이 많이 포함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받아들이면 노스텔지아가 그 대상에 연루되어 느껴질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보셨나요?

     

     권: 그럴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요. 공간, 도시, 역사에 대한 노스텔지아 모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워낙 매체가 실험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많이 담긴 것 같아서 보는 사람마다 느끼시는 게 다르실 수 있어요. 공간에 대해 공감하는 분도 계실 거고, 매체에 대해 향수를 느끼시는 분도 계실 거고, 도저히 무슨 의미를 담은 건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실험영화의 대표적 장르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건 이겁니다 라고 표현하기는 어렵긴 해요. 노스텔지아적인 부분이 많이 포함된 건 맞습니다.

     

     


    진행 | 설경숙 프로그래머
    기록 | 정솔지 루키

  • [4호] <J.P. 쿠엔카의 죽음> GT 현장
    NeMAF 조회수:2749 추천수:7
    2016-08-07

     8월 6일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경쟁작 [글로컬 구애전] 부문 장편 <J.P 쿠엔카의 죽음>이 상영되었다. <J.P 쿠엔카의 죽음>은 주인공 쿠엔카가 거짓된 자신의 죽음과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담은 자전적 영화이다. 브라질 출신의 감독인 주앙 파블로 쿠엔카는 본래 소설 작가로서 영화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엔카는 감독에서부터 배우까지 팔색조의 매력을 선보이며 멀리 브라질에서부터 이번 네마프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소설작가이며 최근에는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주앙 파블로 쿠엔카의 GT현장을 전달한다.  

     

     

    우선 오늘 와주신 관객들께 인사와 영화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상영관을 찾아주신 관객여러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초청해주신 영화제에도 감사의 말씀전합니다. 보신 것처럼 이 영화는 실제 사건에 바탕하고 있습니다.(웃음)

     

     

    많은 관객들이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실제인지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여쭤보고 싶네요.  

     

    우선, 작품에 나오는 사망서류와 같은 서류들은 모두 실제상황입니다. 영화 속 캐릭터들도 실제로 이웃들을 섭외해서 촬영 했고 영상 속 아파트에도 제가 실재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씬(scene)들이 시나리오 없이 즉흥에 가깝게 촬영됐습니다. 작품 속 흑인 여자는 사건을 목격한 목격자이며 실제 배우처럼 연기하기도 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입니다.   질문에 대해서 좀 더 답변 드리면, 저는 실제와 허구를 나누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원래 소설가이고 이번 영화 시나리오는 실재와 허구의 공존을 보여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의 사망서류를 실제로 마주했을 때 정말 너무 리얼하면서도 거짓된 상황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이번 영화를 통해 제가 느낀 그 당혹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보통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 없이 작업했습니다.

     

     

    시나리오 없이 작업한 것 치고는 영화의 구성이 굉장히 잘 짜여있는 것 같아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작업하실 때는 어떠셨나요?

     

    사실, 극중 인물들은 촬영당시에서 처음 본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장의사, 의사, 부동산 여자 와 같은 출연자들이 나오죠. 그 출연자들은 조감독들이 미리 캐스팅한 상태에서 촬영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 분들이 정말 저와 처음 만나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대사도 즉흥적 이었던 거죠. 그리고 아파트의 장면 같은 경우에는 재개발이 되기 전 불법거주 촌 같은 배경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연출을 했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영화는 작가님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인 것 과 동시에 도시 재개발 장면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려 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의도로 그런 장면들을 찍으셨나요? 


     
     우선, 저의 (가짜)죽음이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면 영화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도시 정체성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영화 속 배경인 리우가 월드컵과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재개발을 겪었는데 저는 바로 그러한 변화에 의문이 들기 때문에 리우라는 배경과 저의 죽음으로 영화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드는 의문은 ‘재개발로 인해 건물이나 도시가 생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이 사람의 정체성과 어떠한 연관을 맺는가’ 입니다. 리우 올림픽이 30분전에 개막했는데, 올림픽 개막식과 같은 시간에 우리가 이 영화를 본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TV를 통해 본 그곳의 모습은 상징적으로 꾸며진 모습들이기 때문이죠. 영화 속 건물에서 (실제로)죽은 남자는 노숙인으로 재개발로 쫓겨난 사람입니다. 그의 모습은 리우의 중요한 도시문제중 하나인 주거문제를 상징합니다. 리우에서 일어나는 재개발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따른 것 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경기장 건립 따위로 박탈당한 거죠. 저는 이러한 현상들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 질문으로는 영화의 제작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영화에서부터 지금 죽어있는 상태인데 서류상,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여권을 만들었고 한국까지 오는 것에 문제는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먼저 조사를 하면서 사전 제작기간에 2년 그리고 로케이션한 아파트에서 몇 달을 지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실제 촬영에는 24일이 걸렸죠. 촬영은 거의 게릴라 스타일로 작업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전 협조 요청 없이 진행된 부분이 있었고 그럴 때 마다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꾸민 저의 사망신고서에 대해서는 경찰과의 얘기를 통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여자가 저의 출생 신고서를 조작했는지 밝히는 것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이 첫 영화이신데 감독에서 배우까지 역할을 하셨습니다. 작업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 들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첫 영화인데 연기에서 감독까지 정말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에디터와의 편집과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나온 쇼트(shot)를 많이 지우고 싶었는데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들로 에디터와의 의견충돌이 있었고 후반 편집 작업에만 10개월, 거의 1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6.08.06

     

    진행 및 통역 | 설경숙 프로그래머
    기록 | 최상규 루키
     사진 | 강보람 루키

  • [3호] <대안장르 중단편> GT 현장
    NeMAF 조회수:3152 추천수:14
    2016-08-06

     

     8월 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인디스페이스에서 <대안장르 중단편>이 상영되었다. <대안장르 중단편>은 다양한 영화적 형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천천히-오브제로 읽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번 <대안장르 중단편>에서는 벤 리버스 <대안장르 장편: 하늘은 흔들리고>, 리우 지아인 <607>, 라야 <발췌된 풍경>, 콜렉티브 워크 <도큐멘트70: 속물에 대한 6가지 테제>가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김장연호 집행위원장의 진행으로 <도큐멘트70: 속물에 대한 6가지 테제>를 작업한 콜렉티브 워크의 구성원인 김숙현 감독과 관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도큐멘트70: 속물에 대한 6가지 태제>를 만든 콜렉티브 워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콜렉티브 워크는 기획자 한분과 비디오 아티스트 혹은 실험영화 감독 등 작업자 6명이 모여서 만든 그룹입니다. 저희가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다들 부산에 촬영을 갔는데 네마프 GT 일정이 급하게 결정되어서 오늘은 아쉽게도 저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7분이 모이게 되신 이유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스페이스 세리라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워크숍을 했었던 분들과 오랫동안 그 공간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이 함께 작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7명이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한창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였고 또 대안적인 방식이나 색다른 형식을 제시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그 후 어떤 작업을 할지 의논하다가 요즘 시대 분위기가 씁쓸하니까 70년대가 많이 생각난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걸 계기로 70년대에 대한 작업을 해보기로 했고, 구성원 중에는 70년대를 겪지 않은 분들도 계셔서 70년대에 대한 자료 조사도 하고 스터디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특선만화를 작업하시기 위해서 작품에 사용할 만화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셨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수집하셨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70년대를 겪지 않아서 어떤 만화를 쓸까 고민하다가 70년대의 만화 중 제가 겪은 건 똘이 장군이었어요. 제가 어린이 YMCA를 다닐 때 똘이 장군 비디오가 오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떠들면 보여줬었어요. 그래서 70년대 텍스트 중에 가장 저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것이 똘이 장군이었고 그걸 기점으로 해서 70년대 만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다 찾아봤어요. 다 보고난 후 그 안에서 어떤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봤던 70년대 만화로 캔디가 있었죠. 그래서 똘이 장군이랑 캔디를 연인 관계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들을 풍자하면서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작업이 70년대의 영상과 사운드, 그리고 자막으로 나오는 텍스트 총 3개의 층으로 제시가 되었는데요, 이렇게 3가지 층위를 구성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업을 재편집하고 그 안에서 스토리를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을 일명 파운드푸티지 작업이라고 하죠. 저도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기존 애니메이션의 사운드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다 잘라서 붙였어요. 물론 거기에 조금씩 더한 사운드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원래의 음악을 살려서 재배열했습니다. 그리고 영상 편집과정을 거쳐 스토리를 재구성했고 자막으로는 70년대에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수많은 문구들을 적절하게 넣음으로써 그 이데올로기들을 풍자하고자 했어요. 사실 우리가 어린이 만화를 통해서 어렸을 때부터 사소한 이데올로기들을 학습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을 풍자한 거죠. 재밌는 건 70년대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특성상 어린이들이 주인공인데 어린이가 일반민중 같은 느낌이고 보통 아버지나 혹은 아버지 같은 존재인 박사님이 그 아이를 키우면서 큰 인물로 키워내는 스토리이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풍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캔디도 대표적인 소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이고 또 다른 여성상으로는 원더우먼이 있었고.. 그런 캐릭터들을 갖고 노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요즘 HD나 온라인 등의 영향이 커지면서 파운드푸티지 혹은 피처링 시네마, 제 개인적으로는 재활용 비디오라는 명칭을 쓰는데 이런 작업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어요. 김숙현 감독님도 이전부터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해오셨나요?


    아뇨. 본격적으로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한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네마프에서 상영 중인 또 다른 작업이 있는데 그것도 푸티지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선데이 서울>, <영자의 전성시대>, <특선만화>, <만주활극>, <바보들의 행진> 이렇게 6가지 테마로 작업을 하셨는데 작업을 시작하실 때 장르나 내용 혹은 순서 구성에 있어서 공동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서로 생각한 장르가 겹치진 않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70년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다들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70년대를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영화나 만화, 잡지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는 거니까 70년대 텍스트 중 각자 관심 있는 것을 가져왔는데 재밌게도 가져온 것들, 표현하는 양식들 다 제각각이었어요. 그래서 특별히 처음부터 의도를 하고, 분야를 나눈 건 아니었죠. 그렇게 각자 작업을 한 후에, 하나의 컴필레이션이 되기는 했지만 좀 더 유기적으로 만들면 어떨까 해서 편집도 여러 번 해봤는데 사실 쉽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순서 같은 경우는 기획자이신 전성권 선생님께서 순서 편집을 하셨습니다.

     저희 프로젝트를 조금 더 이야기 드리면, 콜렉티브 워크가 도큐멘트70을 가지고 창동 스튜디오에 팀으로 들어갔어요. 각자의 영상을 가지고 설치작업이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한 번 풀어낼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무용가이신 임해방 선생님에 대한 작업도 프로젝트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개인으로도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무엇인가요?


     개인 작업으로는 네마프에서 <너는, 어디에도 없을 거야>를 상영하고 있어요. 그건 작년에 만든 작업이에요. 올해는 조혜정 감독님과 둘이서 퍼포먼스 섞인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이 작업은 9월 초에 행사가 계획되어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다원 예술제에 참여하게 되어서 이번 달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객: 임해방 선생님 작업도 영상작입니까?

     네. 임해방 선생님 작업도 푸티지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지금 한창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보통 공연 연상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멀찌감치 찍었었잖아요? 녹화용이었기 때문에 심심할 수밖에 없는 영상들이어서 그걸 가지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아카이빙 된 작업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 나레이티브도 들어갑니까?


     나레이티브는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고요, 춤 동작이나 혹은 임해방 선생님의 생애사적인 부분을 다룰 수도 있어서 선생님이 거쳐 갔던 공간들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산에 있는 선생님의 연구소 등에서 촬영 중입니다.

     

     


    진행 | 김장연호 예술총감독
    기록 | 정솔지 루키
    사진 | 강보람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