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인도네시아 비디오아트 특별전 단편'을 상영했다. 이번 단편전에서는 아리아 수카푸라 푸트라 <E-루키야>, 샤이풀 안와르 <아데간 우사이 후잔>, 마할디카 유다 <선라이즈 자이브>, 레자 아피시나 <무엇>, 나스타샤 애비게일 <비디오 모델>, 앙군 프리암보도 <충돌>, 할라만 파푸아 <투아 다리 티무르>, 하피즈 <알람: 슈하다>, 프릴라 타니아 <메마넨 마타하리>, 바가스워로 아리아닝티아스 <빌랄>, 모하마드 파우지 <레인 애프터>의 총 11편을 상영되었다. 이하는 단편전 상영 이후, 설경숙 프로그래머의 사회와 통역으로 진행된 GT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감독의 말
마할디카 유다(이하 유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OK.비디오아트 디렉터인 마할디카 유다입니다. 제가 기획하고 있는 OK.비디오아트 페스티벌이 올해 OK.미디어아트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면서 매체기술에 대한 관념을 업데이트 시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세계적으로 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를 했습니다. 앞서 보신 단편 작품들은 OK.비디오를 통해서 선보였던 과거 10년동안 의 작품들을 모아서 소개를 해드린건데요, 비디오의 육체, 비디오의 기술들을 보여준 작품들입니다. 세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이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X세대(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 Y세대(본격적으로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카메라를 이용하고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른 세대와 다릅니다. 저는 X세대인데, 어렸을 때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지고 놀았지만 그 후에 태어난 Y세대는 온라인게임을 하면서 기술을 스마트하게 이용할 줄 아는 세대입니다. 사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달라지는데 그 다음세대는 아마 태블릿PC를 가지고 노는 Z세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Z세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믹싱을 할 수도 있고, DJ가 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의 미디어테크놀로지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ㅇㅇㅇ에서 스마트폰 영상이 사용된 것도 매체기술이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튜브에 업로드를 하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이미 블루투스로 공유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작년에 인도네시아에서도 굉장히 놀랐던 것이 우리는 사회가 창의적인 미디어기술을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통령 선거때 비디오와 음악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이용하는지를 보고 놀랐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비디오아트 페스티벌을 미디어아트 페스티벌로 업데이트 했습니다. 계속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OK.비디오는 이런 사회가 미디어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사용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공유하고 계속 토론할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써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설경숙(이하 설) : 마할디카 유다는 OK.비디오 디렉터이기도 하지만 <선라이즈 자이브>라는 단편을 출품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선라이즈 자이브>는 단편 모음에서 세 번째에 나온 단편으로, 공장의 노동자들이 국민체조를 하는 광경이 나오는 비디오입니다. 작품에 대한 질문이나, 인도네시아 비디오아트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관객1 : 인도네시아 비디오아트만의 특징이나 장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유다 : 인도네시아만의 특징이라.. 어려운 질문인데요. 방금 보신 작품 중 <E-루키야>를 예로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루키야’라는 것이 이슬람 문화에서 기도를 하기 전에 귀신을 씻어내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하고 있어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문화에 전통과 종교와 테크놀로지가 융합되어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서구의 논리로 설명하려면 설명되지 않죠. 예를 들어 밥솥은 밥을 하는 것인데 학생들은 거기에 면을 삶아 먹습니다. 서구의 논리로 보면 밥통은 밥을 하기 위한 것인데 거기에 왜 면을 삶아 먹느냐 할 수 있겠지요. 밥통의 가열하는 기능을 이용해 본인의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테크놀로지도 서구를 시작으로 발전하였지만 아시아의 전통에 맞게 융합되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 : 네마프에서 아시아 비디오 아트 작품을 소개하면서 함께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객2 : 루앙루파 OK.비디오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대안적인 미디어아트 활동을 하는 다른 단체들이 있는지, 또 있으면 협업을 하거나 네트워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다 : 루앙루파가 2000년도에 생겨났는데 그후로 젊은 예술가, 학생들과의 협력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여섯 분야의 다른 교육적 배경(건축가, 치과의사 등)을 가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단순히 하나의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참여자가 같이 참여해서 만드는 그런 인터랙티브 아트라던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매체를 이용하고 있고요. 이렇게 루앙루파 이후로 집단적으로 예술을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포럼랜텐이라는 미디어에 좀더 초점을 두고 있는 그룹, 수마트라에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 그룹이 생겨났고, 발리, 보루네오 등에도 이런 집단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동부 파푸아(자카르타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6시간이상 걸려서 서울에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거리에 있는 지역)에 있는 예술가와도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설 : 비디오 아트 이외에 어떤 활동을 더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다 : 루앙루파는 2000년대 초에 만들어졌고, 비디오아트를 주축으로 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 영화는 있었지만 좀더 실험적인 매체로 비디오를 이용했습니다. 2003년에 루앙루파가 생겨났을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예술하는 사람 가운데에서도 비디오아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루앙루파가 워크샵이나 세미나, 심포지움 등을 열면서 비디오아트를 전파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애니메이터 등 다른 예술을 하는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비디오와 융합한 작업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은 놀랍게도 인도네시아에서 비디오아트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005년에 자카르타 OK.비디오아트페스티벌이었는데 OK.비디오페스티벌로 바꿨습니다. 아트라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 인도네시아 15개 지역에서 비디오 워크샵을 열면서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들과 콜라보해서 작업을 했었고요. 2011년에는 주제를 ‘flesh on video’로 잡았고 (‘비디오의 육체’ 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얘기는 내일 네마프포럼에서 할 예정입니다.) 2013년에는 중국 시장에서 아이폰을 대체할 다른 산업을 만들어낸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냄비뚜껑을 안테나로 사용하는 것을 실험해보기도 했었습니다. 그후에 수하르토 독재정권 이후에 98년 혁명이후에 정부가 미디어를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넓게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비디오가 정부와 사용자간의 거리를 메우면서 대안적인 매체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설 : 비디오페스티벌 디렉터이기 이전에 비디오아트 작가이신데, 비디오아트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세요.
유다 : <선라이즈 자이브>라는 작품은 처음으로 혼자 만든 비디오입니다. 2003년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했었습니다. 일본기업 자동차 공장에서 2년동안 일했었습니다. 실제로 일한 공장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만든 비디오인데 이 비디오는 제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냐하면 뉴오더 정권하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금요일마다 항상 체조를 해야했습니다. 98년 혁명전까지는 계속해서 체조를 해야했었는데 그런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비디오입니다. 다이하츠에서 일하면서 어릴 때 하던 그 체조를 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다이하츠 공장에서 하는 체조를 그대로 인도네시아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하게 했습니다.
작년 시립 미술관에서 했던 <귀신, 간첩, 할머니> 전시에도 참여를 했었는데요, 그 전시 예술감독이셨던 박찬경 작가였는데 제 작업을 보시고 ‘’모더니티의 파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원칙을 강조하는 특성이 있는데, 비디오에 보면 나오는 사람들이 그 규칙은 규칙이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 이런 것이 모더니즘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진행 | 설경숙 프로그래머
사진 | 김재아 루키
8월 13일 화요일 오후 3시 인디스페이스에서 <글로컬 파노라마 단편 1> 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 정민아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랑랑-상상박물관>의 정혜정 감독, <집에 사는 이미지들>의 유성훈 감독이 참석하여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이하는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두 분 감독님들은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셨고, 감독과 출연도 하셨습니다, 상당히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인데, 각각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민아 감독(이하 정) : 저는 한강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매일 한강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비어있는 공간, 배경처럼 느껴지는 공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왜 아무도 그 공간을 공유하고 경험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생겨서 동료작가와 함께 한강에서 타고 놀 수 있는 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통해 한강을 탐험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랑랑-상상박물관>은 작업 내용의 일부를 기록한 영상입니다.
탐험하는 작업이라고 하셨는데, 이번 작품 외 다른 작품이 있으신가요?
정: 작년에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올해도 이어서 탐험할 계획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모르고 있었던 공간들을 알게 되었어요. 지도에는 없지만 실제 존재하는 섬도 있었고, 영상에서 읽었던 책 속에는 1894년 영국 여성 이자벨라 버드비숏이 한강의 하류에서 상류까지 5주 동안 배를 타고 여행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올해도 여행을 할 것 같고, 내용들이 좀 더 쌓이게 되면 전시나 다른 영상의 형태로 연결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는 직접 만드셨나요?
정: 네, 굉장히 잘 뜹니다.(웃음) 작은 모터도 있고, 느리지만, 주변을 잘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아요.
영상을 만드는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정: 후원은 서울문화재단에서 받았습니다. 배는 제가 직접 도면을 구하고 나무를 재단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지 않았습니다.
집에 사는 이미지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유성훈 감독(이하 유): 제가 현재 촬영을 하는 중이라서, 저도 이 작품을 오랜만에 봅니다,(웃음) 제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마지막 작품을 하고 1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다 2011년도에 ‘집에 사는 이미지’를 찍게 되었어요. 문득 10년 동안의 방황을 압축해보자고 생각했고, 무작정 해보고 싶었던 충동으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집에 사는 이미지’라는 제목과 다르게 영상에서는 집이 나오지 않습니다. 집은 어떤 의미입니까?
유: 집은 하나의 공간, 제 속 안의 개념으로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랑랑 상상박물관’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 영상은 프로젝트 일부의 기록물이고, 전체 프로젝트의 이름이 랑랑입니다. 단순한 이유로 랑이 ‘물결 랑’ 이라서 ‘물결 물결’이라는 뜻의 제목입니다.
랑랑 상상박물관은 강과 관련한 역사 스케치들이 많이 들어갑니다. 드로잉은 직접 하셨나요?
네. 카메라에 얇은 투명한 유리를 씌워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실제 하는 공간과 기억하는 경험이 겹쳐지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도 영상을 오랜만에 보았는데,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한강이라는 공간에서 발원을 해야겠다는 결심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사는 이미지들은 비디오 아트 형식이라고 하셨는데, 미술관 전시 작품인가요?
유: 우리나라에는 좋은 미디어 작품들을 소개할 마땅한 곳이 존재하지 않아서 제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주로 해외에 소개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뉴미디어국제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즉흥 작업입니까?
유: 네. 스트립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했습니다.
영상 속 배에서 실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마치 탯줄처럼 보이고, 약간 무섭고, 이상한 느낌의 장면이었습니다. 그 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 10년 전 장편영화 데뷔를 실패하고 바닷가를 산책할 당시, 물이 들어오고 있는 줄 모르고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저한테는 상징적이며 시적인 장면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실을 탯줄로 느낄 수 있는데, 저는 특별한 의미보다는 내안의 가장 중요한 촉수로 표현했습니다.
영상 속 ‘저자도’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정: 영상에 나오는 저자도는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섬입니다. 예전에는 존재했던 넓은 섬이었습니다. 서울의 한강이 개발되고 여러 건물이 생기면서 저자도의 모래들은 아파트 건축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넓은 평야였던 저자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다시 섬이 생기게 되었고, 지도에는 없지만 배를 타면 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영상도 프로젝트 중 일부라고 하셨는데, 앞으로도 시리즈가 나오게 되나요?
정: 네. 사대강 사업을 통해 한강의 새로운 길이 생겨서, 그 길을 따라 서해까지 가보고 싶고, 한강의 상류까지 배를 타고 북상하고자 합니다.
두 감독님께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 직접 네마프에 와보니 굉장히 소수의 관객 분들이 앉아계신데, 저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저는 제가 재밌어서 작품 활동을 하기 때문에, 관객이 몇 명이 되더라도 계속 할 예정입니다.
정: 저는 오랜만에 영상을 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들과 덧붙였으면 하는 부분들을 수정과 보안하여 올해 작업을 이어서 해야겠다는 반성과 의지가 들었어요. 또 작업을 이어서 할 것 같고, 나중에 배를 타고 싶으신 분들의 참여도 받아 한강이라는 닫힌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행 | 정민아 프로그래머
기록 | 한진희 루키
촬영 | 유현식 루키
8월 13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오민욱 감독의 ‘범전’의 상영이 있은 후, ‘공간의 전복적 사유’라는 주제로 이승민 영화연구가의 네마프토크가 진행되었다. 이번 네마프토크에서는 ‘범전’을 비롯해 최근 실험적인 한국 다큐멘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승민 영화연구가는 일련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공간이 주인공이 되는 특징을 지적하면서 공간이 영화와 접목될 때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해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강연 이후에는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강연을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
기존에 다큐멘터리에서 ‘공간’이라는 것은 ‘배경’ 혹은 ‘지명’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공간’은 또한 ‘현실성’이 매우 강조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 공간에 직접 방문하고 진행 중인 사건을 직접 겪어보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방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들이 지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사실이 화면에 담겨지거나 혹은 관객들로 하여금 부채의식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공간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 전개되고 있는데, 사건 전후의 공간을 방문해서 이미지를 채집하고 분류한 후 다시 모아내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공간은 종속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감응의 매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의 작품들은 ‘범전’처럼 탈서사화되어 있고 표면적으로 이미지에 접근하지만 그 안에서 영화적 언어를 통해 이면으로 접속한다는 점 그리고 계몽적이기 보다는 내면적이고 사색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특징들을 ‘공간 이미지’로 명명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공간이미지’
먼저 ‘공간이미지’의 등장배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공간은 항상 존재했었지만 ‘범전’의 경우처럼 맥락 없이 탈서사화되어 사색과 성찰을 유도하고 그와 동시에 비인칭적인 공간은 매우 특징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간이 왜 영화에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공간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사건 없이 비어있는 이미지입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미지는 사건이 끝난 후일수도 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일수도 있습니다. 카메라는 비어있는 이미지를 롱테이크 같은 기법으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표면적으로 보여주게 되죠.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관객들은 공간의 이면에 접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간이 그 자체로 서사를 품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서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즉 감응을 품도록 도와줍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하나의 공간을 오래 응시하고 관찰하면서 공간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 공간이미지는 공간을 유기적이며 독자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 때의 공간이미지는 계몽의 의도보다는 사색을 위한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공간 이미지’의 특징
그렇다면 이런 ‘공간이미지’들에게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맥락을 해체한다는 것입니다. ‘공간이미지’는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사건이 부재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현재의 충실하면서 역설적으로 과거를 호출해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즉자적이고 독자적이라는 것입니다. 롱테이크와 클로즈업 등을 통해 공간이 그 자체로 드러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때 카메라를 든 사람의 주관이 섬세하게 그 공간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감독이 전면에 나선다기보다는 관객이 직접 그 공간과 대면할 수 있도록 이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다차원성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간이 하나의 시간이 아닌 두터운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고 인과관계에서 일탈하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간성이 탄생합니다. 공간이미지는 관계, 기억, 역사를 소환하여 살아있는 유기적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네 번째 특징은 비인칭적인 시선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시선은 무작위적인 시선과는 다릅니다. 시선 안에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인칭의 비인칭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 수 있겠네요. 이런 시선은 안팎 구분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시선과 공간의 시선이 융합되면서 공간자체를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한국 다큐멘터리 속 ‘공간 이미지’
이번에는 ‘공간이미지’들이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재개발의 공간입니다.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느냐는 다큐멘터리의 중심 과제이기도 하죠. 아마 지금도 밖을 나서면 어렵지 않게 공사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재개발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재개발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논리입니다. 때문에 공간 역시 ‘투자’라는 자본주의적 논리로 파악할 수밖에 없어지죠. 그러한 공간을 ‘폐허’라는 공간이미지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공간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은폐된 역사적 공간 역시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공간 이미지로 소환하는 것인데 기억이 가진 파편적인 특성을 공간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反)기념비적 공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범전’의 기념공원도 그렇고 기념공간이 진정한 기념의 의미를 담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죠. 이런 유령화된 기념의 공간을 공간이미지를 통해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QnA
강연을 통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공간이미지들은 이미 사라진 공간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공간이미지를 사용하는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최근에는 이사를 다니고 하다보니 장소감이라는 것이 많이 사라졌죠.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들도 많이 사라졌구요. 그런데 오히려 그러다보니 공간성이 더 부각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통해 자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상품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질문자 분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박탈당한 공간 그리고 죽어있는 공간을 살아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공간이미지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연 | 이승민 영화연구가
기록 | 윤하영 루키
사진 | 여준석 루키
8월 13일 오후 다섯시 산울림 소극장에서 오민욱 감독의 ‘범전’상영이 있었다. ‘범전’은 오민욱 감독이 실제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부산의 범전동을 배경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 ‘범전’은 과거 존재했던 미군부대 ‘캠프 하야리아’와 사라진 마을(돌출마을) 그리고 붉은 골목(300번지)을 섬세하고 치밀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상영 후에는 이승민 영화 연구가의 진행으로 오민욱 감독과 관객이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제목에 관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한국어 제목(범전)과 영어 제목(A Roar of the Prairie)이 다릅니다. 제목을 다르게 지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선 기본적으로 영화의 실제 배경이 부산의 범전동입니다. 또한 작품을 통해 범전동이라는 동네가 없어지는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구요. 때문에 한국어 제목은 자연스럽게 ‘범전’이 되었습니다. 영문제목은 직역하면 ‘초원의 굉음’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범전동에 있던 미군부대의 이름이 ‘하야리아’인데,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포착했던 미세한 소리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착안해서 짓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붉은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붉은색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의 배경 중 하나였던 300번지는 과거 홍등가였습니다. 홍등가하면 아무래도 붉은색의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죠. 하지만 그 지점에서 착안해 영화의 톤을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홍등가 혹은 양공주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따라오는 일종의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는 붉은색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붉은색으로 영화의 톤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촬영을 하다 보니 우리의 일상에 의외로 붉은 색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일반적인 사람들도 많은 붉은색의 것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붉은색은 작더라도 매우 도드라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구요. 그래서 영화의 톤을 붉은색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살펴보면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구성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구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범전’같은 경우는 부산에 있는 개발의 풍경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만난 공간을 촬영한 작품입니다. 때문에 저도 이 공간에 대해 잘 알고 시작한 작품이 아니고 오히려 범전동을 알아가는 과정을 찍고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이 아닌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범전동이라는 공간이 가진 그 긴 시간을 선형적으로 정리하고 물리적으로 압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때문에 이미지들이 불쑥불쑥 드러나는 방식을 선택해 편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아니어도 기준점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 공간이 나누어져 있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를 세 개의 챕터로 나누었습니다. 따라서 영화속 세 개의 챕터는 돌출마을이 사라지고 붉은 골목이 사라지고 그 모습들을 ‘굉음’이라는 소리로 포착한 순간들을 담은 것입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이미지들 중 나무나 철조망처럼 처음에는 모호하게 보여주다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소개하신 이유가 있나요?
첫 장면의 나무는 과거 이스라엘에서 승리의 징표로 사용된 종려나무입니다. 미군부대 주변에 이런 종려나무가 심어진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종려나무 이외에도 태극기 그리고 동상들 역시 이런 승리의 징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했던 과거의 영상 역시 이런 징표의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부산 시민공원 역시 기념을 위한 징표이구요. 범전동이 이런 기념의 징표 아래에 묻혀있듯이 다른 징표 아래 묻혀 사라진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선명한 징표들은 사실 선명하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게 되는 것이죠. 일상생활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 아래에 숨어 있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가지고 이런 이미지들을 군데군데에 부분적으로 등장시키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의 답변을 듣고 보니 일상생활에서 주목하는 순간 선명해지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영화를 보다보니 고양이와 빨래가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양이와 빨래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신 이유가 있을까요?
촬영장 주변에 예쁜 고양이들이 참 많이 있어서 밥도 챙겨주고 그랬었는데 어느 순간 저의 카메라보다 고양이들의 눈이 더 오래 이 공간을 담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고양이의 뇌 속을 볼 수 있다면 아마 범전동의 모습을 가장 오랫동안 담아낸 기록이 그 안에 있지 않을까요? 가장 마지막까지도 그 공간들을 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범전’이 공간에 관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인위적으로 배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고양이들이 작품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빨래 역시 고양이들과 더불어서 그곳에 살고 계셨던 어르신 분들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빨래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빨래 뒤편에 공사시작을 알리는 표기가 쓰인 벽이 있는데요, 때문에 빨래라는 살아가고 있음의 징표와 철거공사라는 끝의 징표가 같은 프레임 안에 대비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이 대비를 ‘범전’의 중심축이 되는 이미지로 사용하고자 반복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범전’에서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공사장에 놓인 돌 혹은 고양이들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인물을 이렇게 두드러지지 않게 다루신 이유가 있을까요?
촬영을 할 때 여전히 그 곳에 살고 계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인위적으로 배제하고 싶지 않아 인터뷰를 진행했고 영화에 담게 되었습니다.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미군부대라고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신 내용들은 영화에 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 그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특정 공간에 대한 역사를 기술할 때 그 공간의 역사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기술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범전동 위에 지어진 부산 시민공원 역시 기념식을 하는데 그 기념식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 범전동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높은 분들이죠. 그런 부분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느낀 아이러니를 드러내기 위해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금 희미하게 편집한 것입니다.
결국 ‘범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찍으신 입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 시대를 살면서 재개발 혹은 공권력에 의한 사건들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항상 그런 풍경들을 찾아 작품을 찍어왔구요. 그런데 이번에 범전을 찍으면서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패배한 풍경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가 이미 잠겨가고 있는 공간을 선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국가와 공권력에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패배한 공간들을 담고 있는 나의 작품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고민 끝에 결국에는 패배하는 공간들을 그저 담아내는 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는 결론에 다가섰습니다. 극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사건을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 보는 것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정말 긴 시간동안 존재했던 공간의 시간을 두 시간동안 보는 게 많이 힘든 일은 아니잖아요. 물론 언론을 통해서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 접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패배하는 풍경들을 조금 다른 톤으로 잡아내는 것에 의미를 찾아가면서 ‘범전’의 편집을 마쳤습니다.
진행 | 이승민 영화연구가
참여작가 | 오민욱 감독
기록 | 윤하영 루키
사진 | 김재아 루키
8월 12일 5시 산울림 소극장에서 카를 야베르 감독의 <프릭 아웃Freak Out>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 '세기말과 유토피아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이지행 영화연구가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하는 강연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유토피아
유토피아라는 것은 그리스어로 ‘없는(OU-)' '유'와 '장소(TOPPOS)' '토피아' 라는 두 말을 결합해 만든 용어입니다. 유는 없는, 좋은 장소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하게는 이상적인 사회, 즉 '대안적이고 이상적인 공간과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살면서 아직 가보지 못한 더 멋지고 근사할 것 같은 대안적인 삶과 세계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기 때문에 고대부터 존재해왔습니다.그래서 고대 그리스 로마시민들은 서사문학 속 “아르카 디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르카 디아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풍요하고 전혼적인 땅, 평화의 땅을 의미합니다. 또한 플라톤도 유토피아에 대해 '사람들이 살기 정의로운 국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합당을 배분 받는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개념은 과거부터 실험되었고, 사람들이 불만을 가져오게 된 이유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16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가 지리적 혹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좋은 곳 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유토피아는 플라톤과 고대시인들 뿐만 아니라 문학 속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개념입니다. 문학은 유토피아를 가장 잘 재현하는, 시대, 역사를 나타내는 장치이자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 속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17-18세기에는 계몽주의적인 유토피아를 상상했습니다. 계몽주의적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가장 유명한 문학은 18세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입니다. 이 책 속 무인도의 변화 지점을 보면 초기에 겪였던 돈, 물물교환 등이 발생하는 갈등이 경제학 서적처럼 자세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문명에 의해 원시사회가 개발되어 가고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에 가까워지는 것을 그려냈습니다. 18세기까지 문학에 이러한 계몽주의적 사회가 자주 등장했다면, 19세기-20세기 초반으로 넘어오는 소설에는 사회적인 유토피아들이 주로 등장했습니다. 19세기말-20세기 초에는 정치적 격동과 공산주의 혁명이 있었습니다. 평등을 모토로 삼은 사회를 지상에 건설하고자 하는 유토피아를 생각했죠. 이처럼 지상에서의 유토피아를 완성하고자 하는 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스토피아
19-20세기 사회주의 유토피아와 한축을 이루었던 것은 ‘디스토피아’ 입니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말로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미래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디스토피아를 건너야 유토피아가 나올 수 있겠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완전한 반대말이 아닌, 미래에 대해서 바라보는 이중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나타났던 시대는 조금 더 미래의 유토피아가 상상적 재현속의 아름다움보다는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순간, 과학기술이 비학적으로 20세기에 발전하며 관념적으로 꿈꾸던 유토피아가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실현될 것인가,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어떻게 도움을 받아 실현될 것인지 그려졌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적 미래상에 대한 문학이 많았던 이유도 과학의 발전과 연결되어있습니다.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에는 20세기 초에 유명했던 두 소설,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있습니다. 이 두 소설은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미래에 대해 반전의 상, 서로를 비추는 반쪽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 경우 빅 브라더 라는 가상의 독재자가 이들을 항상 감시하며, 파시적인 미래의 상이라고 말하죠. 반면에 멋진 신세계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정점에 서서 기술발전, 의약발전에 의해 아무도 병 때문에 고통 받지 않으며, 오래 살기 때문에, 많은 이유들로 인해 바닥까지 우울해요 끔찍하죠. 현대의 시대상과 같습니다. 그리고 두 소설을 비교하면 서로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 같지만, 현대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두 가지 지점, 삶의 형태에 대해 지적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1984에서는 국민들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해요. 책을 통해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이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반항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읽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에 멋진 신세계의 국민들은 아무도 책 따위를 읽지 않아요. 책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사소한 재미들이 가득하기 때문이죠. 무거운 주제들에 관심을 둘 여력이나 열정이 없어요.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 무거운 주제에 대해 외면하는 사회를 드러내고 있죠. 두 소설 모두 디스토피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소설 속에 나타나는 유토피아를 통해 인류문명의 공과 나쁜 점, 좋은 점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계몽주의 유토피아가 많이 나온 이유는 발전가능성, 미래에 대한 낙관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발전시켰다는 확신과 기쁨에서 나오는 것들이죠. 그리고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그 당시 발전한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 억압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을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상에 실현함으로써 반전시키려는 노력들을 소설 속 유토피아들이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꼭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로 발현된 것은 아닙니다. 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기술 결정 주의적인 순진한 SF 영화들, 기술이 인간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트랜스 휴머니즘적인 유토피아 소설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지금의 주류 상업영화계에서 트랜스 서사들이 환대 받지 않아요. 우리가 많이 보는 영화는 디스토피아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죠.
벨 에포크 시대
영화 속 시대는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시절” 이라는 뜻입니다. 배경이 되는 벨 에포크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정확히 따지자면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 1914년까지의 파리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화려한 시대를 의미합니다. 프랑스 전쟁이 끝나 잠정적 평화가 오는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40년 정도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던 시기였죠. 이 시대는 문학성, 예술성이 폭발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가 지속 가능했던 이유는 잠정적 평화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낙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왜 이 시기 사람들은 낙관적인가, 사회적 변화가 그 원인입니다. 이 당시 사회는 정보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전신, 전화 등 전신의 발전은 곧 초기 금융 자본주의의 설립과 관계가 있습니다. 금융의 글로벌화는 전신, 정보통신의 발전을 통해 이뤄졌죠. 제국주의의 피크이자 저물어가는 시기였고, 제 3세계나 식민지들로부터 많은 물건들이 유럽으로 흘러넘치던 시기였습니다. 소비주의, 물질주의, 자본주의가 팽창했고 정보 통신에 대한 발전이 급격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였으나, 낙관만 있었다면 역설이란 말은 쓰지 않았겠죠. 비관도 존재했습니다.
시대상에 관한 비관,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공황이 있었고, 20세기 초에 드러나지 못했던 사건들이 있기에 미래에 대한 확신, 낙관과 시대상에 대한 비관이 공존해서 우리가 이 시대를 위대한 ‘역설의 시대’, 벨 에포크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죠.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분명한 지향이 존재했습니다. 소설에서는 미래에 대한 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테크노피아 소설이 있는 반면 <Freak Out>의 공동체원 처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원시농업적인 유토피아 소설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테크노피아와 원시농업으로 나뉘어서 각자의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모든 것이 공존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비관, 낙관 그 어느 것으로 단정하기 어려웠지만, 지금보다는 역동적인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Freak Out>(2014), '위대한 역설‘의 시대의 대안공동체
몬테 베르타는 이 시기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주의들은 평화주의, 채식, 반자본주의였는데, 자본에 저당 잡히지 않으며 자급자족하며 심플, 간결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편한 옷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누드로 다니고, 문명과 자본에 의해 저당 잡히지 않는 삶을 유지하고 온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출신배경입니다. 이들은 모두 부르주아 자제들이예요. 주도적인 인물들, 특히 이다 호프만과 그녀와 짝이 그랬었죠. 또 이들은 20대 초 유럽 예술가들의 아트 스쿨의 역할도 했습니다. 이들은 유럽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이름을 알렸다는 건 많은 예술가들이 모였다는 의미도 되지만, 영화 속 이들은 요양원을 세웠잖아요. 자립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 요양원이 이름이 나면서, 유럽사회에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 당시 대서양을 넘어 미국까지 이들의 활동과 트렌드, 정신들이 전파되기도 했죠. 나중 20세기 중반, 60년대 꽃이 핀 미국 서부 쪽을 중점으로 히피문화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공동체였던 것이죠.
이렇게 대서양 미국 서부까지 전해지면서 영향을 주었던 멋있는 '대안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실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어요. 중요한 문제가 돈 때문이었죠. 가족의 지원을 받아서 요양원과 식당을 세웠고, 식당의 모토, 자신들의 슬로건은 채식 전문 식당이었는데, 그 뒤 1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운영이 어려워지자 채식이라는 자신들의 본질적 이유를 포기하고 고기메뉴를 내세웠죠.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점점 자기들의 이상을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본질적 슬로건이 무너지면서 조직이 무너지고 와해되기 시작했죠. 두 번째는 항상 우리가 대안공동체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막판에 무너지게 된 이유가 바로 방종 때문입니다. 이들은 외부에 알려지게 되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장점도 있지만 약화시키는 단점도 있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등을 돌리게 되죠. 제일 컸던 외부적인 사건은 바로 1차 세계 대전입니다. 1차 대전으로 인해 전 유럽이 위축되고 있었는데, 몬테 베르타만 잘 살 수는 없었죠. 그래서 전반적인 무대가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 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죠.
영화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뭔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끝장내고는 한다. 파괴하고자 하는 속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유토피아 공동체들이 인류역사상들에 있어왔지만 마지막에는 공동체가 와해되면서 끝이 나요. 인류사회에서 공동체는 조직이며, 무언가를 유지하고 조직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원래가지고 있는 이상을 폐기하거나 와해해야하는 지점이 꼭 다가오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죠. 이들도 반 자본, 반 문명, 채식, 그들의 슬로건을 가지고 소탈하게 유지해왔는데 돈이 있어야 자립할 수 있다는걸 깨닫고 배척하고 싶었던 부르조아 부모들에게 돈을 받아 식당을 만들고, 자신들의 채식을 지향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운영이 어려워서 고기메뉴를 등재 시키는 것처럼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폐기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꿈은 결국 부질없는 것인가, 실현되지 않고 저 하늘 위에 떠 있기에 우리가 이상향으로 꿈꾸며,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향으로써의 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토피아의 실패, 파국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은 비관적인 반 휴머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이아 가설이 있습니다. 지구를 가이아로 보고 언젠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가이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번성하고 지속적으로 창조하게 된다면 가이아가 마침내 그들을 살수 없게 만들 거라고 해요. 가이아의 역습이라고 하는데 인류가 현대문명에 들어서면서 해왔던 것이 가이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발전이 파국의 이유다. 계속 발전하면 우리는 종말에 다가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이면 결국 와해될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정서로 공동체 실험을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왜 이런 두 가지 방식으로 이들은 지속되지 않았을까, 왜 역사적으로 공동체들은 이런 식으로 끝을 보게 되었을까에 대해 두 가지 상상들이 가능하게 되었죠.
16-17세기 유럽이 초기 자본주의에 진입한 시대에도 그 뜻에 반대하여 시골로 숨어버리는, 원시 농업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네덜란드, 북유럽 등 존재하였습니다. 16,7,8세기까지 종교, 원시 농업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단체들이 대안공동체를 만들었고, 19세기 미국에서는 주로 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정치적 이유, 종교적 이유도 있지만, 종교적 이유로 만들었던 공동체들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 다음 최근의 공동체는 60년대 히피공동체입니다. 이 사람들은 미국사회의 개인주의, 탐욕, 전쟁, 폭력 등을 거부하고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가서 자연에서의 삶을 추구했습니다. 이들의 성격은 미국에서 독재적으로 나타났기보다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경향성과 비슷했습니다. 이렇게 모여든 공동체들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미숙하고 성적 방종 등에 의해 관계들이 소원해지고 쉽게 와해되는 지점들이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파국의 시대
19세기말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공동체의 역사가 있다면, 위대한 역설의 시대. 낙관, 비관도 있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 시대와 이 시대가 닮아있는데, 닮은 것이 다릅니다. 19-20초가 위대한 역설의 시대였다면 20세기 초-21세기는 파국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내가 자랄 때 세상은 지금과 흡사했다”. 여기에서의 지금은 지금입니다. 2010년대, 글로벌화, 자본주의, 금융위기, 소비주의, 그리고 정체, 이 모든 것들이 그 당시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 당시 제국주의와 소비 자본주의가 19세기에 팽창하고, 금융자본주의 초기에 진입하며 여러 난리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소비가 주는 파편적 지점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 파국의 시대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국과 종말은 어떻게 다를까요? 종말은 물리적 종말, 파국은 종말의 가까운 돌이킬 수 없는 위험 , 재난이 닥쳐 종말로 인도하는 그 중간지점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기말을 지나 21세기로 진입하는 밀레니엄 시대를 파국으로 분류하는 시선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진짜 세기말인 90년대는 19세기 말과 비슷했습니다. 90년대는 동북권 붕괴를 시작으로 열렸으며,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영원한 자유로 끝이 났다고 생각했어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영원한 자유로 끝이 났으며,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 인한 전쟁은 일어날 일이 없을 것이며, 자유 민주주의 한 길로 나아가는 꽃길이라 생각했어요. 냉전이 끝나고 행복으로 90년대가 시작 되었으며, 인류의 생존 관련 생명공학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밀레니엄을 앞에 두고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문명적인 바이러스들로 인해, 세계가 정보화되었지만 컴퓨터가 시간을 읽는 것을 멈추게 되면 많은 것들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엉망들은 인간의 생존 위협과 관련된 것들이였죠. 이런 식의 종말에 대한 루머들과 낙관될만한 상황들이 90년대에 존재하였습니다.
지금의 세기도 인류 문명, 역사를 규정짓거나 변화를 이끌었던 사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오기까지 모든 혼란과 불안을 응축시신 대표적인 사건은 911테러입니다. 테러가 일어나고 미국은 애국자 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당신이 테러용의자로 의심되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할 수 있다. 언젠가 구금해서 심문할 수 있다는 법입니다. 그때 당시 미국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용의자 취급을 받아야 했죠.
이런 식으로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라 불리는 이라크 전을 촉발시키기 위해 911테러가 사용되었고, 보수주의들이 힘을 얻는데 많은 역할을 해준 사건이 되었습니다.
파국의 양상
환경/생태 : 복합재해
과학기술 : GMR - 포스트 휴먼
정치/경제 :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주의
환경, 생태에 대한 파국들은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지구, 자연의 권력이기 때문에 복합적인 측면을 보입니다. 후쿠시마 경우 지질 해일보다 원자력 폭발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후쿠시마 사건을 통해 자연 재해는 혼자 오지 않는다, 현재의 생태적 재난의 복합성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해일이 덮치는 것보다 발전소가 녹는 과정에 집중했던 이유는 현대 자연 재해는 복합적인 요소 보다는, 어마어마한 팩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현대의 파국적인 양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적인 파국입니다. GMR은 유전공합, 나노공합, 로봇공합을 뜻하며, 인간기능의 확장에 기여하는 생체기술들입니다. 포스트 휴먼을 통해 죽지 않으며, 병이 없는 장수, 로봇 틱스, 인간이 필요 없는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발전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과학기술의 파국이 큰 이슈가 되는 이유는 과학기술을 통한 인공지능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많은 로봇공학 학자들이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뛰어넘는 시기, 특이점이라고 하는 시기가 언제 올 것인가 예측해보았을 때, 그 시기는 10~15년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것이며, 이것이 인간존재의 소멸이라는 종말에 대한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식의 확산을 통한 대량 살상의 접근 가능성입니다. 10년 전엔 인터넷으로 폭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수력원자력발전소의 해킹사건을 통해 멀리서 손대지 않고 간단한 클릭만으로 파괴적인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시스템을 세워도 그에 대한 대응전략은 등장하기에, 새로운 기술이 나올수록 불안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과학기술의 열매는 결국 자본이 독점할 것이며 유포를 관리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큰 계층 차이를 만들게 될 것이며,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와 떨어진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과학발전의 파국이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이유 중 하나죠. 이런 식으로 지금은 19세기 말의 벨 에포크 시대에 비해 힘을 잃었습니다.
이전의 시대들은 언제나 세기말, 종말의 끝에 대한 불안, 새로운 시작에 대한 낙관이 교차되어 있으나, 미래는 다시 시작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많은 학자들은 지금의 세기는 과거의 세기말과 다르게 아무도 미래, 종말에 대해 끝만 볼 뿐 새로운 시작이라는 낙관을 보지 않는 마치 타락한 천년왕국 신화를 보는 것과 같은 시기라고 보고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큰 가치에 대해 도전하거나 연합하여 공동체를 이루기보다는 동력을 잃고 패배주의적 시기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많이 번져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없는건 아닙니다. 각자 자기 삶의 문제들과 협동조합 문제들이 벌어지지만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사회를 바꿔보자는 사회주의 유토피아, 계몽주의 유토피아들이 파편화되고 사라져버린 시대에 우리는 유일한 권력, 소비자의 권력만 외치는 시대가 된것 입니다. 우리가 시민보다는 소비자로써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시점에 온 파국의 루트를 밟고 있습니다. 그래서 21세기는 진정한 파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아무도 이 파국을 넘어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문: 비관적 시대를 예술 영상예술들이 어떻게 반영하고 있으며,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SF영화들은 계속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류 할리우드 영화들, 그건 세계에 대한 현실을 영화에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대 SF영화, 아마겟돈은 1인 미국 영웅이 세계를 구해 종말이 오지 않는다는 뻔한 스토리였어요. 항상 마지막에는 지구를 살려내고 장밋빛 뒷이야기를 맞이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우리를 종말론적 불안에서 안심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주류 할리우드에서 누군가가 지구멸망이라는 흐름을 멈출 수 있다는 의지가 아니라 지구를 멸망시키며 끝나는 영화도 있고, 현재는 소각상태이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불길한 느낌을 풍기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지구의 종말모습 조차도 엄청난 모습, 스펙타클한 모습으로 표현해왔지만, 요즘은 과거처럼 즐길 수 있도록 표현하지 않습니다. 더 우드 같은 경우, 시작과 동시에 몇 초 동안의 종말이 주인공의 얼굴에 비친 수심으로 표현이 됩니다. 예전의 관습과는 다르게 즐길거리를 남겨놓지 않는 방법으로 표현하죠. 21세기 SF영화들이 지금 이 세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할리우드가 캐치한 것 같습니다.
강연 | 이지행 영화연구가
기록 | 한진희 루키
사진 | 유현식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