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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NeMaf 2023 프랑스비디오폼2: 가브리엘 수셰르 마스터클래스
조영은 조회수:1208 211.57.22.177
2023-08-12 13:31:22

«프랑스비디오폼2: 최근 동향과 새로운 트렌드» / 프랑스 비디오 예술 특별전 X 비디오 폼 특별강연

일시: 2023. 08. 11(금) 16:10

모더레이터: 문호경

패널: 가브리엘 수셰르 

통역: 김지순

 

 

문호경 기획위원장 (이하 문호경):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강연의 사회자를 맡은 문호경이라고 합니다. 오늘 «프랑스 비디오 예술 특별전 X 비디오 폼» 첫 번째 상영과 두 번째 상영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큐레이터이자 작가이신 가브리엘 수셰르 대표의 강연이 있을 텐데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프랑스 ‘비디오 아트’(video art) 역사의 한가운데 계셨던 분입니다. 제가 도록에도 소개했다시피 백남준 작가, 그리고 구보타 시게코 작가와 친교를 나누시기도 하셨습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비디오폼 페스티벌’ (VIDEOFORMES)에서는 ‘네마프’와 함께 했던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저희가 상호 교환 프로그램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이번 8월에는 네마프에서 비디오폼 페스티벌의 작품을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고요. 오늘 강연의 통역을 도와주실 분은 김지순 통역사이십니다. 지금부터 가브리엘 수셰르 대표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가브리엘 수셰르 비디오폼 대표(이하 가브리엘 수셰르): 안녕하세요. 오늘 강연을 통해 제가 속한 조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야기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설명해 드릴게요. 먼저, 제가 속한 조직은 198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보아하니 상상에 맡겨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관객 웃음) 인터넷도, 유튜브도, 틱톡도 없죠. 당연히 가장 빠른 소통 수단도 휴대전화가 아니고 전화기이기 때문에 비용도 꽤 치러야 하는 만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어요. 팩스도 사용했었죠. 이러한 맥락에서 소통이나 정보의 공유가 느릴 수밖에 없었어요. 간단한 설립 배경은 이렇고요. 이제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62년까지 한 번 가볼게요.

 

당시에 많은 창의적인 작가들과 네오-다다이즘(Neo-Dadaism)의 한 일환으로서 플럭서스 운동을 함께 했어요. 백남준 작가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아트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죠. 그는 마르셀 뒤샹과 존 케이지의 영향을 받았어요. 1962년에 그러한 플럭서스 운동을 전개한 이후에 1963년에 굉장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전시가 독일의 한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전시의 제목이 저에게 조금 이상하게 들리긴 했습니다만, 《음악-전자 텔레비전 전시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이에요. 일단 열세 개의 왜곡된 텔레비전이 붙어있는데, 이는 존 케이지가 보통 피아노를 전시해서 준비했던 방식이었죠. 그는 피아노에 여러 가지를 랜덤으로 넣어서 스토리가 무자비하게 나오는 전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백남준 작가는 이것을 활용해서 이미지를 바꾸었죠.

 

다시 프랑스로 가볼 텐데요. 여기는 상황이 또 다릅니다. 두 개의 중요한 행사가 있었어요. 백남준의 첫 번째 프랑스 파리 전시가 큰 예술기관에서 개최되면서, ‘비디오 아트’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죠. 이는 당시의 주한미국대사관 아메리칸센터의 역량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곳에서 많은 작가를 초대하여 미국의 작품을 소개해 주었어요. 그래서 싱글 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그리고 설치미술을 보여주었죠. 백남준 작가도 아메리칸센터에 초대되었어요. 처음에는 전시를 위해 초대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작가로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죠. 이러한 모든 상황이 파리에서 일어났어요. 저는 프랑스의 중심에 있는 작은 도시인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에서 왔어요. 남쪽으로 파리에서 400km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도시예요. 현재는 안타깝게도 인구가 줄어서 40만 명밖에 존재하지 않아요. 도시 중심에는 15만 명 정도의 사람들만 살고 있고, 그들이 대부분은 학생이에요. 이러한 특성은 아주 정상적이지만 왜 그토록 도시에 역동성이 존재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1968년에서 몇 년 지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사실 1960년대 말이라고 하면 앞선 20년 정도가 서부 유럽의 부흥이 끝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정치나 주요 지도자들은 보수적이었고, 그로 인해 학생과 노동자들이 변화를 일으키고자 혁명을 시도한 시기였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조금 잠잠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활성화 되어 있었어요. 제가 다닐 때도 교육 프로그램 외에 영화, 특히 실험적 성격을 띤 새로운 영화들을 많이 취급하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어요. 방에 천 개 정도의 좌석이 있는 교실 문이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이게 더 가득 차고요. 저희는 이것을 일주일에 한 번씩 트레이닝했는데요. 학생들이나 어떤 조직이 앞에 나와 이십 분 동안 소개하고 나서 두 시간 정도 상영한 뒤에, 나머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해당 영화나 이런 상황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래서 저도 이런 것에 대해 소개하고, 결국은 이런 조직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저와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숏폼 관련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존재하는 숏폼 비디오 페스티벌 영화제예요. 그리고 이후로 제가 속한 조직에서 ‘비디오폼’이라는 영화제로 출범하게 되었죠.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집중해서 페스티벌을 생각한 친구들도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조그마한 마을인데도 많은 예술의 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에요.

 

 

제가 속한 조직은 198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소통이 지금처럼 빠르거나 원활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비디오 제작자분들에게 도움을 모색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비디오 제작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었거든요. 사실 텔레비전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의 소스가 부족했다는 점을 유의하시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교내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비디오 제작자분들의 연락처를 받을 기회가 있었고, 비디오 아트에 관심 있는 파리에 계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분들께서는 마치 복음 전도사처럼 가방에 여러 비디오 관련 아트를 들고 거리를 다녔어요. 이분들 덕분에 저희가 첫 번째 페스티벌을 만들 기회가 되었던 거죠. 육일 간에 걸쳐 영화제를 상영할 수 있었어요. 처음으로 컴퓨터 아트도 소개하였고, 큰 기관에서 보내주신 작품을 저희가 전시하기도 하고, 비디오 제작자분들이 보내주신 비디오를 저희가 보여줄 수도 있었고요. 카세트를 통해 여러분이 보실 수 있는 작품도 있었어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보여주는’ 쇼를 가졌다는 것인데요. 요즘의 일반적인 화면이 아니라, 튜브형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지금 이곳과 같은) 상영관인데 뒤에 진공관으로 된 텔레비전 열네 개를 쌓아서 보여드렸던 거예요. 영상 작품을 영사기로 투사하기 위해 각 면에는 두 개의 슬라이드기를 붙여놓았죠. 녹화된 비디오와 라이브 비디오가 함께 혼합된 형식의 전시였어요. 지금은 당연히 가능하기에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이었어요. 첫 페스티벌에서 저희가 설치작품을 시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워요. 충분한 예산이 없었거든요. 아마도 그런 부분까지 저희가 했다면 엄청난 재정적 위기가 있었을 거예요. 사실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저희가 시작했고, 창시 초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가늠해 볼 만한 상황이죠. 나중에는 학생들에게 미디어아트와 디지털아트에 관해 설명하거나, 여러 행사를 하면서 재정적으로 기금을 얻을 수 있는 소스도 다 발견하게 되어서 파트너도 얻을 수 있었고, 충분히 재정적인 조달을 받아 설치작품이 가능했고, 비디오아트 작품도 무작정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선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심지어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실험실’이라고 소개하면서, 제작자 그리고 이것을 확산시키는 배포자라고 설명을 해드렸는데요. 설치 작품을 제작하게 되면서 현대미술 작가들도 더 많이 유치하고자 했습니다. 앞선 ‹프랑스비디오폼1› 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작가인 로베르 카엔 같은 작가들도 초대할 수 있었어요. 1980년대에 정권 교체로 인해 전반적으로 문화적으로 강력함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생겨서 이에 많은 지지가 생겼죠. 그래서 프랑스 자체가 해외 작가들도 끌어들일 수 있었고요. 기성 작가뿐만 아니라 신진작가도 역시 똑같이 영화제를 통해서 기회를 받고,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이끌었어요. 백남준 작가와 구보타 시게코 작가 역시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그들이 굉장히 천재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요. 굳이 설명해 드릴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첫 만남 때 백남준 작가로부터 비디어폼 페스티벌에 전시할 수 있는 작품을 제안받았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풀밭에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TV Garden(1974—1977)라는 작품을 새로운 영화제를 할 수 있는 장소에 처음으로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이후 십 년간 백남준 작가의 많은 작품을 영화제에서 전시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비디오폼이 지나온 과거에 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요. 현재로 돌아와서 저희 비디오폼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내용을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극장 스크린에 비디오폼 웹사이트를 띄우며 직접 설명) 최근에 홈페이지를 제작해서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지만, 주소를—videoform.com—기억해 주세요. 비디오폼은 당연하게도 비디오아트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최근에 인터넷에서는 ‘하이브리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이라고도 부릅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기도 하니까요. 영화제를 통해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다양한 연결점이 있어요. 특히 청년층을 위해 작가들과 학교 교육기관을 통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희가 학생들에게 일 분짜리 영상을 과제로 요청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전시를 열기도 하고, 때마다 저희가 큐레이팅한 비디오 작품을 보여주기도 하죠. 지역적인 프로그램도 있어요. 작가가 7주 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교사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도시의 현지인과도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작가와 함께 제작하는 설치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저희가 여는 영화제에 출품해서 전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한 관람객들이 미술대학 학생의 작품이냐고 질문하시더라고요. 사실 이런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는 수년간의 교육과정이 필요하죠. 네마프에 상영되었던 작품 중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이나 교육과정을 거친 작품도 있어요. 이런 부분에 있어 저희가 일종의 툴을 개발했어요. 여러분께서도 손쉽게 온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재해 놓았고, 실제로 제가 요청하는 과제를 하게 될 때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영화제를 삼 주간 진행하는 일정에 맞춰 재정적 지원이나 파트너 후원을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일단 이틀간 전문적인 행사를 통해 축제의 시작을 알립니다. 많은 큐레이터분을 초대하는데요. 이번 심사위원 중 한 분은 문호경 님이시기도 했어요. 한국 프로그램을 담당하신 분이고 패널 토론에도 참여하셨죠. 보통 영화제에서 상영의 시작은 대중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시작을 알립니다.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여러 장소에서 행사가 벌어져요. 그래서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며 여러 작가와 작품을 만나고, 실제로 퍼포먼스를 보여드리는 행사를 합니다. 그래서 오프닝 행사만으로도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해요. 모든 것이 전문적인 심사를 거친 것이고요. 전 세계에서 천 개 정도에 해당하는 비디오 작품이 수집되어서 작품 수를 서서히 줄여가죠. 사실 프랑스만이 이런 형태의 영화제를 벌이는 나라는 아니에요. 여러 나라에서 디지털아트 전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작품이 지원 기금을 모금하기가 여전히 어려워요. 보통 전시나 예술 부분에서는 공공기금을 통해 후원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현재 유럽의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예술 분야에서 경제적 후원을 받는 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나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더 어렵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 대부분의 국가가 현재 우파로 기울고 있는데, 사실 예술 쪽은 우측 진영에 속하지는 않잖아요. 아마 한국도 그렇겠지만, 많은 기관이나 조직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헌신하고 노력하죠.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를 시에서 담고 있고요. 근데 디지털 아트라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환경’, ‘돌봄’, ‘보존’ 같은 키워드와는 조금 거리가 있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보아야 하는 문제고요. 젠더나 워라밸 같은 것도 중요하죠. 이러한 모든 문제가 조직이 살아남는 데 있어 많은 도전과 문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디지털 아트라고 한다면 ‘LFT’, ‘AI’, ‘VR’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분야를 저희가 탐험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면서 마무리 짓고요.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관객 박수)

 

문호경: 네 여러분.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비디오아트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흐름까지 해서 약 백분 정도의 압축적인 시간 안에 역사를 만나보셨는데요. 그리고 육십여 분 정도 가브리엘 수셰르 대표가 어떻게 비디오아트가 프랑스에서 소개되는지 이야기해 주셨어요. 특히 지금 비디오폼 페스티벌이 자리 잡고 있는 클레르몽-페랑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도 작품을 보시면서, 그리고 강연을 들으시면서 궁금한 점이 많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남은 시간 동안 질문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 1: 저는 ‘비디오폼’이라는 용어가 조금 낯설었거든요. 아까 말씀해 주시기로 비디오아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셨는데, 프랑스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비디오아트의 역사를 오래 지켜보셨을 것 같은데요. 기술적으로도 물론 다르겠지만, 과거 작품과 최근 작품의 차이에 어떤 특징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가브리엘 수셰르: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하자면, 비디오라는 건 ‘매체’이죠. 순진한 생각일 수 있는데, 비디오를 통해 여러 ‘폼’ 형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시네마가 될 수도 있고, 비디오아트가 될 수도 있고,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죠. 앞으로 무궁무진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디오폼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어요. 두 번째 질문은요. 백남준 작가가 텔레비전을 사용하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튜브형 진공관을 사용하지 않죠. 그때는 카세트가 없었고 테이프를 사용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편집’이라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텔레비전은 작가 본인의 작업환경에 쉽게 놓일 수가 없었죠. 관련 회사나 따로 마련된 공간에 가서 작업을 해야 했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시공간의 제약이 매우 많았어요. 그리고 컴퓨터가 나타나면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었고, 인터넷의 도래로 인해 더 많은 시공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죠. 작품이라는 것은 사실 물리적이기 때문에 몇 년 뒤면 사라지잖아요. 시디롬(CD-ROM) 같은 경우에 작가들이 여기에 작품을 담아두고 보존할 수 있었고요. 한마디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작가들의 활동 범위가 커졌다고 할 수 있어요.

 

관객 2: 강연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시간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1970년대 학생이셨을 때 수많은 학생과 비디오아트나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장면들이 상상되어서 굉장히 멋진 학창 시절을 보내셨겠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비디오아트 문화가 대중적으로는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소비되는지 궁금한데요. 그리고 오랫동안 비디오아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동력이 무엇일지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가브리엘 수셰르: 교육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순수미술에 관련된 학교에서 교육하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비디오폼 페스티벌에서도 비디오아트 아카데미를 통해 제작된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요. 그중에 저희가 한두 가지 작품 정도는 프로덕션을 하고 있죠. 유럽은 전역에 걸쳐서 굉장히 비디오아트가 풍요롭습니다만, 일반 대중에게까지 만연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어찌 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와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겠죠.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이 전시이고요. 비디오폼 페스티벌에 단순한 참여뿐 아니라 전시까지 합쳐서 칠천 명 정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공간에 있는 작품은 수를 셀 수 없으니 수천 명이 온다고 가늠하기는 할 것 같아요. 예술계라는 건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이기도 하고요. 바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죠. 그것만으로 충분히 제가 여기에 머무를 수 잇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문호경: 저도 3월에 처음으로 비디오폼 페스티벌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서 클레르몽-페랑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보낼 수 있었는데요. 가브리엘 수셰르 대표께서 설명해 주셨다시피 실제로 영화제 동안 굉장히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여느 영화제하고는 큰 차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지 지역의 학생뿐만 아니라 프랑스 다른 지역 학생들의 작업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요. 홍콩이라든가 중국이라든가 다른 나라의 작업을 대중에게 보여줄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비디오폼 페스티벌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한국에서 비디오아트라고 할 때, 완성도가 높고 예술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 작품을 최종 결과물로 보여주는 것에 좀 더 중심을 둔다면 비디오폼 페스티벌 같은 경우는 정말로 어린 학생들이 비디오 아트라고 하는 디지털 기술이라고 하는 이 툴을 통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그것들을 궁금해하고 그것들을 보여줄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하는 게 다른 비디오아트 페스티벌하고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객 3아까 홈페이지 카테고리에서 ‘비디오 콜렉티브’라는 항목을 봤습니다. 우연히 올해 초 파리에 갔다가 워크숍을 홍보하는 곳에 갔는데요. 비디오 콜렉티브라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비디오를 만들더라고요. 근데 시네마 제작 과정처럼 연출-조연출 식으로 역할이 나누어진 게 아니라 집단 지성을 이용해서 같이 만드는 것처럼 느꼈었거든요. 제가 참여하지는 않아서 정확히 뭔지 모르겠는데, 홈페이지에 비디오 콜렉티브가 있길래 혹시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창작자로 비디오를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가브리엘 수셰르: 비디오 콜렉티브라는 것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나 방문한 도시에 대해서 어떤 형식 없이 3분의 영상을 통해서 제공하는 겁니다. 일반인과 작가 모두가 제작할 수가 있죠.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미국의 작가들과 함께 블로깅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3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 활동이에요. 아까 비디오아트 작가들이 마치 행상들처럼 박스를 가지고 다니면서 작업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잖아요. 그중 한 분께서 자신이 도시 환경에 대해서 영상을 찍고 싶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거는 아트라고도 볼 수 있고 일반인들의 영상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그런 것들이 모여 ‘비디오 콜렉티브’라는 것들이 됐습니다. 저는 사실 작품 활동은 많이 하고 있지 못합니다. 시간도 많이 없고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예술계의 상황을 지켜보고 무엇이 좀 더 저희 활동에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 연계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하거나 또는 유럽에서 현재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작품에 대해서도 펀딩을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그런 부분에 연계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호경: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라는 게 나오기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초기 비디오 아트부터 들어보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제작되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던 작품들도 보셨지요. ‘과연 정말로 디지털 아트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정말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 되어 온 비디오아트의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 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어요.

 

 

녹취 및 정리: 조영은.(아카이브팀 ALT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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