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서울. 한 필름 현상업체가 매일 6톤가량의 폐수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다. 구리와 아연 함량이 높은 독성 산업폐기물은 ‘필름 괴물’의 탄생을 부른다. 가오나시를 닮은 ‘무빙 픽쳐’는 이름 그대로 도시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를 두려워하는 이는 없다. 안타깝게도 괴물이 눈을 뜬 2025년은 필름의 시대가 이미 저물어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그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린다.
<몬스트로 옵스큐라> 속 괴물의 탄생 서사는 봉준호의 <괴물>(2006)을 연상시킨다. 다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 지형을 은유한 <괴물>과 달리, <몬스트라 옵스큐라>는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영화사와 교차시킨다. <열차의 도착> (1895)에서 시작하여 유성 전환기와 테크니컬러 시대를 거친 필름 괴물은, 광화문 광장에서 “필름 스트립 속 자신의 기억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마주한다. 과장이 아니다. 두 차례의 탄핵 정국을 겪은 대한민국의 풍경은 영화적 상상력을 가뿐히 넘어선다. 봉준호는 <미키 17>에서 미디어를 장악한 독재자가 대중을 우롱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려냈지만, 21세기에 계엄령이 선포된 대한민국에서 특정 인물을 향한 가벼운 풍자는 이렇다 할 파괴력을 갖지 못한다. 다가올 미래상을 선취해야 하는 SF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현실에 미치지 못하며 발생한 참사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필름 스트립을 질질 끌고 다니는 괴물에게 묻는다. “필름이네?”, “안에 사람이 있나?”, “이거 진짜야?” 이러한 질문들을 영화 이론의 언어로 전환하면, 배우의 존재론과 현실과 픽션의 경계에 관한 흥미로운 담론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어쩌면 괴물은 자신에게 쏟아진 기대 속에서, 필름이 세상을 지배하던 20세기의 추억을 잠시나마 되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앞서 있다. 탄핵 반대 시위 한복판에 선 필름 괴물은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다. “나라가 망하니 별게 다 기어 나오네.” 필름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에 괴물이 느끼던 설움은 점차 분노로 바뀌어 간다. 그는 ‘기막힌’ 세상을 멸망시키려 광선을 발사해보지만 역부족이다. 힘을 모두 소진한 괴물은 금세라도 아스라질 듯 길 한복판에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현실과 달리 영화는 필름의 몰락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다. 괴물은 마지막 힘을 짜내 몸에 감긴 필름들을 모조리 풀어내 세상을 감싼다. 마침내 세상은 영화가 된다. 거대한 필름 덩어리로 변해버린 지구를 바라보며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필름 괴물이 2025년에 부활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부활이 아직도 유효한 일이긴 한가? 그리고, 긴 잠에서 깨어난 그가 이토록 분노한 까닭은 무엇인가?
김현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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