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인터뷰 읽어주실 분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양지윤 : 저는 홍대에 있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디렉터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운드 아트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사운드 아트 코리아라는 회사의 디렉터로 활동을 하면서 사운드 이펙트 서울이라는 축제도 만들고 있는 양지윤입니다. 현대미술 전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에디터 : [얽힌 스크리닝 Entangled Screening]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이번 네마프의 슬로건과도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는데요. 어떻게 출발하게 된 기획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양지윤 : “얽힌”이라는 게 영어로는 “Entangled”인데요. 어떤 정체성 같은 게 하나의 캐릭터로는 정의되기 어려운, 그야말로 다양한 것들이 섞여 있는 얽힌 상태가 오히려 개개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제가 이제 초대한 작가들은 그 정체성의 출발을 본인 자신의 신체로 삼고, 3D 스캔이나 모션 캡처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얽힌 상태를 활용해 놀이하는 작가들이에요. 제가 생각할 때는 제일 흥미로운 점이 자신을 객관화해서, 내가 가지는 외모라든지 그런 피지컬 한 요소들을 가지고 스스로 놀이하는 것이었어요. 지적인 유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술가가 자신이 자신을 가지고 놀이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네마프 2023의 주제가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 했을 때, 내가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놀이하는 상황도 예술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FF 외전: 흑사병> 스틸컷
에디터 : 기획자님이 쓰신 기획글을 보면 "IT 기업의 상품화 논리 밖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실제로 <FF 외전: 흑사병>은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게임 <GTA V>를 활용한 머시니마 작품이고,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과 <소프트 플레이>는 3D 모델링을 통해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고, 일종의 “메타버스”라 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 작품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 움직이면서도 현실의 맥락(인종주의, 우경화, 젠더, 폭력과 테러 등)을 끌어오는데요. 이러한 얽힘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알고리즘과 AI, 온갖 빅테크 기업과 같은, 그야말로 글로벌 자본주의가 자꾸 우리의 일상을 필터 안에 가두고 현실을 뭔지 질문조차 안 하게 유도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글로벌 자본주의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테크놀로지를 예술가들이 그 상품 논리 밖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 같은 것들에 주목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통한 자본주의의 세계가 지금은 자연환경 같은 게 되었는데, 그런 현실에 대해서 예술가들이 “이렇게 살 수도 있잖아”, “이렇게 놀이할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걸 계속 문제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필터에 갇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AI나 모션 캡처와 같은 것들이 꼭 상업 영화라든지 상업 게임뿐 아니라 대안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관객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상영작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에디터 : 미술과 영상에 게임과 온라인 공간의 경험을 활용한 작업들이 점차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획자님이 말씀주신 것처럼 이번 기획전의 상영작들은 가상과 현실의 '얽힘'을 대안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긍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소프트 플레이>에서 재현된 총기난사라던가, <FF 외전>의 황량한 풍경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면 그러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요. 기획자님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모순적인 상황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아바타'가 확보해주는 '안전한 신체'와 그럼에도 폭력적인 '가상 세계'의 간극 같은 것에 관해서요.
양지윤 : 예술 지상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술가라면 이렇게 불편한 진실 같은 것들을 쳐내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을 노출해서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요. <소프트플레이>도 그렇고, 루양 작가의 <도쿠_이분법적 환상을 뒤엎는 충돌>을 보면 섹스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노출하여 관객과 공유함으로써 어떤 모순이나 충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면서 관객의 다른 어떤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크리닝이나 전시라는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이라고 늘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저는 오히려 가상현실 현 구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그야말로 얽혀 있는 상황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스시우먼의 노래> 스틸컷
에디터 : 앞선 질문들에서 언급하지 않은 세 작품, <The 1975의 생일파티>,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 <스시우먼의 노래>는 대중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각각 영국 록밴드, 케이팝, 노래방 기계의 이미지 등 대상을 끌어오는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가요를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갖게 되는데요. 이러한 작업들이 대중문화를 전유하고 전복시키며, 심지어 가능한 저항의 수단으로 변용하는 순간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대중문화를 자체를 일종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로 뒤집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작품들을 어떻게 선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제가 사운드 아트라는 특정한 장르에 늘 관심을 가지고 굉장히 오래 기획을 해왔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기획사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청각 문화의 99.9%를 차지하죠. 이렇게까지 (획일화된 청각 문화가) 장악하는 공간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늘 했었고요. 때문에 청각 문화에 대해서 코멘트하는 작가들, 상품으로서의 대중음악이나 문화 상품으로서의 장르를 가지고 놀이하는 작가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꼭 상업과 비상업의 구분에 관한 것은 아니고, 이것 또한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것들이 상품이 된 상황에서의 그런 상품과 상품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죠. 한편으로 대중음악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데는 특정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그것들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개별 예술가라면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 자신의 예술 안에서 조금은 다른 것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번 장르전의 작가들을 초대를 하게 되었어요.
에디터 : 대중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장르전의 작품들은 동시에 서브컬처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The 1975의 생일파티>에는 밈 문화가,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는 드랙을, <FF 외전>의 게임과 <도쿠> 속 일본 서브컬처 등 다양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서브컬처는 그 자체로 대중문화와 동떨어진 특성과 정체성을 지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것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지점이 장르전의 제목이 가리키는 '얽힘'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기획자님께서는 그러한 얽힘이 지닌 가치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서브컬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이 향유하던 것들이었잖아요. 이제 글로벌 자본주의와 함께 서브컬처가 개별 상품으로서 소비되고, 소셜미디어와 힙스터 문화 등을 통해서 개성 있는 취향이 담긴 상품이 되어 버린 지금 상황에서 “서브컬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늘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노스탤지어는 아니고요. 개별적인 서브컬처에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개성 넘치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러한 개성과 미감을 재밌게 보여주고 선별해내는 작가들을 초대했어요. 왜냐하면 [얽힌 스크리닝]은 70분짜리의 스크리닝 프로그램이고, 극장에 앉아서 70분을 보는 관객에게도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관점에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작업을 일부러 모았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거나, 사회비판적인 고민을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얽힌 스크리닝]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놀이하는 작업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 스틸컷
에디터 : 3D 모델링이나 애니메이션, 게임엔진 등으로 신체를 재현하는 작품들과 다르게, 듀 킴 작가의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는 실제 작가가 등장하여 춤과 노래를 선보입니다. 얼핏 다른 작품들과 다른 결을 지닌듯한 이 작품을 장르전에 포함시킨 이유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양지윤 : 저는 듀 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아바타라고 생각해요. 이름을 만들고, 자신의 의상, 헤어스타일, 엑세서리도 본인이 만들고요. 작가가 그렇게 놀이하는 게 늘 흥미로웠어요. 듀 킴 작가가 유학에서 돌아오셨을 때 우연히 만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계속 변화시키는 모습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듀 킴 작가는 듀 킴이라는 캐릭터를 계속 구축해 나가고, 동시에 그것을 감추고 이름도 계속 바꾸시거든요. 따로 아바타와 같은 가상의 분신을 만들 필요 없이, 이미 작품 안에서 자신의 분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듀 킴이라는 이름도 본명이 아니고요. 그리고 그것들이 변화하는 본인의 사적인 관계 속에서, 듀 킴이라는 캐릭터도 바뀌어 가는 상황들이 늘 흥미로웠어요.
에디터 : 실제 사람이 등장하는 <우리의 밤이 미래가 될 때까지 ☆ Kiss of Chaos>를 제외한 다섯 작품이 제공하는 신체 이미지는 실제 신체의 리얼한 재현과 언캐니한 재현을 오갑니다. <스시우먼의 노래>가 그것을 극단적인 패러디로 밀어 붙인다면, <소프트 플레이>나 <The 1975의 생일파티>는 아바타와 실제 인물 사이의 동일시를 도구로 삼는데요. '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대주제와 연결하여, 장르전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신체의 확장'이 어떤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저는 소셜미디어 문화 이야기할 때 나르시시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필터를 사용하고, 자신을 가공해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잖아요. 또 한 가지는 TT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가 있는데, 소비자를 젖먹이로 바꾼다는 개념이에요. 소위 “글로벌 리더”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이 단어를 새로운 어젠다로 이야기를 했었고, 거기서 모두를 젖먹이 수준의 멘탈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제가 나르시시즘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발표를 하더라고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뇌를 자꾸 마비시키고요. 그런데 작가들은 나르시시즘이라는 주제를 또 한 번 뒤틀거든요. <스시우먼의 노래>의 이영주 작가 같은 경우는 자신의 신체가 대부분의 작업에서 주제가 되는데요. 동양 여성에 대한 서유럽 남성의 판타지 같은 것들을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뒤틀어버리는 작업을 보여주죠. 저는 이런 작업들이 역설적으로 지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시스템 자체, 혹은 그런 시선 자체를 가지고 놀이할 수 있다는 태도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늘 피해자이고 상처를 말하는 여성의 모습보다는, “너희가 그걸 원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보여주겠어!”라는 태도가 오히려 굉장히 진취적이고, 용감하고, 없었던 동양 여성 캐릭터를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자본이 했던 기획은 나르시시즘을 이용해 뇌를 마비시키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그 상황을 뒤집어 유희할 수 있다는 것들이야말로 확장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지만, 그렇게 놀이할 수 있다는 태도가 이번 장르전에 초대한 작가들에게는 계속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터 : [얽힌 스크리닝] 장르전의 다양한 상영작들과 함께, 네마프 2023의 다른 상영작들을 살펴보면 유사한 주제의식 혹은 형식을 지닌 작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혹시 장르전에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실현되지 않은 작품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양지윤 : 상영작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기후위기에 관한 고민이나 생태와 관련된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번 장르전에 특정한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을 초대했지만, 체제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관해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작업들을 생각하긴 했습니다. 장르전 상영 후 GT에 김규향 선생님을 대담자로 초대를 드렸는데, 그러한 부분을 대담으로 좀 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에디터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네마프 2023을 찾을 관객분들이 [얽힌 스크리닝]을 어떻게 보셨으면 좋을 것 같나요?
양지윤 : 저는 그야말로 즐겁게 봤으면 좋겠고, 웃겼으면 좋겠어요. 웃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여기저기서 세계가 멸망하고 있다는데, 예술가나 저나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 중 하나가 마지막까지 유희하는 태도라 생각해요. 이 상황에서 문제들을 즐겁게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춤출 수 없다면, 당신의 혁명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말이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도 생각합니다.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