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Inter-view
홈 > 대안영상예술 웹진 >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2023 해파리와 함께 하는 비평웹진] [인터뷰] <나는 말이다> 임채린 작가
해파리+박동수 조회수:2005 추천수:11
2023-08-13 14:22:44

에디터 :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임채린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이랑 외국을 오가며 실험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임채린입니다.

 

에디터 : 앞선 작품들에서 꾸준히 섹스와 젠더,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탐구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선 작품들이 다소 추상적인 표현들이었다면, <나는 말이다>는 태몽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욱 특정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내러티브가 이번 영화에서는 미약하게나마 발견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말이다>는 어떻게 출발하게 된 작품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채린 : 실험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느꼈던 게, 말씀하신 것처럼 제 전 작품들이 추상적었어요. 예를 들어 성기와 꽃의 비슷한 상징성과 같은 것을 이야기했었고, 다른 실험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도 추상적인 이야기,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리고 제 전 작품도 거기에 부합되는 작품이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틀을 깨고 싶기도 했고, 작업하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논-내러티브이자 내러티브이기도 한 이 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작 <아이즈 앤 혼즈>(2021)에서는 피카소를 통해 파괴적인, 유해한 남성성에 관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한국인인데 백인 남성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게, 한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서양 미술사 위주로 하게 되잖아요. 제가 작업할 때나 출품했던 영화제도 대부분 외국이었고.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이중섭의 작품을 떠올렸어요. 제가 이중섭의 작품을 관객으로서는 좋아하지만, 같은 미술을 하는 작가로서 좋아할 수는 없었어요. 이중섭 작가가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나라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잖아요. 고향에 관한 향수를 이야기하고. 그런데 가족은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만을 그리고, 물론 이중섭에게 딸이 없긴 했지만 남자아이들만 그림에 등장하고, 여성은 엄마의 모습으로만 등장했고요. 근데 저는 딸이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에디터 : <나는 말이다>가 논-내러티브 작업이라고 소개되었지만, 극장에서 본 영화는 내러티브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채린 : 저는 분명히 이야기를 넣은 것 같거든요. 컨셉 할 때 이야기 구조를 만들잖아요. 그런 구조도 이야기인데, 실험 애니메이션 쪽 분들이나 실험영화 하는 분들에게 작품 보여드리면 다들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하세요. 작품에서 시퀀스마다 표현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것을 이야기가 나오듯이 진행하는 거예요. 처음에 나온 하얀 종이로 만든 장면들은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장면 중에 갑자기 남자 성기가 발기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은 “여기가 분기점이다”라는 느낌으로 넣었어요. 여자들끼리 있으면 성에 관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할 때가 있잖아요.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남자가 죽었는지 아닌지 알려면 성기를 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성기는 계속 움직이니까요. 거기서부터 여자가 춤 추는 장면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염두에 두며 만들었는데, 어떤 분들은 알아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가부장제에서 뛰쳐나오려는 여성이 등장하고, 다음에 이중섭의 작품 속 소년들과 황소가 소개되는데, 황소에 탄 사람이 소년이 아니라 소녀에요. 그리고 반인반마 여자가 등장하고요. 그렇게 구조를 만들긴 했어요. 사실 지원사업에 지원할 때도 느껴지는 게 있어요. 스토리보드나 대본을 요구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다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국적인 주제이고 이중섭을 인용하는 것이 있잖아요. 이 작품이 저에게 왜 중요하냐 하면 가족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고요. 실험 애니메이션에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정당성이 있어야 했어요.


에디터 : 조금 원색적인 질문인데, 젖을 빠는 장면도 두 번 정도 반복되는데요. 저는 그 장면이 여성들 사이의 쟁투 과정 중에 하나로서 받아들였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그 장면을 구상하셨나요?

임채린 : 마지막에 여자 잡아먹는 거인이 나오고, 거대한 여성 반인반마를 끌고 가는 남자들도 나오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 속 여성이 가두어진 동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양분을 빨아 먹는다는 생각을 했고요. 프란체스코 클레멘트라는 현대미술 작가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The Black Book>(1989)인데, 남자가 이득을 취하는 그런 장면이에요. 남자가 여자의 젖을 빨고 동시에 다른 여자가 남자의 성기를 빨아주는 장면인데요. 이 남자는 여자한테 모든 걸 다 취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여성으로는 “뭐지?” 싶은 기분인데, 그것을 축복이라고 하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너한테나 축복이지 나한테는 재앙인데” 이런 생각도 들고. 남자들이 원색적으로 여자를 지배한다는 식의 생각이 담긴 행위더라고요. 그런 많은 게 응축되어 있다고 할까요.
 

에디터 : <나는 말이다>는 감독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꾸셨다는, 각각 호랑이와 야생마가 등장하는 태몽을 자막으로 소개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중섭의 황소와 소년 그림들을 등장시키는데요. 이중섭이 태몽에 관련된 작품을 남기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태몽과 이중섭 사이의 연계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임채린 : 아이디어는 이중섭의 작품에서 출발했어요. 이중섭 작품에 여자아이가 없다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닌 거예요. 여성으로서 모두가 느끼는 이야기지만 보편적인 이야기이잖아요. 저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힘든 일 있을 때마다 “너는 말 태몽이니까 괜찮아. 어떻게 잘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꾼 야생마 태몽이나 외할머니가 꾸셨던 호랑이 태몽도 사실 딸에게 주어진 태몽은 아니라, 아들에게 주어지는 태몽이거든요. 이게 이중섭의 작품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태몽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이중섭 작품과 연결시켜준 것 같아요.


에디터 : 작품에서 꾸준히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하고 계십니다. 전작 <아이즈 앤 혼즈>에서는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 연작을, 이번 <나는 말이다>에서는 이중섭의 작품들을 직접 인용합니다. <플로라>(2018) 같은 경우에는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들을 연상시키는데요. 꾸준히 미술가들의 작업을 인용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채린 : <플로라>같은 경우는 3D로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지아 오키프 작업이랑 연관되게 만들어졌어요. 제가 지식을 외우는 것을 좋아해요. 한국사를 보면 시대를 나눈 연표가 나오잖아요. 미술사에서도 현대미술을 인상주의부터 시대별로 구분하고요. 그런데 미술관에서 자연스럽게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내가 없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은 엄청 적잖아요. 이제야 발굴되는 분들도 계시고. 여기에서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나랑 비슷한 사람은 왜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아이즈 앤 혼즈>에서 인용한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 연작을 보면 수많은 여자는 모델에 국한되어 있고, 남자는 피카소 혼자서만 나와서 난교를 하는 장면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런 작품들도 현대 미술로 인정받으며 본받을만한 작품이라고 전시되지만, 여성으로서 저에게는 포르노그래피로만 느껴졌어요. 남성이니까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공부하는 과정에서 항상 없었던 여성의 자리를 생각하게 되고.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를 다닐 때도 남자 교수 밖에 없었거든요. 이렇게 쭉 연관되어서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에디터 : 감독님의 홈페이지에서 이번 영화의 제작과정 사진을 보았습니다. 쿠킹호일을 활용해 판화를 제작하는 키친 석판화(kitchen lithography) 기법을 사용하셨는데요. 그 때문인지 독특한 질감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 같습니다. 제작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채린 : 사실 이중섭의 은지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이중섭 작품 중에서도 은지화를 가장 좋아하기도 했고요. 은지화의 느낌을 구사하면서도 동양화 느낌의 붓터치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적합한 키친 석판화 등의 작업방식을 찾아보았고요. 그렇게 찍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판화를 스캔하거나 위에서 촬영하는 과정이 있는데, 전작 <메이트>(2019)에서 조명을 달리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동판을 다뤘던 것처럼 재미있는 질감들이 나오더라고요. <나는 말이다>를 보면 중간부터 배경이 등장하는데 전부 호일이에요. 그런데 호일이 스캔하는 스캐너 종류에 따라 질감이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레지던시에 있는 성능 좋은 스캐너와 제가 몇십 만원에 싸게 산 스캐너랑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응용했습니다. 애니메이팅 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찾으려고 해요. 나중에 편집할 때 쓸 수 있도록요.

 

에디터 : 3D 모델링을 사용하신 적도 있지만, <메이트>, <아이즈 앤 혼즈>부터 이번 작품까지 판화 기법을 활용하고 계십니다. 애니메이션을 판화로 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는데요. 애니메이션의 기술 대신 미술의 기술인 판화라는 매체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채린 : 작업 하다가 손목 인대가 파열돼서 수술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동판 재질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좋은 이유가 찍혀서 나온 그림보다는 반짝반짝 빛나는 판이 빛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촬영해서 작품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더불어, 아까 말한 것처럼 변수를 많이 찾으려고 해요. 이것저것 시도해보는데, 논-내러티브 애니메이션이다보니 비주얼이 달라야 작품의 구조가 만들어지거든요. 재료의 질감을 최대한 많이 구현해내는 데 사실 판화만큼 재밌는 게 없었어요. <메이트> 같은 경우에도 잉크를 칠하기 전에 스캔한 것과,잉크 칠하고 찍은 후에 스캔한 것이 다 다르게 나와요. 그렇게 질감을 채집하는 느낌을 가지고 점점 더 다른 걸 시도하게 된 것 같아요. 2D 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보면 색칠하고 명암을 입히는 작업이 이어지잖아요. 포토샵을 통해서 하나씩 다 색칠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반복되는 작업을 못 견디겠는 거예요. 그런데 판화 같은 경우에는 변수를 만들 때 의도가 있어도 어떻게 나올지는 알기 어렵잖아요. 예상하지 못해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에디터 : 감독님의 다음 작품도 궁금해집니다. 준비중이신 작업이 있으시다면 짧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채린 : <아이즈 앤 혼즈>는 독일인 프로듀서와 작업을 했어요. 사실 프로듀서와 감독 사이의 관계가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많이 힘들어요. 신진 감독은 많은데, 유럽 같은 경우엔 프로듀서가 없으면 지원금 신청을 아예 못해요. 그러니까 프로듀서한테 권력이 있는 거예요. 저는 해외 영화제에 도전해보려고 독일인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불합리합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그쪽은 이게 관행이더라고요. 아무것도 증명한 게 없는 신진 감독이니 이 정도의 불합리는 감당하라는 것 같았어요. 감독 출신인 교수님들도 제가 참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아이즈 앤 혼즈> 작업은 잘 버텨서 끝냈는데, 그 후에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저는 제가 만만해서 저에게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프로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관을 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소녀 귀신이 되어서 쫓아다니고 놀래키고, 죽을 때까지 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음 작품이 여기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다음 작품은 원혼 이야기인데, 원혼의 입장을 담아낼 것 같아요. 한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기도 하고요. 좀 잔인한 이미지가 담길 것 같지만, 인간적인 귀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통 좀비 같은 것은 징그럽게 묘사되잖아요. 저는 그런 것 말고 인간적인 귀신, 소녀 귀신이 주제일 것 같습니다.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SNS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