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부문2: 두 사람을 위한 식탁» GT
일시: 23.08.15(화) 14:10 상영 후
모더레이터: 김승경
참석: 김보람
김승경 모더레이터(이하 김승경): 저는 ‹피의 연대기›를 보면서도 조금 학습하는 느낌으로 봤었거든요. 사실 저도 겪고 있는 일이고, 거의 모든 여성이 갖고 일이기도 하죠.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전쟁과 관련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알아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또 다른 결의 다큐멘터리인 것 같아요. 처음 기획하셨을 때와 작품을 만들어 가시면서 가장 크게 달라졌던 부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김보람 감독(이하 김보람): 얼마 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글을 읽었는데요. 극영화에서도 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그 ‘사람’ 자체로 관심이 가는지 많이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많은 여성 분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 모녀이야기도 한 부분 있었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발견하지 못했었어요. 근데 두 분을 만나고 무언가 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영화의 결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의 삶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형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김승경: 그렇게 결이 만들어진 게 저만의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카메라가 두 사람을 굉장히 가까이서 관찰하고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물론 집안이 작아서 어쩔 수 없이 관망할 수 없는 각도일 수 있겠지만, 카메라가 이들과 마치 동등한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친밀하게 다가갔던 의도가 또 있으신가요.
김보람: 무언가 각도를 재거나 계산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다고 하루 종일 옆에서 카메라를 돌리면서 촬영하지도 않았고요. 저희가 촬영하는 시간 동안 채영 씨의 증상과 상태가 좋은 날도 있고, 좋지 않은 날도 있어서 그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을 거쳐 지금 저희 세 사람이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는 일종의 카메라가 있는 상담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카메라가 있어서 두 사람이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촬영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이 저한테 오 년 이상 채영 씨가 증상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이야기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십 년 만에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었다고요.
관객 1: 전체적으로 무거운 이야기가 많은데도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좋았습니다. 거리를 유지하는 시선이 있는데 사실상 당사자는 아니잖아요. 외부인으로서 촬영을 가한 입장인데, 어떻게 그 거리를 유지하셨는지 궁금해요.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고들고 싶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더 많은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보람: 저도 어느 시점부터는 두 분의 대화에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저한테 들려주셨죠. 소설에서 읽었더라면 그저 감동받고 지나갈 수 있지만, 제삼자인 제가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제가 노력했던 적은 없거든요. 촬영할 때마다 그냥 밥 먹고 떠들면서 두 분과 친해진 것 같아요. 제가 두 분의 삶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어떨 때는 버거운 문제에 대해 두 분의 고통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가에 대해 저희끼리 이야기했거든요. 그렇게 과정과 결과는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음악이나 색 보정하는 후반작업에서 어떤 거리감을 형성하려고 했죠. 저희 음악 감독님께서 모녀가 이야기할 때 감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일상적인 톤으로 가려고 했고, 여지를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색 보정도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라이트 주고 콘트라스트를 낮춘다든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거리감을 두려고 했죠.
김승경: 관객분께서 말씀해 주신 거리감을 저도 느꼈던 부분이 엔딩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둘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 투 샷이 많이 쓰였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각자 무언가를 향해 바라보고 있어요. 채영 씨를 부르는 상옥 씨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순간이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둘은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가 있음을 의식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주시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객 2: 영화 속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도 듣기 힘든 이야기를 카메라가 상정하고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부엌에서 냉장고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보는 관객으로서도 감정적으로 놀라웠지만, 영화적으로 어떻게 잡아내신 건지 더욱 놀라웠어요. 카메라의 이동이라든가 사운드적으로 매 순간 극적으로 느껴져서 계산적으로 찍은 것 같았는데요. 어떻게 치밀하게 만드셨을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김보람: 너무 감사합니다. 일단 <교토에서 온 편지>를 연출한 김민주 감독과 계속 같이 촬영하고 있는데요. 두 분을 찍기로 결심했을 때, ‘무주’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누군가 저를 찍는다면, 어떻게 인물이 그려지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니 ‘공들였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종종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물어봐 주시는데, 두 분께서 우리는 항상 한다, 무엇이 내밀한 이야기냐고 말씀하세요. (웃음) 처음 부엌에서 두 분이 다투는 긴 대화를 찍고 나서 (상옥) 선생님이 이렇게 재미없는 걸 왜 찍으려고 하냐고 하셨거든요. 이렇게 특수하고 이상한 모녀 이야기를 사람들이 보겠냐고 걱정도 하셨어요. 어떤 관객분께서 저한테 운이 좋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두 분을 만난 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객 3: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정황이 많이 주어지진 않았는데, 그것이 불친절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따뜻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엔딩크레딧에 정우의 ‘양’이라는 노래가 나오잖아요. 되게 잘 어울렸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선곡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보람: 음악감독님께서 엔딩크레딧 음악을 작곡하고 계시던 와중에, 금산구청에서 <피의 연대기> 상영을 하신다고 해서 금산에 가게 되었는데요. 정우 님이 <피의 연대기> 코러스를 해주셨거든요. 근데 금산 출신이라는 거예요. 거기서 공연을 하신다고 하셔서 만나서 보고 있었는데, 그때 ‘양’을 부르셨어요. 너무 좋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계속 들으면서 올라갔거든요. 제가 원래는 늘 채영 씨의 입장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상옥 선생님의 마음도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제가 영화를 만드는 기간 내내 감정을 절제하고 사람들의 감정도 절제시키고, 컷과 컷 사이에서의 감정에 빠져들어 가서 눈물이 나오면 사이에 다 잘라버리려고 했는데요. 엔딩에서만큼은 제가 느꼈던, 정말 지긋지긋한 사랑에 관한 감정을 넣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께서 나중에 보시고는 너무 본인 이야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도 맨날 ‘양’을 듣는다고 하세요.
관객 4: 저도 딸과의 관계가 생각나서 공감하면서 보았습니다. ‘특수하고 이상한’ 모녀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하는데 되게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졌어요. 섭식장애에 관해 잘 알지 못했는데 모녀간의 상처와 연관해서 보니까 더 깊이 다가왔어요. 저도 딸을 둔 엄마지만, 영화 속 두 분 각각의 입장 모두가 이해되더라고요. 저도 집에 가서 딸과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제 딸에게도 제가 모르는 상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되게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계신 건지 궁금했어요.
김보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완성하고 관객분들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채영 씨가 오랜 기간 동안 증상 없이 지냈다고 십삼 년 만에 이야기 해주셨거든요. 두 분께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과 고통이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본인의 모습과 상태에 대해 편하게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얼마 전 제가 채영 씨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저와 선생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항변을 했어요. 채영 씨는 항상 참고 무언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상태가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이렇게까지 주변 사람을 슬프고 아프게 할 줄 몰랐다고 하셨어요.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병리학적으로 십 년이 지나면 완치되기 힘들다고 말해요. 근데 그걸 떠나서 본인의 상태와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기인 것 같아요.
김승경: 영화가 섭식장애를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조금씩은 결핍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영화 초반에는 채영 씨가 혼자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안도하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상옥 씨와 함께 만들어 먹고, 할머니의 제삿밥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삼대가 함께 식사하잖아요. 생각보다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먹는 장면에 대한 의도가 있으신가요.
김보람: <피의 연대기>도 먹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생리 영화라고 하면 다들 긴장하고 들어오실 텐데, 먹는 것으로 시작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타인과 밖에서 밥 먹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하게 밥 먹는 걸로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선생님께서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셔서, 영화에는 담지 않았지만 저희끼리 정말 많은 시간 동안 밥을 같이 해 먹는 시간을 가졌어요. 채영 씨가 영화에 출연하면서 가장 싫어했던 점이 미디어에서 흔히 섭식장애를 다룰 때 나오는 장면들을 상기시키는 거였죠. 그래서 최종적으로 병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영화도 아니고, 충분히 정보가 제공되었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먹는 걸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김승경: 사실 섭식장애를 다룬 영화라고만 했을 때, 아마 많은 분이 채영 씨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실 거예요. 저도 영화 보면서 남의 일이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한 것은 아닐까 반성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두 분이 대화할 때, 선생님께서 항상 “그랬겠다.”라고 담백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예전에 우리가 ‘그랬구나~’라는 유행어 때문에 희화화된 표현이지만, 저는 그 말에 담긴 힘이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음식을 먹는 장면도 그렇게 힘을 주는 장면이었고요.
관객 5: 상담받는 장면이 영화의 처음에 잠깐 나오는데요. 이후로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궁금했습니다.
김보람: 올해 채영 씨가 비건 식당을 운영했었는데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그 시기에 상담받던 장면인데요. 상담사가 채영 씨에게 “내가 잘했어.”라고 말하라고 하니까, 말하기 굉장히 힘들어하면서 우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철수했고, 상담은 이어지면서 두려운 게 무엇이냐고 질문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도 ‘두려운 게 무엇이냐’는 화두를 던지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희도 편집본에 구구절절하게 파고 싶다고 해서 성공한 장면도 나오고, 상담 장면도 훨씬 많이 넣었는데요. 그냥 어떠한 문제에 관한 뉘앙스만 주고 넘어가자고 합의했어요.
관객 6: 채영 씨의 상처나 아픔, 어떤 어려움도 잘 이입해서 볼 수 있게끔 만드는 감독님의 시선이 감동적이고 무척 따뜻했습니다. 처음에 섭식장애를 가지고 이야기해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으셨을 때와 한편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난 다음에 섭식장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더 많은 분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분들께서 가장 힘들어하시는 게, 전문가의 입장에서 분석되고 카테고리화 되는 상황에서 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영화를 마무리한 건 사실 이것은 하나의 케이스이고,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정도로만 설명할 수 없었던 한계가 있죠. 마음, 정신, 몸의 문제라는 것, 그 특수한 것을 다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정도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문제 같아요. 왜곡된 세계 안에서 영화나 문학의 역할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승경: 식상한 질문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차기작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말씀 부탁드릴게요.
김보람: 제가 되게 사소한 질병이 많아요. 비염, 결막염…. 그래서 이걸 치료하고자 많은 민간요법과 대안의료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그런 어쩔 수 없는 지병을 안고 사는 남녀가 한의원에 가는 가벼운 이야기를 가지고 극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안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관련 책을 읽었는데요. 섭식장애와 마찬가지로 사회 우울증의 영역이 굉장히 왜곡되어 다루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요. 다큐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저희 엄마가 저를 자랑스러워하시면서도 항상 아쉬워하세요. 돈도 못 번다고 맨날 마음 졸이시는데, 채영 씨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딸 아프구나하고 엉덩이 두들겨 주길 바랐지, 본인 때문에 걱정하며 울길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저도 엄마가 그래도 짧은 인생 멋있게 산다고 해주길 바라죠.
김승경: 사실 우리나라에서 모녀 관계라고 하면 엄마가 딸을 분신처럼 여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식들도 그걸 충분히 의식하면서 살게 되거든요. 저는 두 역할을 다해보고 나니까 이해하게 되었어요. 엄마와의 관계는 풀어야 할 숙제는 아니고, 그렇게 함께 서로 이해하며 가야 하는 관계인 것 같아요. 아마 사회 속에서 함부로 재단되었던 이야기를 많이 다루시는 것 같아요. <피의 연대기>, <내 코가 석재>, <자매들의 밤>을 한번 쭉 이어서 보시면 김보람 감독님께서 사소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김보람: 들어오기 전에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는데, 모녀가 나오거든요. 엄마가 나를 사랑했는데, ‘사랑해. 근데 사랑하는 거 왜 이렇게 힘들어. 왜 이렇게 지옥이야.’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해요. 저도 눈물이 핑 놀았는데, 선생님과 채영 씨를 보며 배운 게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지금 그걸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힘드시다면 권여선 작가의 책도 추천해 드려요. 오늘 광복절인데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녹취 및 정리: 조영은(아카이브팀 ALT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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