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 안녕하세요, 김신재 큐레이터님.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신재 : 안녕하세요, 저는 시간 기반 미디어와 리서치 기반 실천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기획을 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동행하는 김신재입니다. 미술관, 비엔날레, 페스티벌 등을 오가며 일했고, ‘사이’에서 발생하거나 횡단의 모험을 자처하는 상호학제적 작업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에디터 : 김신재 큐레이터님이 기획하신 주제전의 제목은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입니다. 제목만 놓고 생각해 보면, 주체 혹은 비체가 장소를 감각하는 방식과 물질의 어떤 그물치기가 얽혀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이런 뜻 풀이가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주제전의 제목을 이렇게 지으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김신재 : 너무나 훌륭하게 풀이해주신 것 같아요! 작품을 먼저 골랐기 때문에 주제전 상영작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확정하게 된 제목이에요. 원래는 다른 가제가 있었는데, 제목을 바꾸면서 방사능 같은 보이지 않는 물질과 장소의 관계, 인간과 인간 너머 존재들이 이루는 상호작용의 매트릭스를 다루는 여러 작업을 아우를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외에도 단어들이 어떤 지도를 펼친다고 생각했고, 서로 이루고 충돌하는 감각과 작용을 고려했던 것 같아요.
에디터 : 큐레이터님이 쓰신 주제전 기획글을 읽어보면, 참사와 더불어 느린 재난이 인간과 자연, 기술이 맺는 관계를 재설정하기를 요청한다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더불어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소개된, 재난 상황에서 미술관의 대안적 전시 방식을 모색하는 위성프로젝트 <반향하는 동사들> 같은 큐레이터님의 기획을 살펴보면 재난과 관계 재설정에 관한 고민을 코로나 19 이후부터 계속해 오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 주제전이라는 기획이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신재 : 국립현대미술관 이수연 학예연구사님의 제안을 받아 <반향하는 동사들>을 기획할 때는 사실 팬데믹이 드러내는 취약함의 여러 측면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스티븐 J. 잭슨(Steven J. Jackson)의 「Thinking Repair」라는 에세이를 추천해주셨는데, ‘손상’과 ‘회복’에 대한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론적·인식론적 위기를 마주했다고 생각하던 중이라 부지불식간에 기획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재난’은 저에게 지나치게 거대한 개념이자 압도적 현실이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접근의 입구를 찾은 건 의외로 제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무렵에 썼던 단편 소설을 작년에 다시 읽으면서였어요. 그때만 해도 ‘재난’을 일종의 은유나 알레고리로 그렸다면, 지금은 훨씬 구체적이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으로 다루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작년 10월과 올해 4월, 스발바르와 후쿠시마에 뚜렷한 목적 없는 답사를 다녀온 이후, 느슨하게나마 계속 이런저런 점들을 찍고 이어보는 과정에서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에디터 : 큐레이터님이 기획한 주제전의 작품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경로들은 Nemaf 2023의 주제인 “신체의 안전한 확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는다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작품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신재 :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침↑폼이 시작하고, 쿠보타 겐지, 에바/프랑코 마테스, 제이슨 웨이트가 함께 기획한 '돈 팔로우 더 윈드(Don't Follow the Wind)' 프로젝트와 동명으로 출간된 책을 보면,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대피 당시 바람에 실려 퍼져나간 먼지처럼 사람들 역시 소문을 따라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공교롭게 저도 이러한 작품들을 여행과 대화 과정에서 동료들을 통해 굉장히 사적인 경로로 만나게 되었어요. 저는 ‘재난 이후’, 혹은 ‘느린 재난’의 다양한 양상 중에서도 방사능 오염과 원자력 발전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과 같은 기반시설에 대한 리서치를 먼저 시작했어요. 하지만 너무 거대한 문제여서 제 스스로 너무 추상적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나 싶던 차에 <선별과 해석과 소란의 공생>은 후쿠시마 여행 때 현우민 작가가 소개해줬고, <체르노빌 22>은 저와 관심이 비슷해서 만나자마자 한참 수다를 나눴던 펠리시아 혼카살로(Felicia Honkasalo) 작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어요. <야생 친척들>은 제가 작년에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있을 때 노르웨이에서 PRISM을 운영하는 마이크 스펄린거(Mike Sperlinger)라는 동료가 추천해준 작품이고요.
<선별과 해석과 소란의 공생>
<체르노빌22> 스틸컷
에디터 : Nemaf 2023의 주제인 신체의 안전한 확장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신체의 확장의 안전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19세기에 이르러 여성, 자연, 그리고 기계가 남성의 지배와 권위를 위협하는 공포를 야기하는 ‘타자성’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논의 지점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 기술 발전의 시대인 오늘날 다양한 타자들과 안전하게 이야기 나누는 방식에 관해 고심하는 작품에 관해서 Nemaf 2023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신재 큐레이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신재 : 솔직하게 말하면, “안전한 신체의 확장(Expansion of Entangled Bodies)”이라는 제목에서 ‘안전’과 ‘확장’이라는 단어에 여전히 물음표를 갖고 있고, 제 스스로 아직은 명확하게 해소하지 못한 상태예요. 그래서 영문 제목의 “entangled”라는 단어가 국문 제목과 다소 어긋나는 듯 하지만 오히려 약간의 보완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사건사고들처럼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다양한 존재들을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과 생태적 위협을 복합적이고 중첩된 위기로 보고 ‘안전’과 ‘돌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많은 진단들에 동의하고, 그런 차원에서 ‘신체’를 비-인간 존재나 기술과 얽힌 관계로 확장해서 해석해보려 했어요. 말씀하신 것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 큐레이터님이 선정하신 작품은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활용하여 이미지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요즘 게임 엔진이나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이 많이 선보여지고 Nemaf 2023에도 그러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요. 주제전에서 소개하진 않았지만 큐레이터님이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셨거나 관심 있는 Nemaf 2023의 작품이 있을까요?
김신재 : 요즘 많은 상업 영화의 VFX에서는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이 볼류메트릭 캡처나 모션 캡처와 결합되고 있고, 실사 영화조차 게임 엔진이나 3D 모델링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종종 음악방송 같은 데서 배경이 되는 LED 미디어월에 물결 무늬 무아레(moiré) 현상이 나타나는 걸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버추얼 프로덕션에서는 이 무아레를 지우는 게 중요한 과제인데, 저는 기술을 활용하는 동시에 매체의 조건을 드러내는 작업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고 또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플레이되는 몸/이미지/기술]의 이은희 작가 작업이 보여주는 기술과 신체에 관한 물질적 조건과 토대에 대한 탐구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에요.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의 다른 기획인 양지윤 기획자님의 [얽힌]에서 말씀하신 기술을 활용해 탈신체화, 또는 재신체화를 다룬 작업들이 소개된 것으로 아는데, 행사를 준비하느라 놓치게 되어 아쉬워요.
에디터 :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공통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해 온 기술과 자연, 인간, 비-인간 종의 얽힘을 살펴봅니다. 주제전에 소개된 작품 외에도 이러한 얽힘을 살펴보는 작품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주제전에서 소개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 작품이 있을까요?
김신재 : 꼭 상영했으면 했던 작품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그니에슈카 폴스카(Agnieszka polska)의 ‹꽃의 서(The Book of Flowers)›라는 작품이에요. AI 이미지 생성 모델 Stable Diffusion과 16mm 필름 포스트프로덕션을 결합한 단편영화인데요. 수천 년 동안 꽃과 인간이 밀접한 공생 관계를 유지해 온 식물 생태계에 대한 또 다른 역사를 제시하는 SF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이라 꼭 틀고 싶었는데, 이제 막 유럽 외에서 프리미어를 하는 중이라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어요. 그외에도 리아 리잘디, 아나 바즈, 우르술라 비에만, 엘리 허경란 작가 등의 작업을 고려했는데, 이번에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고 진행 중인 작품들도 있거든요.(웃음) 이번에 기획한 프로그램이 단발적인 기획보다는 장기적인 리서치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유기적으로 생성되고 이어지기를 바라요.
에디터 : 관객들이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 주제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으신가요?
김신재 :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비롯해 재난이 일상화된 지금, 기존 지식에 의지해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저는 한동안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 중심적 픽션을 프로그램화하는 것은 아닌지, 세계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줄 수 있을지에 대한 뭉툭하고 답도 없는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주제전을 기획하면서는 어떻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것보다는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고요. 적어도 다른 장소와 연결되고 감각을 열어둘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랐어요.
에디터 : 마지막으로 현재 김신재 큐레이터님의 관심 주제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신재 : 최근에는 감각과 기술, 인프라에 대한 질문을 듣는 일과 엮는 데 관심이 있어요. 여전히 리서치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어서 말하기가 다소 조심스럽지만, ‘재난 이후’, 혹은 ‘느린 재난’을 방사능 반감기(half-life) 같은 인간의 인식을 초과하는 시간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한편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들 역시 조금씩 따라가고 있어요. 감당 불가능한 주제가 아닌지 망설이기도 하고 약간의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핵 문화에 대한 연구나 프로젝트를 살펴보기도 하고, 동료들을 따라 캐런 버라드의 페미니스트 유물론 관련 스터디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야생 친척들> 스틸컷
글. 해파리+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