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에 등장한 다소 괴이한 형태의 펭귄 한 마리는 기존의 인식과 사고체계가 스크린 속 공간에서만큼은 전혀 효력 없음을 일찌감치 방증한다. 인간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합치하는 공간으로서, <끝섬>은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멸종된 생명체들을 위해 정혜정 작가가 제안한 또 다른 친자연적 공간이다. 육안으로 마주하지 못했기에 인간의 기억 속에서 생존 못한 이들을 복원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대상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가상으로나마 인간과의 공생을 실현시키기 위한 의도가 내포되었다. 발이 달린 펭귄을 필두로 생명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끝섬의 생태계는 생경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부재중인 그들의 존재감과 기억을 우리의 인식 속에 조금씩 주입하기 시작한다. 비둘기와 영양이 뛰노는 한낮을 필두로, 반딫불이 한창 활동하는 어둠을 지나쳐 다시금 일출하는 순간까지의 반복되는 패턴은 <끝섬>의 유일한 서사다. 그 안에서 모든 생명체들은 필연적으로 속절없이 밀려오는 시간의 흐름을 맞이한다. 이는, 순식간에 끝섬의 생태계를 뒤엎는 파도로 상징되면서 어쩔 수 없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필멸체로서 운명을 드러낸다. 그 순간 전환되는 화면을 통해서 공개된 섬의 내부를 꽉 채운 눈동자들은 미처 이들에게 도달하지 못한 인류의 시선을 연상시킨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기억 속에서 이름도 형태도 모른 채 오랜 시간 부재중이었던 그들을 향한 작품의 정서는 어딘가 애도에 가까울 만큼 처연함이 은연중에 감돈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은 <끝섬>에서 무의미하다. 생명 그 자체로서의 단일한 대상, 그뿐만이 존재하고 사라질 뿐이다. 그렇게 자연과의 공생은 또 다른 형태로, 또 다시 실현된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