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늘 굵직한 존재감을 차지하는 건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일제의 독재 치하에서 벗어난 한민족은 자주 국가로의 앞으로를 꿈꿨지만, 그들이 꿈꾼 미래는 장밋빛 희망 대신 첨예한 이념 갈등으로부터 분출된 시뻘건 피로 물들었을 뿐이다. <메이, 제주, 데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들이 건넨 증언을 토대로 가슴 아픈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가 자행한 학살의 기억은 여전히 생존자들을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만든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를 떠나보낸 생존자들의 회고는 그 자체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만들지만, 생존자들이 증언 과정에서 그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주름진 손으로 그린 올망졸망한 그림체가 유발하는 강한 대조와 함께 제주 학살의 실체를 보다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가슴 아픈 역사의 재현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통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의 오늘을 포착하며, 영화는 제주 4.3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망한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이들을 뒤로한 채 남겨진 자로서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들이 주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는 저절로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회고 과정에서의 쓰린 감정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걷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소멸될 그날의 기억은 오로지 자신들만이 되살릴 수 있다고 생존자들은 믿는다.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가슴 아플지 언정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암울했던 지난날에 굴복하지 않은 채 소멸될 뻔한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부여잡으려는 그들의 몸짓에서 다시금 기억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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