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미투>는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이소람 감독의 #MeToo 운동 이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네 편의 작품들은 회고적인 성격을 취하고 있지만 내부의 목소리는 현재의 나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어제와 오늘은 이어진다.
“선생님한테는 잘 보이지도 말고, 잘 못 보이지도 말고 그냥 보이지 말래.” 여고에서는 자발적 삭제를 요구하는 소문이자 사실인 괴담이 돌고, 포스트잇을 구매하며 수험생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학생들은 그것을 창문에 붙인다. 스쿨미투 운동의 시작이다. 선생님께 나쁘게 보일 경우 생활기록부에 좋지 않게 적힐 수 있는 것. 당하고 목격한 이들이 수두룩해도 피해자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 학생과 선생님, 여성과 남성이라는 위치가 만들어내는 위계를 중심으로 충돌하는 대화들을 듣고 있다 보면 <여고괴담>은 스크린 아닌 학교에서 보게 되는 현실임을 알게 된다. 졸업 앨범 속 선생님의 얼굴이 익명의 1인처럼 등장하는 장면은 많은 사실들을 수면 위로 올린다. 지금도 누군가는 숨어 있다.
두 번째 단편인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에서는 주인공 정순이 자신의 성폭행 트라우마를 대하는 과정과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 정순은 애써 씩씩하게 행동하고 노트에 빼곡하게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문장을 적는다. “그런데 내가 못한 게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아픈 이야기를 한다는 것.” 정순은 고향으로 가 스스로를 위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바다와 산과 밭에서 씩씩하지도, 강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았던 자신을 받아들인다. 단편은 정순이 하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기교 없이 가만히 들여다 보듯 담고 있다. 음성 역시 대부분 정순의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메라를 따라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표정과 몸짓 그리고 빼곡한 노트를 보며 - 나에게도 있는 -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이 단편이 선사하는 고마운 경험이다.
“너 아직 새내기라 그래. 난 이제 그런 거 잘 모르겠어.”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던 지인이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나에게 했던 말이다. 당시에는 무슨 그런 말이 다 있냐 했지만 지금에 와선 그 말에 담긴 현실이 피부로 와닿는다. <이후의 시간>은 문화예술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 창작자들이 당면해 있는 현실적인 고민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권 운동 하다가 내 작품 못 만들면 어떡하지. 생계와 직결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왜 특정 개인의 막중한 책임이 되고 역할이 되는 거지. 여권 운동과 창작. 나의 자리는 정확하게 이분될 수 없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은 모두의 과제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단편인 <그레이 섹스>는 여성들의 섹스 경험을 다루고 있다. 당사자에게 있어 관계에 대한 경험이라는 것은 촘촘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발화할 때엔 많은 것들이 탈락된다. 기분 탓인 것 같고, 사소한 이야기인 것 같고. 그러나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가장 사소한 것에 있을 때가 많다. 애니메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나레이션들은 이 탈락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반갑다. 내가 왜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마모되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는지. <그레이 섹스>는 많은 목소리들이 지나간 이후에도 언어화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섹스 경험을 다루고 있어 많은 이들이 만났으면 하는 이야기다.
네 개의 단편들은 공통분모가 여성일 뿐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여성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성 내에서도 떠오르기 쉬운 이야기가, 그렇지 못한 이야기가 있고 후자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가 반가울 것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방향성은 격동 이후에도 남아 있는 목소리에 경청하자는 것. <애프터 미투>는 계보화의 끈을 잡고서 여성들의 크고 작은 경험들을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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