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인간은 Y로 추정되는 인물의 독일어 나레이션과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Y의 죽음과 새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새인간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지능도 비슷하지만 새인 존재이다. Y가 새인간인지, 새인간을 믿는지에 관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 질문의 동력은 사랑이다.
Y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것 같다. Y는 새인간을 믿었고 새인간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반에는 뛰어내려야 하는 삶이 있다고 나온다. 두 사람은 그래서 더더욱 새인간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 같다. 새인간을 믿지 않는 누군가는 새인간을 잡으려고 덫을 짜지만, 이들은 떨어지는 모든 존재를 받아주려고 둥지와 그물을 짠다. 그리고 새인간을 구분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새인간은 ‘TI-TI’소리를 내며 울기에 무자비하게 울려서 울음소리를 듣거나 귀에 물을 부어 죽어가는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지 못한다. 울리는 것에 소질이 없고 너무 잔인한 방법이라서 이 순수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물론 그래서 서로를 사랑한다.
이들의 사랑은 정말 순수하다. 이들이 그토록 새인간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유는 새인간은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이라는 직접적 언급은 나오지 않았지만, Y가 새인간이라면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들은 사랑하면서 죽어버려라는 편지를 썼다. 그래서 수신자는 자기를 미워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발신자는 말한다. 점에서 자기 주위에 한 명이 죽는다고 그래서 운명을 거스리기 위해 어젯밤 5천 번 너를 죽이고 제사를 지내고 편지도 썼다고 말이다. 운명도 죽인 사람을 죽이진 못할 거니까. 그러면서 30살에 죽으려고 했던 과거의 말을 부정하며 30살부터 매년 파티를 하며 세상에 망하고 좀비가 목을 물어뜯을 때까지 살자고 한다. 이때 화면에 둘의 얼굴이 꽉차게 잡히고 일정한 리듬으로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게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친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 웃으며 무너지는데, 정말 아름답다. ‘사랑’이란 말이 부족하다.
전시는 두 개의 화면을 사용하고, 영상과 애니메이션, 대사와 나레이션, 자막을 활용한다. 화면을 분리해 구체적인 사람이나 이름 없이도 대화하는 형식을 만든다. 새인간은 낯선 개념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영위한다. 정체성과 죽음과 삶, 사랑의 문제들을 건드린다. 어느 감독이 예술은 죽으려 들어가서도 ‘아니지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는데,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삶에의 강한 의지로 나아가는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예술작품이고 경이롭다. 그리고 진지한 삶의 문제에 대해 무척 솔직하고 담백해서 오싹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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