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와 차이, 확장과 실험, 평화와 기억, 공간과 경계, 공존과 성찰. 이번 네마프 한국 신작전 섹션들의 제목이다. 26개의 한국 단편은 하나의 제목을 기준 삼아 교집합이 되는 곳에 묶여 상영되었다. 이 중에서 은고, 남소현 작가의 <서울과 베를린에 무국적 구근 키우기>가 자리한 곳은 2번 섹션 <확장과 실험>. 장르는 에세이 필름, 대안 내러티브, 그리고 다큐멘터리. 하나의 영상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다원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품 속 중요한 매개체로써 사용되는 설치 작가 ‘박’의 모의 구근이 있다. 그는 가죽과 흙으로 ‘무국적’이라는 구근을 개량한다. 지금껏 이 세상에 없던 것이다. 그는 개량 과정에서 ‘현존하지만, 현존하지 않기도 하는’ 무국적 구근에 대한 세계를 만든다. 기존의 구근 식물처럼 ‘심어야 하는 시기’와 ‘개화되는 시기’가 특정되어 있지 않고, 어느 장소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뿌리와 국적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구근을 품은 사람 자체가 ‘토양과 기후’가 되는 그런 세계관을 말이다.
설치 작가 ‘박’이 개량된 ‘무국적 구근’을 서울의 영화감독 ‘고’와 베를린의 영화감독 ‘남’에게 전달하고, 그 사람들은 또다시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구근을 나누어준다. 구근은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전해지며 각자 도착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야금야금 먹으며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구근의 양분이 되어준 이야기는 또다시 인터뷰가 되어 돌아온다. 전달과 수집의 과정이 어찌 보면 구전동화와도 닮았다. 사람과 이야기가 필요한 <서울과 베를린에 무국적 구근 키우기>라는 작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실험은 아닐까. 구근이 매개체라면, 그것을 전달받은 사람이 실험체. 그리고 그 실험체와 구근을 통해 쌓여가는 이야기가 곧 이 실험의 1차 데이터가 되어 <서울과 베를린에 무국적 구근 키우기>라는 첫 번째 결과를 도출해낸 것 같다. 그리고 모의 구근에서 실험이 시작되었듯이, 이 영상 작품의 상영은 더 큰 사회적 실험을 상영과 함께 퍼트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바로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작가는 작업물을 통한(무국적 구근) 사람들의 피드백(인터뷰)을 통해 새로운 작업물(서울과 베를린에 무국적 구근 키우기)을 완성하고, 그것을 발표했다(상영했다). 나는 그것에 대한 피드백(반응)으로 이 비평을 작성했다. 작가에게 내 글은 인터넷을 통해 물리적 거리를 무시하고 찾아가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를 속삭여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 작품은 세상사처럼 복잡하고, 또 아름답고, 투명하게 슬펐다. 앞서 말했던 한국 신작전의 가치 분류들이 사실 <서울과 베를린에 무국적 구근 키우기>에는 전부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교집합의 교집합. 당신이 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떠나온 모든 곳에 대한 이야기. 사람의 삶을 녹여낸 농밀함이 가득했다. 나는 가끔 정말 운이 좋게도 이런 작품들을 만난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다고 여기던 작업의 선례인 것들. 각기 다른 것을 원하고 또 실현하는 사회에서, 이런 상황은 자주 찾아오지 않을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가죽을 자르고, 구멍을 뚫고, 바느질하고, 형태를 잡아 시작된 이 이야기를 글을 쓰며 순차적으로 해체했다. 구조를 알고 흐름을 알고 이 작품 속에서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영을 배우면 아가미가 없고 지느러미가 없어도 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작품을 새로운 모국어로써 기억해내고 싶었다. 나를 거슬러 올라가 내 뿌리와 기원을 찾아내면 이곳이 꼭 잊혀진 고향일 것 같았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