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26초의 러닝타임. <KIBITZ>는 이번 네마프 한국신작전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단편 중에서도 긴 호흡의 작품들을 보다가 이 작품을 만났을 땐 익살스러운 사운드와 와일드한 선들로 이루어진 애니메이팅을 나름 당황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게 되면서 다행스럽게도 담당작을 여러 번 관람할 수 있었고, 점점 김일현 감독만의 코미디와 그 속에 자리한 정공법에 빠져들게 되었다. 밤새 글을 쓰면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그 원동력은 키비츠에 대한 순수한 흥미와 궁금함이었다.
우선 <KIBITZ>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다. 무슨 뜻이길래 엄하고 진지했던 체스 경기장에서, 이렇게 나긋나긋한 아코디언 배경음 시퀀스로 바뀌는 걸까? 영어 제목을 사전에 검색해보니 ‘참견한다’, ‘훈수한다’라는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 제목에 힌트가 있었다. 한 턴, 한 턴 각자의 차례에 말을 움직이며 진행되는 애니메이션 속 체스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경기를 치르는 학생이 주체가 아니라 옆에 앉은 코치가 ‘자신의 게임인 양’ 매번 훈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말을 움직이고 타이머를 넘기는 플레이어는 학생인데, 손짓 하나 자유롭지 못했다.
1 : 2.39의 긴 화면비를 두고 한쪽의 학생은 흰색 알맹이에 검은 선, 반대쪽 학생은 회색 알맹이에 흰 선으로 그려져 있다. 마치 체스의 기물, 체스판의 색처럼 둘은 흑과 백인 양 완벽한 타인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절반 이상의 러닝타임을 지나며 학생들의 표정과 행동에도 변화는 찾아왔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엄청난 투쟁심에 겨워 타이머를 넘겨버린 게 아닌데도, 그 시점 이후로 기침하는 코치들은 뒷배경에서 실루엣이 되어 자신들끼리 요란하게도 싸운다. ‘coach’라는 직업은 누군가를 지도하여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코치는 어디까지나 코치. 훈수는 어디까지나 훈수다. 정말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기에 보편적 진리에 가깝기도 한. ‘내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사실은 학생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 그렇게 행동하기로 했을 뿐. <KIBITZ> 속 체스 경기를 각자의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 때, 학생들은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공간에 색을 입히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의 후반부는 유원지에 놀러 가 회전목마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공정한 경기의 상징으로 둘이 악수하는 결말까지 속이 다 시원하다. 코치들이 윈드밀을 돌다가도 악수씬을 보고 턱이 빠지는 것까지도, 전부 다.
내 오른팔에는 카메라를 들면 딱 보이는 위치에 문신이 있다. 팔꿈치 쪽에 영사기가 있고, 그 앞으로 필름이 살짝 풀려 있다. 그 위로는 체스 기물들이 얹어지다가, 손목에 이르면 산산이 부서지는 도안이다. 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믿는 그저 그런 학생이다. 하나의 게임에서 ‘죽는 것’, ‘사는 것’이 인생과 비슷하다면. 게임처럼 즐겁고 때로는 신중한 인생에서 내가 따라야 할 ‘룰’이나 ‘왕’이 없어진다면. 나는 내 삶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그런 생각에 지우지도 않을 문신을 냅다 새겨버린 그런 사람이다. 나는 중학교때 다니던 일반 학교를 자퇴했다. 공부하고 시험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냥 재미가 없어서였다. 지금도 나에게는 흥미와 재미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어른스럽지 못하면 뭐 어때.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나가다가 김일현 감독님을 만나게 된다면 그날은 참 유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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