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우먼의 노래>는 이영주 작가가 회전초밥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작품은 서구권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예술가로서, 동시에 학생이자 노동자로서 작가가 경험해온 오리엔탈리즘, 동양 여성에 관한 스테레오타입, 제1세계과 제3세계 사이의 문화적 위계에 관해 노래한다. 노래방 모니터에 띄워지는 싸구려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차용한 이 작품은, 마치 얇게 떠져 밥 위에 올려진 생선회처럼 얇은 모습의 여성들이 접시 위에 올라 춤 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회전초밥 식당의 컨베이어벨트를 연상시키는 세트에서 춤추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바디슈트를 입은 작가 본인의 모습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비서구)을 인식하기 위한 전형적인 분석 모델의 적용"이라 정의한다. 다시 말해,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에 의해 상상된 비서구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이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지만, 유럽 내 비백인 인종에 관한 프란츠 파농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처럼 생존 혹은 생활을 위해 “2등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기도, 호미 바바의 분석처럼 “흉내내기”의 전략을 통해 “혼종성”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비서구에 관한 서구의 시선 속에서 생존과 생활, 노동 등을 위해 일정 부분 동화되어야 하는 모순에서 비롯됨과 동시에, (호미 바바의 주장처럼) 저항의 수단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영주 작가가 직접 작사 작곡한 <스시우먼의 노래>가 노래하는 것은 그러한 모순 자체다. "이리 와서 당장 나를 먹어줘"와 "넌 나를 말 수 있다고, (중략) 깨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안 돼 안 돼"라는 구절이 공존하는 가사는 자신이 “플라스틱 스시”라고 증언하는 부분에서 모순을 극대화한다.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왔다고 노래하던 작가는, 급기야 얇은 회로 썰리기 이전 상태인 바닷속의 물고기들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우리는 모두 결국 이 작은 행성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에 불과하다는 전환은 일종의 블랙코미디다. 이 장면은 거울처럼 식탁을 비추던 세트 가운데의 구조물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며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 모두 같다는 진술은 단순히 차별을 반대하는 언사가 아니다. 식탁의 모습이 비친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작품의 예상 관객, 혹은 작가가 일하던 식당을 찾았던 손님들에게 보내는 과장된 냉소다.
일식당을 연상시키는 세트, 동양의 노래방에서 차용된 화면, 그 속에서 얇게 변형되고 복제된 작가의 신체는 전형적인 동양인 여성을 기대했을 시선에 되돌려주는 카운터 펀치다. 팝컬처는 일정 부분 전형성에 기대어 있다. “스시우먼”이라는 지칭은 자신을 향한 시선의 방향을 왜곡하는 힘을 지닌다. 마치 드랙(drag)이 그러한 것처럼, 전형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전형성 자체를 무력화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스시우먼의 노래>는 팝컬처를 모순을 드러내는 수단, 혹은 저항의 도구로 활용한다.
글. 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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