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이 된 동굴, 횃불이 된 카메라: <우리의 동굴>
<우리의 동굴>은 이 영화가 ‘카메라’의 물질성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지시하는 그레이 톤의 풋티지로부터 시작한다. 종이에 투사(projected)된 마그리트가 그린 동굴 입구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우화와 숙종 시대의 야담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동굴의 끝을 알고자 ‘횃불’과 ‘촛불’을 들고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이 사이에는 미군과 그 앞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담긴 사진들이 나열된다. 사진이 흘러가는 와중에 들리는 물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는 이곳이 이미 ‘동굴’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이윽고 다시 동굴-사진 위로 트레이싱 지가 얹힌다. 물방울 소리는 우리를 동굴의 깊은 곳으로 인도하며, 이윽고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로 전환되어 현실과 재현된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끝에 도달하기에 동굴은 깊고도 깊다. 우리가 가진 시야는 빛에 의존해야만 탄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감광판과 트레이싱 지의 투과가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은 그에 따른 실루엣-그림자-윤곽-프로파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카메라가 보는 것은 어두운 곳이며, 그 어두운 길을 인도하기 위한 필름은 물길처럼 흩날리고 걸려있다. 동굴에서 떨어지던 물소리는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로 전환되고 빛이 이지러지는 흔적은 새로운 세상을 비춘다. '현상(現象)'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필름 현상과 현상학적 의미-는 여성의 경험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카메라는 우리의 현실 세계를 비추는 횃불이 되고, 그곳에서 여성들은 가려진 것을 직시하게 된다.
동굴에서 별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순간은 카메라에 담긴 세상이 ‘컬러’로 바뀔 때이다. 현상의 탐구를 위한 필름에로의 접촉은 새로운 ‘현상’을 마주한다. 투사된 그림 위로 손이, 손과 접촉한 연필이, 연필의 끝에 달린 흑연이 자욱을 남겨 형태를 구체화한다. 컬러는 이윽고 네거티브로 전환되고, ‘시선’은 뒤집힌 세상을 탐구한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우리의 동굴>은 새로운 반대의-네거티브-의 별천지를 구성한다.
<우리의 동굴>은 촬영, 현상, 영사라는 기술적 요소를 설화와 우화에 빗대어 구성한다. 이를 통해 동굴-갇힌 것이라 여겨지던 세계를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이미지의 재탄생은 현상과 현상, 두 가지가 접촉함으로써 새롭게 현상되는 카메라의 '세상'이다. 카메라의 포착과 영화적 구성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바는 한국의 설화와 플라톤의 우화가 합쳐쳐 전달된 것과 같이, 인세의 굴곡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윽고 카메라가 가질 수 있는 ‘사실’의 가능성은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으로 합치된다. 카메라가 지닌 '사실'의 가능성은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과 맞닿아 있다.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 도구를 넘어, 현실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우리의 동굴>은 카메라의 물질성과 여성의 시선을 통해 현실과 재현, 인식과 창조 사이의 경계를 탐험하는 철학적 여정이다. 불을 밝혀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여성들의 여정과 그들의 시야는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과 등치되고, 그들의 손에 들린 횃불의 빛은 ‘반사’되어 다시 현상되어 우리에게 비추어진다. 동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과정은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로서의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
글. 이인.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