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별, 태어나는 우주
“내게서 멀어지던 그때. 나만이 남겨진 그때. 밝게 빛나던 우주와 난 서늘함만 남았지.” ‘적색편이’는 별이 멀어질 때 발생하는 빛의 스펙트럼이 긴 파장, 즉 붉은 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우주의 팽창을 가리키는 이 현상의 이름은 영화의 이름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음악의 이름이기도 하다. <적색편이>는 밴드 멤버들이 모두 떠난 상실의 시간 안에서 음악 ‘적색편이’가 탄생한 과정과 의미를 우주의 존재 원리와 함께 되짚어보는 작품이다. 거대한 우주에 대한 사유를 통해 개인사를 이해해 보려는 질문들이 뒤를 잇는다. 그 과정에는, 그리고 결국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느 SF영화를 보러 간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로부터 우주를 향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인류가 출현한 지는 35만 년이지만, 그때와 지금의 하늘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붙잡아보기로 한다. ‘나’를 중심에 두고 앞만 보고 걷느라 바쁜 우리의 삶과 달리,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에 중심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계속해서 멀어지고, 멀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갔던 바다가 어디인지도, 그들이 왜 떠나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억지로 기억해 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주가 그러하듯 그냥 어느 순간 멀어진 것일지도 모르니까.
<적색편이>가 말하는 우주는 가 본 적 없지만 명확한 것이고, 언젠가 경험했을 꿈과 기억은 희미한 것이다. 우주를 알게 해 준 SF영화의 제목도, 멤버들과 시간을 보냈던 바다의 위치도 선명하지 않다. 그저 언젠가 겪었으며 존재했다는 사실만이 자명한 채로 떠돌고 있다. 카메라를 경유한 후 후보정 작업을 거쳤을 이미지와 AI 기술의 힘을 빌려 제작된 이미지가 중첩하면서 이 모호함은 배가된다. 영화의 시공간이 교란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만들어진 시공간도, 이미지가 표상하는 시공간도 분명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인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어느 순간 길을 잃는다. 불분명한 이미지와 소리가 마구 얽혀 있지만 두려움의 감정 또한 촉발되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에 마비되어 시간도 날짜도 인지할 수 없던 시기와 달리, 창백한 푸른 점 속의 우리를 충분히 이해한 지금은 보이저 1호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아쉬울 뿐이다.
함께 하던 밴드 멤버들이 다른 길을 선택한 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조차 힘에 부쳐 커튼을 꼭꼭 닫고 지내던 ‘나’는 이렇게 우주를 이해한다. 우주에 대한 인지가 내면의 사유로 돌아오고 또 다시 뻗어나간다. 음악 그리고 영화라는 우주를 향해서. 음악 작업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새로운 음악으로, 영화로부터 발사된 우주를 향한 관심이 자기만의 우주를 다루는 영화로 환원되는 과정은 마치 보이저 1호의 반가운 귀환과도 같다. 책을 덮고 마침내 커튼을 연다. ‘나’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나’를 내려다보는 하늘의 눈을 마주할 수 있다. 해결되지 않았던 내면의 불화를 스스로 이겨낸 후 외부 세계의 시선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못다 들었던 노래 ‘적색편이’의 후반부가 명랑하게 울려 퍼진다. “커져만 가는 이 우주 안에 넌 밝은 빛으로 안부를 보내고.”
글. 이슬기.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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