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림을 멈추지 마
여전히 애니메이션이라는 방법론을 ‘대안영상’에 위치시키고자 한다면,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각자 의견이 있겠으나, 자유분방한 운동감과 움직임, 언제든 흐트러질 준비를 갖춘 이미지를 프레임 하나하나에 정확히 기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프레임을 선택해 단 몇 프레임만으로도 충분히 인지 가능한 움직임을 만들거나 외곽선이나 형태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려도 기호적으로 대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이다. 고정된 대상이 아닌 변형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연구되어야 할 분야이기도 하다. 김학현 감독의 3분 남짓한 짧은 애니메이션 <책상 벌레>를 그 사례로 제시할 수 있다.
<책상 벌레>는 높은 밀도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화면 안에서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책상 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보라색의 ‘데스크 벅스’, 계속해서 바뀌는 오브제, 고유의 리듬감을 가진 채 반복되는 특정한 이미지들... 수많은 이미지들이 멈추지 않고 유동하는데 그마저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애니메이션이 가진 흐름 자체에 시야를 맡길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이 애니메이션을 마주하며 당혹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지 자체가 불가해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 움직임과 연결 자체가 극도로 어지러울 정도로 산만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불안, 정신산만, 분열, 착란, 환각, 조증 등 다양한 말(혹은 임상적 진단)들로 이 애니메이션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상 벌레>에서 두드러지는 순수한 애니메이션적 운동감과 역동성은 그것이 주는 쾌감을 넘어 한계치 너머를 건드린다. (이런 점에서 시작 전 나오는 광과민성 발작에 대한 주의 사항은, 그것이 특별한 의도 없이 그저 관람 주의를 요하는 안내문임에도, <책상 벌레>의 핵심을 관통하는 정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상 벌레>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운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뮤직비디오라는 사실이다. 앞서 적은 내용들을 사운드에 적용해도 특별히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지와 완벽히 조응한다. 이미지와 사운드 중 어느 하나가 다른 쪽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리듬감으로 작동하며, 서로가 각자의 방식으로 힘을 발산한다. 특히 후반부 사운드와 이미지가 거의 절정에 다다르다시피 한 순간들은 실사 영화라면 편집의 기교로 채웠을 것들에 애니메이션적 움직임이 더해져 극한의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짧은 시간 안에 극도의 피로감을 안겨주지만, 이는 <책상 벌레>에게 있어서는 찬사나 다름없다. 그동안 실사 영화들 역시 불안, 정신산만, 분열, 착란, 환각, 조증의 이미지들을 구현하고 선보여왔다. 그럼에도 운동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표현 방식이 여전히 애니메이션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책상 벌레>는 주목할만한 시도이다.
글. 성진혁.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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