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을 마시고 구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역사 속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일은 늘 괴롭다. 그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비극의 이후를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3.1의, 제주의, 부마의, 광주의 이후를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에 그 흔적을 여전히 더듬어 짚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다 그들은 외지인을 ‘육지 것들’이라 부르게 되었나.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의 제주도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수만 명이 학살당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4.3 사건은 한동안 잊힌 사건이었고, 제주도는 그 비극을 삼킨 채 점차 관광지화되었다. <레드 아일랜드>는 제주도에 위치한 4.3 사건의 유적들을 따라가 영화 안에 담아내는 다크 투어 영화로, 수십 군데의 장소들을 등장시키며 그 장소들이 어떤 역사와 맥락을 가지는지를 보여주고 설명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관광지로서의 성격과 유적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는 장소,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장소, 잊히고 버려진 장소. 우선 영화는 성산일출봉, 함덕 해수욕장, 표선 해수욕장, 산방산, 정방폭포 등, 제주도에 거주하거나 가본 일이 있는 이들이라면 거의 알법한 장소들이 어떻게 4.3과 연관되었는지를 조명한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가진 역사를 통해 ‘아름다운 섬’이라고 불리는 제주도가 가진 역사를 드러내어 그것을 감각시키고자 한다. 또 섯알오름, 관음사, 너븐숭이, 제주 4.3 평화기념관 등 그 자체로 4.3 사건의 잔혹함과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 장소들을 조명하며 어떻게 4.3이 계승되고 있고 또 장소의 기억으로서 거기 남아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영화가 소개하는 ‘잊히고 버려진 장소들’이다. 제주 농업학교 옛터, 박성내, 비학동산, 중문 신사터, 오라초등학교 옛터와 같은 공간들은 모종의 이유로 옮겨지거나, 안내판만 남거나, 터만 남거나, 제대로 된 흔적이 남지 않게 된 대표적인 공간들이다. 시야에 한번에 들어오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 장소들. 특히 4.3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알려진 관덕정의 경우,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유적이 유실되거나 그 흔적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장소다. 영화는 이처럼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장소들을 나열해가며 기록한다.
영화는 이어서 4.3 사건을 다룬 연극 <비도(非島)>의 출연진과 제주도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말을 듣는다. 외지인이 보는 제주도와 4.3 사건을 전해 듣고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뒤섞이는 부분은 4.3 사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고립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목격시키거나 내뱉도록 만든다. 영화 이후에 4.3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도록 만드는 것 역시 영화가 목표하는 바이지 않을까. “기억을 직접 찍는 것은 가능한가?” <레드 아일랜드>의 부제는 ‘공간의 기억’이다. 여기서 기억은, 그러니까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공간 자체가 품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여전히 지금의 삶 속에 잔존한 70여년 전의 제주를 본다.
* 해당 제목은 김응수 감독의 <산나리> 내용 일부에서 착안하였음을 밝힙니다.
글. 성진혁.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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