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정글 숲에서 살아남기
: 박한나의 <도시에서 야생을 찾는 몇 가지 방법>에 관하여
<도시에서 야생을 찾는 몇 가지 방법>은 직관적이다. 문자 그대로의 제목이 곧 내용을 이룬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몸을 유연하게 하고 마음을 연다’, 두 번째는 ‘야생 포착 능력치를 상승시킨다’, 그리고 세 번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이다. 일단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의외로 도시에서 마주치는 곤충과 동물의 종류는 꽤 다양하다. 매미, 고양이, 여러 종의 새, 장어, 지렁이 등. 저마다 콘크리트 바닥 또는 철제 구조물 위에서 터전을 잡은 듯하다. 실제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도시에는 야생의 흔적 또한 상당하다. 동물을 그린 벽화, 정글과 숲의 풍경을 그려낸 미술작품, 녹음된 새 소리 등. 그러나 이것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감독은 급기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보도블럭 하나를 파내고 그곳에 식물을 심으면, 식물은 곧이어 거대한 덩굴을 이루며 무성하게 자라난다.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빌딩 숲’이 ‘진짜 숲’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과는 다른 생존 기법이 필요하다”라는 감독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영화는, 그가 일상에서 마주쳤을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야생에서의 불안이 주로 포식자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도시에서의 불안은 그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들은 콘크리트 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새 비둘기는 지하철 역사를 익숙하게 돌아다니고, 매미는 나무 대신 방충망에 붙어 있다. 물고기는 바다나 호수가 아닌 수족관 속에서 헤엄치고, 지렁이는 진흙 대신 콘크리트 위를 기어간다. 새들은 건물 난간과 간판, 또는 전봇대 전깃줄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러한 풍경이 사실상 이질적인 조합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콘크리트 정글에 적응하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하나의 ‘테마’이자 ‘풍경’으로, 또는 감상의 ‘대상’으로 가공되어 전시된다.
영화는 고도로 정제된 논리나 숙련된 연출 방식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화면 구성과 디자인 전반에서 날 것에 가까운 감각이 묻어나오고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키치함이 <도시에서 야생을 찾는 몇 가지 방법>의 시각적인 연출 전략인 듯하다. “알 수 없이 떠밀려 온 세계”인 도시에서 어떤 무의식 속 장소(“두렵고 친밀한 그곳”)를 찾아 나서는 여정의 반영일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전과는 다른 생존 기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도시의 존재들은 이미 그것을 체득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무와 진흙 대신, 시멘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말이다.
김윤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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