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하는 교수님이라니. <길 위의 시간>의 시놉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 영화의 모습이 영 상상되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투쟁과 교수라는 두 단어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바라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마주했던 교수들은 대부분 매우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고, 지성과 교양이 넘쳐흘렀으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유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쟁과 먼 삶을 살았다면 살았지, 뙤약볕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된 이들의 삶을 잘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김동애 교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들을 들으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리고 곧 내 머릿속에는 대학에 다니며 보고 들었던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주에도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강의하시던 선생님의 모습, ‘우리 학교 교원 월급이 얼마 더라’ 하고 들려왔던 몇몇 이야기들. 그리고 턱없이 적은 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는 대학원생들까지. ‘지식생산’과 ‘연구’라는 고귀한 명목한 명목 아래, 안정된 삶을 포기해야 했던 지식 노동자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렇듯 김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길 위의 시간>은 열악한 강사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한 강사 부부의 삶을 그린다. 작품은 2019년 고등교육법 (강사법) 개정이 완료되기까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11년간의 끈기 있는 투쟁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는다. 여느 노동 영화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그곳에는 그간 우리 삶의 부가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지식’을 생존의 수단으로, 또 정당한 노동으로 격상시키려는, 학계와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먼저 영화는 텐트 내부의 모습을 찬찬히 둘러보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텐트 내부에 붙어있는 차양막과 단열재, 돗자리는 한없이 낡고 얄팍해 보인다, 그러나 수납장과 같이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은 제법 갖추어져 있는 모습이다. 이어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수업 준비를 하는 등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텐트 안에서 지내는 교수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처럼 영화는 그들의 일상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거나, 통탄하는 등 극적인 장면은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책을 읽는 모습,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는 모습 등 지극히 규칙적인 하루가 담겨있다.
그러나 영화 장면 위로 덧입혀지는 보이스오버는 조금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위를 둘러싼 대학의 압박, 강사법 도입에 대한 필요성을 함께 외치다 스러진 故 서정민 박사의 유서, 그리고 오랜 기간 투쟁하며 미처 돌보지 못한 자식들의 이야기까지. 김동애 교수의 담담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러한 상황들은 지난했던 시간을 어렴풋이 그려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평온한 일상과 대비를 이룬다.
이는 둘 사이의 간극을 발생시키고, 그 사이로 하여금 의지와 끈기라는 빛이 스며들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은 그러한 장면을 바라보며 11년이라는 긴 세월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그들의 동력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로서는 이에 대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는데, 그것은 부부의 믿음, 즉 지식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그토록 굳건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믿음이라는 단어는 헛된 희망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어쩐지 너무 이상적인 단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언제 실현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지켜져 온 그들의 신념은 기이할 정도로 단단한 것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진행되었던 게스트 토크에서 ‘지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하고 물었던 것은 그러한 의문의 연장선이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지식을 중요시하는 걸까. 이들에게 앎이란 무엇일까?” 김동애 교수는 나의 질문에 “지식의 실천이다. 실천이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 말은 들은 후 나는 그들의 믿음은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라, 한 연구자의 ‘이론적 실천’으로서 귀결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규정한 ‘이론적 실천’은, 학문을 비롯한 이론적 활동도 하나의 ‘생산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지식 노동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또 무너뜨리는 데 큰 기여를 할수 있음을 위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영화가 대학에서 강사의 지위가 격하된 시점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로 명명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외에도 영화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일본의 사례를 들어 각각의 독재정권이 군림하던 시기와 강사 지위에 대한 이슈가 맞물려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감독은 지식과 정치 경제사이의 긴밀한 연관이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투쟁은 학계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인 동시에, 전체 사회의 진보와 건강한 존립을 위한 싸움이 될 수 있다. 지식이 무너지면 세계도 함께 무너지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부부의 저항은 지배 이데올로기 전반에 대한 저항이다. 즉, 그들은 학계 안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의 시간은 진정한 진보를 온몸으로 실천한 이들의 이야기로 봉합된다. 어떤 문제를 두고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현장에 직접 나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교수 부부가 한평생 책과 글을 통해 배운 진리이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투쟁 중에도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유난히 짙게 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텐트를 철거한 2019년,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담아낸 때 묻은 텐트 덮개의 모습도. 그렇게 진정한 연구자로서 나아갔던 부부의 시간이 텐트에, 또 영화에 온전히 존재한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