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를 장식하는 '한진' 작가의 <그 고장 이름> 중 한 구절은 이주민들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비록 머나먼 이국 땅에서 거주 중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을 되돌아보는 단계에서 도달하는 건 한민족이라는 한핏줄이다. 피치 못할 역사의 소용돌이로부터 고국과 이별하게 된 이들의 역사는 한국 민족사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주요 챕터다. <화광: 디아스포라의 묘>는 서로 다른 공간에 속해있을지라도 동일한 뿌리를 공유 중인 고려인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애도하는 위령제를 마련한다. 1955년에 캄차카로 이주 노동한 두 북한 소녀들의 시선을 빌려 고국 땅을 끝내 밟지 못한 고려인들의 사진을 스크린을 통해서 아카이빙 한다. 양자생물학의 빛의 수확(harvesting light)에 영감을 받은 영화의 애도 방식은 부재중인 망자의 묘소를 스크린 위로 소환하며 기억되어야 할 그들의 존재감을 살포시 부각시킨다. 이름 모를 광야에 무심하게 세워진 비석 위로 비치는 한 줄기 빛과 함께 열거되는 고려인들의 모습에서 한국 관객들은 동일한 역사적 뿌리를 보유한 그들을 '동포'로 인식하는 순간을 마련한다. 향수를 자극하는 선율과 함께 삽입된 '카작의 자장가'(Казачья колыбельная)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거센 흐름으로부터 태어난 수많은 한국의 디아스포라들을 향한 영화의 또 다른 애도 행위임에 다름이 아니다. 고국을 향한 짙은 노스탤지어를 기저에 깔아둔 채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하려는 영화의 시도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향한 우리의 실천과 태도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기억하는 행위로부터 비로소 성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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