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은 검은 배경의 흰색 오선으로 시작된다. 아무런 음표도, 어떠한 음악 기호도 없이 소리가 나는, 초대받지 않은 선들의 흐름이다. 이러한 오선은 ‘나’로 다시 구성되고, 그 선들은 다시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로 변환된다. 선들은 ‘나’에 틈을 내어 분열시키기도 하고, 다시 ‘나’를 점점 채우기도 한다. 이들은 색깔을 가지기도 하고 굵기나 부피가 커다란 폭으로 변화하는데, 모든 형태와 방식으로 ‘나’를 괴롭힌다. 선들은 ‘나’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채로 거대한 구름이 되어 위에서 내려다보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비를 내리고, 무거운 돌이 되어 짓누른다. 선들은 나의 목소리에 반응하기도 하며 그 자체로 진동하여 파장을 일으킨다.
이러한 선들은 ‘나’와 가장 친밀한 곳인 집과 침대에서 언제나 낯선 존재로 출몰한다. 이러한 공포는 대상이 없기에 제거될 수 없고, 현실에서 현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존재는 구분될 수 없는 두려움으로 통제할 수 없게 반복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 불안, 아픔 등을 집어 넣어 자물쇠로 가둘 수 있는 폐가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에게 폐가는 봉합되지 않은 채로 온전한 집과 ‘함께’ 존재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선들의 목소리는 ‘나’의 뒤통수에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의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분명 나의 목소리인 동시에 낯설기도 하다. 이들은 그림자가 제일 짧아지는 시간인 정오에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무시간적이고 무장소적인 그림자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을 제거 할 수 없다면, 함께 서있어 보기로 한다. 우리들의 그림자 또한 서로 마주할 수 있도록.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