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제작 기간 동안 감독이 직접 촬영한 푸티지로 이루어졌음을 명시하고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의 장면은 영상과 영상의 컷. 전환이 아닌 배경음이 깔린 사진과 사진의 연속이다. ‘렌즈 매체를 통한 부동의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나열한다.’ ‘책을 낭독하듯 다분히 차분하다.’ 이것이 <말리언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보통 1초에 최소 24장의 사진(프레임)이 끊임없이 재생되며 우리의 눈은 사진을 영상으로 인식하는데, 그 말인즉슨 영상은 ‘무빙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창작자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에 가장 알맞은 형태로 창작물을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말리와, 그를 ‘말리언니’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어째서 현실에 가까운 자극보다 회상에 가까운 응시를 택했을까. 왜 한걸음 떨어져 진득하게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을까. 사람의 목소리, 움직임 등의 생생한 재현과 자극을 최소화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중간중간 나오는 비디오 클립을 보니 분명 모든 파트를 처음부터 사진만으로 구성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많은 다큐멘터리의 관습을 따른다는 선택지를 제하고, 어쩌다 이런 포맷이 나오게 되었는지. 나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많은 관심과 지원, 사람들의 세심한 시선을 프레임의 개수(영상 속 움직임의 부드러움)에 빗댄다면 이곳의 기억은 비장애인의 삶을 비추는 영화에 비해 1/24 이상, 혹은 1/30 이상, 혹은 그 이상으로 결여되어 있다. 관심을 갖고 찾아오고, 사는 게 안녕한가 묻고. 아픈 곳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이 모든 행위를 각 하나의 프레임과 그것을 책임져야 했을 사람에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언어로 표현하고, 어떻게 심장이 뛰던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한 동등한 인간으로의 자각이 이 영화 바깥의 모든 이들에게 부족했다는 것을 느릿한 사진의 흐름이 말한다. <말리언니>가 다른 영화에 비해서는 마치 멈춘 것처럼, 삐그덕거리며 힘겹고 느릿하게. 그리고 조용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24/24가 모여 하나가 되어야 했을 것을, 타인과 국가적 책임까지 말리언니 혼자서 채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흐린 눈으로, 먼 곳에서 관망하듯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한다. 내 일이 아니라 ‘말리언니네 집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느냐고. 영화의 마지막이 내게 묻는 듯 하다. 이 작품은 임대청 감독의 사무실로 도착한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고, 그 사진은 이름 없는 무덤을 찍은 흑백 사진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말리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말했다. 사진을 쫓아 당도한 그곳엔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무엇인 ‘그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로를 이해했다고. 자신은 이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고 말이다.
<말리언니>라는 제목은 어디까지나 타자가 말리를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는 더는 말리언니라고 부르고 의지하거나 모두의 몫을 위탁할 사람이 없다. 지금처럼 타자화된 사회에서 ‘나’만큼이나 ‘너’를 내 몸처럼 아끼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감독 또한 ‘그러니 우리, 이제부터는 이렇게 합시다’라고 제안하지 않는다. 흔히 기대하는 ‘아름다운 결말’조차 내놓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가 끝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당사자성이 없다는 이유로 <말리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망설인다면 소수자의 이야기는 더더욱 ‘우리들’이 아닌 ‘그들만의 사건’이 되고 말 것이다. 영화가 끝났다고 마냥 영화관 밖으로 나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영화가 더 만들어져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나는 이처럼 정답 없는 질문을 만날 때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기로 했다. 우리는 평론가로서, 관객으로서, 작가로서, 창작자로서, 그리고 또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영화의 안과 밖인 지금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도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첫 번째 공연 영상을 기록했던 발달장애 청년 ‘옥수수인형극단’의 성민 씨와 다은씨가 처음으로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열심히 연습하고, 무수히 많은 공연하러 다니고, 여러 번 대회에서 경연했지만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34회 아마추어 인형극 경연대회 장려상 수상. 다른 극단과 똑같이 무대만으로 평가받았고, 협동조합 선생님들을 비롯해서 성민 씨와 다은 씨를 한 번이라도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뭉클한 소식이었다. 나의 첫 영화도 극영화가 아닌 실험 애니메이션 장르였다. 나는 제대로 영화에 대해 배워본 적도 없었고, 화면의 대부분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동시대에 겪었을 때, 나와 친구들에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러 광장에 뛰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나는 사건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타인의 상처를 보듬을 능력도 없는 작은 사람임을 넓은 광장에서 느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더욱 광장을 떠나 내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부족한 작품을 나는 가슴 깊이 사랑했지만, 국내의 작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전까지는 ‘이건 영화가 될 수 없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처음 그 작품으로 상을 받던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 영화의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지만, 사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내 모습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도 많이 틀리더라도, 다르더라도 나는 더 노력해서 다양한 영화를 보고 만들고 글을 남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물론 임대청 감독이 <말리언니>를 만들며 제시한 담론을 내가 오인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조차 철저히 나의 몫이다.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공생을 모색할 방안은 작은 내 안에도 늘 있었다.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나는 내가 <말리언니> 상영관에서 흘린 눈물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 눈물은 동정도, 슬픔도 아닌 그저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을 잊은 부끄러움. 나는 그 부끄러움을 이곳에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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