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된 클립을 엮어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낼 때의 편집 스타일이 한 작품만의 독자적인 리듬감을 형성해낸다. 장소 특정적 댄스 프로젝트, 러닝타임 10분의 작품 <초량비트>는 그 지점에서 당돌함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한정된 장소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으로 표현해낸 것에 있어서 이번 네마프 칠레 비디오 예술전 섹션 2에서 상영된 리차드 투오이, 디애나 배리 작가의 <발피>와의 유사점도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차이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발피>는 칠레의 ‘발파라이소’를 ‘발파라이소’위에 겹쳐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푸르른 항구 도시를 담은 각기 다른 숏의 윤곽을 부드럽게 후처리하여 관객이 ‘단절’이라는 것에 점점 무감각해지도록 만든다.
그러나 <초량비트>의 키워드는 악동 같은 당돌함이다. 홍석진 감독의 작업은 오히려 경계를 도드라지게 만든다. 우선 첫 번째 챕터인 ‘순간순간’에서는 정해진 인물만을 쫓아가며 그 주위의 장소와 사람 모두를 ‘배경’으로 치환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챕터인 ‘첩첩초량’에서는 숏의 위치를 고정하여 움직이는 댄서의 모습만 마스킹하여 분리하고, 그 위로 레이어를 쌓아 여러 명 또는 여러 개의 문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방식으로 창문에 비친 모습을 오려내거나, 다다미방에서 미닫이 방향으로 화면을 끊임없이 밀어내기도 한다. 마지막 챕터인 ‘초량 조감도’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직-부감숏이 주를 이루는데, 각기 다른 댄서들의 움직임만큼이나 그들이 위치한 건물 옥상의 ‘테두리’의 형태가 부각된다.
나름 진지한 표정의 4명의 댄서는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춤의 정령 같다. 그들은 차이나타운부터 부산역, 168계단이 있는 초량 이바구(이야기의 방언)길까지. 부산 동구 초량동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쪼개고, 유한한 시간을 쪼개고, 일정한 움직임을 쪼갠다. 흔히 ‘비트를 쪼갠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기존의 박자보다 빠르게 드럼 라인을 세분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초량비트>속에서 ‘쪼깬다’라는 행위는 독창성을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같다. ‘쪼깬다’ 이전에 쪼갤 부분을 스스로 한정지은 약속(장소, 특정적, 댄스)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핸디캡이라 여기기도 하는 부분을 보란 듯이 어드밴티지로 바꾸는 재치. 포 뜨듯 잘게 쪼개진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끊어짐이나 단절의 이미지가 아니라 더 재밌고 새로운 연속됨을 기대하게 된다.
초량동이라는 지역의 이름 유래 중 하나는 과거 해안에서 육로 통행에 필수적인 곳으로서 붙여진 ‘풀밭의 길목’이 있다고 한다. 아이맥스와 4DX가 판을 치는 세상에 꼭 <초량비트>같은 작품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에겐 꼭 이 작품의 배경 장소인 ‘초량’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싶다. 낯선 파도에(NEW WAVE) 몸을 맡기고 새로운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 지금 이곳이, 그 통행에 꼭 필요한 길목 같은 작품이라고 말이다. 제목 중 비트라는 단어를 한국 정서에 맞춰 표현을 바꾸게 되면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장단’을 떠올렸다. 취타, 굿거리, 세마치장단 사이로 초량장단이 들어가도 제법 괜찮을 것 같다. 쉽사리 만나보지 못했던 기묘하고 신명난 21세기의 장단, <초량비트>. 세상에 이런 작품이 있는 한 심심할 일은 날로 적어질 것이다. 자 춤을 추며 떠나자, 새로운 파동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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