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신체의 확장"이라는 네마프 2023의 슬로건을 보고 떠올린 것은 가상의 신체들이다.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CGI, 3D모델링, 콜라주, 게임엔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신체들은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한 차례 세상을 휩쓸고 간 지금 익숙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우리의 신체는 무수한 방향으로 변형된 채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치 <레디 플레이어 원>의 무수한 아바타들처럼, 자신을 다른 존재로 만들어낸다.
유사하게 가상 공간을 다뤘던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 속 가상 신체들은 현실의 신체와 동일한 모습을 지녔다. ‘동일한 모습의 다수’로 등장하는 스미스 요원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시스템의 버그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제임스 할리데이가 꿈꾸던 유토피아로서의 오아시스(가상 세계)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일상화된 이후 우리가 마주한 것은 아바타를 통해 행해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이버불링, 트롤링 같은 것이다. 우리의 얼굴과 신체에 필터를 입혀 외모의 디폴트값을 교란하는 이미지 기반 SNS의 필터들이나 실제와 닮은 아바타 만들기를 유도하게끔 설계된 플랫폼들은, 할리데이가 꿈꾸던 오아시스보단 존재가 은폐된 요원들이 우리를 노리는 매트릭스를 지향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창출되는 가상의 몸들은, 긍정과 부정, 안전과 위험 사이에서 진동한다.
신체적 감각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영화는 시각의 확장으로 이해된다. 영화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여주고, 이는 모든 영역에서 작동한다. 매일 새로이 창출되는 몸들을, 영화는 기록하고 우리의 눈앞에 가져온다. 그것은 게임 속 아바타(<FF 외전: 흑사병>)일 수도, 3D 스캔과 애니메이션으로 변형된 몸들일 수도(<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 <스시우먼의 노래>), 세계에 관한 사변적인 성찰을 위한 재현이기도(<액체몸체>, <나는 말이다>), 인간 몸의 지위를 변형시키는 실험일 수도(<동물원>), 신체의 안전함을 보장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순간이동>). 오아시스라는 유토피아와 매트릭스라는 디스토피아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와 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한다. 피핑 톰(Peeping Tom)으로서의 영화가 신체를 불안전한 상태에 놓는다면, 이 영화들은 언제든지 다른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 영화들은 이곳과 저곳을 오가며 창출된 새로운 몸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글. 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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