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바비올의 <동물원>은 중세 기독교에서 사용되던 기도서 『시간의 책』에서 느슨하게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크게 아홉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제목에 걸맞게 우리 안에 갇힌 인간 신체와 비인간 동물들을 비춘다. 마치 마임처럼 보이기도 하는,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보여주는 인간 신체의 옆에서 밥을 먹거나 땅을 파는 등 일상적인 행동을 취하는 (벌레를 포함한) 비인간 동물들의 모습이 대비된다. 우리 속의 인간은, 마치 동물원의 동물들이 정형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음악에서 시작한 세빌 바비올의 예술적 작업은 80년대 중후반부터 영상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초기 영상작품인 <동물원>은 물론 함께 상영될 <이중 비밀>(1991)이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를 인용하는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바비올의 작업에서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동물원>의 상상력, 인간을 비인간 동물의 처지에 놓아 본다는 상상력은 오랜 시간 여러 예술장르에서 반복된 테마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은 인간성이 탈각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클로즈업 숏 침팬지나 앵무새가 음식을 먹는 숏과 병치되어 등장하거나, 좁은 우리 안에 토끼와 인간이 함께 갇혀 있는 모습 등에서 그러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물원>이 보여주는 것은 신체 이미지임과 동시에, 우리에 갇힌 기계적 반복의 행위들, 우리에 갇힌 행위들의 콜라주다.
이는 앙드레 브르통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했던, "경이(the marvelous)"로 이어지는 “객관적 우연(objective chance)”이라기보단, 마크 피셔(Mark Fisher)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2017)에서 분석한 언캐니의 두 사례와 맞닿는다. 피셔는 세계 간의 접촉인 "기이한 것(the Weird)"과 있어야 할 것의 부재 및 없어야 할 것의 존재인 "으스스한 것(the Eerie)"으로 구분한다. <동물원>에서 강박적으로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과 동물의 만남은 기이하며, 우리에 동물과 함께 갇힌 인간의 모습은 으스스하다. 초현실주의가 이성과 문명에 의문을 제기하며 무의식의 영역을 강조했다면, <동물원>이 보여주는 언캐니는 인간 신체와 행위 자체에 관한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한다.
글. 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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