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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해파리와 함께하는 비평웹진] [다섯 번째 글] <나의 피부> 산체스 살라스, 2022
A 조회수:915 추천수:4 121.129.84.56
2023-08-12 10:03:14

비장애중심주의 세상에서 사는 비장애인이 유념해야 하는 진실은 언제나 예비적 장애의 몸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는 서문에서의 말 그대로 ‘떨어지는 순간’에 있다.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의 특정 기능은 자연스레 상실되고, 그러한 순간은 서서히 찾아올 수도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불완전한 가능성의 몸,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나의 피부>는 스페인의 민족 무용인 플라멩코Flamenco를 공연하는 사람들의 무대를 영상예술로 펼쳐낸다. 움직임도, 몸짓도 아닌 피부. 피부? 장애·환경·퀴어·노동을 가로지르는 작가이자 시인인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에서 ‘집으로서의 몸’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1)

“집은 오히려 여기 내 몸 안에서, 내 피부 아래 깊숙이 박혀 있는 모든 것들에서 시작한다. 장애가 있는 나의 몸.” (55) ‘집으로서의 몸’은 “언어 역시 피부 아래 살아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59) 

장애인은 “슈퍼장애인 또는 비극의 역할”만이 허락되곤 하는 비장애중심주의 세상에서, 클레어는 자신을 절름발이gimp, 불구crip, 선천적 뇌병변cerebral palsy 장애인이라고 명명하면서도, 프릭freaks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주저한다.2) 그는 장애를 가진 몸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당사자들의 용어로 재전유되는 단어 ‘불구’만큼이나 ‘프릭’역시 그러한 단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프릭’으로 범주화했던 역사를 서구 문명에서 찾는다. 그는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였던 ‘프릭 쇼’의 퍼포머들은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장애를 과시”(178)하면서,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떼 지어 모인” 사람들 - 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시골뜨기rube - 앞에서 퍼포먼스를 수행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프릭 쇼’는 “20세기 초반 장애의 의료화와 함께 동정, 비극, 의료적 진단/치료가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장애에 덧씌워졌던 신기함과 신비함”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병원과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비정상화의 범주화가 과거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장애를 가진 몸을 비가시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매일매일 ‘멍’으로 남는 “위력적인 단어” 앞에서, ‘자긍심’으로 가득 찬 자아 이미지는 역사의 조각 중 하나를 ‘우리’ 것으로 만들고, ‘우리’의 역사를 알고, 스스로가 장애를 정의하고, 삶을 정의하고, 자신이 누구이고, 누구로 존재하기를 원하는지와 같은 자유를 되찾아 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의 피부>는 스페인의 Flamenco Inclusivo에서 제작되었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장애인에게 플라멩코를 교육하고 영화의 예술 감독이기도 한 호세 갈란José Galán 역시 역사적으로 플라멩코 아티스트들의 장애는 장애물이 아니라 자산으로 여겨졌음에 대해 설명한다. 장애를 가진 플라멩코의 무용수들은 “맹인”, “절름발이”, “광인”과 같은 이름으로 무대를 구성하였으며, 이러한 단어의 전용은 숨겨야 할 장애의 결함을 전유하는 방식이었다. 3) <나의 피부>에는 흰지팡이의 무용수, 브레이스를 무용의 몸짓으로 확장하는 무용수, 휠체어를 탄 무용수, 눈이 보이지 않는 무용수, 다운증후군 무용수 등 다양한 신체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 유형의 장애를 가진 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플라멩코를 춘다. 휠체어를 탄 무용수는 풋워크를 할 때 자신의 바퀴를 사용하고, 다른 무용수들은 귀가 들리지 않는 단원을 위해 손으로 말하며, 눈이 보이지 않는 무용수를 위해서는 음성 신호와 같은 다양한 방식이 무대에서 드러난다. 앞서 클레어가 역사의 조각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나의 피부>는 빈 신전을 무대로 삼아 새로운 신화를 세운다. 빈 신전의 쇼트들, 고대의 조각상처럼 정지된 무용수들의 풀 쇼트, 미디움 쇼트, 클로즈업 쇼트는 연결되고, 그 사이사이 열정적인 플라멩코 무대가 보여진다. 피할 수 없는 정지된 쇼트들 안에서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퍼포머들을 직시하게 만들고, 눈을 사로잡고, 허락된 관음증을 만끽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병원이나 진료실, 그리고 집 밖에 나오는 순간 모든 관음증으로부터 싸워야 하는 그들은, 그들의 자유로 가시화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오고, 텅 비어 있던 신전은 그들의 춤으로 가득 찬다. 그들을 보러 온 관람객들 - 시골뜨기rube - 앞에서, ‘우리'는 노래한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춤을 춰, 춤을 추기 때문에 나는 존재해.” 

 

1)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전혜은·제이 옮김. 현실문화, 2020, 2023.

2) 각 단어의 자세한 맥락은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불구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정치학과 상상력』에서, 그리고 각 책의 옮긴이 주석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에서 전혜은은 “‘crip’과 ‘freak’은 (장애인을) 낙인찍는 혐오 표현이었다가 당사자들이 되찾으려 시도하는 용어로, 고통의 역사를 증언하는 용어이자 자긍심의 용어라는 양가성이 그 용어와 관련된 이들에게 수많은 의미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300)고 설명한다. 

3) 호세 갈란의 인터뷰는 아래 링크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http://stanceondance.com/2020/09/07/flamenco-inclusivo/

 

글. A.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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