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은 최근 참여한 전시 [게임 사회](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3)에서 대규모 설치작업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을 선보였다. 다양한 아케이드 게임기를 활용한 이 연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대괴수물, 불교와 도교의 종교적 도상, SF적인 이미지들, 아이돌 팝의 군무 등이 뒤섞인 이미지를 전시한다. 이 이미지들은 젠더 이분법과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과학, 종교, 서브컬처의 문법을 빌려 서사화한다. 그의 최근작인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은 도쿠(Doku)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내세운다. 루양 자신의 모습을 3D 스캔해 제작한 도큐는 젠더리스로,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일본 현대무용이나 인도네시아 전통무용, 혹은 일본과 한국의 아이돌 안무에서 차용된 몸동작을 선보인다.
본작에서 도쿠는 황폐해진 행성, 불타는 도시, 일본의 신사, 동남아시아의 사원, 전대물 속 본부 등을 연상시키는 장소들에서, 중국의 뮤지션 liiii가 작곡한 메탈릭한 사운드가 뒤섞인 믹스팝 음악에 맞춰 크럼핑과 팝핀에 기반을 둔 안무를 선보인다.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4분 30초가량의 영상 속에서 도쿠는 천사처럼 머리 위에 헤일로(halo)가 있는 모습과, 거대괴수 같은 악마가 되어 도시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천사와 악마의 모습은 도쿠가 등장한 작가의 전작들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본작에서 새로이 등장한, 작가는 하이브리드 캐릭터라 설명하는 이원신(二元神)은 얼핏 천사-도쿠와 악마-도쿠의 외형을 절충했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 신사를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천사-도쿠와 악마-도쿠는 일반적으로 신사 입구에 세우는 토리이(鳥居)를 사이에 두고 춤을 춘다. 두 인물의 발아래에는 음양 무늬가 있다. 루양은 익숙한 이분법의 대립을 상정한 뒤 그것의 절충, 혹은 종합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등장시킨다. 이분법적 대립의 세계는 작품 속에서 아포칼립스를 맞이하거나, 혹은 이미 멸망한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분법적인 세계는 젠더리스이며 탈-국적적인 도쿠와 결합될 수 없는 공간이다. 동북아시아의 서브컬처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전체의 불교와 도교 전통을 뒤섞는 루양의 작업은 여성과 남성, 인간과 비인간, 이곳과 저곳 같은, 나와 타자를 분리하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서두에 언급한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은 물질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불교 철학적 메시지를 루양의 방식대로 소화해보려는 시도였다면,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은 ‘음양의 조화’하는 도교의 메시지를 급진적으로 해석해보려 시도한다. 루양에게 이분법은 충돌의 대상이며, 이원신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의 분신 도쿠는 그 결과로 조화를, 음양이 중첩된 상태를 획득한다. 그것은 일본 신사에 등장한 판다의 모습만큼이나 당황스러운 환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동시에 익숙한 선과 악의 변증법 너머를 상상해볼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한다.
글. 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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