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성적으로 본바탕이 반려종이다. 우리는 서로를 살 속에 만들어 넣는다.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발달성 감염을 살로 표현한다. 이 사랑은 역사적 일탈이자 자연문화의 유산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중심적으로 직조된 일련의 관점을 배제하고 인간, 비인간 동물, 유기체, 인공물, 기술 등이 뒤얽힌 “실뜨기 놀이”의 사유를 펼쳐 보인다. 정혜정 작가는 꾸준히 이분법적으로 분리되고 모종의 위계를 형성하는 경계들을 횡단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를테면 <지도바깥_수직방향>(2021)은 한강에 잠들어 있는 사물과 자연에 깃든 기억과 역사를 탐사하며 그 모든 것을 뒤섞어 보는 작업이었다.
1910년 멸종했다고 알려진 여행비둘기의 이야기에서 <액체몸체>는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생존한 여행비둘기 마사는 1914년 죽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나의 죽음은 더욱 특별할 것이다. (...)내 몸에 축적되는 모든 시간들을 담고 나는 마지막으로 살아있다. 나는 나의 다른 친구들의 죽음을 증언할 책임이 있다." 사뭇 비장한 톤으로 말하는 마사의 대사는 하나의 종이 스러지는, 생태계라는 연결된 체계 일부의 사슬이 끊어지는 상황을 증언한다. 서울타워 맨 꼭대기에 서서 서울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비둘기의 시야는 비인간 동물에게 적대적인 환경 자체를 조망한다. 사람의 얼굴을 한 마사의 모습은 그와 같은 비둘기 또한 여느 인간들처럼 도시의 구성원임을 일깨워주지만, 결국 그의 둥지는 서울타워 한쪽의 좁은 철망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작품은 비둘기에서 강아지, 인간, 멍게, 해파리 등 다양한 생명체로 계속하여 이동한다. 반려견 또리는 GIS를 기반으로 스캔된 도시 풍경 속을 뛰어다닌다. 스캔된 도시는 붕괴되고 있는 것처럼, 혹은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비둘기 마사에서 인간으로, 반려견 또리를 뒤쫓는 시점으로, 계속해서 화자와 시점을 바꿔 가는 <액체몸체>는 도시 공간 자체에 내포된 반-생물적 토대를 드러낸다. 그런데도 도시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도시라는 물질과 뒤얽혀 살아간다. <액체몸체>는 이를 출발점 삼아 단순히 도시 공간 내에서 비인간 동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신체, 더 나아가 생명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신체들의 관점을 사변적으로 상상해본다. 도시에서 바다로, 우주로 나아가는 작품의 상상력은 3D 그래픽의 힘을 빌려 다양한 몸-되기를 실천해보고, 생명 자체의 조건을 사유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글. 박동수. 네마프X해파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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