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바람, 물, 하나되기
어린 시절 보았던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유독 잊히지 않는다. 윌레스와 그로밋, 핑구, 팀 버튼의 코렐라인과 유령신부까지. 눈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클레이의 입체감과 질감은 TV로 보았던 다른 애니메이션보다 확연히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시청각뿐만 아니라 촉각을 자극하는 예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뒤에 감춰진 수작업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고체로 만들어진 피사체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 고정된 피사체의 동작이나 표정을 직접, 미세하게 움직여 프레임을 기록한다. 이러한 프레임이 모여 하나의 액션이 만들어지고, 이 액션이 모여 하나의 몽타주를 구성한다. 평균적으로 이렇게 찍어낸 프레임이 24개가 모여야 영화적 시간 ‘1초’를 형성한다. 지극히 정성 어린 수작업으로 영화적 시간은 탄생한다. 이러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알고 보면, <물끄러미> 스크린 뒤 수십, 수백 번의 교정과 고민을 거쳤을 감독의 손이 보이는 듯하다.
<물끄러미>는 한 소녀에게 일어난 동화 같은 한편의 이야기이다. 관객은 소녀가 꾸는 꿈 혹은 상상의 나래로 초대받게 된다. 무엇보다 소녀의 상상계를 구축하거나, 상상의 세계 간 이동이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경유하는 매개가 ‘자연물’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첫 번째 매개체는 클레이의 재질과도 유사한 성격의 ‘모래’다. 소녀의 팔, 다리가 모래에 묻혀 하나가 되고, 소녀의 전신이 모래에 삼켜지기도 한다. 클레이와 모래의 친연성은 덩어리에서 입자로 흩어지고, 입자에서 덩어리로 쌓이는 트랜지션에서 자연스러운 몽타주를 이룬다.
두 번째는 ‘바람’이다. 바람의 침식으로 산이 깎이고, 나무가 자라고, 나무는 다시 바람에 흔들린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소녀의 몸에 중력을 가하면서도, 가볍고 부드러운 기체의 흐름을 기입한다. 마지막으로 ‘물’의 시간이다. 펼쳐놓은 책 속에서 살아있는 물고기가 튀어 오르고, 깜짝 놀란 소녀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파도가 소녀를 삼킨다. 이윽고 깊은 바다에 빠진 소녀의 벗겨진 신발이 둥둥 흘러가고, 소녀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물살에 나부낀다. 클레이와 가장 거리가 먼 물성의 액체, ‘물’의 파동이 조용히 공존한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소녀의 동세는 고체의 조건에서 액체의 운동성을 표현해낸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러한 다채로운 자연물로 스크린의 무대를 자유자재로 탈바꿈하는 것이 <물끄러미>가 선사하는 환상적인 체험이다.
아름다운 점은, 소녀와 자연물과의 접촉, 합체, 분해의 과정에 녹아든 “하나가 된다”는 역학이다. 하나가 된다. 이는 인물과 사물, 인물과 자연, 자연과 다른 속성의 자연을 연결 짓는다. 소녀의 몸은 모래가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며, 산호초를 끌어안으면 산호초와 하나 된다. 모래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물로, 물에서 인물로. 클레이와 자연물의 물성을 뚜렷하게 기입하는 동시에, 그것들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물끄러미>는 치밀하고도 친밀하게 자연의 속성을 바라보고, 그것과 손잡고자 하는 마음이 원을 그리듯 그려낸 세계다. 침대 아래 숨은 물고기는 잃어버렸던 신발로 돌아오지만, 소녀의 모험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소녀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듯, 이별은 또 다른 시작이 되고 사라짐은 또 다른 생이 될 테니.
글. 박솔빈.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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