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각의 속박, 디지털 정체성의 초상: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직각의 격자로 이루어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 안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코인 노래방이 비추어진다. 손 하나, 그리고 화면을 향한 접촉의 행위는 직사각형 핸드폰을 마주하는 우리와 같다. 화면 속, 하나의 빈방은 ‘터치’로 인해 블록으로, 그리고 다시 코인 노래방으로 물리화된다. 물리화된 공간은 또 다른 접촉이 가능한 세계를 열어낸다. 그러나 이 공간이, 그리고 이 접촉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아니다.
여러 개의 각으로 이루어진 방 안에서 미끄러지는 신체와 화폐는 선택의 순간을 만든다. 선택은 또 다른 감각적 접촉을 불러오지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앞서서 행해졌던 신체적, 물리적 접촉의 순간이 아니다. 접촉을 이어내기 위한 다음의 방도는 앞으로 쏠릴 듯이 굽은 신체, 또 다른 물자의 투입이다. 이 순간 하나의 주체가 마주한 것은 그 주체도, 우리도 명확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이미지이다. 이윽고 이 이미지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명확한 실체가 없다. 실질적 접촉이 불가능한 공간에서의 이미지는 주체의 표상과 상상이 어우러진 가상의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직각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외부로부터의, 혹은 공회전하는 ‘연락-접촉’은 다시 또 다른 스크린-화면이다. 팝업(pop-up)으로 명시된 화면은 주체에 가닿지 못하고 죽은 화면이 된다. 꺼진 화면에 거울처럼 비친 모습은 주체를 재확인 시켜주는 듯하지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고 그 순간은 곧장 왜곡되고 만다.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에서 제시하는 어안-렌즈의 왜곡이 가져다주는 것은 주체가 가질 수 있는 바깥으로의 확장이 아니라,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굴절된 렌즈를 통해 다시 스크린-격자 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러니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가상의 이미지 속에서 굴절되고 왜곡된 주체는 스스로의 존재를 바깥으로, 혹은 내부가 아닌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스스로 소리 내지 못한 주체는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없으며, 그리고-이윽고 왜곡의 세계에 목이 졸린 채 카메라 앞에서, 화면 안에서, 스스로조차 자신을 식별할 수 없는 직각의 방 안에서, ‘나’를 향한 무수한 카메라 셔터 소음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잃을 뿐이다. 이윽고 ‘스스로’는 가상인지 진실인지 사이를 오가는 혼돈을 마주한다. 이 모호한 공간에서 '나'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헤매는 존재로 전락한다.
<폐쇄화면 텔레비전(CCTV)>는 카메라 렌즈가 시도할 수 있는 왜곡의 형태와 애니메이션적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특정한 대사는 없지만 명료한 형태의 기호들은 화면에서 흐르는 직선과 곡선의 교차처럼 얽혀 하나의 우화를 구성한다. <폐쇄화면 텔레비전(CCTV)>가 주목하는 것은 현대의 우리 삶이 구성된 굴레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글. 이인.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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