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회귀하는 폭력의 기억, 초혼(招魂)으로서의 <더 고스츠 컬트 앤 빅 브라더>
<더 고스츠 컬트 앤 빅 브라더>는 신체로 형상화된 지정학적 접촉의 순간을 지시한다. '큰(대문자)' 아버지의 존재와 이의 반대가 되는 '어머니'는 폭력과 낙담의 순간에 고뇌하고 분노한다. 약자와 강자를 가르는 이분법은 젠더의 옷을 입었다. 메시아의 자리에 위치한 독재자의 존재와 메타포들의 나열은 단 하나의 색을 남기고 무화된다.
제2차 세계대전과 마오쩌둥, 김일성 등을 지시하는 표현들은 비일상적 몸집과 집단화된 움직임, 개별성을 삭제하는 상징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억압에서 반사된 것들이 입는 색들은 특정한 공간을 상정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추상화하여 보편적인 폭력과 억압의 상징으로 승화시킨다.
"동양에서 온 이 귀신들은 모두 노란 피부에 검은 눈을 가졌다." 이 대사는 아시아적 폭력의 희생자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의 영혼은 18층 도거지옥에 있다고 묘사되는데, 이는 아시아적 세계관을 차용함으로써 극심한 고통의 상태를 나눌 수 있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희생되고 죽어버린 영혼들은 구천을 떠돌며, 이들은 저주와 같은 붉은 색으로만 현현할 뿐이다. 이러한 표현은 희생자들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해소되지 못한 한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한다.
배제된 목소리를 찾는 귀신의 움직임은 영화의 핵심적인 모티프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죽음을 상징하고, 그 상징들을 나열한다. 이는 단순히 공포를 자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잊혀지고 무시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되살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귀신들의 존재는 과거의 비극과 폭력이 현재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폭력은 ‘추억’되는가? 혹은, 자꾸만 돌아오는가? 다시 말하자면, 구천을 떠도는가? 폭력의 기억과 그 영향력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재를 형성하고 미래를 좌우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역사는 죽음으로 짜인 테피스트리이다. 시간을 엉겨놓음으로써 역사를 기입하는 감독의 방식은 독특하다. 이는 역사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과 고통이 얽혀 만들어낸 복잡한 패턴임을 암시한다. 감독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구천을 떠도는 여자-귀신의 존재,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내쉬는 한숨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이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수한 비전문배우들의 등장과 그들의 얼굴을 직시하는 장면들은 영화에 현실감과 진정성을 더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무력과 희생의 아시아적 초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얼굴들은 역사적 사건의 추상성을 넘어, 실제 고통받은 개개인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초혼(招魂)의 형식을 띤 이 영화는 '부름'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초혼, 즉 영혼을 부르는 행위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존재들을 현재로 소환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글. 이인. 네마프2024 비평웹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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