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은 무너뜨리고 치워버리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에서
<영원한 젊음을 위한 매뉴얼>은 젊음과 노화,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를 겨냥한 다채널 작업이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나래이터는 노화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해결할 매뉴얼을 제시하며 지우기(Erase), 통제하기(Control), 식민화하기(Colonize), 위장하기(Disguise)의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최민경과 싯왱산은 이 매뉴얼이 어떻게 자신들의 신체에 작용해왔고 나아가 서울과 싱가포르라는 두 도시에 적용되어왔는지를 살핀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젊음(이라 말해지는 매끈한 것, 주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선망이 강해지고 그것이 또다른 정상성의 범주를 형성하면서 노화는 감추고, 억제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화란 곧 매력적이지 않음, 쓸모없어짐, 경쟁력의 상실로 여겨졌기에 여성에게 피부를 관리하고 화장을 하는 등 노화를 감추고 통제하는 행위는 마땅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강제되었다. <영원한 젊음을 위한 매뉴얼>은 이 ‘주름을 펴는’ 행위에서 신체와 도시의 유비 관계를 발견한다. 신체에서 노화의 흔적을 지우며 노화 자체를 통제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거나 위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시 역시 낡음의 흔적을 지우며 통제하고 기억을 식민화하며 마치 거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 양 기억의 환상으로 위장한다.
두 작가가 특히나 주목한 곳은 서울의 을지로와 싱가포르의 부킷 브라운이다. 기억의 장소를 잃어가며 감춰지거나 사라지거나 위장당하는 곳들. 보기 싫은 것,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지저분한 것으로 여겨져 ‘정리’의 대상이 되거나 왜곡되거나 기이하게 변해버린 곳들. 을지로의 거리와 건물들은 철거되거나 변형되어 과거의 외피만을 뒤집어쓴 다른 공간이 되었고, 부킷 브라운 역시 기억과 삶, 생태계가 제거된 채 매끄러움이 차지한 공간이 되었다. 두 도시는 두 스크린 사이에서 느슨하게 엮이다 차차 거대한 연결점을 형성한다. 작품의 끝자락에서 두 작가가 신체를 맞대는 행위는 매끄러움에 맞서 주름을 형성하고자 하는 퍼포먼스이자 두 작가가 바라본 서울-을지로와 싱가포르-부킷 브라운을 잇는 형상화의 과정이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두 여성 작가의 유대이자 연대이기도 하다.
<영원한 젊음을 위한 매뉴얼>은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낡은 것은 치워버리거나 허물어버리고 거기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 당연해진 현실을 폭넓게 들여다본다. 눈길을 끄는 부분이 하나 있다. 나래이터가 두 작가가 가진 모순을 지적한다. “당신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부가 아닌가?”, “방금 부킷 브라운 묘지를 철거하고 지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았나? 너는 오래된 골목을 허물고 지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 않나?” 그러나 이런 모순이 다시 자신이 선 곳에 있는 폭력과 망각을, 나아가 새로움의 강박에 빠진 자신 스스로를 자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두 작가는 외려 이를 계기로 삼아 나래이터가 말하는 네 가지 지침에 저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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