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의 진솔함에 대하여
‘리얼리티’는 얼마나 더 정밀하고 또 진솔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서 정밀함이 해상도의 문제라면, 진솔함은 무엇의 문제라고 해야할까? 카메라는 얼마나 더 내밀한 감정에 다가갈 수 있는가? 김루이는 <다크라이스코프 실험>을 통해 정동이 구축하거나 왜곡하는 시야와 이를 적용한 카메라 모델을 탐구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정교하고 현실감 있게 대상을 바라보고 다뤄왔지만, 그것은 눈 깜빡임, 눈물과 이물질, 시력 저하와 향상, 감정 상태 등이 반영되지 않은 채 작동되었다. 김루이가 제시한 모델 ‘다크라이스코프’는 이러한 ‘시각적 비체’를 고려한 새로운 보기의 방식으로서 제시되었다. 이 카메라는 감정과 눈의 상태를 수치화해 그에 따른 시야를 파악, 설정하며 그에 따라 화면은 일렁이거나 흐려지며, 때때로는 대상이 식별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는 대상을 보다 선명하게 바라보기 위함이 아닌 오히려 흐릿한 상태를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비체(abject)’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다크라이스코프 실험>이 담지하고자 하는 것은 매끄러움이 아닌 지저분함이며, 리얼리티의 정밀함이 아닌 진솔함이다.
따라서 다크라이스코프가 보여주는 새로운 리얼리티는 보다 더 선명해지고자 하는 가상 현실의 그것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것이 반드시 뚜렷한 형태로 붙잡힐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음에도 가상 현실은 그 욕망을 발현시키기라도 하듯 보다 정교한 화면을 만들어 왔고 여전히 그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신체는 어딘가로 날아가버리며 밝은 화면만이 허공에 떠있게 된다. <다크라이스코프 실험>은 여기에 신체의 문제를 덧댄다. 감정의 즉발과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신체, 혹은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기입해 보다 진솔한 시야를 구성하게끔 하는 것이다. 눈물, 눈꺼풀, 눈곱, 다래끼와 같은 것들은 그것의 구성물이자 결과물이 된다.
한편으로 <다크라이스코프 실험>은 다크라이스코프를 이용한 ‘쓰기’의 실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일종의 에세이 쓰기로 받아들인다면, 다크라이스코프는 새로운 종류의 눈인 동시에 펜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는 이는 다크라이스코프의 시야를 공유함과 동시에 그것이 담보하고 있는 신체의 감정과 기억을 일정 부분 공유하게 된다. 이는 곧 이미지와 이미지(텍스트)의 몽타주가 아닌 시점과 이미지(텍스트)의 몽타주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작품의 후반부는 실험에 대한 검증인 한편 또다른 실험이기도 하며, 이 지점이 <다크라이스코프 실험>으로 하여금 실험자와 피험자라는 이중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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