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리듬에 맞춰 거리를 걷는 남자. 무용과 러닝 사이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는 그의 걸음걸이를 언어로 묘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거리의 행인들은 골목 곳곳을 물 흐르듯 유영하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그의 여정에 동행하는 카메라가 가끔 사람들의 눈길을 불러 모으지만, 일상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에 걸쳐있는 퍼포먼스는 미묘한 이질감만을 남길 뿐이다.
남자가 배회하는 양평동 1가에는 얼마 전까지 ‘인디 아트홀 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조병희 대표가 방치된 양은냄비 공장을 개조하여 설립한 문화 공간이다. 로컬 작가들과 함께 지역문화를 일구고 도시재생에도 기여했으나, 2021년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 앞에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공업시설이 철거된 현재, 아트홀이 있던 자리에는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섰다. <안녕>은 자본 논리에 질식하여 사라진 장소에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그 ‘뜨거운 안녕’을 담아내는 방식은 일반적인 애도의 정서를 벗어나 있다. 죽음을 불사르는 숭고한 투쟁도, 삶의 터전을 빼앗긴 울분도 없다. 대신 과장되게 흩날리는 남자의 팔다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가벼운 웃음을 자아낸다. 그가 일으킨 자그마한 균열 안에는 분명 긍정적인 기운이 샘솟고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제목을 곱씹게 된다. 한국의 인사말 ‘안녕’은 상황과 톤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만남의 기쁨은 늘 이별의 아쉬움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삶이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안녕’과 ‘안녕’ 사이 짧은 찰나일지도 모른다. <안녕>은 낯설게 변한 도로 위에서 형체조차 사라진 과거의 장소를 추억한다. 그러나 기억 위에 켜켜이 쌓인 작은 감정들이 어찌 나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 다가올 재회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미소 지으며 안녕을 고해야 한다.
양평동 일대의 흑백 사진으로 막을 올린 영화는 공간을 새롭게 감각하려는 ‘걷기’ 수행으로 이어진다. 길고 긴 장례 행렬의 출발점은 묘비 하나 없는 예술공간의 무덤, 현재 지식산업센터가 자리한 곳이다. 남자는 시간이 멈춘 동네에 숨을 불어넣으려는 듯 골목 사이사이를 내달린다. 이때 우리는 이별의 마라톤 도중 마주하는 지인들을 통해 자본주의의 그림자에 가려진 공간의 장소성을 새롭게 재배치할 수 있다. 남자가 반갑게 손을 흔드는 곳곳에는 여전히 예술공간의 흔적이 배어 있다. <안녕>은 신체적‧영화적 수행을 통해 사라진 공간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드러낸다. 예술 생태계가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지금, 영화는 버티고 저항하며 도심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안녕, 안녕, 안녕!
김현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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